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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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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부(漢賦), 당시(唐詩), 송사(宋詞)처럼 원대(元代)를 대표하는 문학은 원곡(元曲)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곡은 음악가사문학(音樂歌詞文學)인 산곡(散曲)과 희곡(戱曲)인 잡극(雜劇)을 통칭한다. 잡극은 우리의 판소리처럼 노래하는 창(唱)부분과 말하는 백(白)을 교차하면서 극의 줄거리를 풀어가는 4막으로 된 고대희곡이다. 창은 운문(韻文)으로, 백은 산문(散文)으로 되어 있다.
《한궁추(漢宮秋)》는 원대(元代) 마치원(馬致遠)의 창작연대 미상의 잡극(雜劇)이다. 원잡극(元雜劇) 대표문집인 《원곡선(元曲選)》의 맨 앞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당시 곡론가(曲論家)들의 《한궁추》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4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대(漢代)의 소군화번전설(昭君和蕃傳說)-왕소군(王昭君)을 번국(蕃國)에 보내 화친했다는 전설-을 제재(題材)로 한 잡극이다. 그 내용은 한(漢) 원제(元帝)와 왕소군(王昭君)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것이지만, 기실 담고 있는 주제는 이를 통해 원대(元代)의 민족애와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힐난이다.

2. 저자

(1) 성명:마치원(馬致遠)(1250?~1322?)
(2) 자(字)·별호(別號):호(號)는 동리(東籬)
(3) 출생지역:대도(大都)(현 북경(北京))
(4) 주요활동과 생애
마치원은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 중의 한사람으로 일컬어지며, 산곡(散曲)과 잡극(雜劇) 양 방면으로 성가를 드날린 인물이지만, 그 일생(一生)은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
근년에 들어 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대략의 생졸연대는 송말원초기(宋末元初期)인 1250년~1322년경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분명한 기록은 《녹귀부(錄鬼簿)》에 기록된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대도인(大都人)이며, 호(號)는 동리노(東籬老)인데, 강절성(江浙省)에서 제거(提擧)를 지냈다.[大都人 號東籬老 江浙省務提擧]”이다. 대도는 현재의 북경(北京)이며, 강절성(江浙省)은 현재의 절강성(浙江省), 제거(提擧)는 미관말직이라 할 수 있다.
원대(元代)는 몽고족에 의한 민족차별정책이 심각한 시기였다. 원은 전국민을 몽고인(蒙古人), 색목인(色目人), 한인(漢人) 및 남인(南人)등 4계급으로 분할 통치하였는데, 각급 관서의 장은 모두 몽고인들이 맡고 한인과 남인은 그 밑의 미관말직으로 일해야 했다. 당시 문인들은 자신들의 신세에 대해 “여덟 번째는 창녀요, 아홉 번째는 선비이고, 열 번째는 거지이다.[八娼 九儒 十丐]”라며, 선비의 사회계급이 창녀의 아래이며 거지 바로 위라고 한탄했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마치원의 작품에도 전반적으로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이를 문학적인 허구로 달래 보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궁추》에서는 당시 관료들에 대한 냉소와 비판의 숨결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마치원은 대략 20세에 관직에 들어 대략 37-40세 전후까지 벼슬길에 있었으며 직위는 대단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한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원정 연간(元貞年間)(1295~1296)에 생계 등을 위해 다른 서생들과 ‘서회(書會)’를 조직해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이때에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주요저작:현존 원잡극 중에서 마치원 작품은 다음 7종이다. 1. 《파유몽고안한궁추(破幽夢孤雁漢宮秋)》 2. 《강주사마청삼루(江州司馬靑衫淚)》 3. 《반야뇌굉천복비(半夜雷轟薦福碑)》 4. 《태화산진단고와(泰華山陳摶高臥)》 5. 《여동빈삼취악양루(呂洞賓三醉岳陽樓)》 6. 《한단도성오황량몽(邯鄲道省悟黃梁夢)》 7. 《마단양삼도임풍자(馬丹陽三度任風子)》

3. 서지사항

《한궁추》는 장무순(臧懋循)이 명(明) 신종 년간(神宗年間)인 1616년에 편찬한 《원곡선(元曲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모두 48책으로 되어있으며 뛰어난 잡극(雜劇) 100편을 가려 뽑은 작품집이다. 다른 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잡극의 명칭은 통상 8자씩의 제목(題目)과 정명(正名)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명 뒤쪽의 뜻이 통하는 서너 자를 취하여 간칭(簡稱)하는데, 이 간칭으로 긴 명칭을 대신한다. 《한궁추》도 간칭이다. 제목정명은 ‘제목(題目) 침흑강명비청총한파(沉黑江明妃靑冢恨破) 정명(正名) 유몽고안한궁추(幽夢孤雁漢宮秋)’인데 그 뜻은 ‘흑강에 빠져 죽은 명비의 푸른 이끼 낀 무덤 한스럽고, 한나라 궁중의 가을날 고요한 꿈을 깨트리며 나는 외로운 기러기소리’이다.
이 제목정명(題目正名)은 극장 앞에 크게 써서 오늘날 극장의 간판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4. 내용

설자(楔子):우선 호한야선우(呼韓耶單于)가 등장하여 한왕녀(漢王女)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토로하여 전체 극의 복선을 깔고 있다. 다음으로 한 원제(漢元帝)는 천하가 태평하다며 모연수(毛延壽)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천하를 돌아다니며 누가 황가에 어울리는 여자인지 찾아보도록 한다는 내용으로써, 관중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제일절(第一折):미녀 왕소군(王昭君)이 궁녀로 뽑혔으나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냉궁(冷宮)에 거주하다가 우연히 한 원제를 만나게 된다. 자초지종을 알게되고 한 원제는 모연수를 참수하라 한다. 제일절은 극의 전개가 간결하고 급속히 극의 고조에 이르게 하고 있다.
제이절(第二折):모연수는 흉노에 투항하여 왕소군의 미인도를 선우(單于)에게 바친다. 선우는 왕소군을 요구하며 화친을 하자고 한다. 한 원제는 전쟁을 불사하고자 하나, 신하들은 소군(昭君)으로 화친(和親)할 것을 주장한다. 한 원제는 왕소군에게 빠져 정사를 멀리하는 군왕으로 묘사되고 있고, 신하들은 겁쟁이 또는 무능력한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제삼절(第三折):왕소군이 떠나는 날 한 원제는 친히 패릉교(覇陵橋)에서 전송한다. 왕소군은 황제가 하사한 옷을 입고 타인을 위해 교태를 떨 수 없다면서 옷을 남겨 두고 떠난다. 이러한 장면은 비극적인 장면을 보다 간략하고 상징적으로 처리하여 비극성을 제고하고 있다. 한 원제와 이별한 왕소군은 국경인 흑수(黑水)에서 한왕(漢王)을 위해 술을 뿌리고 몸을 던져 전극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제사절(第四折):왕소군을 그리워하여 꿈속에서 조차 그녀를 찾아 헤매는 한 원제의 넋두리로 점철되어 있다. 조용한 가을 저녁, 황궁 위를 외로운 기러기 한 마리가 울며 배회하는데 이 기러기는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스산함을 총체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호한야선우는 양국의 우의를 위해 모연수를 보내오고, 한 원제는 그를 참수하여 왕소군의 제사를 지내지만 그의 마음은 달랠 수 없다.

5. 가치와 영향

마치원은 고대 중국의 문인 지식인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중에 한 사람이며, 후대의 중국희곡에 영향을 준 이는 마치원만한 작가가 드물다.
그의 잡극은 중국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찍부터 해외에 활발하게 소개되었었다. 《한궁추》는 1829년 영국인 Davis에 의해 영역(英譯)된 후, 다시 daogelas의 영역본(英譯本), Laloy의 불역본(佛譯本), Gottschall의 독역본(獨譯本)이 서구에 소개 되었으며, 일본에도 궁원민평(宮原民平)과 염곡온(鹽谷溫)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 《황량몽(黃梁夢)》도 1838년에 의해 불역(佛譯)되어, 서구인들은 비교적 일찍이 마치원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마치원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지식인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때를 만나지 못해서 마음은 항상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하였다. 그의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에 작품 속에는 항상 불평과 종교적 색채의 피세(避世) 심리가 깔려 있다. 여기에 다시 지식인들의 구미에 맞는 전아(典雅)한 문구를 사용하여 환해부침(宦海浮沈)하는 관리들과 뜻을 얻지 못한 지식인들의 처지와 정취를 반영하였다. 그래서 명·청대의 문인, 학자 그리고 지식인들의 추숭을 받게 되는 것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아! 이 굽이치는 들을 대하니 슬퍼지는구나. 풀빛은 더욱 누렇게 되고 토끼는 이미 서리를 맞았다. 개도 털갈이하여 따듯한 털이 나고 사람들도 술이 달린 창을 들었구나. 말은 행장을 지고 수레에는 식량을 싣고서 사냥터에서는 수렵을 시작하네. 그, 그, 그녀는 슬퍼하며 漢王을 이별하고 나, 나, 나는 손을 맞잡고 다리 위에 서 있네. 그녀는 수행원과 황량한 곳으로 들어가고, 나의 수레는 함양으로 돌아간다. 함양으로 돌아가면 궁궐의 담을 지나고, 궁궐을 지나면 회랑을 감아 돌고, 회랑을 돌아가면 소군의 방이 가까워지겠지, 소군의 방이 가까워지면 달빛은 몽롱하고, 달빛이 몽롱하면 밤이 차가워지고, 밤이 차가워지면 쓰르라미 흐느끼고, 쓰르라미 흐느끼면 푸른 비단 창에 푸른 비단 창에 에이 그만두자! 생각해 무엇 하리.[呀 俺向着這廻野悲凉 草已添黃 免早迎霜 犬褪得毛蒼 人搠起纓鎗 馬負着行裝 車運着餱糧 打獵起圍場 他他他傷心辭漢主 我我我携手上河梁 他部從入窮荒 我鑾輿返咸陽 返咸陽 過宮墻 過宮墻 遶回廊 遶回廊 近椒房 近椒房 月昏黃 月昏黃 夜生凉 夜生凉 泣寒螿 泣寒螿 綠紗窓 綠紗窓 不思量]” <제삼절(第三折) 매화주(梅花酒)>
‧ “흥폐는 예전에도 있어 왔고, 전쟁은 그치려 하지 않았다. 군주의 녹을 먹었으면 목숨이 군주의 입에 달려 있지 않겠느냐. 태평할 때에 너희 재상들은 공로를 팔았으면서, 일이 있는 곳에는 나의 가인(佳人)을 보내려 하는구나!……저쪽에서는 나무를 붙잡고서 무서워 손을 깍지 끼고 있고, 이쪽에서는 난간을 붙잡고도 무서워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구나.[興廢從來有 干戈不肯休 可不食君祿命懸君口 太平時賣你宰相功勞 有事處把俺佳人遞流……那壁廂鎖樹的怕彎着手 這壁廂攀欄怕攧把了頭]” <제이절(第二折) 목양관(牧羊關)>
(2) 색인어:마치원(馬致遠), 한궁추(漢宮秋), 원곡(元曲), 잡극(雜劇), 왕소군(王昭君), 한원제(漢元帝)
(3) 참고문헌
‧ 元曲選 (臧晉叔, 中華書局出版社)
‧ 輟耕錄(陶宗儀, 世界書局)
‧ 戱曲詞語匯釋(陸澹安, 上海古籍出版社)
‧ 中國古典名劇鑑賞辭典(徐培均 등, 上海古籍出版社)
‧ 古代戲劇賞介辭典(王志武, 陝西人民出版社)
‧ 元曲鑑賞辭典(蔣星煜, 上海辭典出版社)
‧ 馬致遠生平作品推考(劉蔭柏, 廈門大學報)
‧ 〈馬致遠雜劇硏究〉(임동춘,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馬致遠雜劇之硏究〉(박삼수, 대만대학, 석사학위논문)
‧ 〈馬致遠的歷史劇漢宮秋〉(石澤鎰, 《文史知識》 1984년 제1기)

【임동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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