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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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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경당집(帶經堂集)≫은 왕사정(王士禎)의 필기류(筆記類) 등의 저작을 제외한 일생의 시문(詩文)을 7편 92권으로 엮은 방대한 분량의 문집이다. 대경(帶經)은 ≪한서(漢書)•예관전(倪寬傳)≫에서 예관이 “품팔이를 할 때에 늘 경서를 몸에 지니고 밭일을 하다가 휴식할 때면 독송을 했다.(時行賃作, 帶經而鋤, 休息輒讀誦經.)”고 한 데에서 취한 글자이다. ≪대경당집(帶經堂集)≫ 또한 왕사정이 일생동안 관직에 봉사하고 황명을 받들어 천하 각지를 유람하면서 틈틈이 지었던 작품들을 제자 정철(程哲) 등이 모아 엮은 것이다. → 기존에 작성되었던 글은 ‘4.내용’ 부분에 해당하여 이동시켰습니다. ‘1.개요’에서는 개략적인 내용만 정리하여 5~10줄로 요약해주시기 바랍니다.

2. 저자

(1) 성명:왕사정(王士禎)(1634~1711)
(2) 자(字)‧호(號):자는 자진(子眞) 또는 이상(貽上)이고, 호는 완정(阮亭) 또는 어양산인(漁洋山人)
(3) 출생지역 : 산동성(山東省) 치박시(淄博市) 환대현(桓臺縣) → 임치현? 신성현? 현재의 지명으로도 괄호 안에 병기해 주세요. (현재의 지명으로 바꿨습니다. 임치→치박, 신성→환대)
(4) 주요활동과 생애
왕사정(王士禎)의 초명(初名)은 ‘사진(士禛)’이었으나, 사후 10년째 옹정제(雍正帝)의 휘(諱) 윤진(允禛)을 피휘하여 ‘사정(士正)’으로 고쳤다가, 건륭제(乾隆帝) 때 ‘진(禛)’자와 ‘정(正)’자의 발음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다시 ‘진(禛)’자와 발음이 비슷한 ‘정(禎)’자로 고쳤다.
명대(明代)에 왕사정의 집안은 명망 있는 한족(漢族) 가문이었으나, 명청 교체기를 거치면서 가문 전체가 큰 화를 당하였다. 그러나 왕사정은 순치제(順治帝)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양주부추관(揚州府推官)의 벼슬로부터 시작하여, 강희제(康熙帝) 때 중앙의 요직을 거쳐 형부상서(刑部尙書)의 지위에까지 오른 환달(宦達)의 문인이었다.
왕사정은 23세에 제남(濟南) 대명호(大明湖)에서 열린 소위 추류시사(秋柳詩社)에서 뛰어난 시재(詩才)를 뽐내면서 시명(詩名)을 떨친 이래 주이준(朱彝尊)과는 남주북왕(南朱北王)으로 병칭되었고, 전겸익(錢謙益)의 뒤를 이어 시단의 맹주 지위에 올랐다. 왕사정은 이론 분야에서도 사공도(司空圖)의 자연(自然)과 함축(含蓄), 엄우(嚴羽)의 묘오(妙悟)와 흥취(興趣) 등을 집대성한 신운설(神韻說)을 표방하며 청원(淸遠)한 풍취(風趣)와 담박(淡泊)한 정취(情趣)를 내세워 청초 시단에 청신(淸新)한 바람을 불러 일으켜 시단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청초 시단에서 그의 문하가 아닌 사람이 없었고, 그의 사후 그가 주장한 신운설(神韻說)의 논리적 모순이 제기되었으면서도 그의 영향은 무려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왕사정은 시 뿐만 아니라 사(詞)에서도 큰 성취를 이루었고, 서화(書畵)에도 능하여 당대 서화가들과의 교유했던 최고의 명사였다. 왕사정은 또한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작가 포송령(蒲松齡)과 ≪도화선(桃花扇)≫을 쓴 공상임(孔尙任)과도 두터운 교분을 나눈 문인이었다. 또한 장기간 예부(禮部)에서 일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조선(朝鮮)의 사신들과 교분을 쌓았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왕사정은 청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알려졌고, 그의 시풍과 시론은 조선 후기 시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3. 서지사항

≪대경당집≫은 강희간본(康熙刊本)이 있는데, 바로 강희(康熙) 51년(1712)에 왕사정의 문하 정철(程哲)이 펴낸 정씨칠략서당교간본(程氏七略書堂校刊本)이다. 이 판본은 현재 ≪속수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 1414책(집부(集部) 별집류(別集類))으로 전한다. 또한 건륭(乾隆) 12년(1747)에 다시 판각한 건륭중간본(乾隆重刊本)이 전하고 있다.
1921년 상해(上海)의 홍보재국(鴻寶齋局)에서 24책(冊)으로 출판한 판본과, 같은 해 상해의 금문당(錦文堂)에서 편찬한 4책(冊)으로 된 판본이 있다.
2007년 6월 왕사정의 고향인 산동을 대표하는 출판사인 제노서사(齊魯書社)에서 ≪왕사진전집(王士禛全集)≫이 출판되었는데, 모두 6책(冊)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게 시문집(詩文集), 잡저(雜著),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시문집 부분이 대부분 ≪대경당집≫에 해당한다.

4. 내용

≪대경당집≫은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은 ≪어양시집(漁洋詩集)≫ 22권으로, 순치(順治) 13년(1656)으로부터 강희 8년(1669)까지 지었던 시를 모았고, 제2편은 ≪어양속시집(漁洋續詩集)≫ 16권으로, 강희 10년(1671)부터 강희 22년(1683)까지의 시를 모아 편찬한 것이다. 제3편은 ≪어양문집(漁洋文集)≫ 14권으로, 서발(序跋)‧기(記)‧전(傳)‧묘지명(墓誌銘)‧행장(行狀) 등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제4편은 ≪잠미시(蠶尾詩)≫ 2권으로, 강희 23년(1684)부터 강희 24년(1685)까지 지은 작품을 수록하였다. 강희 23년 11월에 한림원시강학사(翰林院侍講學士)였던 왕사정은 황명을 받들어 제고(祭告)를 행하기 위해 남해현(南海縣)(現 광동성(廣東省) 불산시(佛山市) 일대)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산동성의 동평(東平)에 있는 동평호(東平湖)의 호반을 지나가고 있던 중 큰 눈이 와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왕사정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호수를 바라보다가 멀리 보이는 잠미산의 절경에 매료되었다. 왕사정은 풍설과 추위로 고생하면서 남해까지 가는 긴 여정 가운데 자주 꿈속에서 잠미산의 절경을 만나게 된다. 이에 남해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은 시를 엮거 ≪잠미시≫라 명명하였다. 제5편은 ≪잠미시속집(蠶尾續詩集)≫ 10권으로, 왕사정이 남해에서 지은 시를 엮은 ≪남해집(南海集)≫과 강희 35년(1696)에서 다시 섬서(陝西)와 사천(四川) 등에 제고를 다녀오면서 지은 시를 엮은 ≪옹익집(雍益集)≫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6편은 ≪잠미문집(蠶尾文集)≫ 8권, 제7편은 ≪잠미속문집(蠶尾續文集)≫ 20권이다.
≪연보(年譜)≫에 근거하면, 강희 34년(1695)에 ≪잠미집(蠶尾集)≫ 10권과 ≪어양문략(漁洋文略)≫ 14권을 편찬하였는데, 전자는 ≪대경당집≫의 제4편 ≪잠미시≫와 제6편 ≪잠미문집≫이고, 후자는 제3편 ≪어양문집≫에 해당한다. 강희 43년(1704), 왕사정은 왕오(王五)‧오겸(吳謙) 사건으로 인하여 파직당한 후 낙향하였다. 강희 44년(1705)부터 그가 죽은 강희 50년(1711)까지 왕사정은 노환에 시달렸는데, 당시 그의 제자 정철(程哲) 등이 주도하여 왕사정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시문저작을 모으고, 강희 34년에 편찬한 저작을 합하여 하나의 문집으로 모두 엮고 ≪대경당집≫이라 이름 붙였다. 따라서 ≪대경당집≫은 그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헌정(獻呈)한 문집인 셈이다.
≪대경당집≫에 수록된 왕사정 시문의 내용은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서 왕사정의 시는 대체로 등림지작(登臨之作)과 시우(詩友)들과의 교유를 담은 작품이 다수를 이룬다. 특히 만주족 치하에서 한족 지식인으로서의 비애와 감개를 담은 작품들은 명작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 왕사정의 문장은 그의 생애와 당시 시대적 환경 및 그와 교유했던 문인들의 생애와 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대경당집≫은 왕사정의 시문(詩文) 창작을 총망라해놓은 거작이다. 그리고 왕사정의 대표 시화(詩話)인 ≪어양시화(漁洋詩話)≫와 필기(筆記) 저작류인 ≪지북우담(池北偶談)≫‧≪향조필기(香祖筆記)≫‧≪고부우정잡록(古夫于亭雜錄)≫ 등은 모두 ≪대경당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적지 않은 문장이 ≪대경당집≫에 수록된 문장에 스며들어 있다.
왕사정의 저작에는 시문서화(詩文書畵)의 문예창작이 망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문(文)‧사(史)‧철(哲)의 분야가 모두 집대성되어 있어서 청초(淸初)의 지식인 집단의 사상과 철학 및 문예관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청대 3대 장서가(藏書家) 중의 한 사람이었던 왕사정의 저작에는 조선을 비롯한 일본, 러시아, 베트남, 대만,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 등 여러 국가들의 문화와 사회현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중국과 주변국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긴 것은 2개, 짧은 것은 3개 이상
• “가을 들어 가장 애닮게 하는 곳은 어드맨가? 해거름 속에 가을바람 부는 금릉의 백하문이리라. [秋來何處最銷魂, 殘照西風白下門.]” ≪대경당집•어양시집•권3≫ 〈가을 버들개지(秋柳) 제1수〉
• “오(吳)에서 시작해서 초(楚)까지 가는 길이 어떠한고 하니, 부슬비 내려 가을은 깊고, 흰 파도는 어스름하다. [吳頭楚尾路如何, 煙雨秋深暗白波.]” ≪대경당집•어양시집•권7≫ 〈강 위에서(江上) 제2수〉
• “오나라 초나라의 푸르른 땅은 저 끝 포구에서 나뉘고, 낮게 드리운 강산은 저 멀리서 새 가을을 맞아들이네. [吴楚青苍分极浦, 江山平遠入新秋.]” ≪대경당집•어양시집•권8≫ 〈새벽비가 내리는 중에 다시 연자기 꼭대기에 올라(曉雨復登燕子磯絶頂.)〉
• “대장부가 당연히 신선이 타는 황곡을 타고 올라야지, 아래로는 연작이 모여 재잘거리는 것을 내려다 본다.[丈夫當爲黃鵠擧, 下視燕雀徒啁啾.]” ≪대경당집•잠미속시집•권3≫ 〈채석기의 이백루에서 소척목(소운종(蕭雲從))의 벽화를 바라보며 노래하다(采石太白樓觀蕭萧尺木畵壁歌)〉
• “높은 노래 한 자락에 술 한 통, 한 사람이 가을 강 위에서 홀로 낚싯대 드리웠네. [一曲高歌一樽酒, 一人獨釣一江秋.]” ≪대경당집•어양속시집•권2≫ 〈추강독작도(秋江獨釣圖)를 제하다(题秋江獨釣圖)〉
(2) 색인어:帶經堂集, 王士禎, 神韻, 王漁洋, 秋柳
(3) 참고문헌
• 《帶經堂集》 (續修四庫全書, 1414冊)
• 《王士禛全集》 (王士禎著, 袁世碩主編, 濟南, 齊魯書社)
• 《中國文學批評史》 (郭紹虞, 台北, 文史哲出版社)
• 《王漁洋詩論之硏究》 (黃景進, 台北, 文史哲出版社)
• 《王漁洋事蹟徵略》 (蔣寅,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 《王漁洋詩友錄》 (伊丕聰, 北京, 北京燕山出版社)
• 《王士禛與淸初詩歌思想》 (黃河, 天津, 天津人民出版社)
• 《神韻詩學論稿》 (王小舒, 桂林 : 廣西師範大學出版社)
• 《王漁洋硏究論集》 (孔繁信, 濟南, 山東文藝出版社)

【이동훈】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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