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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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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조인 혜능(慧能)의 자서전적 일대기이다. ≪육조단경≫에는 혜능 자신이 육조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문인들을 위한 갖가지 설법이 담겨 있다. 중국의 선사(禪師)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가필(加筆)하고 보충한 형태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돈황(敦煌)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한국의 선종도 중국의 남종선에서 유래한 까닭에, 일찍부터 이 책이 유행하였다.

2. 저자

(1)법명:혜능(慧能)(638~713)
(2)자(字)·별호(別號):속성(俗姓)은 노씨(盧氏)이다. 육조대사(六祖大師), 조계대사(曹溪大師)라 하며, 시호는 대감선사(大鑑禪師)이다.
(3)출생지역:본관은 범양(范陽)(현 하북성(河北省) 탁현(啄縣))이며 광동성(廣東省) 신주(新州) 출신이다.
(4)주요활동과 생애
부친인 행도(行稻)와 모친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행도는 본래 지금의 북경 지역의 말단 관리였는데, 좌천되어 광동성 신주로 유배되어 와서 이곳에서 혜능을 나았다.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형편이었으므로, 문자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나무꾼 혜능은 어느 날 땔나무를 팔기 위해 장터에 갔다가 누군가 ≪금강경(金剛經)≫ 읽는 소리를 듣고 불도(佛道)에 뜻을 두게 되었다. 24세 때, 혜능은 기주(蘄州) 황매산(黃梅山)의 동선원(東禪院)에 주처(住處)하고 있던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8개월가량 방앗간에서 곡식 찧는 일을 하다가 홍인으로부터 비밀리에 의발(衣鉢)을 물려받아,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가 되었다. 홍인은 제자 훈육에 평등했다. 가장 앞서가는 제자라고 여기고 있던 신수(神秀)에게도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게 하였으며, 또한 글자도 모르는 혜능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게 하였던 것이다. 홍인은 혜능을 3일 밤낮을 시험하였는데, 혜능은 무엇을 물어도 의심하거나 막히는 구석 없이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이에 홍인은 비로소 혜능에게 전법가사를 주게 된다. 전법의 증거로 가사를 줄 정도로 전의(傳衣)는 선문(禪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정한 소의경전(所依經典) 대신 스승과 제자 사이의 내밀한 전수를 기본적 입장으로 하는 선문으로서는, 가사야말로 정신적·내면적인 전법을 구상화하는 최적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비밀리에 홍인의 법맥을 잇게 된 혜능은 남쪽으로 내려가 10여 년을 은둔하다가 676년에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의 대가인 인종법사(印宗法師)로부터 구족계를 받아 정식으로 출가하였으며, 그 뒤 37년 동안 소주(韶州)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 소주 대범사(大梵寺)·광과사(廣果寺),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혜능은 출가한 후 75세에 그가 태어난 광동성 신주로 돌아와 부모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보은탑(報恩塔)을 쌓았다. 이듬해 76세에 열반에 들자, 당(唐)나라 측천무후가 추모의 뜻으로 절을 짓게 하고 ‘국은사(國恩寺)’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입적한 뒤 당 헌종(唐憲宗)이 대감선사(大鑑禪師)란 시호를 내렸다. 이 외에도 육조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한다.
≪육조단경≫이 성립되던 시기는 중국선종사(中國禪宗史)에 있어 선종(宣宗), 혹은 조사선(祖師禪)의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의 특징은 주로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시기의 선(禪)은 혜능에 의해 인도의 색채를 탈피하고 중국화 되는 시기로서, 이후 한국·중국·일본에서 전개된 선불교의 원형이 완성되던 시기이다.
(5)주요저작:未詳.

3. 서지사항

≪육조단경≫의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으로,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조인 혜능(慧能)의 자서전적 일대기이다. ≪단경(壇經)≫,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도 하는데, 이 외에도 ≪남종돈교최상대승마하반야바라밀경(南宗頓敎最上大乘摩訶般若波羅蜜經)≫, ≪육조혜능대사어소주대범사시법단경(六祖慧能大師於韶州大梵寺施法壇經)≫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단’은 계단(戒壇)을 가리키고 ‘경(經)’은 경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붙인 말이다.
현존하는 ≪육조단경≫을 계통별로 분류하면 크게 돈황본(敦煌本)(790〜850), 혜흔본(惠昕本)(967), 설숭본(契崇本)(1056)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돈황본은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으로, 후대에 유통되는 ≪육조단경≫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혜흔본과 설숭본은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혜흔본은 이후 진복사본(眞福寺本)이나, 흥성사본(興聖寺本), 대성사본(大乘寺本), 천녕사본(天寧寺本)으로 전승되었고 설숭본은 덕이본(德異本)(1290)과 종보본(宗寶本)(1291)으로 전승되었다. 이들 이본은 내용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고, 다만 품(品)의 분단(分段)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돈황본의 경우 품의 분단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돈황본에도 원형부분[고층(古層)]과 후세에 증광(增廣)되거나 부가된 부분[신층(新層)]의 구분이 있음이 인정된다. 전체 57절 중 대범사에서의 설법과 무관한 제38절 이하는 분명히 후대에 부가한 것이며, 그 앞에도 부가 부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단경의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유통되는 것은 종보본(宗寶本) 단경이다. 종보본은 기존의 판본에다 종보 자신이 나름대로 단경에 손을 가한 것이다. 종보본은 후대에 전승되면서 다시 유포본(流布本)과 명판대장경본(明版大藏經本)으로 유통되었고, 명판대장경본(明版大藏經本)도 다시 남장본(南藏本)과 북장본(北藏本)으로 유통되었다. 곧 같은 종보본이면서도 명판대장경에 입장(入藏)되어 있는 것에는 명교설숭(明敎契嵩)이 찬술한 육조대사법보단경찬(六祖大師法寶壇經贊)이 첨가되어 있고, 부록으로는 유종원(柳宗元)이 찬한 사시대감선사비(賜諡大監禪師碑), 유우석(劉禹錫)이 찬한 대감선사비병불의명(大監禪師碑幷佛衣銘) 등이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명판대장경본의 남장(南藏)은 밀함(密函)에 속해 있고, 북장(北藏)은 부함(扶函)에 속해 있다. 남장은 명(明)나라 태조(太祖)가 남경에서 조인(彫印)토록 한 것이고, 북장은 명나라 성조(成祖)가 북경에서 조인을 기획하여 영종(英宗) 시대에 완성한 것이다.

4. 내용

≪육조단경≫ 이전의 선불교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든 악한 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맑게 가라앉힐지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는 신수(神秀) 계통의 북종선(北宗禪)이 지향하는 수행법으로 계율과 선정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정화시킴으로써 불법을 깨닫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그러나 ≪육조단경≫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곧 “네 자신이 곧 부처이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북종선에 대한 남종선의 입장을 확립하여 남종선이 독립하는 근거가 된다. 돈오(頓悟)와 견성(見性)의 사상을 설하고 계(戒)·정(定)·혜(慧) 3학이 한가지임을 주장한다. 특히 ≪금강경≫에 기초하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무념(無念)을 궁극의 진리로 하고, 형상을 떠난 무상(無相)을 본질로 하며, 생각과 생각에 머물지 않는 무주(無住)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설한다. 그리고 법신불(法身佛)·화신불(化身佛)·보신불(報身佛)은 모두 자신의 본성 속에 갖추어져 있으나 중생이 미혹하여 밖에서 찾고 있으므로 자신 속에 있는 삼신불(三身佛)에 귀의(歸依)하는 무상계(無相戒)를 내세워 형식적인 일체의 형상과 의례를 배척하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에게 서약하고 귀의함을 수행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한다. 각 품의 대의는 다음과 같다.
행유품(行由品)은 혜능이 의봉(儀鳳) 2년(677) 2월 8일, 나이 40세 때 조계산 보림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 소주의 자사 위거(韋據)의 청을 받고 성중의 대범사(大梵寺)의 강당에 나아가 설법한다. 여기에서 혜능은 자신이 홍인의 문하에서 수행을 하고 법을 얻어 제6대의 조사가 되었던 유래를 설명한다.
반야품(般若品)은 ≪금강경≫의 사상에서 연유한 가르침이 주로 설해져 있다. 곧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범어에 대한 설명과 ≪금강반야경≫의 공덕과 모든 사람의 자성에 본래 구족(具足)되어 있는 반야의 속성 등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로써 그 자성을 깨치면 중생즉불(衆生卽佛)이라 말한다.
의문품(疑問品)은 자사 위거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나라 무제가 처음 달마와 만나서 주고받은 것으로 달마가 말한 무공덕(無功德)의 의미에 대하여 묻는다. 또한 아미타여래를 염송하면 서방정토에 태어나는 것인가를 질문한다. 혜능은 공덕의 뜻과 유심정토(唯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정혜품(定慧品)은 정혜일체(定慧一體)를 특징으로 하는 혜능 사상의 골자가 잘 드러나 있다. 곧 정혜일체는 정은 혜의 체이고 혜는 정의 작용으로서 체용은 불리일체(不離一體)라는 것이다. 또한 일행삼매(一行三昧)에 대하여 일체처(一切處)·일체시(一切時)·일체사(一切事)에서 직심(直心)을 실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나아가서 무념(無念)이 종(宗)이고 무상(無相)이 체(體)이며 무주(無住)가 본(本)임을 말한다.
좌선품(坐禪品)에서는 좌선의 의미를 선(禪) 수행(修行)의 자세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깨침의 의미로 해석하여 좌선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곧 일체선악의 경계에서 분별념(分別念)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안으로는 자성의 본래청정한 도리를 깨쳐서 조금도 혼란스럽지 않은 것을 선(禪)이라 말한다. 선(禪)·정(定) 및 정(定)·혜(慧)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참회품(懺悔品)은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무상참회(無相懺悔)·사홍서원(四弘誓願)·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일체삼신자성불(一體三身自性佛)의 순서대로 설명을 한다. 마지막으로 법(法)·응(應)·보(報)의 삼신불도 자성법문으로 풀이하여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천백억화신불(百億化身佛)·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의 순서로 설명한다.
기연품(機緣品)은 제자들을 접화(接化)하는 인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진장비구니(無盡藏比丘尼)·법해(法海)·법달(法達)·지통(智通)·지상(智常)·지도(志道)·행사(行思)·회양(懷讓)·현각(玄覺)·지황(智隍)·어떤 승(僧)·방변(方辯)·어떤 승(僧) 등 13명의 승에 대한 문답상량(問答商量)을 언급한다.
돈점품(頓漸品)은 남돈(南頓)·북점(北漸)의 종지의 차이를 주제로 하여 지성(志誠)·지철(志徹)·신회(神會) 등의 문답을 진행시킨다.
선조품(宣詔品)은 중종황제가 신룡 원년(705) 1월 15일 조칙을 내려 궁중에 초청했지만 혜능이 질병을 핑계로 고사하자 내시인 설간(薛簡)이 다시 육조에게 법을 묻는 내용이다.
부촉품(付囑品)은 혜능의 만년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는 혜능의 천화(遷化)·장례·비문의 건립 등 후인이 첨가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5. 가치와 영향

≪육조단경≫의 정신은 인간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무한히 존엄한 존재이며, 또한 경전이라는 문자의 옥에 갇히지 말고 그 근본 취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바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이며, 이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사상·문화·건축·디자인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육조단경≫에는 혜능 자신이 육조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문인들을 위한 갖가지 설법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경(經)’이라 할 수 없고, 조사어록(祖師語錄)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박한 사상성과 간결한 문체 때문에 우리나라·중국·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경과 같은 존숭을 받아오고 있다. 이는 서하어(西夏語)로도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판본으로는 부산의 범어사(梵魚寺)에서 보관되어 있는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을 대표로 꼽을 수 있다. 목판본이며, 선조 2년(1569)에 평안도 상원 해탈사(解脫寺)에서 개판하고, 다시 익산의 심곡사(深谷寺)에서 간행하였다. 앞에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의 ≪육조법보단경서(六祖法寶壇經序)≫가 실려 있는 덕이본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한문본으로서 사상뿐 아니라 실천적인 면에서 한국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귀중한 고서이다. 언해본으로는 중종 때 간행된 간기 미상의 책과 1844년(헌종 10)에 필사한 ≪언뇩조대법보단경≫이 전한다.
한국의 선종도 중국의 남종선에서 유래한 까닭에 일찍부터 이 책이 유행하였으며, 이제까지 밝혀진 목판·판각(板刻) 종류만도 20종이나 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덕이본과 종조본이 유통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종지로 삼은 고승으로는 고려 때의 지눌(知訥)(1158~1210)을 들 수 있다. 그는 혜능이 머물던 조계산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머물던 송광사(松廣寺)의 산명까지 조계산으로 바꾸었다. 또한 그는 그곳에서 정혜(定慧)를 이상으로 삼는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시도하였는데, 그때 후학들을 지도한 내용이 ≪육조단경≫과 ≪금강경≫이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밝은 거울 또한 형체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겠는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 “내 마음에 본래 부처가 있으며 자기의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일 불심이 없으면 어느 곳에서 참 부처를 구하리오?[我心自有佛 自佛是眞佛 自若無佛心 何處求眞佛]”
• “너희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아라. 밖으로는 한 물건도 세울 것이 없다. 모두 이 본심이 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이다.[汝等自心是佛 更莫狐疑 外無一切物而能建立 皆是本心生萬種法]”
(2)색인어:혜능(慧能), 육조단경(六祖壇經), 조계(曹溪), 선(禪), 선종(禪宗), 달마(達摩), 홍인(弘忍), 돈황본(敦煌本), 덕이본(德異本).
(3)참고문헌
• 六祖法寶壇經(法海 慧能(唐), 刊寫者未詳)
• 六祖壇經指針(성철, 海印寺出版部)
• 六祖大師 法寶壇經(慧能 撰, 山田大應 增注, 名古屋万松寺)
• 돈황본 육조단경(성철 지음, 장경각)
【함현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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