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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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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혜중산집(嵇中散集)》은 위진(魏晉) 교체기의 대표적인 명사(名士)인 혜강(嵇康)의 문집으로 산문과 시 등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위진시기 현학(玄學)과 문학 및 당시 사회현실에 대한 혜강의 관점과 이론을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 《혜강집(嵇康集)》이라고도 부른다.

2. 저자

(1) 성명:혜강(嵇康)(223~262) 혜강의 선조는 본래 해(奚)씨인데 질현(銍縣) 혜산(嵇山) 기슭으로 이주하여 성을 혜(嵇)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2) 자(字)·별호(別號):자는 숙야(叔夜), 위(魏)나라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역임하여 혜중산(嵇中散)이라고 부른다.
(3) 출생지역:초국(譙國) 질현(銍縣)(현 중국 안휘성(安徽省))에서 태어났다.
(4) 주요활동과 생애
혜강은 위 문제(魏文帝) 황초(黃初) 4년(223)에 태어나서 위 원제(魏元帝) 경원(景元) 3년(262)에 향년 40세로 세상을 떠났다. 혜강은 어린 시절부터 현학(玄學)사조의 영향아래 노장(老莊)사상과 양생술(養生術)에 심취하였고 문학적 자질 또한 매우 뛰어났다. 당시 사회에서 빼어난 학식과 위풍당당한 풍채를 지닌 지식인으로 평가받았다.
혜강은 정시(政始) 5년(244) 22세에 위나라 조조의 손녀인 장락정(長樂亭) 공주와 혼인하고, 낭중(郎中), 중산대부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가평(嘉平) 원년(249) 사마의(司馬懿)가 주도한 가평정변(嘉平政變)이 발발하자, 혜강은 관직에서 물러나 부조리한 현실정치에서 벗어나 산양(山陽)에 은둔하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 부합하는 명사(名士)들과 교유하며 죽림(竹林)에서 은둔자적하며 당시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진행하는데, 이들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불린다. 죽림칠현의 일원이었던 산도(山濤)가 이부랑(吏部郞)에서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승진하며 자신의 관직을 혜강에게 추천하자, 혜강은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를 보내며 당시 형식만 치중하려는 유교와 사마씨 정권찬탈의 음모를 공개적으로 폭로하였다. 혜강이 누명을 쓰고 투옥된 벗인 여안(呂安)을 위해 변호한 사건, 그리고 혜강이 구금되자 태학생들이 그의 사면을 대대적으로 청원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최고 권력자인 사마소(司馬昭)는 혜강을 모함하는 종회(鐘會)의 의견을 받아들여 혜강을 처형하여 혜강은 40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5) 주요저작:혜강의 저작으로는 《혜강집(嵇康集)》 15卷, 《춘추좌씨전음(春秋左氏傳音)》 3卷, 《성현고사전찬(聖賢高士傳贊)》 3卷 등이 있으나, 그의 저작은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 《혜강집(嵇康集)》 10卷 만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3. 서지사항

《혜중산집》 10권은 9권의 산문, 1권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은 의론문(議論文) 9편(〈양생론(養生論)〉, 〈답난양생론(答難養生論)〉, 〈성무애악론(聲無哀樂論)〉, 〈석사론(釋私論)〉, 〈관채론(管蔡論)〉, 〈명담론(明膽論)〉, 〈난자연호학론(難自然好學論)〉, 〈난택무길흉섭생론(難宅無吉凶攝生論)〉, 〈답석난택무길흉섭생론(答釋難宅無吉凶攝生論)〉), 서간문 2편(〈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 〈여여장제절교서(與呂長悌絶交書)〉), 잠계(箴戒) 2편(〈태사잠(太師箴)〉, 〈가계(家誡)〉), 잡문 1편(〈복의집(卜疑集)〉), 부(賦) 1편(〈금부(琴賦)〉) 등이 있고, 시는 사언시(四言詩) 26수, 오언시(五言詩) 9수, 육언시(六言詩) 10수, 칠언시(七言詩) 1수, 잡언시(雜言詩) 7수 등 총 53수이다.
《혜중산집》은 본래 15권이었으나 북송(北宋) 이후에는 10권만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서진(西晉)시기부터 원대(元代)까지는 서명이 《혜강집》으로 불리다가 명대 이후부터 《혜중산집》으로 바뀌었다. 《혜중산집》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명(明) 가정(嘉靖) 4년(1515) 황성증(黃省曾)이 집각(輯刻)한 《혜중산집》10권이고, 노신(魯迅) 집교(輯校) 《혜강집》, 대명양(戴明揚)의 《혜강집교주(嵇康集校注)》가 혜강사상을 연구하는 대표적 판본이다.

4. 내용

《혜중산집》은 위진시기 현학으로 대표되는 철학사상과 문학 및 예술 전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혜강은 당시 부조리한 사회정치현실의 부정과 허위의 유학사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중심으로, 위진시기 현학의 발전 단계에서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의 귀무론(貴無論) 이후의 현학사조의 주요 이론체계를 정립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자연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에서 ‘월명교이임자연(越名敎而任自然)’의 입장을 중심으로 사회 제도와 질서의 새로운 정립을 모색하였고,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현실에서 개인의 삶의 방향과 인생이상을 고민하는 가운데 신선(神仙)사상, 은일(隱逸)사상을 이론적으로 전개하였으며, 문학과 음악 등 미학이론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혜중산집》은 위진시기 현학 중심의 철학사상, 당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한 정치사상, 문학, 예술이론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학의 발전 흐름에서 자연의 가치를 강조하며 사회제도와 인륜질서의 재정립과 관련된 혜강의 이론은 후대 자연과 인간의 본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 인간사회의 정치도덕질서의 정립을 모색하고자 하는 철학사상으로 발전하였다. 불합리한 정치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혜강의 강직한 성품은 그의 문학적 필치를 통해 시부(詩賦)에 반영되었고, 특히 은거시(隱居詩)와 유선시(遊仙詩)는 이후 자연시(自然詩)와 유선시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죽림칠현의 지식인이자 혜강의 절친한 벗인 상수(向秀)와의 양생논변은 진한(秦漢)시기 양생술에서 도교(道敎) 양생론으로의 발전에 중요한 이론적 교두보 역할을 했으며, 〈성무애악론(聲無哀樂論)〉은 중국미학과 음악이론 연구에서 그 가치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저 군자라고 불리는 자는 마음을 시비에 두지 않고 행동은 도를 거스르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 무릇 기가 고요하고 신이 텅 빈 자는 마음을 거들먹거리는데 두지 않으며, 몸이 맑고 마음이 통달한 자는 감정을 욕망하는 바에 걸리게 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뽐내지 않기 때문에 명교를 넘어서 자연에 맡기고, 욕망에 감정을 두지 않기에 귀천을 살피고 사물의 실정에 통달할 수 있다.[夫稱君子者 心無措乎是非 而行不違乎道者也 何以言之 夫氣靜神虛者 心不存乎矜尙 體亮心達者 情不繫乎所欲 矜尙不存乎心 故越名敎而任自然 情不繫乎所欲 故能審貴賤而通物情]” 〈석사론(釋私論)〉
• “욕망이 움직이면 근심과 걱정이 생기고, 지식이 작용하면 근거 없는 주관적 추측[前識]이 세워진다. 근거 없는 주관적 추측이 서게 되면 뜻이 흐트러져 사물을 쫓게 되고, 근심과 걱정이 생기면 걱정거리가 쌓여 몸이 위태로워진다.[欲動則悔吝生 智行則前識立 前識立則心開而物遂 悔吝生則患積而身危]” 〈답난양생론(答難養生論)〉
• “무릇 음성의 조화로움은 사람의 타고난 성정으로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 사람은 감정은 방종하게 풀어놓아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흘러 타락하지 않도록 억제했고, 욕망은 근절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잘 이끌어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예(禮)를 만들고,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악(樂)을 제작했으며, 먹는 음식은 지나치게 맛을 내지 않았고, 음악은 지나치게 화려한 소리를 삼갔습니다.[夫音聲和比 人情所不能已者也 是以古人知情不可放 故抑其所遁 知欲不可絶 故自以爲致 故爲可奉之禮 制可導之樂 口不盡味 樂不極音.]” 〈성무애악론(聲無哀樂論)〉
(2) 색인어:혜강(嵇康), 죽림칠현(竹林七賢), 월명교이임자연(越名敎而任自然), 양생(養生), 성무애악(聲無哀樂), 현학(玄學), 혜강집(嵇康集)
(3) 참고문헌
• 嵇康集校注(戴明揚 校注, 人民出版社)
• 新譯嵇中散集(崔富章 注譯, 莊耀郞 校閱, 三民書局)
• 혜강집(한흥섭 옮김, 소명출판)
• 중국 도가의 음악사상(한흥섭, 서광사)
• 중국의 은자들(이나미 리츠코, 김석희 옮김, 한길사)
• 혜강의 이상과 삶(김용범, 《역사와 담론》 45권)
• 혜강의 신선사상 연구(이진용, 《도교문화연구》 29집)
• 혜강의 윤리도덕에 대한 이해(이진용, 《도교문화연구》 33집)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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