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양고전해제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개요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은 남송(南宋)의 주필대(周必大) 등이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저작을 구양수의 시호(諡號)인 문충(文忠)을 넣어 153권과 부록 5권으로 편집한 책이다. 《구양문충공집》 가운데 《거사집(居士集)》 50권은 구양수가 만년에 직접 편찬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주필대 등이 주관하여 편찬하였다.

2. 저자

(1)성명:구양수(歐陽脩)(1007~1072)
(2)자(字)·별호(別號):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
(3)출생지역:면주(綿州)(현 사천성(四川省) 면양현(綿陽縣)), 원적(原籍)은 길주(吉州) 여릉(廬陵)(현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4)주요활동과 생애
구양수는 북송 때의 유명한 정치가·문학가·사학가이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읜데다 집마저 가난하였는데, 구양수 어머니는 문구를 살 돈이 없자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글씨를 써서 구양수를 가르쳤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비견되는 구모화적지교(歐母畵荻之敎)이다. 10세 때에는 이웃집 광주리 속에 담겨 있던 해진 한유(韓愈)의 문집을 빌려와 읽으며 공부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시문혁신(詩文革新) 운동을 일으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4세 때에 진사가 되어 인종(仁宗) 때에는 지제고(知制诰)·한림학사(翰林学士) 등을 지냈고, 영종(英宗) 때에는 추밀부사(樞密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으며, 신종(神宗) 때에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의 요직을 지냈다. 태자소사(太子少師)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이듬해 66세로 생을 마쳤다.
정치적으로 그는 범중엄(范仲淹) 등이 주도한 정치개혁인 경력신정(慶曆新政)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폐(時弊)를 개혁하려다 몇 차례 좌천당하기도 하였고, 문학적으로는 만당오대(晩唐五代)에 유행하였던 유미주의(唯美主義) 문풍(文風)인 시문(時文)과 송대(宋代)에 새롭게 등장한 태학체(太學體)를 비판하면서 당대(唐代)의 한유가 지었던 산문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송대의 고문운동을 주도하였다. 지금까지도 그는 당송산문팔대가(唐宋散文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중국문학사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5)주요저작:《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외에 《모시본의(毛詩本義)》 16권, 《육일사(六一詞)》 2권, 《육일시화(六一詩話)》 1권, 《오대사기(五代史記)》, 《신당서(新唐書)》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구양수의 문집은 북송 후기와 남송 전기에는 특정한 선본(善本)이 없이 면주본(綿州本)·사당본(祠堂本)·선화길주본(宣和吉州本)·여릉본(廬陵本)·소주본(蘇州本)·민본(閩本) 등 여러 종류의 판본이 유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송 광종(光宗) 소희(紹熙) 2년(1191)에서 영종(寧宗) 경원(慶元) 2년(1196)까지 여릉(廬陵) 지방의 학자인 주필대(周必大)·증삼이(曾三異)·손겸익(孫謙益) 등이 구양수 문집의 여러 각본(刻本)들을 광범하게 수집하고 상세히 교정하여 《구양문충공집》을 편찬하였다. 모두 153권, 부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4. 내용

《구양문충공집》은 전 153권, 부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53권 속에는 구양수가 직접 편찬한 《거사집(居士集)》 50권이 있고, 주필대 등이 편찬한 《역동자집(易童子集)》·《외제집(外制集)》·《내제집(内制集)》·《표주서계사륙집(表奏書啓四六集)》·《주의집(奏議集)》 등 64권, 《귀전록(歸田錄)》·《시화(詩話)》·《장단구(長短句)》 등 19권, 《집고록발미(集古錄跋尾)》 10권, 서간(書簡) 10권이 있다. 앞에는 연보(年譜)가 있고, 뒤 부록으로 행장(行狀)·묘지(墓誌)·전문(傳文) 등 5권이 있다.
구양수는 《귀전록(歸田錄)》에서 “내가 평소 지은 문장은 대부분이 세 곳에서 지어졌는데, 바로 말 위, 침상 위, 측간 위에서이다. 대개는 이 때에 더욱 깊이 구상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余平生所作文章 多在三上 乃馬上枕上厠上 蓋惟此尤可以屬思焉]”라고 하였는데, 관리로서의 바쁜 업무 등으로 인해 말을 타고 갈 때나 잠을 자기 위해서 침상에 누웠을 때 아니면 화장실에 갔을 때에도 늘 시문(詩文) 구상에 몰두하였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말이다. 구양수의 문장은 대우(對偶), 대비(對比), 인용(引用), 전고(典故) 같은 다양한 표현기교의 운용뿐만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내용과 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문장은 관점이 명확하고 논거가 확실하며 조리가 분명하여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송대 초기에 등장한 유미주의 문체인 태학체(太學體)를 개혁하여 당대 한유의 문장을 모범으로 하는 글을 지어야 한다는 고문운동을 전개하며 송대 문단의 영수가 되었다. 1058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자 과거시험에 이러한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여 증공(曾鞏)·소식(蘇軾)·소철(蘇轍) 등을 선발하였는데, 이들도 훗날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선발될 정도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구양수는 문장뿐만 아니라 시 또한 송대의 저명한 시인 매요신(梅堯臣)과 이름을 다툴 정도여서 그의 시문(詩文) 모두 중국에서 역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국의 당송고문(唐宋古文)은 조선 사대부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당송 팔대가인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식(蘇軾) 등이 조선 사대부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았다. 구양수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구소(歐蘇)’와 ‘한구(韓歐)’의 형태로 조선 문인들의 의식구조에 자리 잡으면서, 구양수의 산문작품과 그 사상은 점차 전파되고 확산되었다. 구양수와 소식의 서찰인 《구소수간(歐蘇手簡)》 같은 책은 세종(世宗)이 세자 시절에 천 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중종(中宗) 때에는 갑인자금속활자본(甲寅字金屬活字本)인 《구양문충공집》과 갑인자금속활자본의 보간본(補刊本)인 《구양문충공집》이 간행되기도 하였으며, 《구문초(歐文抄)》·《당송사대가문초(唐宋四家文抄)》·《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등과 같은 선집(選集)들이 여러 차례 간행되기도 하였다. 구양수의 문장이 조선에 소개되면서 구양수가 주창한 고문운동도 조선의 문폐(文弊) 개혁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고, 특히 그의 붕당론(朋黨論)·상범사간서(上範司諫書) 등과 같은 작품은 여러 차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인용되기도 하여 조선의 고문과 성리학이 형성·발전·정착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근심하고 애쓰면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안일하고 향락하면 몸을 망하게 할 수 있으니 자연의 이치이다.[憂勞可以興國 逸豫可以亡身 自然之理也]” 〈오대사령관전서(五代史伶官傳序)〉
• “군자는 도(道)를 같이함으로써 벗을 삼고, 소인은 이익을 같이함으로써 벗을 삼는다.[君子與君子以同道爲朋 小人與小人以同利爲朋]” 〈붕당론(朋黨論)〉
• “취옹의 뜻은 본래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산수 자연에 있다.[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취옹정기(醉翁亭記)〉
• “내가 평소 문장을 구상한 것은 대부분 말 위, 침상 위, 측간 위에서다.[余平生所作文章 多在三上 乃馬上枕上廁上也]” 〈귀전록(歸田錄)〉
(2)색인어: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 구양수(歐陽脩), 주필대(周必大), 범중엄(范仲淹), 한유(韓愈), 고문운동(古文運動),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태학체(太學體)
(3)참고문헌
• 歐陽修全集(歐陽修, 世界書局)
• 新譯 歐陽修散文選(노장시, 明文堂)
• 譯註 唐宋八大家文抄 歐陽脩(이상하, 傳統文化硏究會)
• 注譯 歐陽修文選讀(陳蒲淸, 岳麓書社)
• 注譯 歐陽修散文選(陳必祥, 三聯書店)
• 歐陽修論稿(劉德淸, 北京師範大學出版社)
• 〈구양수(歐陽修) 산문의 고려(高麗) 유입과 전파〉(김춘란, 淵民學報)

【노장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