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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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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학기(初學記)》는 당(唐)나라 서견(徐堅) 등이 현종(玄宗)의 명을 받고 편찬한 관찬유서(官纂類書)이다.

2. 편자

(1) 성명:서견(徐堅)(659~729)·장열(張說)·위술(韋述) 등
(2) 자(字)·별호(別號):서견의 자는 원고(元固)이다.
(3) 출생지역:호주(湖州) 장성(長城)(현 절강성(浙江省) 장흥(長興))
(4) 주요활동과 생애
서견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 서제염(徐齊冉)이 흠주(欽州)로 유배되었는데, 서견의 나이 14세 때 죽었다. 이후 조모가 그를 양육하였다. 서견은 어렸을 때부터 지혜가 뛰어났으며 당(唐) 패왕(沛王) 이현(李賢)이 그를 만나 시험해보고 그의 재화(才華)를 십분 칭찬하였다. 진사에 급제하여 분주(汾州) 참군(參軍)을 역임하였으며 만년현(萬年縣) 주부(主簿)로 옮겨갔다. 성력 聖曆 중에 서견은 동도(東都) 유수판관(留守判官)이 되어 표주(表奏)를 전문적으로 주관하였다. 후에 관직은 비서감(祕書監)·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숭문관학사(崇文館學士)·집현원학사(集賢院學士)에 이르렀으며, 동해군개국군(東海郡開國公)으로 봉해졌다. 경사(經史)를 두루 읽었으며 전제(典制)에 밝아, 일찍이 유지기(劉知幾) 등과 《삼교주영(三敎珠英)》·《측천실록(則天實錄)》 등 대형 관서(官書) 찬수(纂修)에 참여하였다. 서견과 그의 아버지는 모두 사학(詞學)으로 유명했다.
(5) 주요저작:《대은전(大隱傳)》 등을 지었으며, 《당육전(唐六典)》·《태극격(太極格)》·《사기주(史記注)》·《성족계록(姓族系錄)》·《당사(唐史)》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3. 서지사항

당대 초기에는 변려문(騈儷文)이 여전히 성행하여 문장을 지을 때는 조탁과 전고(典故)를 강구하였다. 개원(開元) 연간에 당 현종은 황자(皇子)들이 작문 시에 전고를 인용하고 사류(事類)(관련된 항목)와 문장을 검색하는 데 편리하도록 서견·위술 등에게 명하여 이 책을 편찬토록 하였다. 그래서 서명을 ‘초학기(初學記)’라고 하였다. 《초학기》가 일반 유서에 비해 분류가 간단하고 개괄적이며, 서술이 요약적인 점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당회요(唐會要)》 권36 〈수찬편(修撰篇)〉에 의하면, 서견 등은 이 책을 개원 15년(727)에 완성하여 진상(進上)하였다.
《초학기》의 주요 판본으로는 명(明) 가정(嘉靖) 10년(1531) 석산(錫山) 안국(安國)의 계파관간본(桂坡館刊本), 가정 13년(1534) 진번(晉藩)의 허익당(虛益堂) 번각안국본(飜刻安國本), 명 만력(萬曆) 15년(1587) 태학(太學) 서수명(徐守銘)의 영수당(寧壽堂) 복각안국본(覆刻安國本), 만력 34년(1606) 호림(虎林) 심종배(沈宗培) 간행의 건상본(巾箱本), 청(淸) 건륭(乾隆) 연간 내부(內府) 고향재(古香齋) 판각의 건상본이 있다. 1962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사의조(司義祖) 교정본(校訂本)을 출판하면서, 아울러 육심원(陸心源)의 〈초학기교보(初學記校補)〉를 각 권 뒤의 교감표(校勘表) 중에 넣었다. 이 〈초학기교보〉는 바로 청나라 엄가균(嚴可均)의 미간행 《초학기》 교본(校本)을 뒤에 육심원이 교감기(校勘記)를 기록하여 《군서교보(群書校補)》 중에 넣은 것이다.

4. 내용

《초학기》는 여러 경(經)·자서(子書)와 역대 시(詩)·부(賦) 및 당초(唐初)의 제가(諸家) 작품으로부터 자료를 인용하였다. 이 책은 천(天)·세시(歲時)·지(地)·주군(州郡)·제왕(帝王)·중궁(中宮)·저궁(儲宮)·제척(帝戚)·직관(職官)·예(禮)·악(樂)·인(人)·정리(政理)·문(文)·무(武)·도석(道釋)·거처(居處)·기물(器物)·복찬(服饌)·보기(寶器)(화초부(花草附))·과목(果木)·수(獸)·조(鳥)(인(鱗)·개(介)·충부(蟲附)) 등 23부(部)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 아래에는 또한 약간의 자목(子目)으로 분류하였다. 제왕부(帝王部)는 그중에서 가장 적은 1목(目)으로 되어 있으며, 직관부(職官部)는 가장 많은 32목으로 되어 있는데, 총 313자목이 있다. 각 자목 아래의 맨 앞은 ‘서사(敍事)’로서 이 자목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데 고서(古書)의 기재를 인용하였다.(유사(類事):해당 항목과 관련된 자료) 그 다음은 ‘사대(事對)’로서 관련 대구(對句)를 여러 문장으로부터 선록(選錄)하고 아울러 출처를 명기하였다. 가장 뒤는 ‘시문(詩文)’으로서 고인(古人) 작품의 편단(斷片)을 인용하였다. 이 유사‧사대‧시문의 체제는 《초학기》의 일대 특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가치와 영향

호도정(胡道靜)은 이 책에 대해 비교적 높은 평가를 내린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지식에 중점을 둔 한 부의 유서로서, 문장의 전고 및 명편(名篇)을 함께 고려하였기 때문에 편집 체제가 일반 유서와는 다르다. 이 책의 ‘서사’ 부분은 유송(劉宋) 안연지(顔延之)와 양 원제(梁元帝) 소역(蕭繹)의 《찬요(纂要)》(《찬요》는 유서가 아니나, 유서와 유사함)와 비슷하며, ‘사대’ 부분은 《편주(編珠)》와 닮았으며, ‘시문’ 부분은 《예문유취(藝文類聚)》와 유사하다. 이 책은 이전의 각종 중요 유서와 준유서의 체제상에서의 특장(特長)을 흡수하여 이루어졌으니, 지식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문장을 지을 때 사류(事類)를 검색하는 데 편리하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또 “‘서사’ 부분은 세심한 편찬으로 인해 다른 유서의 ‘유사(類事)’와는 다르다. 다른 유서는 단지 수집한 유사를 그대로 베껴놓아 서로 간에 거의 관련성이 없다. 이 때문에 단지 자료의 회집(滙輯) 성질만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초학기》의 ‘서사’ 부분은 비록 유사를 모아놓았으나, 한 차례의 조직적인 조작을 거쳐 유사들 간에 관련성을 지니게 하여 한 편의 문장이 되게 하였으니, 자목의 표제(해당 항목)에 대해 근원적으로 설명을 한 셈으로 현대 백과전서의 방법과 더욱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지식성이 더욱 풍부하다고도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였다.(胡道靜 《中國古代的類書》 참조) 호도정의 이러한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또한 일찍이 《초학기》의 “서사 부분은 비록 여러 서적으로부터 잡되게 취하였지만, 그 앞뒤가 서로 상관되는 것 같다.[敍事雖雜取群書 而次第若相連屬]”고 하여 그 특징에 대해 기술한 적이 있다. 아울러 《초학기》는 “당나라 유서 중에서 그 방대함은 《예문유취》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정밀함은 그것을 능가한다.[唐人類書中 博不及藝文類聚 而精則勝之]”라고 하였다.
《초학기》는 수대(隋代) 이전의 고서 외에도 당대(唐代) 초기의 시문과 기타 저작들이 인용되어 있다. 그중에는 역사·지리·민정·풍속 등의 방면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고증에 도움이 된다. 또한 《초학기》는 비교적 일찍 나온 책으로, 일실(逸失)된 고서의 일부 단편(斷片)들을 보존하고 있어 집일(輯逸)과 현존본 고적(古籍)에 대한 교감(校勘)에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당초(唐初) 위왕(魏王) 이태(李泰) 등이 수찬(修撰)한 《괄지지(括地志)》는 5백여 권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중요한 고대 지리 전문저작이라 할 수 있다. 원서는 이미 실전(失傳)되었는데, 그 ‘서략(序略)’ 부분이 《초학기》 권8 〈주군부(州郡部) 총서주군(總序州郡) 1〉에 보인다. 이러한 단편(斷片)적인 기재로부터 당대 정관(貞觀) 연간의 행정구역의 획분(劃分)과 주(州)·현(縣)의 수목(數目)을 엿볼 수가 있다. 청나라 손성연(孫星衍)이 집일한 《괄지지》 8권은 곧 《초학기》에서 자료를 취하였다. 또한 《초학기》 권27 〈보기부(寶器部) 견(絹) 9〉’에서 《진고사(晉故事)》를 인용하여 서진(西晉) 전부제도(田賦制度)의 중요한 사료(史料)를 기재하였는데, 《진서(晉書)》 〈식화지(食貨志)〉에는 오히려 이 사료를 기재하지 않았다. 《진고사》의 원문은 일찍이 망일(亡逸)되었는데, 이 때문에 《초학기》 안의 이 사료는 역사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자료가 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백호통(白虎通)》에 ‘〈구(裘)는〉 여자의 일을 도와주고 따뜻함을 더해주는 것이다. 옛날에 검은 색 옷에는 새끼 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누런 색 옷에는 여우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었다. 짐승이 많지만 유독 여우와 새끼 양을 쓰는 것은 그것의 가벼움과 따뜻함을 취하였다. 여우는 죽으면서 고향 언덕으로 머리를 향하기 때문에 군자가 근본을 잊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요, 새끼 양이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것을 취했으니 공손함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白虎通曰 所以佐女工助溫也 古者緇衣羔裘 黃衣狐裘 禽獸衆多 獨以狐羔 取其輕暖 因孤死首丘 明君子不忘本也 羔取其跪乳 遜順也]” 《초학기》 〈기물부(器物部)(복찬부(服饌部)) 구(裘)〉
• “《손경자》에 ‘백성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향기가 산초나 난초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孫卿子曰 民之好我 芬若椒蘭也]” 《초학기》 〈보기부(寶器部)(화초부(花草附)) 난(蘭)〉
• “《징상기(徵祥記)》에 ‘왕이 하늘에 덕을 지극히 하면 온화한 기운이 감응하고 단 이슬이 내린다. 현자를 높이고 무리를 포용하며 세미한 것을 잃지 않으면 대나무와 갈대가 이것을 받아들인다.’라고 하였다.[徵祥記曰 王者德至於天 和氣感而甘露降 尊賢容衆 不失細微 則竹葦受之]” 《초학기》 〈과목부(果木部) 죽(竹)〉
(2) 색인어:초학기(初學記), 서견(徐堅), 안국(安國) 계파관간본(桂坡館刊本), 사의조(司義祖) 교정본(校訂本), 육심원(陸心源) 초학기교보(初學記校補), 유사(類事), 사대(事對), 시문(詩文), 관찬유서(官纂類書)
(3) 참고문헌
• 한·중 유서문화 개관(최환, 영남대학교출판부)
• 中國類書槪說(劉葉秋 지음, 金長煥 옮김, 학고방)
• 中國古代的類書(胡道靜, 中華書局)
• 中國類書(趙含坤, 河北人民出版社)
• 〈《初學記》的编纂人員與歷代版本考〉(藺華, 《佳木斯教育學院学報》 2011年 05期)
• 〈黑水城出土宋刻《初學記》殘頁版本考—兼論宋元時期江南至塞外的‘書籍之路’〉(秦樺林, 《浙江大學學報》(人文社會科学版) 2016年 02期)
• 〈宋本《初學記》流布考〉[王京州, 《清華大學學報》(哲学社會科学版) 2019年 01期]

【최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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