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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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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염락풍아(濂洛風雅)》는 송말원초의 성리학자인 김이상(金履祥)이 송대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頥), 소옹(邵雍), 주희(朱熹) 등 48인의 작품 450여 수를 한데 모아 편찬한 시문집이다. 《염락풍아》의 성격은 명칭에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염락’이란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줄임말로 이른바 송조육현(宋朝六賢)이라 불리는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 등이 살았던 지역을 가리키고, ‘풍아’란 《시경》의 국풍과 소아, 대아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염락풍아》란 송조6현을 중심으로, 《시경》의 ‘풍아’를 모범으로 하는 송대의 시를 모아놓은 작품집이라 정의할 수 있다.

2. 저자

(1) 성명:김이상(金履祥(1232~1303))
(2) 자(字)·별호(別號):자는 길보(吉父), 호(號)는 인산(仁山) 혹은 차농(次農), 자호는 동양숙자(桐陽叔子), 시호는 문안(文安). 세칭 인산선생(仁山先生).
(3) 출생 지역:무주(婺州) 난계(蘭溪(현 절강성(浙江省) 난계시(蘭溪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16세 때 보군박사제자원(輔君博士弟子員)이 되어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대보태학생(待補太學生)이었던 18세 때, 왕상(王相)(왕백(王柏)의 족제(族弟))의 추천으로 왕백의 제자가 되었고, 다시 왕백의 소개로 하기(何基)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로는 공명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금화(金華)에서 ‘의리지학(義理之學)’을 추구했으며, 송 왕조가 멸망하자 그곳에 은거하며 강학과 저술에만 힘썼다.금화 지역은 남송 이래 여조겸(呂祖謙(1137~1181))을 비롯한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함으로써 당시에 ‘소추로(小鄒魯)’라고 불리었고, 금화의 여택서원(麗澤書院)은 남송의 유명한 학부 중의 하나로 주희도 이곳에서 강학하여 이학(理學)을 전파한 적이 있었다. 금화 지방은 하기가 강서 임천에서 주희의 고제인 황간(黃榦)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돌아와 학문을 강마하면서부터 유명한 곳이 되었으며, 왕백‧김이상‧허겸(許謙)‧유관(柳貫)이 그의 뒤를 이었다. 김이상의 학문적 연원은 ‘주희-황간-하기-왕백-김이상’으로 이어지는 도통에 두고 있다.
김이상은 주자학 외에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여, “무릇 천문(天文)‧지형(地形)‧예악(禮樂)‧전승(田乘)‧병모(兵謀)‧음양(陰陽)‧율력(律曆)의 글을 연구하지 않음이 없었다.[凡天文地形禮樂田乘兵謀陰陽律曆之書 靡不畢究]”(《송원학안(宋元學案)》 권(卷)82)라고 칭송하였다. 또한 뛰어난 인품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당시의 논자들은 북산(하기)의 청개 순실함이 화정(尹焞)과 닮았다면, 노재(王柏)의 고명 강정함은 상채(謝良佐)와 닮았는데, (인산은) 이 두 사람을 겸하여 얻어 한 몸에 충만한 자.[當時義者謂 北山之淸介純實似和靖 魯齋之高明剛正似上蔡 先生則兼得之二氏 而並充於一己者也]”(《송원학안(宋元學案)》 권(卷)82)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다. 김이상은 하기, 왕백, 허겸과 더불어 ‘금화사선생(金華四先生)’ 혹은 ‘북산사선생(北山四先生)’으로 일컬어진다.
(5) 주요저작
《자치통감전편거요(資治通鑑前編擧要)》, 《대학장구소의(大學章句疏義)》, 《논어집주고증(論語集注考證)》, 《맹자집주고증(孟子集注考證)》, 《상서표주(尙書表注)》, 《인산집(仁山集)》 등이 전한다. 그러나 김이상의 가장 큰 업적은 그의 나이 65세 때인 1296년에 이루어진 《염락풍아(濂洛風雅)》의 간행이다.

3. 서지사항

김이상의 《염락풍아》는 현재 청초본(淸抄本), 솔조당총서본(率祖堂叢書本), 총서집성초편본(叢書集成初編本), 금화총서본(金華叢書本) 등이 있다. 당량서(唐良瑞)가 〈염락풍아원서(濂洛風雅原序)〉에서 “다만 스승과 제자의 연원으로써 통기로 삼을 뿐, 그 유례를 나누지 않았다.[但以師友淵源爲統紀 而未分類例]”라고 밝히듯 분류 체계가 분명하지 않다.
금화총서본 《염락풍아》는 총6권으로 되어 있는데, 서두에 호봉단(胡鳳丹)의 〈서(序)〉와 대기(戴錡), 왕숭병(王崇炳), 당량서의 〈원서(原序)〉에 이어 〈염락풍아세계(濂洛風雅世系)〉와 〈염락풍아성씨목차(濂洛風雅姓氏目次)〉를 싣고 있다. 〈염락풍아세계〉에는 〈염락시파도(濂洛詩派圖)〉라 하여, 사승 관계를 중심으로 주렴계(周濂溪), 소요부(邵堯夫), 장횡거(張橫渠),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진서산(眞西山), 이과주(李果州) 등 47인의 이름이, 〈염락풍아성씨목차〉에는 주돈이와 정호, 장이 등 48인의 이름이 간략한 인적 사항과 함께 등장한다. 권1과 권2에는 ‘명(銘), 잠(箴), 계(誡), 찬(贊)’ 등의 시제가 붙은 심성 수양과 관련된 고체 작품을, 권3에는 5언고풍, 권4에는 7언고풍과 5언절구, 5언율시, 권5에는 7언고풍, 권6에는 7언율시의 작품을 각각 싣고 있다.
《염락풍아》에는 총 48인의 작품 45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작품 수가 가장 많은 주희를 비롯한 장횡거, 장남헌, 왕노재, 하북산, 소강절 등 6인의 작품이 절반을 넘으며, 장횡거, 장남헌, 소강절 3인의 작품만도 100여 수에 이른다. 형식적 특징으로 근체시보다는 고체시를, 5언보다는 7언을 중시한다. 특히 고체시를 근체시보다 앞에 배열한 것은, 근체시가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쳐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시가 가지는 본연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성리학자의 인식과 송시의 성리적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4. 내용

《염락풍아》라는 책을 편찬한 이후, 이들의 시와 같은 특징과 경향을 지닌 일련의 시들을 ‘염락풍, 염락풍의 시, 염락체, 염락시’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염락풍의 시는 성리적 경향을 띤 송시로서, 《시경》의 ‘풍아’를 모범으로 하여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인간의 올바른 성정을 표현하고, 인격의 수양 과정과 유교적 가치관을 추구하며, 천리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을 노래한다.
염락풍 시는 심성과 인격의 수양을 중시하는 유학자들의 시로, 순수한 정감을 읊은 문예시와는 엄격히 구별된다. 고도의 논리 체계를 갖춘 사변 철학인 성리학적 사유를 담은 시로, 우주 자연과 천지 만물의 생성과 존재 원리를 궁구하며 인간 존재의 당위적인 규범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당량서는, 염락풍 시의 풍격을 충담(沖淡)과 자연(自然)으로 규정한 바 있다.

5. 가치와 영향

김이상의 《염락풍아》는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는 청대에 장백행(張伯行)이 송대와 명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 17인의 시 900여 수를 수록한 《염락풍아》 9권을 편찬한 사실로도 확인된다.
《염락풍아》는 조선에 전해져, 성리학자들의 필수 교양서로 널리 읽혔다. 《염락풍아》는 1565년(명종(明宗) 20) 순천부(順天府)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이후, 오랫동안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출판되었다. 특히 1678(숙종(肅宗) 4)년에,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6))는 김이상의 《염락풍아》를 저본으로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증산을 시도하여 《증산염락풍아(增刪濂洛風雅)》 7권 2책을 간행했다. 이는 편집자 개인의 특정 인물과 작품에 대한 포폄을 넘어, 시대상이나 문학관 등을 함축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박세채의 《증보염락풍아》는 작자 20인의 작품 140여 수를 증보(增補)하고, 44인의 작품 170여 수를 산제(刪除)한, 《염락풍아》와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책이다. 박세채는 성리(性理)‧의론(議論)‧이취(理趣)를 증산의 표준으로 삼아,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와 심성 수양을 강조한 작품을 주로 증보하고, 서정‧영물‧유희‧은일‧석로(釋老) 등과 관련된 작품을 근체시 중심으로 산제했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성리학자로서, 이들 작품들은 이(理)가 바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바람 불면 되려 제냥 가리워지고, 일 없으면 대낮에도 항상 닫힌 채, 열고 닫힘 형편 따라 하는 터이니, 건곤 이치 이런 속에 있는 것일세![有風還自掩 無事晝常關 開闔從方便 乾坤在此間]” 주렴계(周濂溪), 〈문비(門扉)〉해설) 문은 스스로 열리거나 닫히는 법이 없다. 평소에는 열려 있다가도 바람이 불면 저절로 닫힌다. 찾는 이 없는 밤은 물론이고, 일이 없으면 대낮에도 닫혀 있다. 필요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다. 그저 주위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를 뿐이다. 천지의 이치란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사립문이라는 평범한 물체 하나를 관조적 자세로 사유하며, 인간사적 의미를 넘어 우주 자연의 위대한 섭리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결구의 ‘(乾坤)’이란 말은 물리적 개념인 ‘천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바로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불과 20자의 글자 속에 높은 인품을 견지하며 명리를 초월했던 작자의 삶이 거울에 비치듯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김이상이 《염락풍아》의 처음에 이 작품을 수록한 것은 주렴계가 남송 성리학의 개조일 뿐만 아니라, 염락풍 시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여긴 까닭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용(用)’으로서의 순리를 일상적 사상(事象)으로 집약하여 제시한 것이다.
• “둥근 달은 하늘 중심 떠와서 있고, 고운 바람 수면 위에 부는 때건만, 그냥인 채 맑고 환한 온갖 의미를, 헤아려서 아는 사람 거의 없구나![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 소강절(邵康節), 〈청야음(淸夜吟)〉해설) 여기에서의 달과 바람은 중요한 시의 소재로 등장한다. 달은 한밤중에 하늘의 한가운데 완전한 상태로 떠 있는, 맑고 밝은 빛의 보름달이다. 동적인 달이 아닌, 정적인 심상의 달이다. 한밤중이라는 시간에, 하늘의 한가운데라는 공간에 완전한 보름달의 상태로 떠서 온 천하를 환하게 비추는 존재다. 보름달은 바로 하늘을 닮은 성인이나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현인이나 군자의 마음을 상징한다.수면 위에 부는 바람 또한 거세게 부는 폭풍이 아닌, 수면의 물결을 가볍게 일으키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다. 바로 수양된 선비의 절도 있는 모습이다. 수면 역시 거센 강물의 수면도 격랑이 치는 바다의 수면도 아닌, 지극히 맑고 아름다운 못의 수면이다. 승구의 ‘바람은 수면 위에 부는 때’는 일체의 감정적 갈등이 없는 고도의 정신적 만족이 있는 상태를 비유한다. 이렇게 수양된 심성과 인격으로의 상호 교류는 무한한 정신적 열락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사물의 형태로 인간 심성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파악하여, 고도의 논리 철학으로 전개한 기막힌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천도에 순응한 인심의 체용적(體用的), 시공적, 동정적인 절대의 조화상을 총합하여 형상화한 걸작이다.
(2) 색인어:사변 철학, 성리학적 우주관, 심성 수양, 논리 체계(3) 참고문헌
• 《주자대전차의집보(전4책)》(이항로·이준 엮음,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대구한의대학교 국제문화연구소)
• 《주자대전(전13책)》(주자대전번역 연구단 옮김,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대구한의대학교 국제문화연구소)
• 《중편 宋元學案(전2책)》(민족문화, 1983)
• 《주자의 철학》(陳來 지음, 이종란 외 옮김, 예문서원, 2208)
• 〈金履祥《濂洛風雅》研究〉(湯倍禎, 國立政治大學 碩士學位論文, 1994)
• 〈金履祥《濂洛風雅》研究〉(郝維乾, 遼寧師範大學, 2013)
• 〈北山學派文道合一發展脈絡之硏究〉(許玉敏, 國立成功大學 碩士學位論文, 2003)
• 〈濂洛風詩의 性格〉(송준호,《동방고전문학연구》제1집, 태학사, 1999)


【김동하】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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