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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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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시정의(毛詩正義)》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詩經)》에 전한(前漢)의 학자 모형(毛亨)이 시어의 뜻과 시의 의미를 풀이한 《고훈전(詁訓傳)》과,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다시 《고훈전(詁訓傳)》에 주석을 붙인 전(箋), 여기에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명을 받은 공영달(孔穎達) 등이 642년에 당시까지 전래해온 여러 주석을 참고‧융합해서 자세하게 풀이한 소(疏)를 덧붙여 정리한 책이다.

2. 저자

(1) 성명:공영달(孔穎達(574~648))
(2) 자(字)·호(號):자는 충원(沖遠), 중달(仲達), 충담(沖澹)이며, 시호는 헌(憲)이다.
(3) 출생지역:기주(冀州) 형수(衡水(현 하북(河北)))
(4) 주요활동과 생애
북제(北齊) 후주(后主) 무평(武平) 5년(574)년에 태어나 유작(劉焯)에게 학문을 전수받아 경전을 익히고, 사장(詞章)에 뛰어났다. 수(隋)나라 양제(煬帝) 초년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여 하내군박사(河內郡博士)에 제수되었다. 당(唐)나라 건국 후 국자감박사(國子監博士)와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 등을 역임하였다. 당 태종(太宗)의 명을 받아 안사고(顔師古), 사마재장(司馬才章), 왕공(王恭), 왕염(王琰) 등과 함께 남학파와 북학파의 여러 경학가의 견해를 절충하여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후의 경학을 집대성한 저작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찬술하였다. 75세의 나이로 당 태종 정관(貞觀) 22년(648)에 죽었다.
당나라 초기의 경학자로서 공자(孔子)의 32대손이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모시(毛詩)》‧《예기(禮記)》와 정현 주의 《상서(尙書)》, 왕필(王弼) 주(注)의 《주역(周易)》에 밝았고 역산(曆算)에도 뛰어났다.
(5) 주요저작
《오경정의》인 《주역정의(周易正義)》, 《모시정의(毛詩正義)》, 《상서정의(尙書正義)》, 《예기정의(禮記正義)》,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 등을 황명으로 편찬하였다.

3. 서지사항

본 연구소에서 번역한 《모시정의(毛詩正義)》는 청(淸)나라 경학자 완원(阮元(1764~1849))이 교감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완원의 〈중각송판주소총목록서(重刻宋板注疏總目錄序)〉에 따르면,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판본은 최초의 판본인 후당(後唐) 명종(明宗) 장흥(長興) 3년(932)에 석경문자(石經文字)를 가지고 새긴 9경(經)이 있었다. 그리고 북송 때 소주(蘇州)에서 간행한 단소본(單疏本)과 남송(南宋)의 악가(岳珂)가 석음(釋音)과 주소(注疏)를 붙인 9경3전(九經三傳)을 저본으로 간행한 10행주소본(十行注疏本)이 있는데, 이 본이 원(元)나라, 명(明)나라를 거쳐 수정되어 전해졌다. 이 본을 저본으로 명(明)나라 세종(世宗) 가정(嘉靖) 연간(1521~1566)에 중각(重刻)한 민판(閩板)이 있었고, 이를 저본으로 하여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曆) 연간(1573~1620)에 중각한 명감본(明監板)이 있었고, 또 이를 저본으로 하여 의종(毅宗) 숭정(崇禎) 연간(1627~1644)에 중각한 급고민판(汲古閣板)이 있었으나 청(淸) 나라 때에는 여러 판본은 모두 없어지고 급고민판(汲古閣板)만 있었는데 마모된 부분이 많아 판독이 어려웠다. 청나라 인종(仁宗) 가경(嘉慶) 21년(1816)년 중각 간행할 당시, 완원의 집에 《의례(儀禮)》와 《이아(爾雅)》가 빠진 10행 송본(宋本) 11경(十一經)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소주(蘇州) 황비렬(黃丕烈)이 소장하고 있던 북송 단소본(單疏本)과 염순도(鹽巡道) 호직(胡稷)이 오중(吳中)에서 구입해온 11경(十一經)을 가지고, 완원 소장본의 빠진 부분을 교감하고 보완하여 남창부(南昌府)의 학당에서 중각하니, 이 본이 현재 번역 저본으로 사용한 중각송판(重刻宋板) 13경주소본(十三經注疏本)이다. 이 판본의 《모시정의(毛詩正義)》는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내용

편찬된 순서와 체재는 먼저 여러 서문(序文)이 실려 있는데, 《모시정의(毛詩正義)》의 역대 전래본의 서지 사항과 전수 관계, 연구자들의 성향 등을 밝힌 기윤(紀昀) 등의 〈흠정사고전서총목모시정의40권제요(欽定四庫全書總目毛詩正義四十卷提要)〉, 시론과 전수 과정을 밝힌 공영달의 〈모시정의서(毛詩正義序)〉, 시의 기원과 시대에 따라 연보를 쓴 정현의 〈시보서(詩譜序)〉 등이 차례대로 실려 있다. 공영달의 소(疏)는 이 〈시보서〉에서부터 단락마다 붙어 있다. 정현의 〈시보(詩譜)〉는 모든 시편의 첫머리에서 그 시의 역사, 지역 등 배경 지식을 서술하여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경문(經文)은, 서(序)‧전(傳)‧전(箋)‧음의(音義)‧소(疏)의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각각 서는 〈모시서〉, 전은 모형(毛亨)의 《고훈전(詁訓傳)》, 전은 정현의 전(箋), 음의는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 소는 공영달(孔穎達)의 소(疏)를 각각 실어 놓았다. 소(疏)는 ‘경문(經文)’에 대한 것으로부터 ‘전(傳)’과 ‘전(箋)’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소(疏)하고자 하는 단락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 있도록 첫부분과 끝부분을 먼저 제시하고, 바로 ‘正義曰’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편이 끝나면 그 편에 있는 오자와 탈자 또는 연문에 대한 ‘교감기(校勘記)’가 있는데, 특히 〈주남(周南)〉 끝에는 완원의 〈교감기서(校勘記序)〉와 교감에 사용된 저본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경문의 해석은, 《모시(毛詩)》 경문에 대한 모형의 전(傳)이 실려 있는데 대체로 소략하다. 정현의 전(箋)은 모전(毛傳)에 대해 주해를 덧붙인 의미로써 소략한 모전의 내용을 보충하거나 수정한 내용이 주를 이루나 견해를 달리하는 주석도 상당부분 보인다. 육덕명의 음의는 《이아(爾雅)》와 그 주석, 《설문해자(說文解字)》와 그 주석,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 등 자서(字書)를 인용해서 경문이나 주석서의 사용된 단어의 음과 뜻을 밝혀 놓았다. 공영달의 소는 위의 모전(毛傳)과 정전(鄭箋)에 대해, 한(漢)나라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참고해서 자세하게 풀이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모전과 정전의 해석이 다를 경우 그 내용을 모전와 해석과 정전의 해석의 차이를 자세하게 풀이해 밝혀 놓았고, 모전의 해석이 소략할 경우나 정현의 전의 해석이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우, 모형의 학설을 이어받은 왕숙(王肅), 손육(孫毓) 등의 설을 인용하여 모전의 뜻을 보충하거나 정현의 설을 반박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시경》의 삼가(三家) 한(漢)나라 초기의 노(魯)나라 신배공(申培公(약 B.C.219~B.C.135)), 제(齊)나라의 원고생(轅固生(B.C.194~B.C.104)), 연(燕)나라 한영(韓嬰)이 각각 시를 전공해 각각 학설을 세워 학관(學官)에서 박사로서 교육활동을 하였는데, 이들이 세운 학설을 노시(魯詩)‧제시(齊詩)‧한시(韓詩)라고 하였다. 그러나 각각 서진(西晉), 삼국 시대 위(魏), 송(宋) 대에 와서 전수가 끊어졌고, 오직 한시(漢詩)만이 외전 10권이 남아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시정의》의 존재 자체가 옛 《시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서〉에는 시의 뜻, 기원, 효용성, 창작 동기, 정경(正經)과 변경(變經), 육의(六義), 미자(美刺)설 등의 여러 개념을 밝히고 시를 이해하고, 시론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시를 해석하면서 선진(先秦) 자료부터 양한(兩漢) 이후 초당(初唐)까지의 학술 저작으로 경(經)‧사(史)‧자(子)‧집(集)의 방대한 자료를 인용해 경문, 모전, 정전, 공소 등을 지었으므로 훈고학, 예학, 박물학, 경학 등을 연구하는 데 서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모시정의》는 남송 주희의 《시집전(詩集傳)》이 나오기 전까지는 《시경》 주석서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연구되고 활용되었고, 《시집전》에 그 권위를 넘겨준 이후에도 《시집전》과 함께 시경학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녔음을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시경》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보이나, 경전으로 연구된 기록은 권근(權近)(1352~1409)의 오경천견론(五經淺見錄) 중 《시천견록(詩淺見錄)》에 처음 보인다. 이 책은 《시집전》의 학설을 이해하기 위한 저서였다. 그 후로 대부분의 《시경》에 대한 언급은 《시집전》의 내용을 바로 이해하고 정착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이황(李滉(1501~1570))의 《시석의(詩釋義)》는 그 절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윤휴(尹鑴(1617~1680))에 의해 《시집전》과 다른 학설을 제시하기 시작했고, 허목(許穆)(1595~1682)은 《시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모시정의》를 봐야한다고 역설하였으며, 박세당(朴世堂)은 《시경》의 주석을 위해 《모시정의》과 《시집전》을 비교‧대조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었다. 이후로 이익(李瀷)(1681~1763), 정조(正祖(1752~1800)), 서형수(徐瀅修(1749∼1824)), 신작(申綽(1760~1828)), 서유구(徐有榘(1764~1845)), 정약용(丁若鏞(1762~1836))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시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모시정의》 또한 꾸준히 읽히고 연구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시(詩)라는 것은 공(功)을 논하고 덕(德)을 칭송하는 노래이고, 치우침을 그치고 사악함을 막는 가르침이니, 비록 억지로 하는 것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곧 성령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夫詩者 論功頌德之歌 止僻防邪之訓 雖無爲而自發 乃有益於生靈]” 〈모시정의서(毛詩正義序)〉
• “〈풍(風)과 아(雅)의 (詩)에서〉 공을 논하고 덕을 칭송하는 것은 그의 아름다움을 따르려고 한 것이고, 허물을 풍자하고 잘못을 기롱한 것은 그의 악을 바로잡아 구하려는 것이니, 각각 자기의 무리에 있어서는 법이 될 만한 것은 밝게 나타내었고, 경계가 될 만한 것은 드러내어 밝힌 것이다.[論功頌德 所以將順其美 刺過譏失 所以匡救其惡 各於其黨 則爲法者彰顯 爲戒者著明]” 〈시보서(詩譜序)〉
• “시詩라는 것은 뜻이 가는 것인데 마음속에 두면 뜻이 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관저서(關雎序)〉
(2) 색인어:모시정의(毛詩正義), 모형(毛亨), 정현(鄭玄), 공영달(孔穎達), 오경정의(五經正義), 육덕명(陸德明)
(3) 참고문헌
• 《毛詩正義》(阮元 校刻, 十三經注疏, 中華書局)
• 《毛詩正義》(十三經注疏整理委員會, 北京大學出版社)
• 《毛詩正義研究》(韓宏韜, 山東大學)
• 《詩集傳》(朱熹)
• 《毛詩正義》 解題(朴小東, 傳統文化硏究會)


【김명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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