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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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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唐)나라 장언원(張彥遠)이 동한(東漢) 시대에서 당나라 헌종(憲宗) 원화(元和) 연간(806~820)까지 존재했던 각 시기 서법(書法) 전문가의 서법 이론에 관한 중요한 저작(著作)들을 종합하여 총 10권으로 편찬한 책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서론(書論) 관련 전집(專集)으로 평가된다.

2. 저자

(1)성명:장언원(張彥遠)(815~879)
(2)자(字)·별호(別號):자는 애빈(愛賓)
(3)출생지역:중국 하동(河東)(현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4)주요활동과 생애
장언원은 고조부 장가정(張嘉貞)에서 증조부 장연상(張延賞)과 조부 장홍정(張弘靖)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3대가 재상에 오른 명문가에서 성장하여 박학(博學)하였고, 문사(文辭)를 갖추어 건부(乾符) 연간(874~879)에 대리시경(大理寺卿) 벼슬을 지냈다. (《신당서(新唐書)》 〈장원배(張源裴)〉)
장언원의 집안은 당시에 황실 및 다른 귀족들의 경우처럼 남조(南朝)시대 풍조의 영향으로 서화(書畫) 감상과 수장(收藏)을 즐겼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장언원은 자연스럽게 회화와 서법에 대한 흥취와 소양이 깊어지게 되었다. 서법에 있어서는 해서(楷書)와 예서(隷書)에 모두 능하였고, 집에 소장된 법서(法書)와 명화(名畫)를 익숙히 보아 서화 감상에 정밀한 안목을 갖출 수 있었다. 《법서요록(法書要錄)》을 저술하였고, 또한 회화 관련 전대의 저작을 수집하여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를 남겼다. 《법서요록》에 붙인 자서에서 “호사가들이 이 두 서적을 얻으면 서화의 일을 끝낼 수 있다.”라고 자평하였다.
(5)주요저작:《법서요록(法書要錄)》,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

3. 서지사항

장언원은 〈자서(自序)〉에서, 자신의 집안에 많은 법서(法書)와 명화(名畫)가 전해져 서화 예술품을 수장하고 감상하는 식견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서법을 논한 옛 저술을 모아 10권의 《법서요록》을 엮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장언원의 고조부 하동공(河東公) 장가정(張嘉貞)이 진귀한 서화를 구하여 수장하였고 조부 고평공(高平公) 장홍정(張弘靖)도 널리 도서를 구입하여 옛 명적(名蹟)을 집안에 남겼는데 그 규모가 비부(秘府)에 견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다만 원화 13년(818)에 헌종(憲宗)이 여러 차례 진적(珍籍)을 찾아서 부득이 진헌하였고, 장경(長慶) 연간(821~824) 초에도 빈주(豳州)에서 일부가 산실되어 수장하던 서화가 열에 한두 개도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언원은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적부터 서화를 수장하고 감상하는 식견을 쌓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서화의 법을 논한 옛 저술을 모아 10권의 《법서요록》과 10권의 《역대명화기》를 엮게 되었다. (〈법서요록자서(法書要錄自序)〉)
장언원은 정밀한 안목을 바탕으로 풍부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하여 이 《법서요록》을 엮었는데, 그 가운데 양흔(羊欣) 《채고래능서인명(采古來能書人名)》, 이사진(李嗣眞) 《후서품(後書品)》, 유견오(庾肩吾) 《서품(書品)》, 장회관(張懷罐) 《서단(書斷)》 등은 이후 그 원서가 실전되어 결국 《법서요록》에 의지하여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왕배(王倍)의 《문자지(文字志)》도 실전되었으나 《법서요록》에 목차가 실려 있어 그 대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권1의 〈왕희지교자경필론(王羲之教子敬筆論)〉과 권3의 〈채운서무정체론(蔡惲書無定體論))〉과 권4의 〈안사고주급취장(顔師古注急就章)〉, 〈장회관육체서(張懷瓘六體書)〉의 경우는 원서를 확인하지 못하여 목록에서 저술의 제목만 제시하고 그 내용은 수록하지 않았다. 단지 목록에 제시한 제목 아래에 ‘불록(不錄)’이라고 주석을 붙였을 뿐이다. 고증되지 않는 자료를 함부로 수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권10에 왕희지 서첩 465종과 왕헌지 서첩 17종의 석문(釋文)을 수록해두었는데, 유차장(劉次莊)이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의 석문(釋文)을 작성하면서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채집한 내용이 풍부하고 정밀하여 후대에 서법을 논하는 자들이 대개 이를 근거로 삼았다.(《사고전서간명목록(四庫全書簡明目錄)》 권12)
주요 판본 사항은 아래와 같다.
서명 / 권수판본비고
1法書要錄 / 2권明 嘉靖年間 刻本반엽 11행 20자, 小字雙行,
左右雙邊, 版心細黑口, 單黑魚尾
2法書要錄 / 10권明鈔本반엽 10행16자, 無界格有旁校
3法書要錄 / 10권(잔본 6권)明鈔本반엽 9행 20여 자,
藍格藍口, 四周雙邊
권4, 권6~권10
4法書要錄 / 10권王氏書苑本(金陵本)반엽 10행 20자, 小字雙行,
白口, 左右雙邊, 單魚尾
5法書要錄 / 10권津逮秘書本(汲古閣本)반엽 8행 9자, 小字雙行,
白口, 左右雙邊
6法書要錄 / 10권學津討原本 반엽 9행 21자, 小字雙行,
黑口, 左右雙邊

4. 내용

권1에는 〈후한조일비초서(後漢趙一非草書)〉, 〈진왕희지논서(晉王羲之論書)〉, 〈진위부인필진도(晉衛夫人筆陣圖)〉, 〈왕희지제필진도후(王羲之題筆陣圖後)〉, 〈송양흔채능서인명(宋羊欣采能書人名)〉, 〈제왕승건답태조서(齊王僧虔答太祖書)〉, 〈왕승건논서(王僧虔論書)〉, 〈송왕음문자지목(宋王愔文字志目)〉, 〈제소자운계(齊蕭子雲啓)〉 등 9종의 글을 수록하였고, 〈왕희지교자경필론(王羲之敎子敬筆論)[불록(不錄)]〉은 그 제목만 목록에 남기고 내용은 수록하지 않았다.
권2에는 〈양우화논서표(梁虞龢論書表)〉, 〈양무제논종서십이의(梁武帝論鍾書十二意)〉, 〈양무제여도은거논서계구수(梁武帝與陶隱居論書啓九首)〉, 〈양유원위논서(梁庾元威論書)〉, 〈양유견오서품론(梁庾肩吾書品論)〉, 〈양원앙고금서평(梁袁昻古今書評)〉, 〈진석지영제우군악의론후(陳釋智永題右軍樂毅論後)〉, 〈후위강식론서표(後魏江式論書表)〉 등 8종의 글을 수록하였다.
권3에는 〈당우세남서지술(唐虞世南書旨述)〉, 〈저수량우군서목(褚遂良右軍書目)〉, 〈이사진후서품(李嗣眞後書品)〉, 〈무평일서씨법서기(武平一徐氏法書記)〉, 〈서호논서(徐浩論書)〉, 〈서호고적기(徐浩古迹記)〉, 〈하연지난정기(何延之蘭亭記)〉, 〈저수량탑본악의론기(褚遂良榻本樂毅論記)〉, 〈최비벽서비백소자기(崔備壁書飛白蕭字記)〉, 〈이약벽서비백소자기(李約壁書飛白蕭字記)〉, 〈대부상국고평공소재기(大父相國高平公蕭齋記)〉 등 11종의 글을 수록하였고, 〈채운서무정체론(蔡惲書無定體論)[불록(不錄)]〉은 그 제목만 목록에 남기고 내용은 수록하지 않았다.
권4에는 〈장회관서화(張懷瓘書話)〉, 〈장회관이왕등서록(張懷瓘二王等書錄)〉, 〈장회관서의(張懷瓘書議)〉, 〈장회관문자론(張懷瓘文字論)〉, 〈당조서서록(唐朝敍書錄)〉, 〈위술서서록(韋述敍書錄)〉, 〈노원경법서록(盧元卿法書錄)〉 등 7종의 글을 수록하였고, 〈안사고주급취장(顔師古註急就章)[불록(不錄)]〉, 〈장회관육체서(張懷瓘六體書)[불록(不錄)]〉는 그 제목만 목록에 남기고 내용은 수록하지 않았다.
권5에는 〈두기술서부상(竇臮述書賦上)〉을 수록하였고, 권6에는 〈두기술서부하(竇臮述書賦下)〉를 수록하였고, 권7에는 〈장회관서단상(張懷瓘書斷上)〉을 수록하였고, 권8에는 〈장회관서단중(張懷瓘書斷中)〉을 수록하였고, 권9에는 〈장회관서단하(張懷瓘書斷下)〉를 수록하였고, 권10에는 〈우군서기(右軍書記)〉를 수록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법서요록》은 그 체례(體例)가 후대의 모범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역대의 명적을 수집하여 감별하고 보존함으로써 후세의 서법 연구자들이 소중한 자료를 잃지 않고 접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중국의 서법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실제로 《법서요록》은 한(漢)에서 당(唐)에 이르기까지 서법가 60여 명의 저작을 수록하였는데, 지금은 대부분 일실되어 전하지 않는 것들이다. 특히 유견오(庾肩吾), 장회관(張懐瓘), 두기(竇臮) 등의 저술은 원서가 실전되어 이 책에만 실려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두루 수집하여 엮은 공로를 결코 감출 수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법서요록》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에 의해 이 저술이 직접 언급된 사례는 19세기에 와서 확인된다. 언급된 횟수도 극히 적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동안 이 저술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조수삼(趙秀三)(1762~1849)의 〈석고가(石鼓歌)〉(《추재집 秋齋集》 권5)와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금해석묵편(金薤石墨編)〉(《임하필기(林下筆記)》 권4)에서 《법서요록》을 인용한 구절이 보인다.

6. 참고사항

(1)명언
• “덕을 이루면 윗자리로 가고 기예를 이루면 아랫자리로 간다는 말은 그 본보기가 멀리에 있지 않다.[德成而上 藝成而下 則殷鑒不遠]” 〈당서호논서(唐徐浩論書)〉
• “왕헌지가 왕희지에 미치지 못함은 왕희지가 종요에 미치지 못함과 같다. 왕헌지를 배우는 것은 호랑이를 그리는 것과 같고, 종요를 배우는 것은 용을 그리는 것과 같다.[子敬之不迨逸少 猶逸少之不迨元常 學子敬者如畫虎也 學元常者如畫龍也]” 〈양무제관종요서법십이의(梁武帝觀鍾繇書法十二意)〉
• “운필이 기울면 붓끝이 살아나지 못하고, 붓을 잡는 손이 느슨하면 글씨가 느리고 유약하다.[夫運筆邪則无芒角 執手寬則書緩弱]” 〈양무제우답서(梁武帝又答書)〉
(2)색인어:법서요록(法書要錄),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 장언원(張彦遠), 애빈(愛賓), 장가정(張嘉貞), 장홍정(張弘靖), 서법학논저(書法學論著), 당조서론(唐朝書論).
(3)참고문헌
• 〈《法書要錄》對《歷代名畫記》畫論的影響〉(韋賓, 《美術觀察》, 2005)
• 〈《法書要錄》研究〉(錢乃婧, 中國美術學院, 碩士學位論文, 2012)
• 〈《法書要錄》校讀劄記〉(陳碩, 《藝術工作》, 2016)
• 書畫書錄解題(余紹宋, 北京圖書館影印國立北平圖書館排印本,2003)
【신영주】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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