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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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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실록》은 청조(淸朝) 역대 황제들의 치세에 관한 편년체 관찬 기록이다. 청대 12명의 황제 중 태조(太祖) 누르하치부터 11대 황제인 덕종(德宗) 광서제(光緖帝)까지 11명의 황제에 관한 실록이 편찬되었다.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 부의(溥儀)는 3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 탓에 정통 실록이 아닌 《선통정기(宣統政紀)》라는 명칭으로 실록이 편찬되었다. 《청실록》에는 상유(上諭)와 주소(奏疏) 등 각종 공문서, 황제의 기거(起居)·혼상(婚喪)·제사(祭祀)·순행(巡幸) 등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청실록》은 청대 정치·경제·문화·군사·외교 및 천문과 지리· 자연현상 등을 망라하여 청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청실록》은 1936년 만주국에서 《대청역조실록(大淸歷朝實錄)》이라는 이름으로 영인한 바 있으며 1986년 북경(北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각종 판본을 상호 대조해 《청실록》이라는 이름으로 영인·출판했다.

2. 편자

청조는 당대(唐代) 이후의 전통을 이어받아 선대 황제가 붕어한 이후 새로 즉위한 황제가 대신들에게 명해 편수관을 열어 선대 황제의 실록을 편찬했다. 청대 실록관(實錄館)은 임시 기구로서 내각에 소속되기 때문에 ‘내각실록관(內閣實錄館)’이라고도 칭했다. 선대 황제의 실록이 완성되면 실록관은 폐쇄되었다.
실록을 편수할 때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와 협판대학사(協辦大學士)가 감수총재관(監修總裁官)과 총재관(總裁官)을 담당하고 학사(學士)와 한림원장원학사(翰林院掌院學士)가 부총재관(副總裁官)을 겸했다. 관례적으로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귀척(貴戚)이 감수(監修)를 담당하였고 특히 감수총재관, 총재관과 부총재관 등은 대부분 황제의 총애를 받는 중신이 겸해 맡았다. 선대 황제의 실록을 편수하는 것은 거대한 문화 프로젝트이기도 하므로 실록 편수에 당시 명성을 떨친 문인 학자들도 참여하였다.

3. 서지사항 특징


황제의 명으로 실록관(實錄館)이 열리면 내각(內閣)과 군기처(軍機處)로부터 상유(上諭)와 주비(硃批), 주접(奏摺), 기거주(起居注) 및 기타 공문서를 원시(原始) 자료로 수집하고 찬수관이 이를 정리해 시기와 찬수 범례에 따라 편집했다. 실록은 제왕의 언행과 활동을 담고 있는 데다가 후세에 전해지므로 최고 통치자의 이해관계나 명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따라서 청 황제들은 실록 편찬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감수총재관과 총재관, 부총재관 등은 대부분 황제의 총애를 받는 중신이 맡았다. 실록 편찬 작업은 황제의 의도대로 진행되기 쉬웠으며 황제에게 불리한 기록은 삭제되기도 했다. 청대에 실록은 간행 반포되지 않고 몇 부를 필사하여 북경과 성경(盛京)의 궁 안에 소장하였기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만 열람할 수 있었다.
한족 왕조들과 달리 청대에 완성된 실록은 만문(滿文)·한문(漢文)·몽문(蒙文) 3종의 문자로 작성되었다. 정본(正本) 4부, 부본(副本) 1부를 선사(繕寫)했는데 정본인 대홍릉본(大紅綾本) 2부 중 1부는 황실 장서고인 황사성(皇史宬)에, 1부는 성경(盛京)의 대내(大內)(현재 심양고궁(瀋陽故宮) 숭모각(崇慕閣))에 보관하였고, 소홍릉본(小紅綾本) 2부 중 1부는 건청궁(乾淸宮)에, 1부는 내각실록고(內閣實錄庫)에 보관하였다. 부본(副本)인 소황릉본(小黃綾本) 역시 내각실록고에 보관하였다. 1936년 만주국이 역대 《청실록》을 《선통정기(宣統政紀)》와 함께 영인하여 전체 121질, 1,210책으로 된 《대청역조실록(大淸歷朝實錄)》을 간행하였다. 또한 1질 10책으로 된 《대청역조실록총목(大淸歷朝實錄總目)》을 별도로 만들었다.
태조부터 목종까지 10조(朝) 실록이 몇 부 선사(繕寫)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1925년 고궁박물원이 성립된 후 실록을 조사·정리한 바로는 태조·태종·세조(이상 3조는 옹정·건륭 연간 교정본)·성조·세종·고종·인종·선종·문종·목종 10조 실록은 만문·한문·몽문본이 4부씩 필사되었다. 이외에 성경 숭모각 소장 10조 실록은 만문·한문본 각 1부씩 제작되어 만문·한문본 실록은 총 다섯 부, 몽문본 실록은 네 부가 있는 셈이다.
다섯 부의 한문본 실록은 관례적으로 표장(表裝)과 대·소 판본에 따라 대홍릉본, 소홍릉본, 소황릉본으로 불렸다. 대홍릉본 2부 중 1부는 황사성에 보관되었는데 현재는 중국제일역사당안관(中國第一歷史檔案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다른 1부는 성경 숭모각에 보관되었고 현재는 요녕성당안관(遼寧省檔案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소홍릉본 2부 중 1부는 건청궁에 보관되었고 현재 고궁박물원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소홍릉본의 다른 1부는 내각실록고에 보관하였다. 소황릉본 한 부는 내각실록고에 보관했으며 현재 중국제일역사당안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덕종경황제실록(德宗景皇帝實錄)》은 2부가 제작되었다. 1부는 대홍릉본으로 황사성에 보관했으며 현재 중국제일역사당안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진실록표(進實錄表)〉에 의하면 실록을 완성한 날짜는 선통 13년 12월(1922)이다. 《덕종경황제실록》은 총 597권인데 황사성에 보관된 대홍릉본은 동치 13년 12월(1875)부터 광서 21년 9월(1895) 부분이 누락되어 376권이 남아있다. 다른 1부는 소홍릉본으로 현재 요녕성당안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진실록표〉에 기록된 완성 날짜는 선통 19년(1927)이고 잔결되어 누락된 부분이 많다. 현재 북경대학 도서관이 완정한 《덕종경황제실록》 정고본(定稿本)을 소장하고 있다. 이를 정고본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각 권 전면에 모두 감수총재· 정총재· 부총재 등의 서명 날인이 있고 개수(改修)가 필요한 부분에 쪽지를 끼워 넣어 이를 참조해 수정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태조·태종·세조대의 소위 ‘삼조실록(三朝實錄)’은 완성된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졌다. 삼조실록 초수본(初修本)은 정본(定本)에 비해 청 개국 초기의 역사적 사실을 비교적 생생하게 담고 있어 청 개국사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개수된 부분은 인명·지명· 자구(字句)의 통일, 오자 개정 등 기술적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어떤 부분은 황제를 비롯한 최고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용이 덧붙여지거나 삭제되었다. 대표적으로 청 태조 누르하치에 관한 실록을 예로 들 수 있다.
청 태조 누르하치에 관한 최초의 실록은 숭덕 원년(1636) 11월에 완성되었다. 공식명칭은 《대청태조승천광운성덕신공조기립극인효무황제실록(大淸太祖承天廣運聖德神功肇紀立極仁孝武皇帝實錄)》(약칭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으로 천총 9년(1635)에 제작된 삽화집 《태조실록도》에 만문·몽문·한문을 넣어 완성되었다. 숭덕 원년에 완성된 《태조무황제실록》은 순치 연간 초기 도르곤 섭정 시기에 개수되었고 순치제가 친정한 후 순치 12년(1655)에 중수본(重修本)이 완성되었다. 강희 21년(1682)에 다시 중수하여 25년(1686)에 전 10권으로 완성하였는데 《태조고황제실록》이라고 명명했다. 옹정12년(1734)에 다시 교정작업을 거쳐 건륭 4년(1740) 12월에 완성하였다. 서명, 권수는 강희조 중수본과 동일하다. 태조조실록은 원래 5개 판본이 있는데 현존하는 한문 사본은 옹정·건륭 교정본이 유일하다.
《만주실록》은 청 태조 누르하치의 사적에 관한 실록 중 마지막 편찬물이다. 건륭 44년(1776)에 《만주실록》 수정본이 완성되었고 건륭 46년(1778)에 한 부가 추가되어 총 4部로 제작되었다. 만주족 시조 설화 및 만력(萬曆) 11년(1583) 누르하치가 기병한 후 벌인 여러 전쟁의 무공도(武功圖)가 실려 있으며 만문·한문·몽문 삼체(三體)로 작성되었다. 《만주실록》은 건륭 46년에 추가 제작되면서 한 부씩 건청궁, 상서방(上書房), 성경 고궁의 숭모각, 열하(熱河)의 피서산장(避暑山莊)에 보관되었다. 그 중 상서방본만이 현존하며 중국제일역사당안관에 소장되었다.
순치제의 실록인 《세조장황제실록(世祖章皇帝實錄)》은 강희 6년(1667)에 편찬을 시작해 강희 11년(1672)에 144권으로 완성되었다. 이 실록 또한 옹정·건륭 연간에 교정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권수는 동일하다. 현존하는 한문 사본으로는 옹건 연간 교정본이 유일하고 초수본은 이미 소실되었으므로 내용상 비교가 불가능하다.
1986년 11월 중화서국(中華書局)이 중국제일역사당안관이 소장한 황사(皇史) 대홍릉본, 상서방 소황릉본, 북경대학 도서관이 소장한 정고본, 고궁박물원 도서관이 소장한 건청궁 소홍릉본, 요녕성당안관이 소장한 성경 숭모각 대홍릉본 등의 판본을 상호 보충하여 비교적 잘 정리된 《청실록》 영인본을 출판했다.

4. 내용

《청실록》은 각 조(朝) 실록의 총목(總目), 서(序), 범례(凡例), 목록(目錄), 진실록표(進實錄表), 수찬관(修撰官) 등 51권 외에 《만주실록》 8권, 《태조실록》 10권, 《태종실록》 65권, 《세조실록》 144권, 《성조실록》 300권, 《세종실록》 159권, 《고종실록》 1,500권, 《인종실록》 374권, 《선종실록》 476권, 《문종실록》 356권, 《목종실록》 374권, 《덕종실록》 597권 및 《선통정기》 70권으로 구성되었다. 《만주실록》과 《선통정기》를 제외한 11조 실록은 총 4,355권이 된다.(단, 판본에 따라 권수는 달라질 수 있다.)
《청실록》은 역대 실록과 마찬가지로 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지(日誌)로서 연월일별로 황제의 각종 활동과 조유(詔諭) 및 신하들의 상주 내용을 기록하였다. 《청실록》은 누르하치 건국 과정부터 신해혁명까지 거의 300년의 청조 역사를 담고 있으며 정치·경제·문화·군사·외교·종교·재정·부역(賦役)·자연재해·천문지리·황족과 궁정 등에 관한 내용을 망라하였다. 《청실록》에는 만주족 시조 설화부터 순치 연간에 팔기군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점령하기까지의 과정, 강희제가 삼번(三藩)의 난과 대만을 평정하고 중국을 통일한 과정, 몽골·티베트·신강 등 청대 외번(外藩) 형성 과정 및 청 말 서구 열강의 침략과 자강운동(自强運動)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청실록》은 황제의 활동을 중심으로 국가 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련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청실록》은 황제의 언행뿐만 아니라 대신들의 업적, 법제와 정령(政令), 과거(科擧)를 비롯한 관료 임용, 인정(人丁)과 호구(戶口), 번방(藩邦)·외교(外交), 문화·경적(經籍), 병역과 정벌 등 여러 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상세히 기록된 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청실록》은 황제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와 경향이 강하므로 황실 및 통치 집단의 내부 투쟁이나 여러 중대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심지어 개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청실록》은 여러 사초(史草)를 정리하여 완성된 방대한 원시 사료이므로 청대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필수적인 문헌이다. 오히려 판본 비교를 통해 하나의 실록이 시대에 따라 개찬·수정된 부분을 알 수 있으므로 실록이 개찬된 시대적 배경과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14년에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歷史語言硏究所)와 ‘조선왕조실록·명실록·청실록 연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로부터 명실록과 청실록 원문 및 이미지 데이터를 제공받아 이를 바탕으로 원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연계하는 웹 서비스를 2015년 말부터 시작했다. 청실록 데이터베이스는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에서 중국제일역사당안관, 요녕성당안관, 고궁박물원도서관, 북경대학도서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여러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구축한 자료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경인일(1635년 음력 10월 13일), (태종께서) 유시하여 말했다. “우리나라는 원래 만주· 하다· 울라· 여허· 호이파 등의 명칭이 있었다. 예전에 무지한 사람이 종종 주션이라 불렀는데 무릇 주션이라는 호칭은 시버의 초오 머르건(coo mergen, 超墨爾根)의 후예로 실로 우리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의 건호인 滿洲는 統緖가 장구하며 대대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 이후로 모든 사람은 우리나라의 만주라는 원래의 명칭만을 불러야 한다. 이전과 같이 망령되이 불러서는 안 된다.” [庚寅, 諭曰, 我國原有滿洲· 哈達· 烏喇· 葉赫· 輝發等名. 向者無知之人, 往往稱爲諸申, 夫諸申之號, 乃席北超墨爾根之裔, 實與我國無涉. 我國建號滿洲, 統緒綿遠, 相傳奕世. 自今以後一切人等, 止稱我國滿洲原名, 不得仍前妄稱.] 《청태종실록》 권25 천총9년 10월 경인조.

·기묘일(1636년 음력 4월 5일), 대(大)버일러 다이샨, 호쇼이 버일러 지르갈랑, 호쇼이 머르건 다이칭 버일러 도르곤, 호쇼이 어르커 추후르 버일러 도도, 호쇼이 버일러 요토· 호오거, 버일러 아바타이· 아지거· 두두, 초품공(超品公) 어푸 양구리, 구사 어전 탄타이, 종실 바인투, 역슈· 여천· 아산· 일던· 다르한, 종실 피양구 아거(fiyanggū age, 篇古阿格), 몽고의 여덟 구사 어전, 육부의 대신, 도원수 공유덕(孔有德), 총병관 경중명(耿仲明)· 상가희(尚可喜)·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외번몽고 버일러 코르친국 투시예투 지농 바다리, 자삭투 두렁 부타치, 조릭투 타이지 욱샨, 라마스히· 무자이, 두르베트 부락의 서렁, 잘라이트 부락의 몽쿠와(mongkūwa, 蒙夸), 고를로스 부락의 붐바· 구무· 두렁 지농, 나이만 부락의 군추스 바투루, 바린 부락의 아유시· 만주시리, 자루트 부락의 너이치· 처건, 우라트 부락의 투먼· 두바· 서렁, 카라친 부락의 구루스힙· 서렁, 투메트 부락의 타부낭 겅걸· 샴바와 만주· 몽고· 한인 문무 각 관료들은 상(上)이 존호(尊號)를 칭할 것을 삼가 청했다. 이부(吏部)를 관할하는 호쇼이 머르건 다이칭 버일러 도르곤이 만주문자로 적은 표문 1건을 받들고, 코르친국 투시예투 지농 바다리는 몽고문자로 적은 표문 1건을 받들고, 도원수 공유덕은 한문 표문 1건을 받들고 여러 버일러와 대신, 문무 각 관료들을 이끌고 조정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표문을) 올렸다. 이때 상(上)이 내루(內樓)에 임어(臨御)했고, 어전시위(御前侍衛)가 (이 사실을) 전해 보고했다. 상(上)이 만주· 몽고· 한인 세 유신(儒臣)에게 표문을 들고 들어오라 명하자 여러 버일러와 대신들은 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고 좌우로 반열을 지어 서서 지(旨)를 기다렸다. 유신이 표문을 받들고 상(上) 앞에 이르러 꿇어앉아 표문을 읽었다. [己卯大貝勒代善和碩貝勒濟爾哈朗和碩墨爾根戴青貝勒多爾衮和碩額爾克楚虎爾貝勒多鐸和碩貝勒岳託豪格貝勒阿巴泰阿濟格杜度超品公額駙楊古利固山額眞譚泰宗室拜尹圖葉克書葉臣阿山伊爾登達爾漢宗室篇古阿格蒙古八固山額眞六部大臣都元帥孔有德總兵官耿仲明尚可喜石廷柱馬光遠外藩蒙古貝勒科爾沁國土謝圖濟農巴達禮扎薩克圖杜稜布塔齊卓禮克圖台吉吳克善喇嘛斯希木寨杜爾伯特部落塞冷扎賴特部落蒙夸郭爾羅斯部落布木巴古木杜稜濟農奈曼部落衮出斯巴圖魯巴林部落阿玉石滿珠習禮扎魯特部落內齊車根吳喇忒部落土門杜巴塞冷喀喇沁部落古魯思轄布塞冷土默特部落塔布囊耿格爾單把及滿洲蒙古漢人文武各官恭請上稱尊號管吏部和碩墨爾根戴青貝勒多爾衮捧滿字表文一道科爾沁國土謝圖濟農巴達禮捧蒙古字表文一道都元帥孔有德捧漢字表文一道率諸貝勒大臣文武各官詣闕跪進時上御內樓御前侍衛轉聞上命滿洲蒙古漢人三儒臣捧表入諸貝勒大臣行三跪九叩頭禮左右列班候旨儒臣捧表至御前跪讀表文] 《청태종실록》 권28 천총 10년 병자년 4월 기묘일조.

·을유일(1636년 음력 4월 11일), 상(上)이 존호를 받음을 천지에 제사를 지내 고하고,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라는 존호를 받고, 국호를 제정하여 대청(大淸)이라 하고 숭덕(崇德) 원년(元年)으로 개원(改元)했다. [乙酉上以受尊號祭告天地受寬溫仁聖皇帝尊號建國號曰大清改元爲崇德元年] 《청태종실록》 권28 천총 10년 병자년 4월 을유일조.

(2) 색인어
청실록(淸實錄), 청(淸) 태조(太祖) 누르하치, 태종(太宗) 홍타이지, 세조(世祖) 순치(順治), 성조(聖祖) 강희(康熙), 세종(世宗) 옹정(雍正), 고종(高宗) 건륭(乾隆), 인종(仁宗) 가경(嘉慶), 선종(宣宗) 도광(道光), 문종(文宗) 함풍(咸豐), 목종(穆宗) 동치(同治), 덕종(德宗) 광서(光緖), 선통정기(宣統政紀)

(3) 참고문헌
· 만문노당 역주: 태종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문노당역주회, 소명출판)
· 만주실록 역주(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 만주실록역주회 역, 소명출판)
· 만문노당 태조 (김주원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중국사학사(신승하, 고려대학교출판부)
· 《구만주당》에서 《만주실록》까지 –청 태조실록의 편찬과 수정(김선민, 《사총》 77, 2012)
· 《滿文淸實錄硏究》(陳捷先, 滿文檔案叢書 第一集, 臺北, 大化書局, 1980)
· 试述《清实录》史料的来源与流向 (谢贵安,《北京联合大学学报》 第10卷 2012年 4月 第2期)
· 《清实录》的文献价值与文本解析 (谢贵安, 《河南大学学报》 第53卷 第4期 2013年 7月)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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