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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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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옥편(玉篇)》은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남조(南朝) 양(梁)나라 고야왕(顧野王)이 543년에 한자를 부수별로 나누어 배열한 한자자전(漢字字典)이다. 수록 표제자는 16,917자이다. 반절(反切)로 음가를 표시했으며, 자의(字義)의 해설을 중점에 두었다. 원본은 없어지고 잔권(殘卷) 7권이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데, 《옥편》 잔권으로 추정할 때 《설문해자(說文解字)》나 《자림(字林)》에 비해 뜻풀이와 예문이 풍부하여 당시 언어생활의 면모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 저자

(1) 성명:고야왕(顧野王)(519~581)
(2) 자(字):자는 희풍(希馮)
(3) 출생지역:소주(蘇州) 오중(吳中)(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4) 주요활동과 생애
고야왕의 조부 고자교(顧子喬)는 양(梁)나라 때 동중랑 무릉왕부 참군사(東中郞武陵王府參軍事)를 지냈으며, 부친 고훤(顧烜)은 신위임하왕기실 겸본군오관연(信威臨賀王記室兼本郡五官掾)을 지냈는데, 유가에 정통하여 이름이 알려졌다. 고야왕은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7세에 오경(五經)을 익혔으며, 12세에 부친을 따라 건안(建安)에 갔을 때에는 2편의 《건안지기(建安地記)》를 필사하기도 했다.
남조 양나라 대동(大同) 4년(538)에 태학박사(太學博士)가 되었고,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고양왕은 특히 그림을 잘 그렸다. 선성왕(宣城王)의 문객으로 있을 때 선성왕이 고야왕에게는 옛날의 성현을 그리게 하고, 왕포(王褒)에게는 찬(贊)을 쓰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사람들이 두 사람의 작품을 ‘이절(二絕)’이라 칭송하였다.
후경(侯景)의 난 때 고야왕은 부친의 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수백 명을 모아 의군(義軍)과 함께 경도(京都)를 지원하였는데, 경성(京城)이 함락되자 회계(會稽)로 달아났다가, 다시 동양(東陽)에 가서 유귀(劉歸)와 상의하여 함께 해자를 점거하며 적군에게 대항하였다. 후경의 난이 진압된 후에 태위(太尉) 왕승(王僧)이 고야왕을 변론하고 찬상(贊賞)하며 그에게 해염현(海鹽縣)을 관리하게 하였다.
뒤에 진(陳)나라에서 금위장군(金威將軍), 안동임천왕부기실참군(安東臨川王府記室參軍), 부자의참군(府咨議參軍), 찬사학사(撰史學士), 초원장군(招遠將軍), 진동파양왕자의참군(鎮東鄱陽王咨議參軍), 국자박사(國子博士), 동궁관기(東宮管記),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 대저작(大著作), 동궁통사사인(東宮通事舍人), 황문시랑(黃門侍郎), 광록경(光祿卿), 지오례사(知五禮事)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나이 63세였던 태건(太建) 13년(581)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비서감(秘書監)에 추증되었으며, 지덕(至德) 2년(584)에 이르러서는 우위장군(右衛將軍)에 추증되었다.
(5) 주요저작:《옥편(玉篇)》, 《여지지(輿地志)》, 《속동명기(續洞冥紀)》, 《통사요략(通史要略)》, 《국사기전 (國史紀傳)》 등

3. 서지사항

《옥편》은 《자림(字林)》에 비해 4,000여자가 더 많다. 또한 《자림》과 후대에 제작된 여러 자전(字典)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고야왕이 《옥편》을 편찬한 후 당대(唐代)에 손강(孫强)이 표제자를 보충하여 760년에 간행하였으며, 송대(宋代)에 진팽년(陳彭年)‧오예(吳銳)‧구옹(丘雍) 등이 손강본(孫强本)에 근거하여 1013년에 《옥편》을 증보하고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이라고 이름하였는데, 모두 소실되었다. 고야왕이 편찬한 《옥편》은 일반적으로 원본(原本) 《옥편》이라고 불렸다.
원본 《옥편》은 일본(日本)에 잔권이 남아 있으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권8, 권9, 권18, 권19, 권22, 권24, 권27의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표제자는 약 2,100자로 전체의 약 12%에 해당한다. 일본의 쿠라카이(空海)가 편찬한 《전예만상명의(篆隷万象名義)》는 전서(篆書) 부분을 제외하고는 표제자의 배열순서가 원본 《옥편》 잔권과 일치하며, 설명도 《옥편》에서 추출한 것으로 이를 통해 원본 《옥편》의 전체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돈황(燉煌)에서 당대(唐代) 사본(寫本) 《옥편》의 잔권이 발견되었다.
금본(今本) 《옥편》은 송본(宋本)과 원본(元本)이 있다. 송본에는 일본도서료본(日本圖書寮本), 청대(清代) 장사준(張士俊)의 택존당각본(澤存堂刻本)과 조인(曹寅)의 양주시국각본(揚州詩局刻本)이 있다. 원본에는 《사부총간(史部叢刊)》 영인본이 있다. 송본의 권말(卷末)에는 “分毫字樣”과 “神珙四聲五音九弄反紐圖”가 있고, 원본의 권수(卷首)에는 《옥편광운지남(玉篇廣韻指南)》 1권이 더 있다. 송본이 주석이 많은데 비해 원본은 매우 간략하며 배열이 정제되어 있다. 부수(部首) 내 표제자의 배열순서는 송본과 같지 않다.
당대(唐代)의 기록인 《문견기(聞見記)》에 근거할 때 원래 《옥편》의 표제자는 모두 16,917자를 포함하여 158,641자이다. 현존본은 표제자 22,561자를 포함하여 209,770자인데 이는 손강(孫强)이 51,129자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9,353자가 수록된 《설문》과 비교해보면, 원본 《옥편》이 7,564자가 더 많다. 금본(今本)의 표제자는 13,208자로 자수가 증가하였는데, 이는 시대의 요구로 인한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일부(一部)’로 시작하여 ‘해(亥)’에서 끝나는 점은 《설문해자》와 동일하나, 중간의 배열순서는 다르다. 유서(類書)의 형태처럼 동류(同類)의 부수를 배열하여 검색에 편의를 더했다. 권9에는 입의 행위와 관계된 言‧曰‧音‧告‧欠‧食 등으로 모아두었다. 표제자는 《설문해자》와 달리 해서(楷書)로 된 16,917자를 수록하였다.

4. 내용

권3~권5에는 ‘인류’와 ‘사람의 신체’ 등과 관련된 인(人)・비(鼻)・설(舌)・치(齒)・족(足)・골(骨)・심(心)・사(思)・언(言), 권10에는 ‘걸음’과 관련된 행(行)・주(走)・보(步), 권11에는 ‘집’과 ‘죽음’에 관련된 궁(宫)・문(門)・호(戶)・시(尸)・사(死), 권12~14에는 ‘식물’과 관련된 목(木)・초(艸)・죽(竹), 권15에는 ‘곡식’에 해당하는 맥(麥)・화(禾)・미(米), 권17에는 ‘무기’와 관련된 시(矢)・궁(弓)・모(矛)・과(戈)・도(刀), 권19~권20은 ‘기상’과 관련된 수(水)・우(雨)・운(雲)・풍(風)・일(日)・월(月), 권21에는 ‘크기’와 ‘색깔’과 관련된 다(多)・소(小)・대(大)・현(玄)・흑(黑)・적(赤)・청(青), 권22에는 ‘산’과 관련된 산(山)・석(石)・부(阜), 권23에는 ‘가축과 짐승’과 관련된 마(馬)・우(牛)・양(羊)・견(犬)・녹(鹿)・토(兔)・호(虎), 권24에는 ‘조류’와 관련된 오(烏)・연(燕)・조(鳥), 권25에는 ‘충류(蟲類)’와 관련된 서(鼠)・충(蟲)・구(龜)・맹(黽), 권26에는 ‘동물체’와 관련된 우(羽)・모(毛)・각(角)・피(皮)・혁(革), 권27에는 ‘실’과 관련된 사(絲)・치(黹)・삭(索), 권28에는 ‘의상’과 관련된 건(巾)・의(衣)・구(裘), 권29에는 ‘숫자’와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와 관련된 오(五)・육(六)・칠(七)・팔(八), 갑(甲)・을(乙)・병(丙)・정(丁), 자(子)・축(丑)・인(寅)・묘(卯) 등의 부수에 해당하는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설문(說文)》이 자형(字形)을 위주로 설명한 것과 다르게 《옥편》은 자의(字義)를 위주로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의(本義)에만 한정하지 않고, 한 글자에 여러 가지 뜻이 있을 경우 모두 수록하였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후대 자전(字典)의 선례를 개척한 것으로, 《옥편》은 이 방면에서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고야왕의 원본으로 볼 때, 매 글자 아래에 자의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고적(古籍)을 통한 예증(例證)과 선인(先人)의 주해(註解), 경전(經典)과 자서(字書) 및 훈고서(訓詁書)를 인용하는 등 매우 상세하게 수록하였다. 표제자 바로 아래 독음을 반절(反切)로 표기하였으며, 많은 문헌을 인용하였다. 자신의 견해는 “野王案”이라고 표시하였다. 표제자 뒤에 이체자(異體字)도 나열하여 그것이 어느 부분에 있는지를 기록하였다. 표제자의 이체자가 있는 경우에는 한 번 더 구별하여 주석으로 밝혔는데, 이는 금본 《옥편》과 차이가 있다.
《옥편》은 사전 편찬의 입장에서 볼 때 《설문》에 비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첫째, 표제어 다음에 반절(反切)을 제시하여 독자가 하나의 글자를 보면 바로 그 글자의 독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둘째, 《설문》의 해석을 인용하였다. 셋째, 모든 글자에 대해 예시를 제시하였다. 넷째, 필요에 따라 예문을 해석하였다. 다섯째, 한 개의 글자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경우에 유의하였다.
《옥편》은 한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세진(崔世珍)은 《운회옥편(韻回玉篇)》을 제작하였고, 정조正祖는 《전운옥편(全韻玉篇)》을 간행하였다. 일본의 《전예만상명(篆隷万象名義)》과 《왜옥편(倭玉篇)》도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6. 참고사항

(1) 명언
• “【一】 어(於)와 일(逸)의 반절(反切)이다. 《설문(說文)》에 ‘최초로 만물이 형성될 때 도(道)가 일(一)에서 세워지고 나누어져 하늘과 땅이 되고 변화하여 만물이 되었다.’라고 하였고, 《도덕경(道德經)》에 ‘옛날 하나를 얻은 것은,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아지고, 땅은 하나를 얻어 안정되고, 신령은 하나를 얻어 영험해지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 가득차고, 만물은 하나를 얻어 생장하고, 후왕(侯王)은 하나를 얻어 천하가 바르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왕필(王弼)은 ‘하나는 수(數)의 시작이다. 사물의 궁극이다.’라고 하였다. 또 ‘같다’ ‘적다’ ‘처음’이다. ‘壹’로 쓰기도 한다. ‘弌’는 고문이다.[一 於逸切 說文曰 惟初太始 道立於一 造分天地 化成萬物 道德經云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清 地得一 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為天下正 王弼曰 一者 數之始也 物之極也 又同也 少也 初也 或作壹 弌 古文]” 《옥편(玉篇)》 〈일부(一部) 1〉
• “【人】 이(而)와 진(眞)의 (反切)이다. 〈주서(周書)〉에 ‘오직 사람만이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하였고, 공안국(孔安國)이 ‘천지가 낳은 것 중에는 오직 사람만이 귀중한 존재이다.’라고 하였고, 《역(易)》에 ‘대인(大人)은 천지와 그 덕(德)이 합하고 일월(日月)과 밝음이 합하며 사시(四時)와 차례가 합하며 귀신과 길흉(吉凶)이 합한다.’라고 하였고, 《예기(禮記)》에 ‘사람은 오행五行의 단서이다.’라고 하였고, 《태현경(太玄經)》에 ‘구인九人이 있으니, 첫 번째 단계는 하인下人이고, 두 번째 단계는 평인(平人)이고 세 번째 단계는 진인(進人)이고, 네 번째 단계는 하록(下祿)이고, 다섯 번째 단계는 중록(中祿)이고, 여섯 번째 단계는 상록(上禄)이고, 일곱 번째 단계는 실지失志이고, 여덟 번째 단계는 질어(疾瘀)이고, 아홉 번째 단계는 극(極)이다.’라고 하였고, 《설문(說文)》에 ‘천지(天地)가 낳은 것 중에 가장 귀한 존재이다. (象)팔과 정강이의 모양을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人 而眞切 周書曰 惟人萬物之靈 孔安國曰 天地所生 惟人爲貴 易曰 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禮記云 人者 五行之端 太玄經云 有九人 一爲下人 二爲平人 三爲進人 四爲下祿 五爲中祿 六爲上禄 七爲失志 八爲疾瘀 九爲極 說文云 天地之性 最貴者也 象臂脛之形]” 《옥편》 〈인부(人部) 23〉
(2) 색인어:옥편(玉篇),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 고야왕(顧野王), 손강(孫强), 진팽년(陳彭年), 오예(吳銳), 구옹(丘雍)
(3) 참고문헌
• 《原本玉篇殘卷》(中華書局)
• 《玉篇(宋本)》(澤存堂刻本)
• 《玉篇(元本)》(사부총간史部叢刊)
• 《二十四史全譯 南史》(漢語大詞典出版社)

【조성덕】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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