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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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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宋)나라 주희(朱熹)(1130∼1200)가 쓴 역사서로 전 59권이다. 《통감강목(通鑑綱目)》, 《강목(綱目)》이라고도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을 강목(綱目)으로 만든 책이며, B.C. 403년에서부터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정통(正統)·비정통을 분별하고 대요(大要)인 강(綱)와 세목(細目)인 목(目)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주희는 대요만을 썼고, 그의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하였다. 역사적인 사실의 기술보다는 의리(義理)를 중히 여기는 데 치중하였으므로 너무 간단히 적어 앞뒤가 모순된 부분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하고 위(魏)나라를 비정통으로 하는 등 송학(宋學)의 도덕적 사관이 엿보이는 곳도 많다.

2. 저자

(1)성명:주희(朱熹)(1130∼1200)
(2)자(字)·별호(別號):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菴)·고정(考亭)·자양(紫陽)·둔옹(遯翁)·우계(尤溪) 등이며, 후대 그를 존칭하여 주자(朱子)라 칭한다.
(3)출생지역:중국 남송대(南宋代) 휘주(徽州) 무원(婺源)
(4)주요활동과 생애
주희는 명문 집안 출신으로 복건(福建) 건양(建陽)에서 살았다. 남송(南宋) 소흥(紹興) 18년(1148)에 19세로 진사에 합격하여 관계(官界)에 들어갔으며 그 전후에 도학 외에 불교, 도교도 공부하였다. 24세에 이연평(李延平)과 만나 그의 영향 하에서 정씨학(程氏學)에 몰두하고 다음에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이정자(二程子)의 설을 종합 정리하여 주자학(朱子學)으로 집대성하였다.
주자의 학문은 이기설(理氣說)(존재론), 성즉리(性卽理)의 설(윤리학), 격물궁리(格物窺理)와 거경(居敬)의 설(방법론), 경전의 주석이나 역사서의 저술, 구체적인 정책론으로 되어 있고, 그 모두에 중세 봉건사회의 근간인 신분 혈연적 계급질서의 관점이 관철되고 있다.
그의 업적은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의 도인 삼강(三綱)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오상(五常)을 영원불변의 ‘인리천리(人理天理)의 지(至)’로 보는 입장에 서서 그것을 초월적 또는 내재적으로 이론화한 것이다. 주자의 학문과 그 실제 정책은 모두 봉건 사회의 질서원리가 관철되고 있으며 이를 철학적으로 강고하게 체계화시켰던 것으로 주자학은 봉건 사회의 이데올로기로서 오랫동안 군림하였다.
(5)주요저작:《사서집주(四書集註)》, 《주역본의(周易本義)》, 《주자어류(朱子語類)》

3. 서지사항

《자치통감강목》은 《자치통감》에서 파생된 새로운 역사 서술방식인 강목체(綱目體)로 쓰였다. 주희는 이 책을 지어 이학(理學)을 운용하여 사학(史學)을 개조하려 하였다. 그는 ‘이(理)’를 표준으로 이전의 역사서를 평가하였는데, 이(理)는 바로 삼강오상(三綱五常), 윤리도덕의 승화(昇華)였다. 따라서 그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의(義)’는 말하지 않고 ‘화복이해(禍福利害)’만을 이야기하여 ‘이(理)’에 부합하지 않고, 《사기(史記)》는 성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설을 따라서 내용이 얕고 소략하며 ‘의리(義理)’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자치통감》도 의리상 미진하다고 비판하며, 무주(武周)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은 중종(中宗)의 연호를 쓰고, 무측천(武則天)의 연호를 삭제하였다. 또한 왕망(王莽), 조조(曹操)를 난신(亂臣)으로 간주하여, 왕망의 연호도 사용하지 않았다.
주희가 《자치통감강목》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첫째로 294권에 달하는 방대한 《자치통감》의 분량을 줄여 읽기 쉽게 하고, 둘째로 공자(孔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정통과 비정통을 분별하여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였다. 주자는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을 저술할 때 실재적 사실에 근거하여 조조의 위(魏)나라를 기년으로 삼은 것은 대의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유비(劉備)의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보는 관점에서 저술하였다.
초각본에는 가정(嘉靖) 천주각본(泉州刻本)과 온릉본(溫陵本)이 있으며 온릉본만이 중국과 대만에 보존되어 있다. 명대(明代) 성화(成化) 9년 내부각본(內府刻本)에 주자의 〈범례(凡例)〉가 같이 판각되었으며, 이후 청대(淸代)에 명대 진인석본(陳仁錫本)을 바탕으로 교정하여 강희(康熙) 47년(1708) 무영전본(武英殿本)이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부터 들어왔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 세종(世宗) 때 명나라 때 통행본을 바탕으로 당시 중국의 여러 주석서를 모아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하게 된다. 이에 앞서 세종은 1434년 윤회(尹淮)와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자치통감》을 고열(考閱)하고 여러 서적을 참조하여 그 해당 부분에 해설을 붙인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였는데, 이때 이를 세종이 직접 검토하고 재결하였다. 이후 세종은 1436년 집현전(集賢殿) 부교리(副校理) 이계전(李季甸) 등에게 명하여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하게 하였다. 여기서 훈의(訓義)는 해석한다는 말이고 사정전(思政殿)은 경복궁(景福宮) 안에 있던 편전(便殿)이다. 사정전훈의본은 세종 시대 역사학의 수준을 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4. 내용

《자치통감강목》은 모두 59권으로 그 중심사상은 정통을 분명히 하고 찬탈을 배척하며 강상(綱常)을 세우고 명교(名敎)를 세워 역사의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는데 《춘추(春秋)》를 따랐다. 강목의 ‘강(綱)’이란 주희가 시간 순서에 근거하여 써나가는 역사적 사실의 대강(綱要)으로 《춘추》의 경(經)과 같은 것이다. 제목 역할도 하면서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작자의 시각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목(目)’은 주희의 문인인 조사연 등이 편성한 것으로 강의 구체적인 서술로서 《춘추좌씨전》의 전(傳)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소위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사용하여 오직 포폄과 권선징악의 입장에서만 문장을 서술하였으며, 특히 정통관념을 강조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통치자들이 정치사상과 윤리도덕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통치자들의 주목과 중시를 받았다. 즉 역사서라기보다 정치 교과서와 같은 것으로 비록 사료적 가치는 별로 없으나 통속적이지 않고 간결하여 역사를 학습하려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역사 지식을 갖게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세종 때 교주(校註)한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이 유행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간(重刊)되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당시에 제후들이 모두 왕(王)이라 칭하였으나,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홀로 옳게 여기지 않고 말하기를 ‘그 실상이 없는데 감히 그 명칭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나라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자신을 군(君)으로 부르게 하였다.[時諸侯皆稱王 趙武靈王獨不肯曰 無其實敢處其名乎 令國人謂己曰君]” 〈주현왕(周顯王) 46년 조〉
• “무릇 모든 일이 성공하는 것은 반드시 공경함에 있고 실패하는 것은 나태함에 있습니다.[凡百事之成也 必在敬之 其敗也 必在慢之]” 〈진소양왕(秦昭襄王) 52년 조〉
•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한 탓이 아니다.[此天亡我 非戰之罪也]” 〈한 태조(漢太祖) 고황제(高皇帝) 5년 조〉
(2)색인어:주희(朱熹), 조사연(趙師淵), 자치통감(資治通鑑),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강목(綱目),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資治通鑑綱目)
(3)참고문헌
• 文白對照 資治通鑑綱目(孫通海, 李巨泰 主編, 長征出版社)
• 資治通鑑綱目書法(韓格平, 北京師範大學出版社)
• 資治通鑑綱目考異(韓格平, 北京師範大學出版社)
• 譯註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신승운 등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 〈조선 초기 관찬 역사서에 있어서 《자치통감강목》 書法의 영향〉(김남일,한국사학사학회)
【서영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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