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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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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는 중국 북송(北宋) 초기 악사(樂史)(930-1007)가 편찬한 지리총지(地理叢誌)로, 송대를 대표하는 지리총지이자 명청(明淸) 시대 이전 최대 규모의 지리서이며, 통시적 시각에서 소위 사이(四夷)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현전 최고(最古)의 지리총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송 초기 ‘중국’ 중심의 ‘세계’ 인식과 담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2. 저자

(1) 성명 : 악사(樂史)(930-1007)
(2) 자(字)·호(號) : 자는 자정(子正), 호는 월지(月池)이다.
(3) 출생지역 : 무주(撫州) 의황현(宜黃縣) 곽원촌(霍源村)(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의황현(宜黃縣) 곽원촌(霍源村))
(4) 주요활동과 생애
악사는 당대(唐代)에 관원을 다수 배출했던 명문가 출신의 문학가이자 지리학자이다. 오대(五代) 후당(後唐) 장흥(長興) 원년(元年)(930)에 태어난 그는 남당(南唐)의 비서랑(秘書郞)을 지냈으며 남당의 과거(科擧)에서 장원(壯元)을 차지하기도 했다. 송(宋)이 남당을 정복한 후에는 송에 입사(入仕)하여 태조(太祖), 태종(太宗), 진종(眞宗) 연간에 걸쳐 저작좌랑(著作佐郎), 삼관편수(三館編修), 저작랑직사관(著作郞直史館), 태상박사(太常博士)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 사이 재직 관원 신분으로 과거시험에 참가하여 진사에 급제하기도 했다.
(5) 주요저작:
지리학에 밝아 《좌지천하기(坐知天下記)》(40卷), 《장상화이도(掌上華夷圖)》(1卷), 《태평환우기》 등을 찬술하였고, 신선 신앙에도 심취하여 《제선전(諸仙傳)》, 《신선궁전굴택기(神仙宮殿窟宅記)》, 《선동집(仙洞集)》 등을 펴내기도 했으며 그밖에도 많은 저작을 지은 바 있다. 현재는 대부분 산실되고 《태평환우기》와 필기집(筆記集) 《광탁이기(廣卓異記)》, 전기 소설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녹주전(綠珠傳)〉 등 소수만 전한다. 물론 《태평환우기》는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방대한 것으로 꼽힌다.

3. 서지사항

《태평환우기》는 총 200권(卷)과 목록 2권으로 이루어진 거질의 사찬(私撰) 지리총지로, 송 태종 태평흥국(太平興國)(976-984) 연간에 찬술되었다. 태평흥국 4년(978) 송이 황하 유역인 하동(河東)의 북한(北漢)을 마지막으로 정복하고 중원 통일을 일단락 지은 직후에 찬술하기 시작하였고, 완성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략 옹희(雍熙) 4년(987)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태평환우기》는 초간본은 매우 적었고 널리 유전되지 못하였으며, 명대에 이르면 초간본은 이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명말청초에 여러 간본이 나오지만 모두 온전한 판본은 아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대 광서(光緖) 연간의 금릉서국본(金陵書局本)이 있다. 그러나 금릉서국본 역시 권113-118이 누락되어 있는데, 결락 부분은 일본 소장 송각잔본(宋刻殘本)에 근거해 《고일총서(古逸叢書)》에 수록되었다. 그밖에 사고전서본(四庫全書本), 만정란본(萬廷蘭本), 중산대학장본(中山大學藏本) 등이 전해진다.
서명(書名)에서 ‘태평(太平)’은 곧 태평흥국 연간에 찬술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송이 통일의 대업을 이룬 정치적 국면을 태평성세로 칭송하면서 그 안정된 치세가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염원하는 기원도 담겨있다. ‘환우(寰宇)’는 천하, 곧 세계를 뜻하는 말이므로, 그 제목에서부터 ‘중국’ 중심의 태평한 세계 질서에 대한 지향이 드러난다. 악사가 책을 완성한 후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쓴 〈진서표(進書表)〉이기도 했던 〈태평환우기서(太平寰宇記序)〉에도 그 편찬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곧 분열되었던 중원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만국의 유일한 군주를 가송하고 천년에 한 번 나시는 성군을 기리기[頌萬國之一君 表千年之一聖]” 위해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음이 분명하게 엿보이는 까닭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새 황조의 천자를 중심으로 한 천하구도를 재구성하고 상징화할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태평환우기》는 후진(後晉)의 석경당(石敬瑭)이 거란에 할양한 이래 당시 수복하지 못한 연운십육주(燕雲十六州)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태평환우기》가 실체로서 중국의 지리서이기보다는 하나의 구성된 텍스트로서 특성이 여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것이다. 한편 《태평환우기》는 기존의 지리지, 특히 기존 최고의 강역지리지로 꼽히는 이길보(李吉甫)의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 체재를 기본적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각종 정사(正史)와 지지(地誌)를 비롯한 2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전적을 두루 참고하여 편찬되었다.

4. 내용

《태평환우기》는 《원화군현지》의 체재를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보다 상세한 강역지리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체재에 있어서도 《원화군현지》에 비해 풍속, 성씨, 인물, 예문(藝文), 토산(土産), 사이(四夷) 등의 항목을 추가하였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제171권까지는 하남(河南), 관서(關西), 하동(河東), 하북(河北), 검남서(劍南西), 검남동(劍南東), 강남동(江南東), 강남서(江南西), 회남(淮南), 산남서(山南西), 산남동(山南東), 농우(隴右), 영남(嶺南) 등 13도(道) 순으로 각 관할 주(州)와 부(府)의 연혁, 예속 현(县), 지리 경계와 교통로, 호구(户口), 풍속, 성씨, 인물, 토산 및 예속 현의 개황, 산천, 호택(湖澤), 성읍, 고적, 요새 등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제172권부터 제200권까지 후반부 29권 분량에는 ‘사이(四夷)’ 항목을 덧붙여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 순으로 주변의 각 나라와 민족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북송의 수도였던 하남성(河南道) 동경(東京)(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 지역으로부터 ‘해외’에 이르기까지 환우(寰宇), 곧 당시 중국인의 인식 속의 세계를 담은 것이다.
〈사이〉 가운데 한반도와 관련한 동이 부분의 전체 구성과 수록 항목만 보자면 아래와 같다.

권(卷)172 사이1四夷一 〈사이총서(四夷總序)〉 〈동이1東夷一〉 조선(朝鮮), 예(濊), 백제(百濟), 삼한(三韓)
권(卷)173 사이2四夷二 〈동이2東夷二〉 고구려(高句麗)
권(卷)174 사이3四夷三 〈동이3東夷三〉 신라(新羅), 왜(倭), 부여(夫餘), 하이(蝦夷)
권(卷)175 사이4四夷四 〈동이4東夷四〉 동옥저(東沃沮), 읍루(挹婁), 물길(勿吉), 부상(扶桑), 여국(女國), 문신(文身), 대한(大漢), 유구(流求)

《태평환우기》가 전체적으로 그러하듯, 동이 부분 역시 편찬 당시의 시점이 아닌 통시적, 통사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에 해당 지역에 존재했던 주요 나라와 민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서술의 하한선은 기본적으로 당대(唐代)에 머물고 있다. 고려는 아예 수록되지 않았고, 통일신라 관련 내용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발해가 사실상 빠져 있는 것은 물론이다. 《태평환우기》가 편찬 당시 ‘세계’의 실제를 담은 지리서가 아닌, 과거 대당제국의 판도와 세계 인식을 모델로 재구성한 일종의 ‘서사’임이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역사 속의 여러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유독 고구려만 독립된 지면을 할애하여 건국신화부터 시작해서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에서 그 중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여국(女國)’과 같이 특이한 나라가 섞여 있는 것도 눈에 띈다.

5. 가치와 영향

《태평환우기》가 참고, 인용한 북송 이전의 전적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재는 전하지 않아 우선 그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길보의 《원화군현지》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현전 최고(最古)의 중국 지리총지로 꼽히는데, 《태평환우기》는 그 뒤를 바로 잇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중화세계’ 지리총지이자, 당 후기부터 송 초기까지의 지리 정보를 보강하여 상세하게 담아낸 저작으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태평환우기》는 단순히 행정구역과 그 연혁 등 지리 정보를 수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적 내용까지 풍부하게 담아 인문지리서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성격은 후대 지방지 및 지리서 편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가령 송대 왕존(王存)의 《원풍구역지(元豐九域志)》, 왕상지(王象之)의 《여지기승(輿地記勝)》, 축목(祝穆)의 《방여승람(方輿勝覽)》, 명청 시대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 및 각종 ‘통지(通志)’ 등 대표적인 지리총지 및 각종 지방지가 그 체제를 계승하거나 정보를 대거 인용하면서 전통시기 중국 역사지리학의 명저로 자리매김하였다. 아울러 지역별 인구 정보와 물산 등 경제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 인구지리와 경제지리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태평환우기》는 국내에도 유입되어 정조 때 편찬한 전국 지리지 《해동여지통재(海東輿地通載)》(실전(失傳))의 편찬 체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태평환우기》는 중국의 전통적 천하 관념과 사이(四夷) 서사를 보여주는 한 전형이다. 《태평환우기》는 현실과 당위, 실제와 상상이 복합되고 착종된 구성물로서 전통시기 중국적 세계질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거기에 재현된 천하 관념이 배치된 맥락은 분명 송대 초기의 것이다. 새로이 들어선 송 왕조의 이름으로, 또 그 시대적 맥락과 기획에 따라 재구성된 중국적 세계질서의 꿈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정통성을 새롭게 확립하기 위해 《태평환우기》는 북송 지식인의 관념에 바탕을 둔 통시적, 통사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그것은 북송 시점에서의 재맥락화이자 텍스트로 서사화한 ‘고금화이도(古今華夷圖)’였다고 할 것이다. 주변의 위협적인 세력들 가운데 개국하여 ‘중국’ 의식이 두드러졌던 북송의 대표적인 지리총지로서 《태평환우기》는 기존의 어느 전적보다 화이(華夷)의 구분을 강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이 서사를 한층 더 체계화하여 풍부하게 담고 있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찬(私撰)이지만 관찬서(官撰書) 성격이 강한 《태평환우기》는 후대 지리서의 한 전범으로 계승되면서 화이 구분과 사이 서사의 틀을 공고화 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밖을 나서지 않고도 전 세계를 알 수 있고,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만국을 볼 수 있다.[不下堂而知五土 不出戶而觀萬邦]” 〈태평환우기서(太平寰宇記序)〉
• “조선성은 곧 은나라 기자가 봉함을 받은 곳이다.[朝鮮城 卽殷箕子受封之地]” 권(卷)70 〈하북도(河北道) 평주(平州) 노룡현(盧龍縣)〉
• “연개소문은 모습이 헌걸차고 의복과 모자, 신발을 모두 금채로 장식하였으며, 몸에는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늘 팔을 휘두르며 성큼성큼 걷고 의기가 호방하여 좌우 사람들이 감히 올려다보지 못하였다. 늘 무관이나 귀인으로 하여금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그 등을 밟고 말에 오르내렸다.[蘇文鬚面甚偉 形體魁傑 衣服冠履皆飾以金綵 身佩五刀 常挑臂高步 意氣豪逸 左右莫敢仰視 恒令武官貴人俯伏於地 登背上下馬]” 〈사이(四夷) 고구려〉
(2) 색인어: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악사(樂史), 지리총지(地理叢誌), 사이(四夷), 동이(東夷), 화이(華夷)
(3) 참고문헌
• 太平寰宇記(樂史 撰, 王文楚 等 點校, 中華書局)
• 元和郡縣圖志(李吉甫, 中華書局)
• 通典(杜佑, 中華書局)
• 通志(鄭樵, 中華書局)
• 文獻通考(馬端臨, 中華書局)
•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동북아역사재단 편)
• 이 중국에 거하라: ‘중국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탐구(거자오광 저, 이원석 역, 글항아리)
• 簡評太平寰宇記(李德淸, 《華東師範大學學報 自然科學版》, 1980年 第5期)
• 太平寰宇記試探(禹文, 《北京師院學報 社會科學版》, 1984年 第1期)
• 太平한 中華의 세계를 꿈꾸다 ― 《太平寰宇記》의 四夷 ‘敍事’와 담론에 대한 試論(김효민・최수경, 《중국어문논역총간》, 제43집, 2018)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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