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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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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淸)나라 때의 고증학자 최술(崔述)의 저서이다. 〈전록(前錄)〉, 〈정록(正錄)〉, 〈후록(後祿)〉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12종 36권이다. 이 책은 경전(經典) 위주(爲主)의 연역적(演繹的) 방법론으로 중국 고대의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에 이르기까지를 고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여러 이설(異說)과 곡해(曲解)를 과감하고 철저하게 검증하고 진실을 밝혔다.

2. 저자

(1) 성명:최술(崔述)(1740~1816)
(2) 자(字)·별호(別號):자는 무승(武承), 호(號)는 동벽(東壁).
(3) 출생지역:하북성(河北省) 대명부(大名府) 위현(魏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난 최술은 14세에 대명부(大名府) 동자시(童子試)에서 장원을 했고, 20세 때에는 순천부(順天府) 향시(鄕試)에서 부방(副傍)을 해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두 차례 과거에서 낙방하자, 30세 무렵부터는 철저한 고증학을 무기로 위서(僞書)의 견강부회(牽强附會)를 바로잡고, 이단(異端)의 망언(妄言)들을 도려낼 고신록 제서(諸書)를 집필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고증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열정적으로 저술에 전념해 많은 저작들을 저술해 나갔다.
52세 때에 자신의 저술을 세상에 전해줄 애제자 진이화(陳履和)(1761~1825)를 만났다. 진이화는 최술의 저작을 열람하고 감동해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가산(家産)을 모두 쏟아 부어 최술의 저서를 판각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75세 때인 1815년에 최술은 자신의 전집 34종 88권을 모두 완성해 총목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모든 책들을 진이화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듬해인 1816년 세상을 마쳤다. 최술의 사후에 그의 저서는 부탁한 대로 제자인 진이화에 의해 판각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5) 주요저작
《고신록(考信錄)》 12종 36권과, 잡저(雜著)로 〈고신익록(考信翼錄)〉과 〈자성서(自成書)〉 등 7종 16권이 있다. 〈고신익록〉은 《왕정삼대전고(王政三大典考)》 3권, 《독풍우지(讀風偶識)》 4권, 《고문상서변위(古文尙書辨僞)》 2권, 《논어여설(論語餘說)》 1권, 《독경여론(讀經餘論)》 2권(逸失) 등 5종 12권이다. 〈자성서〉는 《역괘도설(易卦圖說)》 1권, 《오복이동휘고(五服異同彙考)》 3권 등 2종 4권이다. 이 밖에 그의 문집인 《무문집(無聞集)》 5권이 전한다.

3. 서지사항

고신록 〈전록〉에는 《고신록제요(考信錄提要)》 2권, 《보상고신록(補上考信錄)》 2권, 〈정록〉에는 《당우고신록(唐虞考信錄)》 4권, 《삼대고신록(三代考信錄)》(하상풍호고신록(夏商豐鎬考信錄)) 12권,《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 4권, 〈후록〉에는 《풍호고신별록(豊鎬考信別錄)》 3권, 《수사고신여록(洙泗考信餘錄)》 3권,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 2권, 《고고속설(考古續說)》 2권, 《고신부록(考信附錄)》 2권이 수록되어 있다.

4. 내용

고신록 제서(諸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신록제요》는 고신록 전체의 개요이다. 《보상고신록》에서부터 《맹자사실록》에 이르기까지, 요순(堯舜) 이전의 전설시대부터 차례로 요순→하(夏)‧은(殷)‧주(周)의 삼대(三代)→공자와 맹자까지의 역사를 철저히 고증하고 있다.
고신록 제서 중에서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 그리고 맹자의 생애를 고증한 《수사고신록》, 《수사고신여록》, 《맹자사실록》 등이다. 그는 《사기(史記)》, 《공자가어(孔子家語)》, 《장자(莊子)》, 《노자(老子)》 , 《순자(荀子)》, 《예기(禮記)》, 《설원(說苑)》 등에 무책임하게 수록된 공자와 제자들, 그리고 맹자와 관련된 무수한 오류(誤謬)들을 철저하게 분석 고증하였다. 그리하여 공맹(孔孟)과 제자들에 관련된 온갖 이단의 설과 의혹을 거두어내고 진실을 밝혀냈다.

5. 가치와 영향

최술은 평생에 걸쳐 고신록 제서를 저술하여, 중국 고대사 연구에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술의 이러한 철저한 고증방법은 고힐강(顧頡剛), 양계초(梁啓超), 호적(胡適) 등 1920~30년대의 중국학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당시 신문화운동을 이끌었던 호적은 〈과학적 고사가(古史家) 최술〉이라는 장편의 최술연보를 저술하여 그를 칭송하였다.
최술의 고증학은 우리의 경학(經學) 연구자에도 일정 부분은 수용되고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강진(康津) 유배시절(1801~1818)에 지은 경학 저술 속에 최술의 고증학적 성과를 반영하였다. 다산은 고신록의 고증학적 가치를 가장 먼저 자신의 저술에 반영하고, 최술의 고증이 ‘정핵중리(精核中理)’하다고 칭송했다. 또한 어당(峿堂) 이상수(李象秀)(1820~1882)도 《맹자》 관련기록을 고증하면서, 최술의 견해를 인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변증하고 있다.
최술의 고신록 제서가 간행되어 국내 학계에 소개된 이후, 그의 고신록은 《논어》나 《맹자》연구자들에게 과학적으로 공맹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훌륭한 성과물로 인식되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나는 책을 읽으면서부터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서 전주(傳注)를 경(經)에 섞지 않았고 제자백가(諸子百家)를 경전(經典)에 섞지 않았다. 얼마 후에 비로소 나는 전주에서 말한 것이 모두 경에 합치되는 것이 아니고, 제자백가에 기록된 것도 자주 경과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에 성인(聖人)의 마음은 천지일월(天地日月)처럼 밝은데, 후세사람들이 이것을 흐려놓은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들을 모두 고증해서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경을 위주로 하고 경과 합치되는 전주는 드러냈고, 일치하지 않는 것은 변증을 했으며, 이단(異端)이나 소설(小說)처럼 경과 다른 말들은 모두 오류(誤謬)를 밝히고 잘라서 없애버렸다.[自讀書以來 奉先人之敎 不以傳注雜於經 不以諸子百家雜於經典 久之而始覺傳注所言 有不盡合於經者 百家所記往往有與經相悖者 然後知聖人之心如天地日月 而後人晦之者多也 於是歷考其事 彙而編之 以經爲主 傳注之與經合者則著之 不合者辨之 而異端小說不經之言 咸闢其謬而刪削之]” 〈고신록(考信錄) 자서(自序)〉
• “맹자는 ‘그 사람의 시를 읊조리고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몰라서 되겠는가?’라고 했다. 그런데 배우는 사람이 매일 공자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은 모르고, 앞뒤를 살펴보고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학문이 경전을 더럽혀도 알지 못하며, 사악한 말로 성인을 무고(誣告)해도 이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성인의 도(道)에 대한 걱정거리 중의 하나이다.[孟子曰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學者日讀孔子之書而不知其爲人 不能考其先後 辨其眞僞 僞學亂經而不知 邪說誣聖而不覺 是亦聖道之一憾也]”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 종지(宗旨)〉
• “공자와 맹자의 관계는, 문왕‧무왕과 주공의 관계와 같다. 문왕과 무왕이 비록 성인이지만 주공이 계승하지 않았다면, 태평성대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공자가 비록 성인이지만 맹자가 이어받지 않았다면, 성스러운 도의 상세함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왕과 무왕이 있으려면 주공이 없어서는 안 되고, 공자가 있으려면 맹자가 없어서는 안 된다.[孟子之於孔子 猶周公之於文武也 文武雖聖人 無周公以繼之則太平之治不興 孔子雖聖人 無孟子以承之則聖道之詳不著 故有文武 不可無周公 有孔子 不可無孟子]”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 맹자지공(孟子之功)〉
(2) 색인어:최술(崔述), 최동벽선생유서(崔東壁先生遺書), 과학적 고사가(古史家), 진이화(陳履和), 고신록(考信錄) 제서(諸書), 경전위주(經典爲主), 고대 역사사실 고증, 공자와 맹자에 대한 이설(異說)과 곡해(曲解) 고증
(3) 참고문헌
• 崔東壁遺書(上海古籍出版社)
• 洙泗考信錄(李在夏 譯, 한길사)
• 洙泗考信餘錄(李在夏 外 譯, 한길사)
• 孟子事實錄(朴晙遠 譯, 지만지)
• 論語餘說(朴晙遠 譯, 지만지)
• 〈崔述 考證學의 方法論과 成果 硏究〉(庾惠瑛, 成均館大 博士學位論文)

【박준원】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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