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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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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자(荀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데 한 사람인 순황(荀況)의 저술이다. 《순자》에는 순자가 직접 저술한 기록과 그의 제자들이 순자의 말이나 이야기를 서술한 내용이 함께 실려 있다. 순자는 본래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자하(子夏)의 사상을 전승한 유학자이지만 기존 유학에서 흠앙하던 하늘의 권위를 부정하고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으며, 예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형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기 때문에 그의 문하에서 한비자(韓非子)·이사(李斯)와 같은 법가(法家)의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순자의 사상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당대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을 고루 흡수하여 자신의 사상을 강화시켰다는 특징을 지닌다. 같은 공문(孔門)의 영향을 받아 출발한 사상이지만 공자 유학의 정통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맹자와 대비되어 후대 유학사에서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

2. 저자

(1)성명 : 순황(荀況), 전국시대 인물로 맹자보다 약간 뒤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2)자(字)·별호(別號) : 자는 경(卿)
(3)출생지역 : 전국시대 조(趙)나라(지금의 산서성(山西省))
(4)주요활동과 생애
순자에 대한 기록은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보인다. 순자는 고향인 조나라에서 자랐고 당시 여러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던 제(齊)나라 직하(稷下)에서 학문을 닦았다. 직하에서는 유가를 비롯하여 도가(道家)·묵가(墨家)·법가(法家)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이 연구되었으며 순자도 이곳에서 다양한 학문을 통섭하였다. 이후 제나라 민왕(暋王)이 죽고 잠시 쇠했던 학문의 교류는 양왕(襄王) 시기에 부흥하였는데, 당시 순자는 좨주(祭主)가 되어 학문의 주류를 담당하였다. 이후 제나라에서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갔던 순자는 초나라의 재상이었던 춘신군(春申君)에게 등용되어 난릉(蘭陵)의 수령이 되었는데, 훗날 춘신군이 암살을 당하자 순자도 벼슬을 내놓고 난릉에서 머물러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
(5)주요저작:미상.

3. 서지사항

현전하는 《순자》는 순자 본인의 저술과 문인·제자들의 기록이 뒤섞인 상태로 총 20권 3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유가(儒家)조에는 《손경자(孫卿子)》가 33편,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유가조에는 《손경자》가 12권, 그 외의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송사(宋史)》 등의 기록에서도 현전하는 《순자》의 편수와 일치하지 않는 점을 미루어보면, 한대에서 송대까지 유행하던 《순자》의 판본이 각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현전하는 형태의 《순자》를 정리·교정한 것은 한나라의 유향(劉向)이며, 처음으로 주해를 시도한 사람은 당나라의 양경(楊倞)으로 알려져 있다.

4. 내용

모두 32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순자》에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몇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순자》 〈천론(天論)〉편에서는 기존 유학에서 숭배하던 하늘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하늘에는 하늘의 도가 있고 땅에는 땅의 도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도가 있다.’고 하여 하늘과 사람을 구분하였다. 여기에서는 천지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우수한 존재라는 순자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순자는 형이상학(특히 하늘에 관한)을 부정하고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순자의 인식론은 〈해폐(解蔽)〉편에 드러난다. 순자는 올바른 인식을 얻는 방법은 마음의 욕망이나 잡된 생각을 없애서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 하였고, 이 정확한 인식을 말미암아 올바른 논변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올바른 논변을 힘쓰는데 있어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할 것이 바로 ‘명칭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라 하였다(이 부분은 공자가 자로에게 ‘정명(正名)’을 언급했던 부분과 맥락이 상통한다). 마지막은 《순자》 사상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성악(性惡)〉편이다. 먼저 순자의 〈성악〉편을 이해하는 핵심은 본성과 지각이 각각 독립된 심리작용임을 인식하는 것에 있는데, 순자가 말하는 본성에는 사람의 욕망만 존재할 뿐 사고 작용을 하는 지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배우고 노력해서 선해질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성은 교화시킬 수 있고, 교화 방법은 성인의 작위(作僞)를 통한 예의·법도의 제정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순자는 사람의 능력을 개발해 난세를 바로잡으려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사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제나라 직하에서 다방면의 학문을 섭렵했던 순자는 특히 유교 경전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 유가에서 크게 평가되어야 할 인물이지만, 성악설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성리학이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송대 이후로 부정당했다. 하지만 청대(淸代) 학자인 왕중(汪中)이 《순경자통론(荀卿子通論)》에서 고증한 바에 의하면, 《시경(詩經)》·《춘추(春秋)》·《좌씨전(左氏傳)》·《곡량전(穀梁傳)》·《대대례(大戴禮)》 등 수많은 유교 경전이 순자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진나라 통일에 일익을 담당했던 이사(李斯)나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 사상도 순자의 사상에서 확대된 것이며, 전국시대 말기에서 진·한을 잇는 유학의 계승이 순자의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진 점도 있다,
한편 조선은 성리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을 국시로 삼은 나라였기 때문에 성리학적 사유의 틀에서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를 이단(異端)으로 취급하였다. 조선왕조 500년간 《순자》에 관한 주석서가 한 편도 저술·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자들의 문집이나 실록에서 《순자》의 내용을 하나의 철학적 텍스트로 보고 논리적으로 반박·분석하는 시도가 적지 않게 등장하며, 17세기 중반부터는 윤휴(尹鑴)를 필두로 이익과 정약용 등의 실학파가 중심이 되어 순자를 재평가하는 흐름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배움을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 것은 쪽빛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빛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물보다 차갑다.[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권학(勸學)〉
• “사람의 성품은 악하다.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 〈성악(性惡)〉
• “저울대가 만약 수평을 이루지 못한다면, 무거운 물건을 걸었을 때 저울대가 높이 올라가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가벼운 물건을 걸었을 때 저울대가 낮게 내려가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무거운 것으로 여긴다.[衡不正 則重縣於仰而人以爲輕 輕縣於俛而人以爲重]” 〈정명(正名)〉
(2)색인어:순자(荀子), 순경(荀卿), 순황(荀況), 청출어람(靑出於藍), 성악설(性惡說).
(3)참고문헌
• 荀子(楊倞 注, 王鵬 整理, 上海世紀出版集團)
• 荀子補注(郝懿行 撰, 齊魯先喆遺書本)
• 순자집해(왕선겸 집해·송기채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 순자(김학주, 을유문화사)
• 조선시대의 순자 이해와 수용(정재상, 동방학지 171집)
• 한국의 《순자》 수용양상에 대한 연구(신두환, 한문고전연구 27집)
【이영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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