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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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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률소의(唐律疏議)》는 당(唐)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 4년(653)에 반포된 율(律)에 대한 해석서로서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당시에 개정 반포된 영휘율(永徽律)에 주소(注疏)를 더하여 편찬한 법전이다. 현재 완전한 형태의 율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 당률(唐律)인데, 이 당률은 소의(疏議)와 합쳐진 형태로 전하기 때문에 《당률소의》는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법전이라 할 수 있다.

2. 저자

(1) 성명:장손무기(長孫無忌)(594~659)
(2) 자(字)·별호(別號):자는 보기(輔機)
(3) 출생지역:하남(河南) 낙양(洛陽)(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4) 주요활동과 생애
장손무기의 부친은 수(隋)나라에서 우효위장군(右驍衛將軍)을 지냈던 장손성(長孫晟)이고, 모친은 당 태종(太宗) 때 《정관씨족지(貞觀氏族志)》를 편찬한 고사렴(高士廉)의 동생이다. 당 태종과는 포의지교(布衣之交) 사이이며, 태종 장손황후(長孫皇后)의 오빠이기도 하다. 고조(高祖) 무덕(武德) 9년(626) 이세민(李世民)의 현무문(玄武門)의 변에 가담하여 성공을 거두고 태종이 즉위하자 정관(貞觀) 연간(627~649) 좌무후대장군(左武侯大將軍)·이부상서(吏部尙書)·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사공(司空)·사도(司徒)·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령(中書令)을 지냈고, 조국공(趙國公)에 책봉되었으며 능연각(凌煙閣)에 걸린 24명의 공신화상(功臣畫像) 가운데 첫 번째에 위치하였다. 정관 23년(649) 태종이 붕어하자 그의 유조를 받들어 저수량(褚遂良)과 함께 고종 이치(李治)를 보좌하게 되었다. 곧 태위(太尉)·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으로서 정무를 관장하고, 영휘 3년(652) 《정관율(貞觀律)》을 기초로 《당률소의》 편찬을 주도하여 다음 해 천하에 반포하였다. 영휘 6년(655) 고종이 무측천(武則天)을 황후로 책립하는 데 반대하고, 현경(顯慶) 4년(659) 허경종(許敬宗)의 모함을 받아 검주(黔州)로 유배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상원(上元) 원년(674) 고종은 다시 장손무기의 관작을 회복시키고 손자 장손원익(長孫元翼)으로 하여금 조국공의 작위를 계승하도록 했으며, 태종의 소릉(昭陵)에 배장하였다.
(5) 주요저작:《전당시(全唐詩)》에 〈신곡이수(新曲二首)〉, 〈파교대이장군(灞橋待李將軍)〉이 실려 있고, 《전당시속습(全唐詩續拾)》에는 〈의란전조추시연응조(儀鸞殿早秋侍宴應詔)〉, 〈춘일시연망해응조(春日侍宴望海應詔)〉, 〈봉화행경파설거전지응조(奉和行經破薛擧戰地應詔)〉, 〈시연연경전동부별제득한계총응조(侍宴延慶殿同賦别題得寒桂叢應詔)〉가 실려 있다. 또한 〈사공신습봉자사표(辭功臣襲封刺史表)〉, 〈하하청표(賀河清表)〉, 〈청봉선표(請封禪表)〉, 〈진오경정의표(進五經正義表)〉, 〈진율소의표(進律疏議表)〉, 〈사칙비서성사신번경론주(謝敕秘書省寫新翻經論奏)〉, 〈태종황제배천의(太宗皇帝配天議)〉, 〈면복의(冕服議)〉, 〈선대제왕급선성선사의(先代帝王及先聖先師議)〉, 〈호천상제급오제이동의(昊天上帝及五帝異同議)〉, 〈서모복제의(庶母服制議)〉, 〈율소의서(律疏議序)〉와 같은 표문(表文)이 《전당문(全唐文)》에 수록되어 있다.

3. 서지사항

《구당서(舊唐書)》 〈경적지(經籍志)〉,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 및 《숭문총목(崇文總目)》과 《옥해(玉海)》에 인용된 《관각서목(館閣書目)》에 따르면 《당률소의》의 원래 명칭은 《율소(律疏)》이다. 그런데 이 율소가 《당률》을 주소한 것이고, 주소한 문장은 ‘의(議)’ 자로 시작하고 있으므로 후세인들이 ‘당(唐)’자와 ‘의(議)’자를 더하여 《당률소의》라 개칭한 것이다. 고종이 즉위한 후 영휘 원년(650)에 조를 내려 율령을 수정토록 하자 장손무기, 이적(李勣), 우지녕(宇志寧) 등은 무덕, 정관 이래의 율·령·격·식을 참조하고 수정하여 영휘 2년(651)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정관율에 비해 큰 변동은 없었고, 율은 여전히 12권 500조였다. 이때 율·령·격·식을 수정한 것을 제외하고, 또 하나의 입법 작업이 있었는데, 그것은 율에 대하여 소(疏)를 짓는 작업을 병행한 것이었다. 영휘 4년(653) 10월에 《율소》 30권을 완성하고 마침내 천하에 공포 시행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당률소의》이다. 《당률소의》는 그것을 전하는 여러 사서와 여러 판본에 고종 영휘 4년 장손무기 등이 조칙을 받들어 《영휘율》에 주소를 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구당서》 〈형법지(刑法志)〉와 《통전(通典)》 권165 〈형법3〉 및 돈황에서 발견된 《율소》의 잔권(殘卷)을 근거로 현존하는 《고당률소의(故唐律疏議)》는 개원율소(開元律疏)라는 것이 정론이다.
현재 전해지는 《당률소의》의 판본은 송간본(宋刊本), 또는 송간본은 아닐지라도 태정본(泰正本)보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潘祖蔭(1830-1890) 소장 방희제장(滂喜齊藏)(潘祖蔭의 書室을 따라 지은 명칭)의 《고당률소의》를 저본으로 하는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 원(元)나라 진종(晉宗) 태정(泰定) 4년(1327)본 계통이라고 생각되는 일본의 문화(文化) 2년(1805)에 판각된 관판본(官版本)과, 그것을 영인한 상해상무인서관(上海商務印書館)의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 및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원말 순제(順帝) 지정(至正) 11년(1351)본 계통이라고 생각되는 대남각총서본(垈南閣叢書本)과 광서(光緖) 17년(1891)에 간행된 중간본(重刊本) 및 심가본(沈家本)이 광서 16년(1890)에 정정(訂正)을 가한 간본이 있다. 이 외에도 상당수의 잔권과 다수의 필사본이 있으며, 20세기 초 이래 돈황과 토로번(吐魯番)에서 발견된 《율소》 잔권과 《율문(律文)》 잔권도 있다. 이상의 판본들이 판각 혹은 전사(轉寫)되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적지 않고, 또 판각 당시의 피휘(避諱)로 고친 글자가 적지 않다. 1983년 방희제장본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판본과 돈황에서 발견된 잔권 및 〈율음의(律音義)〉 석문(釋文)을 비교한 유준문(劉俊文)의 점교본(點校本) 《당률소의》가 간행되었고, 다시 수정을 가하여 재판하였다. 간혹 오탈자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가장 믿을 만한 교정본이라 할 수 있다. 《당률소의》는 맨 앞에 장손무기가 고종에게 바친 〈진률소표(進律疏表)〉와 그 석문, 그리고 〈명례소서(名例疏序)〉와 그 석문이 있다. 각 편의 서두에 그 편명의 변천에 대해서 설명을 더하고, 이어서 당률의 원문이라고 할 수 있는 12편 502개조의 율문이 편(篇)과 조항별로 배열되어 있으며, 또 각 조항은 여러 개의 사안별로 나누어서 따로 기재하고, 나뉜 사안별로 소의문을 첨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 율문에는 종종 소자(小字)로 된 주(注)가 부기(附記)되어 있는데, 부기된 소자와는 별도로 율주문(律注文)을 기재하고 그것에도 각각 소의문을 첨가하였다. 따라서 주도 율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은 조문의 개수이다. 여러 사서에는 모두 500조라고 되어 있고, 현존하는 《당률소의》의 총목록에도 500조로 되어 있으며, 그 내역은 명례(名例) 57조, 위금(衛禁) 33조, 직제(職制) 58조, 호혼(戶婚) 46조, 구고(廐庫) 28조, 천흥(擅興) 24조, 적도(賊盜) 54조, 투송(鬪訟) 59조, 사위(詐僞) 27조, 잡율(雜律) 62조, 포망(捕亡) 18조, 단옥(斷獄) 34조이다. 그러나 각 권별 조문의 개수를 세어보면, 직제가 59조로서 1조 많고, 또 투송이 60조로서 1조가 많아 전체는 502조가 된다. 그것은 고광기(顧廣圻)가 왕원량(王元亮)의 《당률석문(唐律釋文)》 발문(跋文)에서 “마땅히 스스로 1조가 되어야 할 것이 다른 조에 붙어 있거나, 1조에 속해야 할 것이 수조(數條)로 나뉘어 있다”라고 한 것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 조문의 개수는 502조이다.

4. 내용

《당률소의》는 12편 30권 502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명례율(名例律)〉은 현대 법전의 총칙에 해당한다. 명례의 주요 내용은 오형(五刑), 용서될 수 없는 10가지 극악한 죄 십악(十惡), 황태후 이하 9품 관인에 이르기까지 형벌상의 특전을 규정한 팔의(八議) 및 청(請), 감(減), 속(贖), 관당(官當), 면관(免官), 질환이 있는 자에 대한 특별처분 등 외국인의 범죄에 대한 법적용에 대한 규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제2편 〈위금률(衛禁律)〉은 궁실을 경비하고 관문, 나루터, 요새를 보위하는 방면에 관한 법률이다. 제3편 〈직제율(職制律)〉은 관리의 배치와 직무 및 역전(驛傳) 방면에 관한 법률이다. 제4편 〈호혼율(戶婚律)〉은 호적, 토지, 부세 및 가정의 혼인에 관한 법률이다. 제5편 〈구고율(廐庫律)〉은 국유의 목축과 창고 관리 방면에 관한 법률로서 가축의 사육 관리와 무기, 갑옷, 재물, 비단을 창고에 저장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제6편 〈천흥률(擅興律)〉은 군대를 함부로 일으키거나 양성하는 것을 금하고, 불법으로 건설하거나 민정(民丁)을 함부로 징발하는 것을 금하는 등 공정(工程)에 관한 것이다. 제7편 〈적도율(賊盜律)〉은 반역(叛逆), 살인, 재물의 횡령에 대한 것으로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 관한 규정이다. 제8편 〈투송률(鬪訟律)〉은 구타와 소송에 관한 법률이다. 제9편 〈사위율(詐僞律)〉은 사기와 위조방면에 관한 법률이다. 제10편 〈잡률(雜律)〉은 매우 광범위하여 대체로 다른 10편에 속하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관사물(官私物)에 방화(放火)한 것과 같은 공공안녕질서를 위해하는 것, 사주전(私鑄錢)이나 간음과 같은 사회질서를 해치는 것, 의료사고 등에 관한 것, 그리고 기타 율문에는 없지만 영(令)을 위반했거나, 관인이 판단하여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불응득위(不應得爲)’를 판결·처벌하는 조항도 있다. 제11편 〈포망률(捕亡律)〉은 범죄자를 추적하고 체포하는 것과 도망한 병사를 체포하는 것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제12편 〈단옥률(斷獄律)〉은 심문(訊問)에 관한 규칙, 증거에 관한 규칙, 심판의 순서에 관한 규칙, 법관의 책임, 형벌의 집행에 관한 규칙, 감옥의 관리에 관한 규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당률소의》에는 율소‧주소와 더불어, 그 각각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안의 죄명과 형량에 대한 의문으로서의 문(問)과 그에 대한 명확한 해석으로서의 답(答)이 다수 부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소의만으로는 해석이 명확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첨가했을 것이다. 즉, 문답은 각자가 율문의 소의에서 의문이 생길 부분에 대하여 문답의 방식을 채용하여 해당 조문에 한층 더 구체적인 설명을 가한 것으로서, 소의를 부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소의의 제정은 당조가 적합한 법률의 시행을 통하여 법제질서의 확립을 꾀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를 통하여 법리학의 일대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당률소의》는 이후 역대 왕조의 입법과 법률의 해석을 위한 많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게 되었다. 현종(玄宗) 대에는 개원(開元) 원년(713)부터 개원 25년(737)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 율령을 수정하여 율 12권, 소의 30권, 영 30권, 격 10권, 식 20권을 정비하였다. 물론 이러한 법전들이 내용에 있어서는 태종 때의 정관율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간 여러 사정으로 달라진 용어를 바로잡고 또한 분산된 율·령·격·식의 조문을 분류, 편찬하여 《격식율령사류(格式律令事類)》 40권을 완성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이 같은 부류끼리 서로 모으는 방식은 사법관원이 이용하는 데에 편리를 도모한 것으로, 법전의 체제상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완비된 형법전인 《당률소의》는 당나라 이전까지의 중국 법 이론을 집대성한 것임과 동시에 이후 역대 법전의 표본이 되었다. 오대(五代) 후량(後梁) 태조(太祖) 때의 《율소(律疏)》 30권은 《당률소의》를 모방한 것이며, 북송(北宋) 태조(太祖) 건륭(建隆) 3년(962) 반포된 《송형통(宋刑統)》 30권은 《당률소의》에 당 개원 이후의 칙문 등을 더하여 편찬한 것이다. 명의 《대명률(大明律)》과 청의 《대청률(大淸律)》도 모두 이에 기반한 것이었다. 또한 《당률소의》는 한반도와 일본 및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의 법체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 반포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일본의 대보령(大寶令)과 양노령(養老令), 그리고 베트남의 여조율(黎朝律)에 유사한 형식으로 남아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명(名)이란 오형(五刑)에 해당하는 모든 죄의 명이요, 예(例)란 오형을 적용하는 본체의 예(例)이다. 명(名)의 훈(訓)은 명(命)이고 예(例)의 훈은 비(比)이니, 여러 편의 죄의 형명(刑名)을 정하고, 여러 편의 법례를 대비(對比)한 것이다. 다만 형명은 죄에 따라 성립되고, 사건은 죄를 범함으로써 말미암아 발생한다. 명(名)을 정함은 곧 형(刑)에 대응케 하는 것이요, 예(例)에 대비함은 곧 사건의 본보기를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례를 편(篇)의 처음으로 삼았다.[名者, 五刑之罪名, 例者五刑之體例. 名訓爲命, 例訓爲比, 命諸篇之刑名, 比諸篇之法例. 但名因罪立, 事由犯生. 命名卽刑應, 比例卽事表. 故以名例爲首篇.]” 〈명례(名例)〉
• “덕(德)과 예(禮)는 정치와 교화의 근본이요, 형(刑)과 벌(罰)은 정치와 교화의 수단이니, 황혼과 새벽, 봄과 가을이 서로 번갈아 와야만 〈일 년을〉 이루는 것과 같다.[德禮爲政敎之根本 刑罰爲政敎之用 猶昏曉陽秋相須而成者也]” 〈명례(名例)〉
• “‘위(衛)’라는 것은 경계하고 호위하는 법을 말하는 것이고, ‘금(禁)’이라는 것은 관금(關禁)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다만 황제를 공경하고 위법한 것을 방지하는 것은 일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차례를 명례(名例)의 다음으로 하여 모든 편의 첫머리에 두었다.[衛者 言警衛之法 禁者 以關禁爲名 但敬上防非 於事尤重 故次名例之下 居諸篇之首]” 〈위금(衛禁)〉
(2) 색인어:당률소의(唐律疏議), 당률(唐律), 장손무기(長孫無忌), 주소(注疏), 율소(律疏), 무덕율(武德律), 정관율(貞觀律), 영휘율(永徽律), 개원율(開元律)
(3) 참고문헌
• 唐明律合編(薛允升, 法律出版社)
• 九朝律考(程樹德, 中華書局)
• 中國法律思想史(楊鴻烈, 臺灣商務印書館)
• 中國禮制史(陳戌國, 湖南教育出版社)
• 譯註 唐律疏議(김택민, 임대희 역, 한국법제연구원)
• 唐令拾遺(仁井田陞, 東京大學出版會)
• 唐令拾遺補(池田溫, 東京大學出版會)
• 中國法制史(仁井田陞, 東京大學出版會)
• 譯註 日本律令(律令硏究會 編, 東京堂)
• 日唐律令比較硏究の新段階(大津透, 山川出版社)
【김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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