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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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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적찬고(經籍纂詁)》는 청(清)나라 완원(阮元)이 여러 학자들과 함께 가경(嘉慶) 3년(1798)에 완성한 당(唐)나라 이전 옛 서적에 나오는 훈고(訓詁)의 내용을 모아 정리한 일종의 자전(字典)이다. 전체 106권이다.

2. 저자

(1) 성명:완원(阮元)(1764~1849)
(2) 자(字)·별호(別號):완원의 자(字)는 백원(伯元), 호(號)는 운대(芸臺) 또는 (雲臺), 뇌당암주(雷塘庵主), 연경노인(揅經老人), 이성노인(怡性老人) 등이 있다. 시호는 문달(文達)이다.
(3) 출생지역:강소(江蘇) 의징(儀徵)(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의징시(儀徵市))
(4) 주요활동과 생애
할아버지 완옥당(阮玉堂)은 호남참장(湖南參將)을 하였고, 아버지 완승신(阮承信)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을 공부한 고문학자이다. 완원은 건륭(乾隆) 54년(1789) 진사進士가 되어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를 거쳐 병부(兵部), 예부(禮部), 호부시랑(戶部侍郎), 산동학정(山東學政), 절강학정(浙江學政), 절강순무(浙江巡撫,) 강서순무(江西巡撫), 하남순무(河南巡撫), 조운총독(漕運總督), 호광총독(湖廣總督), 양광총독(兩廣總督), 운귀총독(雲貴總督) 등을 역임했다. 만년에는 체인각태학사(體仁閣大學士)에 벼슬을 그만둔 후 태부(太傅)를 더하였다. 도광(道光) 29년(1849)에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경적찬고(經籍纂詁)》,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 《황청경해(皇清經解)》, 《연경실집(揅經室集)》 등이 있다. 《경적찬고》는 완원이 절강학정(浙江學政)일 때 고경정사(詁經精舍)를 세우고 편찬한 것으로, 장용당(臧鏞堂)・장예당(臧禮堂) 형제, 홍이훤(洪頤煊)・홍진훤(洪震煊) 형제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의 참여로 이루어진 집체(集體) 작업의 일환이다.
(5) 주요저작
주요저작으로는 《경적찬고》, 《십삼경주소교감기》, 《황청경해》, 《연경실집》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주인전(疇人傳)》을 짓고, 《절강통지(浙江通志)》, 《광동통지(廣東通志)》를 중수(重修)하고, 《산좌금석지(山左金石志)》, 《양절금석지(兩浙金石志)》, 《적고재종정관지(積古齋鐘鼎欵識)》, 《양절유헌록(兩浙輶軒錄)》, 《회해영령집(淮海英靈集)》을 편집(編輯)하였고, 《문선루총서(文選樓叢書)》를 간행하였다.

3. 서지사항

《경적찬고》는 106권으로 구성되었다. 명칭의 의미는 경적(經籍)에 기록된 훈고(訓詁)의 내용을 모아 정리하였다는 의미를 지닌 찬(纂)(또는 찬(䉵))을 사용하여 수집하여 나열함을 가리킨다. 경적에는 당(唐)나라 이전에 간행된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해당하는 다양한 서적 100여 종을 망라하였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는 《패문운부(佩文韻府)》의 분운(分韻)에 의거하여 글자를 배열하였다. 책의 권수가 106권인 것은 《패문운부》가 채용한 평수운(平水韻)에 의거하여 항목을 나열하였기 때문으로, 각 운(韻)당 1권(卷)을 배정하였다. 《패문운부》에 없는 글자는 《광운(廣韻)》 또는 《집운(集韻)》에 의거하여 증보하였다. 또한 보유(補遺) 106권이 별도로 구분되어 정편(正編)의 각권 말미에 덧붙여놓았다. 이 책에 집록된 문자의 뜻풀이는 모두 당나라 이전 경사자집에 있는 주해(注解)와 훈고서, 자서, 운서, 음의서 가운데 있던 기존의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에 참고한 서적은 총 100여 종에 달하며, 수록 글자의 수는 1만 3,349자(이체자(異體字 )불포함)이다. 고대의 문자 뜻풀이와 각종 고서의 문구 중에 있는 훈석(訓釋 )등은 거의 모두 함께 이 책에 모아진 셈이다.
전대흔(錢大昕)의 서(序)에 의하면 가경(嘉慶) 5년(1800)에 광동(廣東)에서 판각한 일명 광동본(廣東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재에는 그 판본을 볼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으로는 가경 17년(1812) 완씨낭현선관각본(阮氏琅嬛仙館刻本)으로, 이하의 판본에 대한 저본(底本)이라 할 수 있다. 광서(光緒) 6년(1880) 회남서국(淮南書局) 보각본(補刻本)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민국(民國) 25년(1936) 상해국학정리사(上海國學整理社)에서 정리하고, 세계서국(世界書局)에서 연자영인본(鉛字影印本)을 발행하였으나, 인쇄 질이 좋지 않아 많이 퍼지지 않았다. 1981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가경 17년본을 저본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보유(補遺)를 초편(初編)의 매권(每卷) 뒤에 붙이는 형식을 채택하였다.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판본이 바로 이 판본이다. 1982년 성도고적서점(成都古籍書店)에서 또한 가경 17년본을 저본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1989년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1981년 중화서국 영인본을 저본으로, 단구(斷句)를 하고, 보유를 정편의 해당 위치에 삽입하면서 세계서국판의 오류 200여 항목을 바로 잡았다. 전체 책의 인용문을 일일이 원서와 대조하여 오자(誤字)와 피휘자(避諱字 )등을 고쳤고, 기타 오류는 교감기를 통하여 4,000여 항목에 대해 기록하였다.

4. 내용

책의 앞부분에 전대흔(錢大昕)과 왕인지(王引之)의 서(序), 장용당(臧鏞堂)의 후서(後序)가 있다. 이후 완원(阮元)이 기록한 범례(凡例)를 통해 훈고의 일반적인 형태와 용어 설명, 인용 방식 등을 설명하였다.
각각의 항목은 《패문운부(佩文韻府)》의 분운(分韻)에 의거하여 해당 글자를 배열하였다. 즉 전체를 평상거입(平上去入)으로 대분류하고, 평수운의 첫 번째 운(韻)인 동(東)을 시작으로 마지막 흡부(洽部)까지 106운에 맞추어 글자를 배열하였다. 각 항목에는 해당 글자의 본의(本義)에 해당하거나 이른 시기의 훈고를 앞으로, 파생 의미나 가차 등의 내용을 이어서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글자인 동(東)의 경우 “—動也”라 풀이한 훈고의 출처로 《광아(廣雅)》 〈석고일(釋詁一)〉과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 상〉을 들었다. 인용한 책으로는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대대례기(大戴禮記)》 등 경전,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등 역사서, 《노자(老子)》, 《장자(莊子)》, 《한비자(韓非子)》 등 제자서, 《문선주(文選注)》 등 다양한 훈고서뿐만 아니라, 《경전석문(經典釋文)》, 《방언(方言)》, 《광아(廣雅)》 등의 다양한 소학서의 훈고 내용을 인용하였다. 이들 책의 훈고 내용을 일일이 인용하여 일목요연하게 살펴보는 데에 편리함이 있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청대 고증학, 특히 훈고학에 있어서 대표적인 책으로 당나라 이전 훈고의 내용을 총 망라하여 검색이 가능하도록 배열하였고, 이를 통해 원서를 찾거나 고대중국어 또는 한문을 연구함에 있어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본의, 파생의, 가차의 등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해당 자의 의미 변천 등을 살피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책으로는 당나라 때 안진경(顏真卿)이 지은 《운해경원(韻海鏡源)》 200권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이후 송나라 때 《운부군옥(韻府群玉)》, 명나라 때 《오거운서(五車韻瑞)》 등이 있지만 모두 소략하고 불완전하였다. 이 책은 《패문운부(佩文韻府)》의 체례(體例)를 따르는 등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대신 《패문운부》에서는 시문 작성을 위해 그 예문만을 들었을 뿐, 정확한 출처를 밝히거나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경적찬고》는 훈고에 필요한 설명과 그 출처를 정확히 제시하여 정밀함을 더하였다. 훈고와 관련하여 대표작으로 꾸준히 이용되다, 2007년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고훈휘찬(故訓匯纂)》을 발간하면서 《경적찬고》의 전통을 이었다. 그렇지만 《고훈휘찬》의 빠진 부분 등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용자에게 참조할 만한 부분이 있다.
《완당전집(阮堂全集)》의 해제에 의하면 “24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동지부사(冬至副使)인 생부 노경(魯敬)을 수행하여 연경(燕京)에 가게 된다. 이에 스승을 통해 말로만 듣던 청나라의 학문을 직접 접할 기회를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연경 학계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옹방강(翁方綱)・완원과 사제지간을 맺어 그들의 학문을 전수받고, 당시 연경 학계의 이름난 학자들과도 교유하게 된다. 당시 47세인 완원은 자신의 경학관, 예술관, 금석고증의 방법론을 전수하면서 자신의 저서인 《경적찬고》 106권과 《연경실문집》 6권, 《십삼경주소교감기》 245권을 완당에게 기증하니, 이때에 별호를 ‘완당(阮堂)’이라고 짓는다.……그의 경학관은 훈고(訓詁)와 의리(義理)를 동시에 중시하는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으로서 추사(秋史)가 이에 영향을 받아 저술한 것이 바로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이다. 이 실사구시설은 추사가 31세 때 지은 것으로 옹방강의 경학관에 완원의 철저한 고증학적인 경학관을 합쳐 종합 정리한 것으로 새로운 경학관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때 받은 《경적찬고》는 현재 통용되는 판본보다 이른 판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십삼경교감기》, 《경적찬고》, 《황청경해》 등 180여 종을 저술하였다. 한학(漢學)을 오로지 종주(宗主)로 하여, 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법도로 받든다. [撰十三經校勘記經籍纂詁皇清經解百八十餘種 專宗漢學 治經者奉爲科律]” 《청사고(清史稿)》 〈완원전(阮元傳)〉
• “문자가 있고난 후에 훈고(訓詁)가 있고, 훈고가 있고난 후에 의리가 있다. 훈고라는 것은 의리가 나온 곳으로, 훈고 밖에서 의리가 별도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有文字而後有詁訓 有詁訓而後有義理 詁訓者 義理之所由出 非别有義理出乎詁訓之外者也]” 《경적찬고(經籍纂詁)》 〈전대흔서(錢大昕序)〉
• “이 책은 여러 군데에서 섞여 나온 것을 채집하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에, 또한 잘못되거나 어긋난 부분을 이미 헤아릴 수 있고, 또한 피할 수도 없다.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원서를 검사하여 확실함을 대비할 것이다. 빠지거나 한 것 또한 적지 않다.[此書采輯雜出 衆手傳寫 亦已數過譌舛之處 或亦不免 凡取用者宜檢查原書以期確實 至於遺漏諒亦不少]” 《경적찬고(經籍纂詁)》 〈범례(凡例)〉
(2) 색인어
완원(阮元), 경적찬고(經籍纂詁), 훈고(訓詁), 자전(字典), 경적(經籍), 경사자집(經史子集), 패문운부(佩文韻府), 고훈휘찬(故訓匯纂)
(3) 참고문헌
• 經籍纂詁(中華書局)
• 古訓匯纂(宗福邦等,商務印書館)
• 중국문자훈고학사전(전광진 편역, 동문선)
• 四庫全書總目提要(中華書局)
• 也談《故訓匯纂》與《經籍纂詁》(李開金等, 東方論壇)

【신원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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