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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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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은 북송(北宋)의 정치가·문학가·사학가인 사마광(司馬光)의 시문집(詩文集)으로, 모두 8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부(賦) 1권과 시(詩) 14권을 제외하면 65권이 문장이다. 사마광의 문장 특징은 서술이 명확하면서도 자연스러우며 사용한 어구(語句) 또한 간결하면서도 세련되었다.

2. 저자

(1)성명:사마광(司馬光)(1019~1086)
(2)자(字)·별호(別號):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부(迂夫) 또는 우수(迂叟), 별호는 속수선생(涑水先生)
(3)출생지역:섬주(陝州) 하현(夏縣) 속수(涑水)(현 중국 산서성(山西省) 하현(夏縣))
(4)주요활동과 생애
사마광은 7세 때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강의를 듣고 그 대의를 깨우쳤을 만큼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먹고 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송(宋)나라 인종(仁宗) 보원(寶元) 원년(1038) 20세로 진사에 합격하여 봉예랑(奉禮郞)에 제수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인종(仁宗)·영종(英宗)·신종(神宗)·철종(哲宗) 대에 걸쳐 지간원(知諫院)·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한림학사(翰林學士)·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상서좌복야겸문하시랑(尙書左伏射兼門下侍郎) 등을 지냈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시행된 이후 사마광은 조정에서 물러나와 판서경유사어사대(判西京留司御史臺)라는 직책으로 낙양(洛陽)에 은거하면서 역사편찬에 전념하였다. 이보다 앞서 치평(治平) 3년(1066)에 영종(英宗)이 편수국(編修局)을 세우고 사마광에게 역사편찬에 필요한 도서와 비용 그리고 사람들을 지원해주면서 역대의 역사편찬을 명하였다. 이듬해 사마광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부터 진 이세(秦二世) 때까지의 역사를 8권으로 편찬하여 《통지(通志)》라는 제목으로 영종에게 올렸다. 영종은 읽고 감동하여 계속 이어서 짓게 하였고, 영종의 뒤를 이은 신종도 사마광과 정치적 견해는 달랐지만 역사편찬만은 적극 후원해주어 원풍(元豊) 7년(1084)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신종은 이 책을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하고 서문까지 직접 지어주었다. 원풍 8년(1085) 신종이 죽고 열 살 된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할머니인 고(高)태후가 수렴청정 하였다. 고태후 또한 신법을 줄곧 반대해온 사람이어서 신법의 반대자였던 사마광을 재상으로 삼았다. 사마광은 재상이 되자마자 신법당(新法黨)에 속한 사람을 쫒아내고 신법을 모두 폐지하였다. 원우(元祐) 원년(元年)(1086) 9월에 사마광이 병으로 죽자 태사(太師)·온국공(溫國公)을 추증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래서 그를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하고 문정공(文正公)이라고도 한다.
(5)주요저작:《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자치통감(資治通鑑)》, 《속수기문(涑水紀聞)》, 《계고록(稽古錄)》, 《잠허(潛虛)》, 《온공가범(溫公家範)》, 《사마온공시화(司馬溫公詩話)》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온국문정공문집(溫國文正公文集)》은 소흥(紹興) 3년(1133)에 처음 간행되었다. 《사부총간(四部叢刊)》본 《온국문정공문집》 80권은 소흥(紹興) 3년의 간행본을 영인한 것이다. 또 《사고전서(四庫全書)》본 《사마문정공전가집(司馬文正公傳家集)》 80권이 있는데, 일명 《전가집(傳家集)》이라고도 하고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이라고도 한다. 수록한 목차와 배열순서가 《사부총간》본 《온국문정공문집》과 차이가 있다. 청(淸) 동치(同治) 연간에 장백행(張伯行)이 간행한 《사마온공문집(司馬温公文集)》 14권도 있는데, 수록된 것은 모두 산문이다.

4. 내용

《사마문정공집》은 모두 8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부(賦) 1권, 시(詩) 14권을 제외하면, 표(表)·서계(書啓)·서(序)·기(記)·논(論)·장주(章奏)·제조(制詔)·의변(議辨)·책문(策問)·평의(評議)·사섬(史剡)·비지(碑志)·제문(祭文) 등 무려 65권이 문장이다. 《사마문정공집》의 〈훈검시강(訓儉示康)〉·〈의학교공거장(議學校貢擧狀)〉·〈논풍속찰자(論風俗札子)〉·〈공원걸축로취인장(貢院乞逐路取人狀)〉·〈병주학규후서(并州学規後序)〉·〈재덕론(才德論)〉·〈불이비임존의(不以卑臨尊議)〉·〈선악혼변(善惡混辨)〉·〈사칙(士則)〉·〈학요(學要)〉와 같은 문장들은 집안자손의 교육이나 과거제도의 내용을 다룬 글들이다. 가정교육을 다룬 《온공가범(温公家範)》이라는 책이 있는 것을 보면, 교육에 대한 사마광의 관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마광은 일생동안 정치와 역사방면에 주력하다 보니 그 스스로 “문장 짓는 데에는 사실 자신의 장기가 아니다.[至於屬文 實非所長]”라고 평가할 정도로 문학에 대해서 그렇게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광도 송대의 고문가들처럼 고문을 숭상했던 사람이어서 그의 문장 또한 자신의 풍부하고 심오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는 부화한 글보다는 실용적인 내용과 간결한 어구에 명확하고 자연스러운 서술을 하는 등 고문가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사마광은 구법당(舊法黨)의 영수로 대지주(大地主)·대상인(大商人)을 옹호하고 신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제하려 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역대로 그는 명신(名臣)이요 불교와 노자를 배척하고 유가의 윤리교육을 제창한 송대 유현(儒賢)으로 크게 추앙받아왔다. 심지어 주자(朱子)는 그를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 부르면서 송대의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소옹(邵雍)과 함께 ‘육선생(六先生)’이라 하여 성리학의 대가로 받들었다.
그가 지은 《자치통감》은 중국의 역대 황제는 물론 우리나라 임금들도 ‘제왕의 정치교과서’로 삼았을 정도로 중시되었던 책이다. 조선의 세종은 국가적 사업으로 이 책을 편찬하기도 하였고, 《고려사(高麗史)》·《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사마문정공집》도 《자치통감》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으며, 영조 27년(1751)에는 그의 《계고록(稽古錄)》도 간행되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돈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줄지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지킬 수도 없으며, 책을 모아 자손에게 남겨줄지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읽을 수도 없을 것이니,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는 것만 못하다.[積金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守 積書以遺子孫 未必子孫能盡讀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 以爲子孫之計也]” 〈사마광가훈(司馬光家訓), 명심보감(明心寶鑑)〉
• “검소함으로부터 사치함에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으로부터 검소함에 들어가기는 어렵다.[由儉入奢易 由奢入儉難]” 〈훈검시강(訓儉示康)〉
• “배움은 행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學者貴於行之 而不貴於知之]” 〈답공문중사호서(答孔文仲司戶書)〉
(2)색인어:사마광(司馬光), 속수선생(涑水先生),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자치통감(資治通鑑), 계고록(稽古錄), 왕안석(王安石), 신법당(新法黨), 구법당(舊法黨)
(3)참고문헌
• 譯註 通鑑節要(성백효, 傳統文化硏究會)
• 司馬光評傳(李昌憲, 南京大學出版社)
• 司馬光集(사마광, 四川大學出版社, 3冊)
• 司馬溫公集編年笺注(사마광, 巴蜀書社, 6冊)
• 三晋歷史人物(崔凡芝, 書目文献出版社)
• 〈司馬光의 詩論과 詩〉(송용준, 韓國中國學會)
• 〈《송사(宋史)》 〈사마광전(司馬光傳)〉의 역주(譯註)〉(이근명, 호남사학회)
【노장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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