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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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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중랑집(袁中郞集)》은 명나라 말에 활동한 문인 원굉도(袁宏道)의 시문집이다.

2. 저자

(1) 성명:원굉도(袁宏道)(1568~1610)
(2) 자(字)·별호(別號):자는 중랑(中郞), 호는 석공(石公)
(3) 출생지역: 형주부(荊州府) 공안현(公安縣)(현 호북성(湖北省) 공안현(公安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원굉도는 왕양명(王陽明)·태주학파(泰州學派)·이지(李贄)의 혁신사상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형 원종도(袁宗道)를 따라 태주(泰州)의 학문에 접한 뒤로 여러 서적을 탐독하였고, 이지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 또한 초굉(焦竤)·서위(徐渭)·탕현조(湯顯祖)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5) 주요저작:

3. 서지사항

원굉도는 생전에 이미 자신의 문집들을 시기별로 묶어서 스스로 목판 간행하여, 그것이 이미 이른 시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또한 그의 문집들은 여러 차례나 전집으로 묶여서 여러 곳에서 간행되었다. 따라서 원굉도의 시문은 이른 시기에 조선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17세기에 이미 훈독본(訓讀本)이 목판으로 간행되어 유통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원굉도의 시문을 목판으로 인쇄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주요 판본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공안 가각본(公安家刻本):권수 미상. 원굉도가 아우 원중도(袁中道)(小修)에게 준 서신에 언급되어 있으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
②오군(吳郡) 원숙도(袁叔度)(無涯) 서종당(書種堂) 사각본(寫刻本):만력(萬曆) 30년(1602), 36년(1608), 38년(1619)에 모두 다음의 7종이 간행되었다. 《폐협집(敝篋集)》 2권, 《금법집(錦帆集)》 4권(부록《거오칠독(去吳七牘)》), 《해탈집(解脫集)》 4권, 《병화재집(甁花齋集)》 10권, 《광장(廣莊)》 1권, 《병사(甁史)》 1권, 《소벽당집(瀟碧堂集)》 20권(오군본 《소벽당집》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20권본이고, 다른 하나는 《속집》 10권을 더한 것인데, 이 《속집》은 실은 《병화재집》임). 이것을 아울러 ‘원중랑 7종’이라 하는데, 원중랑은 ‘정밀하되 미비된(精而不備)’ 텍스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종수(種數)와 집명(集名)이 원작자의 의도에 부합하므로, 전집은 아니지만 정본(精本)이라 할 수 있다.
③수수(繡水) 주응인(周應麐) 교각(校刻) 《원중랑전집(袁中郞全集)》:만력 연간 간행. 모두 10종. 《광장》 1권, 《폐협집》 2권, 《파연재집(破硏齋集)》 3권, 《광릉집(廣陵集)》 1권, 《도원영(桃源詠)》 1권, 《화숭유초(華嵩游草)》 2권, 《병사(甁史)》 1권, 《상정(觴政)》 1권, 《광언(狂言)》 2권, 《광언별집(狂言別集)》 2권.
④《원중랑미각유고(袁中郞未刻遺稿)》 2권:《삼원선생집(三袁先生集)》 가운데 하나로, 대략 만력·천계(天啓) 연간에 간행되었다. 원중도는 원굉도의 유작 가운데 별도로 2권이 더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원중도의 가각본(家刻本)은 지금은 볼 수가 없고, 또 원굉도의 아들 원팽년(袁彭年)의 《속집(續集)》도 있었던 듯하지만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이 텍스트는 원중도가 편정(編定)한 2권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권수(卷首)에 ‘운간 진계유 중순보 열(雲間陳繼儒仲醇甫閱)’이라 쓰여 있다.
⑤하위연(河偉然) 편(編) 《이운관유정원중랑전집(梨雲館類定袁中郞全集)》 24권:만력 45년(1617) 금릉(金陵) 대업당(大業堂) 간행. 원굉도의 시문을 체제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것은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청나라 동치(同治) 연간에 다시 원헌건(袁憲健)·원조(袁照)의 복각본(覆刻本)이 나왔다.
⑥원중도(袁中道) 편 《원중랑선생전집(袁中郞先生全集)》 23권:만력 47(1619)년 휘주(徽州) 간행. 위의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분체합편(分體合編)의 체제이다. 권수(卷首)에 필무강(畢懋康)의 서문이 있고, 권5의 서명 아래에 ‘해양 오회정 복계 교(海陽吳懷貞復季校)’라고 쓰여 있다. 지금은 희귀본이다.
⑦육지선(陸之選)편《신각종백경증정원중랑전집(新刻鍾伯敬增定袁中郞全集)》40권:숭정(崇禎) 2년(1629) 무림(武林) 패란거(佩蘭居) 간행. 분체합편(分體合編). 수록된 편목이 가장 완전하여 다른 텍스트보다 널리 유행하였다.
⑧육운룡(陸雲龍) 평선(評選) 《취오각평선원중랑선생소품(翠娛閣評選袁中郞先生小品)》 2권:숭정 5년1632) 전당(錢塘) 쟁운관(崢雲館) 간행. 선문(選文)은 모두 50편.
⑨《원굉도시문집(袁宏道詩文集)》:《명사(明史)》 〈예문지(藝文志)〉에 저록.
⑩《서방합론(西方合論)》 10권:태창(泰昌) 원년(1620) 오문(吳門) 각본(刻本)이 있으나 볼 수 없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순치(順治) 4년(1647) 주지기(周之夔) 간본과 순치 8년(1651) 석지욱(釋智旭) 평본(評本)이다. 일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에 수록되어 있는 《서방합론》은 바로 주지기 간본에 의거하여 배인(排印)한 것이다.

4. 내용

원굉도는 성(性)과 정(情)을 하나의 심(心) 속에서 융합함으로써 정(情)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한 양명학(陽明學)의 심즉리(心則理)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원굉도는 개인의 자아(自我)가 정(情)에 근거하여 확립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자아를 긍정하고 확립하고자 하였던 그의 사상적 모색은 작가의 흉억(胸臆)에서부터 시문을 창작하고자 하였던 문학실천에서 구현되었다.
원굉도는 문학이란 ‘자아의 성령(性靈)을 표현할 뿐 격식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獨抒性靈, 不拘格套]’고 하였다. 의고(擬古)를 비판하고 ‘독서성령(獨抒性靈)’을 주장하였으니, 작위적이지 않고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때 비로소 참다운 문학이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자아가 외부세계에 의해 간섭받고 강제될 때 자아와 그 표현으로서 문학은 자유로울 수 없다. 외부세계의 간섭과 강제는 자아의 표출을 왜곡하고 그것은 허위와 가식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원굉도의 진(眞)의 문학론은 이처럼 자아를 왜곡 없이 그대로 표출시키는 데 요체가 있었다. 대상(對象)의 진(眞)을 자아(自我)의 진(眞)을 통하여 포착함으로써 독창적인 시문을 창작한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원굉도는 향년 불과 43세였고, 문학 및 사상의 면에서 활동을 한 기간도 고작 1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봉건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진보적 사상을 문학으로 표현하였다. 그 때문에 그의 문집이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비롯한 《사부비요(四部備要)》, 《사부총간(四部叢刊)》 등의 편찬에서 누락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의 문학과 사상은 중국 문학사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조선이나 일본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 신문화운동이 벌어지던 1930년대에는 원굉도의 문학적 성과를 둘러싸고 선전하는 이론과 비판하는 이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전근대 시기 문학사와 지성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원굉도의 문학 및 사상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무릇 사물이란 참되어야 귀하니, 참되다면 내 얼굴은 그대의 얼굴과 다르다.[大抵物眞則貴 眞則我面不同君面]” 〈丘長孺〉
• “세상의 도리가 이미 변하매 문장도 역시 그에 따라 변하였으므로, 지금에서 반드시 옛것을 모방할 필요가 없는 것은 형세상 그러한 것이다.[世道旣變 文亦因之 今之不必摹古者 亦勢也]” 〈江進之〉
• “시의 경우에는 못난 나의 희필일 따름이니, 가슴에서 나오는 대로 쏟아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였다[至于詩 則不肖戱筆耳 信心而出 信口而談]” 〈張幼于〉

(2) 색인어:
원굉도(袁宏道), 원중도(袁中道), 원정기략(園亭紀略)

(3) 참고문헌

• 袁中郞의 文學觀硏究(裵다니엘, 韓國外國語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90)
• 袁宏道性靈說硏究(李基勉, 高麗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93)
• 公安派之文學論硏究-以袁氏三兄弟代表(南德鉉,韓國外國語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94)
• 袁宏道詩歌硏究(禹在鎬, 서울(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95)
• 袁宏道散文硏究(姜炅範, 成均館大學校 博士學位論文, 2001)
• 원굉도 척독 연구(宋泰明,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1.12)
• 조선후기 한문학과 袁宏道(심경호, 《한국한문학연구》 34, 한국한문학회, 2004. 12)
• 袁中郞之文學批評觀(朱銘漢, 東海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78)
• 袁中郞及其小品文硏究(高八美, 臺灣輔仁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78)
• 晩明性靈文學思想硏究(陳萬益, 臺灣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78)
• 公安派及其著述考(吳武雄, 東海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81)
• 袁中郞小品文硏究(李愚一, 高雄師範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86)
• 公安派文學思想及其背景硏究(朴鍾學, 臺灣大學校 碩士學位論文, 1988)
• 袁中郞的思想與文學硏究(林美秀, 高雄師範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97)
• 袁中郞學記(韋仲公, 新文豊出版公司, 1979)
• 袁中郞文學硏究(田素蘭, 文史哲出版社, 1982)
• 袁中郞硏究(任訪秋, 上海古籍出版社, 1983)
• 公安派的文學批評及其發展(周質平, 臺灣商務印書館, 1986)
• 參禪與念佛-晩明袁宏道的佛敎思想(邱敏捷, 商鼎文化出版社, 1993)
• 晩明文學革新派公安三袁硏究(湖北公安派文學硏究會, 1987)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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