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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事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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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은 남송南宋의 주필대周必大 등이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저작을 구양수의 시호諡號인 문충文忠을 넣어 153권과 부록 5권으로 편집한 책이다. 《구양문충공집》 가운데 《거사집居士集》 50권은 구양수가 만년에 직접 편찬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주필대 등이 주관하여 편찬하였다.

2. 저자

(1)성명:구양수歐陽脩(1007~1072)
(2)자字·별호別號: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3)출생지역:면주綿州(현 사천성四川省 면양현綿陽縣), 원적原籍은 길주吉州 여릉廬陵(현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4)주요활동과 생애
구양수는 북송 때의 유명한 정치가·문학가·사학가이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읜데다 집마저 가난하였는데, 구양수 어머니는 문구를 살 돈이 없자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글씨를 써서 구양수를 가르쳤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비견되는 구모화적지교歐母畵荻之敎이다. 10세 때에는 이웃집 광주리 속에 담겨 있던 해진 한유韓愈의 문집을 빌려와 읽으며 공부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시문혁신詩文革新 운동을 일으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4세 때에 진사가 되어 인종仁宗 때에는 지제고知制诰·한림학사翰林学士 등을 지냈고, 영종英宗 때에는 추밀부사樞密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으며, 신종神宗 때에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의 요직을 지냈다. 태자소사太子少師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이듬해 66세로 생을 마쳤다.
정치적으로 그는 범중엄范仲淹 등이 주도한 정치개혁인 경력신정慶曆新政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폐時弊를 개혁하려다 몇 차례 좌천당하기도 하였고, 문학적으로는 만당오대晩唐五代에 유행하였던 유미주의唯美主義 문풍文風인 시문時文과 송대宋代에 새롭게 등장한 태학체太學體를 비판하면서 당대唐代의 한유가 지었던 산문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송대의 고문운동을 주도하였다. 지금까지도 그는 당송산문팔대가唐宋散文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중국문학사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5)주요저작:《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외에 《모시본의毛詩本義》 16권, 《육일사六一詞》 2권, 《육일시화六一詩話》 1권, 《오대사기五代史記》, 《신당서新唐書》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구양수의 문집은 북송 후기와 남송 전기에는 특정한 선본善本이 없이 면주본綿州本·사당본祠堂本·선화길주본宣和吉州本·여릉본廬陵本·소주본蘇州本·민본閩本 등 여러 종류의 판본이 유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송 광종光宗 소희紹熙 2년(1191)에서 영종寧宗 경원慶元 2년(1196)까지 여릉廬陵 지방의 학자인 주필대周必大·증삼이曾三異·손겸익孫謙益 등이 구양수 문집의 여러 각본刻本들을 광범하게 수집하고 상세히 교정하여 《구양문충공집》을 편찬하였다. 모두 153권, 부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4. 내용

《구양문충공집》은 전 153권, 부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53권 속에는 구양수가 직접 편찬한 《거사집居士集》 50권이 있고, 주필대 등이 편찬한 《역동자집易童子集》·《외제집外制集》·《내제집内制集》·《표주서계사륙집表奏書啓四六集》·《주의집奏議集》 등 64권, 《귀전록歸田錄》·《시화詩話》·《장단구長短句》 등 19권, 《집고록발미集古錄跋尾》 10권, 서간書簡 10권이 있다. 앞에는 연보年譜가 있고, 뒤 부록으로 행장行狀·묘지墓誌·전문傳文 등 5권이 있다.
구양수는 《귀전록歸田錄》에서 “내가 평소 지은 문장은 대부분이 세 곳에서 지어졌는데, 바로 말 위, 침상 위, 측간 위에서이다. 대개는 이 때에 더욱 깊이 구상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余平生所作文章 多在三上 乃馬上枕上厠上 蓋惟此尤可以屬思焉]”라고 하였는데, 관리로서의 바쁜 업무 등으로 인해 말을 타고 갈 때나 잠을 자기 위해서 침상에 누웠을 때 아니면 화장실에 갔을 때에도 늘 시문詩文 구상에 몰두하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말이다. 구양수의 문장은 대우對偶, 대비對比, 인용引用, 전고典故 같은 다양한 표현기교의 운용뿐만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과 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문장은 관점이 명확하고 논거가 확실하며 조리가 분명하여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송대 초기에 등장한 유미주의 문체인 태학체太學體를 개혁하여 당대 한유의 문장을 모범으로 하는 글을 지어야 한다는 고문운동을 전개하며 송대 문단의 영수가 되었다. 1058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자 과거시험에 이러한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여 증공曾鞏·소식蘇軾·소철蘇轍 등을 선발하였는데, 이들도 훗날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선발될 정도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구양수는 문장뿐만 아니라 시 또한 송대의 저명한 시인 매요신梅堯臣과 이름을 다툴 정도여서 그의 시문詩文 모두 중국에서 역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국의 당송고문唐宋古文은 조선 사대부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당송 팔대가인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식蘇軾 등이 조선 사대부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았다. 구양수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구소歐蘇’와 ‘한구韓歐’의 형태로 조선 문인들의 의식구조에 자리 잡으면서, 구양수의 산문작품과 그 사상은 점차 전파되고 확산되었다. 구양수와 소식의 서찰인 《구소수간歐蘇手簡》 같은 책은 세종世宗이 세자 시절에 천 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중종中宗 때에는 갑인자금속활자본甲寅字金屬活字本인 《구양문충공집》과 갑인자금속활자본의 보간본補刊本인 《구양문충공집》이 간행되기도 하였으며, 《구문초歐文抄》·《당송사대가문초唐宋四家文抄》·《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등과 같은 선집選集들이 여러 차례 간행되기도 하였다. 구양수의 문장이 조선에 소개되면서 구양수가 주창한 고문운동도 조선의 문폐文弊 개혁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고, 특히 그의 붕당론朋黨論·상범사간서上範司諫書 등과 같은 작품은 여러 차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인용되기도 하여 조선의 고문과 성리학이 형성·발전·정착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근심하고 애쓰면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안일하고 향락하면 몸을 망하게 할 수 있으니 자연의 이치이다.[憂勞可以興國 逸豫可以亡身 自然之理也]” 〈오대사령관전서五代史伶官傳序〉
• “군자는 도道를 같이함으로써 벗을 삼고, 소인은 이익을 같이함으로써 벗을 삼는다.[君子與君子以同道爲朋 小人與小人以同利爲朋]” 〈붕당론朋黨論〉
• “취옹의 뜻은 본래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산수 자연에 있다.[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취옹정기醉翁亭記〉
• “내가 평소 문장을 구상한 것은 대부분 말 위, 침상 위, 측간 위에서다.[余平生所作文章 多在三上 乃馬上枕上廁上也]” 〈귀전록歸田錄〉
(2)색인어: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구양수歐陽脩, 주필대周必大, 범중엄范仲淹, 한유韓愈, 고문운동古文運動,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태학체太學體
(3)참고문헌
• 歐陽修全集(歐陽修, 世界書局)
• 新譯 歐陽修散文選(노장시, 明文堂)
• 譯註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이상하, 傳統文化硏究會)
• 注譯 歐陽修文選讀(陳蒲淸, 岳麓書社)
• 注譯 歐陽修散文選(陳必祥, 三聯書店)
• 歐陽修論稿(劉德淸, 北京師範大學出版社)
• 〈구양수歐陽修 산문의 고려高麗 유입과 전파〉(김춘란, 淵民學報)
【노장시】

동양고전해제사전 책은 2018.05.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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