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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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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업록(居業錄)》은 명(明)나라 중기의 대표적인 주자학자인 호거인(胡居仁)이 평소 강학(講學)하고 성찰한 내용을 조목 형식으로 기록한 어록(語錄)이다.

2. 저자


(1) 성명:호거인(胡居仁)(1434~1484)
(2) 자(字)·별호(別號):자는 숙심(叔心)이고, 별호는 경재(敬齋)이다.
(3) 출생지역:중국 여간현(餘幹縣) 매항(梅港)(현 강서성(江西省) 상요시(上饒市))
(4) 주요 활동과 생애
호거인은 농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매우 곤궁하게 보냈다. 그의 나이 21살 때 당시 저명한 주자학자인 오여필(吳與弼)(1391~1469)의 문하에서 주자학을 배우면서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평생을 성학(聖學)을 추구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후 여간(餘幹)으로 돌아와 예오서사(禮吾書舍)와 여택당(麗澤堂)을 건립하고 문인을 양성하면서 당대의 학자들과 교유하고 강학(講學)하였으며, 훗날에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과 귀계동서원(貴溪洞書院)의 초빙을 받아 강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평소 호거인이 학덕을 흠모하던 회강왕(淮康王) 주기전(朱祁銓)(1435~1502)이 빈사(賓師)로 초청하였을 때 《역(易)》을 강의하였다. 인품은 매우 성실하고 엄숙하였으며 주자학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널리 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주자학의 사상 가운데 거경궁리(居敬窮理) 이론을 중시하였고 특히 구방심(求放心)에 기초한 거경(居敬) 공부를 성학의 가장 핵심적인 공부로 여겼다. 역사에서는 그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를 ‘공맹(孔孟)의 진정한 계승자이자 정주(程朱)의 적통’으로 평가하였다. 훗날 그 인품과 학문적 업적으로 문묘(文廟)에 종사되었다.
(5) 주요저작: 주요 저작으로는 《거업록》 8권, 《역상초(易象鈔)》 4권, 《호문경공집(胡文敬公集)》 3권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현존 《거업록》은 호거인의 문인이자 사위인 여우(余祐)(1465~1528)가 호거인의 강론과 어록을 정리하고 편집한 것이다. 그 편찬년도는 미상이나 대체로 1504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명대(明代)의 양렴(楊廉)이 이 책의 서문을 지었고, 양정용(楊廷用)이 발문(跋文)을 작성하여 책의 서두와 말미에 추가하여 편찬하였다. 현존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실린 판본은 여우의 편집본을 수록한 것이다. 이 밖에 《사고전서진본초집 四庫全書珍本初集》, 《정의당전서(正誼堂全書)》, 《총서집성초편 叢書集成初編》 등의 다른 판본들이 있다. 명(明)나라 학자들은 이 책을 설선(薛瑄)(1389~1464)의 《독서록(讀書錄)》과 나흠순(羅欽順)(1465~1547)의 《곤지기(困知記)》와 합본으로 간행하고 《삼선생어록(三先生語錄)》으로 불렀다.

4. 내용


이 책은 자성록(自省錄)의 형식으로 저술된 것으로 분량은 8권, 총 1,199조목으로 구성되었다. 그의 문인이자 사위인 여우(余祐)가 쓴 〈거업록서(居業錄序)〉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인 ‘거업(居業)’은 《주역》 〈문언전(文言傳)〉의 “말을 닦아서 그 참됨을 세우는 것이 학업을 닦는 토대가 된다.[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세부 내용은 모두 12주제로 구분되는데, 도체(道體), 위학(爲學), 주경(主敬), 치지(致知), 역행(力行), 출처(出處), 치체(治體), 치법(治法), 교인(敎人), 경계(警戒), 변이단(辨異端), 권성현(勸聖賢)이다. 전체 내용은 주자학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체험하고 자각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이단을 비판하고 고금의 인물들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종결된다. 그리고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희(朱熹)의 사상뿐만 아니라 북송(北宋)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인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등의 사상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사고제요(四庫提要)》는 호거인의 이러한 학문적 경향을 주희(朱熹)와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절충한 결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 저서에서는 무엇보다도 주자학의 순정한 정통성을 선양하면서 불교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거업록》이 널리 보급되게 된 계기는 장길(張吉)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편집한 목판본 《거업록요어(居業錄要語)》 4권을 간행하면서부터이다. 이 책에 실린 양정용(楊廷用)의 〈거업록발(居業錄跋)〉(1519)에 따르면, 이 책은 1507년에 간행되어 먼저 영남 지방에 보급되었고 이후 1519년 진백도(陳伯度)가 율수현(溧水縣)에 재직할 때 다시 판각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의 서두에는 1507년 장길의 서문인 〈거업록요어서(居業錄要語序)〉와 양렴(楊廉)의 서문인 〈호경재거업록서(胡敬齋居業錄序)〉에 대해 부기(付記)한 글이 함께 실려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1519년 양정용이 지은 〈거업록발(居業錄跋)〉이 수록되어 있다. 이후 《사고전서(四庫全書)》에 《거업록》의 전체 내용이 정식으로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조선에는 대체로 16세기 중기 전후로 이 책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석주(石州) 권필(權韠)(1569-1612)이 《거업록》을 읽고 호거인의 삶을 높게 평가한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후재(厚齋) 김간(金幹)(1646-1742)이 호거인을 설선과 함께 명(明)의 학자 가운데 가장 순정(純正)한 학문을 지닌 인물로 평가한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담긴 사상이 조선 중기의 성리학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사람의 마음에는 온갖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 없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단지 몸과 마음을 닦고 성찰하기만 하면 이러한 이치들을 얻을 것이다.[人心萬理咸備 無所不有 只要修省得到]”
‧ “선을 보고도 용감하게 실천할 수 없고, 악을 보고도 용감하게 제거할 수 없다면 비록 죽을 때까지 학문에 종사해도 그것을 체득할 길이 없을 것이다.[見善不能勇爲 見惡不能勇去 雖終身從事於學 無以有諸己]”
‧ “천하에서 제일 뛰어난 인물이 되고 싶으면 당연히 천하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欲爲天下第一等人 當做天下第一等事]”
(2) 색인어:거업록(居業錄), 거업록요어(居業錄要語), 호거인(胡居仁), 호경재(胡敬齋), 오여필(吳與弼), 성리학(性理學), 이황(李滉), 거경(居敬)
(3) 참고문헌
‧ 四庫全書總目提要(永瑢·紀昀 編纂, 萬有文庫(排印本))
‧ 胡居仁文集(明·胡居仁 撰, 馮會明點校, 江西人民出版社)
‧ 中國明代哲學(李書增 外, 河南人民出版社)
‧ 胡居仁與餘幹之學硏究(馮會明 著, 光明日報出版社)
‧ 胡居仁與陳獻章(呂妙芬 撰, 文津出版社)
‧ 明代哲學史(張學智 著, 中國人民大學出版社)


【박길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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