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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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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학계몽(算學啓蒙)》은 원(元)나라의 주세걸(朱世傑)이 1299년 출판한 산서(算書)이다. 그가 1303년 출판한 《사원옥감(四元玉鑑)》과 함께 중국 수학사에서 가장 우수한 업적을 낸 송(宋), 원(元) 수학을 대표하는 산서 중 하나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잊힌 산서로 조선과 일본의 수학사가 중국의 수학사와 다른 길을 걷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저자

(1)성명:주세걸(朱世傑)(?~?)
(2)자(字)·별호(別號):자는 한경(漢卿), 호는 송정(松廷).
(3)출생지역:출생 지역은 북경(北京) 혹은 그 부근이거나, 연산(燕山)(하북(河北) 준화(遵化) 서남에 있는 산맥)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어, 하북 북부, 혹은 북경 일대 사람으로 본다.
(4)주요활동과 생애
주세걸의 행적은 《산학계몽》의 조원진(趙元鎭)의 서(序)와 《사원옥감》의 막약(莫若)의 전서(前序), 조이(祖頤)의 후서(後序)를 제외하면 정보가 없다. 막약의 서문에 따르면 주세걸은 유명한 수학자로 20여 년 동안 여러 곳을 다녔는데 사방에서 학자들이 모여 선생이 이룬 수학으로 이들을 교육하였다. 따라서 주세걸은 수학자이며 동시에 수학 교육자로 여러 곳을 다니면서 활동한 사람이다. 한편 1127년 북송이 멸망하고 1279년 원이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남북의 학술적 교류가 거의 중단 상태가 되었다. 이는 남쪽에서 활동한 진구소(秦九韶)(1202~1261)와 양휘(楊輝), 북쪽에서 활동한 이야(李冶)(1192~1279)와 주세걸의 산서들을 비교하면 곧 알 수 있다. 주세걸은 1279년 이후 남북을 마음대로 다니면서 남방계열의 수학과 북방계열의 수학을 고루 섭렵하여 송원 수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 북방 수학의 가장 큰 특징은 다항식의 표현과 연산을 위하여 도입된 천원술(天元術)과 이를 4변수 다항식까지 확장한 이원술(二元術), 삼원술(三元術), 사원술(四元術)에 기초하는 방정식의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주세걸 이전에 도입된 삼원술에 이어 그가 사원술을 도입하여 저술한 《사원옥감》은 중국 수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천원술에 관한 산서는 이야의 《측원해경(測圓海鏡)》(1248년 완성, 초판 1282), 《익고연단(益古演段)》(1259)과 주세걸의 《산학계몽》이 전해지지만, 이원술에서 사원술을 포함하는 산서는 《사원옥감》이 유일한 것이다. 한편 칭기즈칸의 서정(西征)으로 아랍의 역법이 중국에 전파되면서 당시까지 사용된 대명력(大明曆)(1137)을 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왕순(王恂)(1235~1282), 곽수경(郭守敬)(1231~1316) 등에 의하여 제정된 새로운 역법 수시력(授時曆)(1280)이 시행되어, 1645년 시헌력(時憲曆)으로 대치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수시력에 사용된 수학을 구조적으로 접근한 수학자가 주세걸이다.
(5)주요저작:《사원옥감(四元玉鑑)》

3. 서지사항

세종(世宗)이 조선의 역법을 완성하는 데 반드시 수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국에서 역법과 수학책을 들여오게 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산학계몽》이다.(《세조실록(世祖實錄)》 1460년 6월 6일) 이 부분을 작성한 사관은 적어도 《산학계몽》과 《양휘산법(楊輝算法)》을 공부한 사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전술한 《산학계몽》의 중국 수학사의 역사를 약술한 조원진의 서문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고 동양의 방정식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방정정부문(方程正負門)〉, 〈개방석쇄문(開方釋鎖門)〉의 제목과 함께 《구장산술(九章筭術)》에 주를 달아 이 책의 수학적 구조를 밝혀 중국 수학의 기초를 이룬 유휘(劉徽)가 지은 《해도산경(海島算經)》의 한 예를 양휘(楊輝)가 인용하면서 설명한 것을 이어서 인용하였다. 호조(戶曹)의 수학 관료를 뽑는 시험인 취재(取才) 과목으로 《산학계몽》을 택한 것(《세종실록(世宗實錄)》 1430년 3월 18일), 세종이 《산학계몽》을 연구한 것(《세종실록》 1430년 10월 23일)을 보면 1430년 이전에 《산학계몽》이 조선에 들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거치면서 조선의 산학에 대한 세조 이후부터 17세기 중반까지의 사료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후 《묵사집산법(默思集算法)》의 저자 경선징(慶善徵)(1616~1690)이 소장하고 있던 《산학계몽》을 기초로 하여 1660년 김시진(金始振)(1618~1667)이 중간(重刊)하여 조선 산학은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왜란 중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지고 간 《산학계몽》과 《양휘산법》을 관효화(關孝和)(Seki Takakazu, ?~1708)를 비롯한 일본 산학자들이 연구하여 화산(和算)의 기초를 세웠다. 일본은 1658년 《산학계몽》을 출판하고 관효화의 제자인 건부현홍(建部賢弘)(1664~1739)은 《산학계몽》에 일본어로 주석을 달아 《산학계몽언해대성(算學啓蒙諺解大成)》(1690)을 출판하였다. 조선의 모든 산서는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은 일본어 산서가 더 많이 출판되었다.
세종대에 《산학계몽》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아 15세기 초까지는 《산학계몽》이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각성(梅瑴成)(1681~1763)이 천원술과 차근방(借根方)을 비교하기 위하여 인용한 책이 주세걸의 《사원옥감》이기 때문이다. 전술한 《사원옥감》의 후서에서 《산학계몽》은 시작이고 《사원옥감》은 끝이며 둘은 표리(表裏) 관계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원옥감》은 너무 간략하게 저술되었으므로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세초(細草)들이 저술되고서야 《사원옥감》이 제대로 읽히게 되었다. 이 중에 나사림(羅士琳)(1784~1853)의 세초(1835)가 유명하다. 나사림이 유리창서사(琉璃廠書肆)에서 김시진의 중간본을 구하여 교정을 붙여 1839년에 출판하였다. 이 때 완원(阮元)(1764~1849)이 서문에 위의 사실을 적어놓았다. 이는 조선의 산서가 중국으로 수출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산학계몽》은 중국에서 저술되었지만 한중일 삼국의 《산학계몽》은 모두 세종대에 들여온 《산학계몽》에서 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내용

《산학계몽》은 〈총괄(總括)〉, 상중하(上中下)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괄〉은 앞으로 사용할 기본 용어, 도량형의 단위, 원주율, 개방법 등을 들었다. 〈상권〉 8문(門) 113문(問), 〈중권〉 7문(門) 71문(問), 〈하권〉 5문(門) 75문(問)으로 모두 259문항을 취급하였다. 《구장산술》부터 시작된 동양 수학의 가장 큰 특징인 실생활의 문항들을 다루어 수학적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을 《산학계몽》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인 산대(산주(算籌), 주(籌))를 사용하여 모든 연산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상권〉은 산대를 사용한 곱셈과 나눗셈을 서로 역연산(逆演算) 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문항의 내용은 다르지만 숫자들은 완전히 일치하도록 선택하였다. 두 연산의 수학적 구조를 저자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어서 비례식을 〈이승동제문(異乘同除門)〉이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이들을 응용하여 〈고무해세문(庫務解稅門)〉, 〈절변호차문(折變互差門)〉에서 1차방정식 문제를 다루었다. 각 장의 제목으로 실생활 문제의 주제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중권〉은 〈전무형단문(田畝形段門)〉에서 평면도형의 넓이와, 〈창돈적속문(倉囤積粟門)〉, 〈상공수축문(商功修築門)〉에서 입체도형의 부피를 취급하였다. 전자는 곡식 창고의 부피로, 후자는 토목 공사와 관계되는 입체의 부피 문제로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복비의 문제를 다룬 〈쌍거호환문(雙據互換門)〉, 2원 1차 연립방정식을 다룬 〈구차분화문(求差分和門)〉, 비례배분을 이용한 문제는 〈차분균배문(差分均配門)〉에서 다루었다. 구조적으로는 《구장산술》의 〈방전(方田)〉, 〈속미(粟米)〉, 〈최분(衰分)〉, 〈상공(商功)〉, 〈균수(均輸)〉에서 다루어진 것들이지만, 경제적으로 발전된 송원대의 문제들을 취급하였다. 정수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Division Algorithm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속미장에 도입된 기율(其率), 반기율(反其率)이 있는데 이를 정수의 구조로 완벽하게 설명한 것을 〈중권〉의 마지막 장(章)인 〈귀천반율문(貴賤反率門)〉에서 다루었다.
〈하권〉은 분수의 대수, 순서구조를 다루는 〈지분제동문(之分齊同門)〉으로 시작한다. 동양의 수학은 실생활의 문제를 다루어 소수(小數)는 주로 화폐, 도량형 등의 최소 단위 이하를 사용하여 나타내었다, 송대에 들어와 불교의 영향으로 대수(大數), 소수의 단위가 확대되어 주세걸은 총괄에서 이를 인용하였다. 주세걸은 유리수의 소수 표시는 유한소수와 무한소수인 순환소수가 나타나는 것을 인지하여 이들을 상, 중권에서 분수로 나타내었지만 그 구조는 하권의 〈지분제동문〉에서 다루었다. 유한급수의 이론을 〈퇴적환원문(堆積還源門)〉에서 도입한다. 전통적으로 등차급수는 평면도형의 넓이와 연결하고, 삼각타(三角垜) (k=1nm=1km=k=1nk(k+1)2), 사각타(四角垜) (k=1nk2)는 입체도형의 부피와 연계하였다. 이들도 먼저 합을 구하고 이어서 역으로 저면(底面)(n)을 구하는 문제는 고차 방정식을 구성하여 해결하였다. 이중가정법(二重假定法), 쌍설법(雙設法) 등으로 알려진 《구장산술》의 제7장 〈영부족(盈不足)〉의 문제는 〈영부족술(盈不足術門)〉에서 취급하였다. 《구장산술》은 1차 연립방정식을 행렬(行列)로 표시하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거법으로 이들을 해결한 장이 제8장 〈방정(方程)〉이다. 이때 음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음수 유리수와 그 구조를 도입하였다. 〈방전(方田)〉장에서 도입한 양의 유리수와 함께 유리수의 대수, 순서구조가 완결되어 〈방정(方程)〉은 항상 양수, 음수를 나타내는 정부(正負)와 연결하여 《산학계몽》에서도 〈방정정부문〉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취급한다. 주세걸은 거의 모든 문(門)의 마지막 문항을 다음 문(門)에서 다룰 내용을 포함하여 이론 전개의 연속성을 확보하였다. 《구장산술》의 마지막 장인 〈구고(句股)〉는 직각삼각형의 문제를 취급하는데, 구고술(句股術)은 방정식이론을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주세걸은 방정정부문의 마지막 문항에서 연립방정식의 문항과 직각삼각형의 문제를 천원술을 이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는 예를 넣어서 다음 문(門)인 〈개방석쇄문〉으로 연결하였다. 천원술은 다항식을 그 계수를 차례로 산대로 늘어놓고 연산은 수의 연산과 거의 같게 하는 방법을 뜻한다. 천원술은 11세기에 도입되고, 다항식 p(x)x를 천원(天元)이라 한다. 동양 수학사에서 가장 큰 업적인 방정식론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천원술이다. 그 이전까지는 기하적으로 방정식을 접근하였지만 대수적으로 접근하여 방정식의 구성을 통일할 수 있는데 주세걸은 전통적인 방법과 천원술의 방법을 두 문항에 걸쳐 비교하여 천원술의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이와 유사한 산서가 전술한 이야(李冶)의 《익고연단》이 있는데 이 책도 중국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중국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방정식론은 400년 정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방정식이 구성되면 그 다음 단계는 이들의 해를 구하는 것이다. 《구장산술》의 제4장 〈소광(少廣)〉에 도형의 성질을 이용하여 제곱근, 세제곱근을 구하는 법이 도입되었다. 이 방법을 대수적으로 변환하여, 11세기 가헌(賈憲), 유익(劉益) 등이 증승개방법으로 알려진 일반 다항방정식의 해법을 도입하여 송원대의 방정식론을 완결하였다. 주세걸은 〈개방석쇄문〉에서 증승개방법을 이용하여 제곱근부터 네제곱근까지 구하는 방법을 기술하고, 이어서 27문항에 걸쳐서 천원술을 이용하여 다항방정식을 구성하는 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분수방정식, 무리방정식을 포함하는 고차연립방정식의 문제도 천원술을 사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였다.
《산학계몽》은 20문(門) 259문(問)으로 되어있는데 〈개방석쇄문〉이 34문(問)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주세걸이 《산학계몽》을 저술한 가장 큰 목적이 송원대의 방정식 이론임을 알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한중일 삼국의 수학사가 분리되는 역할을 한 산서(算書)가 《산학계몽》이다. 조선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홍정하(洪正夏)(1684~1727)가 천원술과 중국 산학에서 잊힌 가헌과 유익의 증승개방법의 구조를 완전히 찾아내어 저술한 《구일집(九一集)》(1713~1724)은 《산학계몽》과 《양휘산법》을 연구하여 얻어진 결과이다. 19세기 중엽에 《구장산술》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국 산서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까지 《산학계몽》을 뛰어넘는 책은 없었다. 천원술과 증승개방법이 빠져 있는 정대위(程大位)(1533~1606)의 《산법통종(算法統宗)》(1592), 《수리정온(數理精蘊)》(1723)에 매몰되어 홍정하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조선 산학은 거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전술한대로 주세걸은 수학교육자이다. 《산학계몽》은 수학을 통일된 구조적인 접근을 통하여 기술하고, 독자들이 예습 복습을 하도록 배열하여 그 구조를 알아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동양 산서로 유일한 것이다.

6. 참고사항

(1)명언
• 수학적 구조에 대해 언급한 부분.“한 줄기 물에서 천류만파가 이루어지고, 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도 천조만지를 이루고, 수는 1에서 시작하여 천변만화를 이룬다.[嘗觀水一也散則千流萬波 木一也散則千條萬枝 數一也散則千變萬化]” 〈서(序)〉
이후에 노자(老子)를 언급하였는데, 주세걸은 도교사상 특히 전진도(全眞道)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 순환소수 표시가 없었던 동양 수학에서 유리수를 분수로 나타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논의이다. 제곱근이나 세제곱근의 경우에 나타나는 무리수의 경우 근삿값을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유리수의 경우는 무한소수의 경우도 근삿값 대신에 분수로 대치할 수 있고, 곱셈과 나눗셈의 역연산 관계를 정확히 하려면 분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었다. 또 《구장산술》 제1장인 〈방전(方田)〉에서 직사각형의 넓이를 구하고 바로 분수를 도입하여 분수의 구조를 명백히 하고 수학을 시작한 것을 주세걸이 인지한 것을 나타내었다.
“나눗셈에서 나누어떨어지지 않을 때 그 나머지를 버릴 수 없다. 이를 버리면 원수와 맞지 않게 된다. 이 때 분수로 나타내면 곱셈과 나눗셈의 역연산의 기본을 잃지 않게 된다. 그래서 《구장산술》도 분수를 책의 제일 앞에 넣어 분수, 즉 유리수가 산학의 기본임을 나타내었다.[但有除分者餘不盡之數不可棄之 棄之則不合其源 可以爲之分言之之分者 乃乘除往來之數還源則不失其本也 故九章設諸分於編首者爲何爲之分者乃開筭之戶牖也]” 〈권하(卷下) 지분제동문 안(之分齊同門 案)〉
∙천원술에 대해 언급한 부분.
“책의 마지막 문(門)에 천원술을 도입하여 천지의 변통, 음양의 소장을 다 밝혀내어 풀 수 없는 문제의 해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낼 수 있게 하였다.[卷末一門 立天元一算 包羅策數 靡有孑遺 明天地之變通 演陰陽之消長能窮 未明之明克盡 不解之解索數隱微莫過乎]” 趙元鎭의 〈서(序)〉
(2)색인어:산학계몽(算學啓蒙), 주세걸(朱世傑), 수학적구조(數學的構造), 조선산학(朝鮮筭學), 천원술(天元術).
(3)참고문헌
•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數學卷(郭書春 主編, 河南敎育出版社)
• 中國歷代算學集成(靖玉樹 編勘, 山東人民出版社)
• 구일집(九一集)(洪正夏, 서울대학교 도서관)
• Mathematical Structures and Suanxue Qimeng(Hong Sung Sa 외, 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 26(2-3), 2013)
• Division Algorithm in Suanxue Qimeng(Hong Sung Sa 외, 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 26(5-6), 2013)
• 金元數學與全眞道(郭書春, Journal for History of Mathematics 29(6), 2016)

【홍성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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