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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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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공개물天工開物》 3권은 명말明末 숭정崇禎 10년(1637) 강서성江西省 봉신현奉新縣의 학자 송응성宋應星이 저술한 산업기술서이다. 전편 3권 18부, 부付 자서自序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가·기술자가 아닌 일반 지식교양인을 대상으로 당시의 산업기술 전반에 대해 실증적으로 상술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간행 후 유독 일본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중국에서는 실질적으로 망실되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중국인에게 재발견되어 그 과학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2. 저자

(1)성명:송응성宋應星(1587~1666?)
(2)자字·별호別號:자는 장경長庚.
(3)출생지역:중국 강서성江西省 봉신현奉新縣
(4)주요활동 및 생애
송응성은 강서성의 명가 출신이다. 증조부 송경宋景(1476~1547)은 홍치弘治 18년(1505) 진사로 등용되어, 산동참정, 남공부상서, 도찰원좌도어사都察院左都御史 등을 역임한 명대明代의 저명한 각로閣老였다. 조부 송승경宋承慶(1522~1547)은 송경의 장자로 27세에 요절하였는데, 부친 송국림宋國霖(1547~1631)이 일생을 포의지사로 보내며 가세가 몰락하였다. 송응성은 사남 중 삼남이다.
송응성은 만력萬曆 43년(1615) 향시에 급제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5차례 회시에 실패하고 숭정崇禎 7년(1634) 거인의 신분으로 한직인 원주부袁州府 분의현分宜縣의 교유敎諭에 취임하였다. 이 시기 《천공개물》을 저술한다. 숭정 11년(1638) 복건성 정주부汀州府 추관推官에 임명되었으나 1640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숭정 16년(1643) 남직예南直隸의 호주지주毫州知州에 부임하지만 갑신甲申년(1644:명청교체) 장형이 명明나라의 안위를 염려해 음독자살하자 송응성 또한 그 이후로 청에 출사하지 않았다. 졸년卒年은 미상이다.
송응성은 남창南昌의 학자 서왈경舒曰敬(1558~1636)의 문인이며, 《천공개물》 초간본을 출자한 도소규涂紹煃는 동문으로 진사 출신이다. 명말 경세치용의 학문 계보를 계승하여 명학明學의 공소함을 배격하고 실증주의적 학문관을 중시한 송응성은, 당시의 총명박학한 사대부조차 현실생활에서 유리遊離되어 “대추와 배의 꽃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초평楚萍을 억측하거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솥·가마의 틀도 본 적이 없으면서 역사상의 기물인 거정莒鼎을 고담준론한다.[棗梨之花未賞而臆度楚萍 釜鬵之範鮮經而侈談莒鼎]”라고 분격하며 《천공개물》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5)주요저작:《야의野議》, 《사련시思憐詩》, 《논기論氣》, 《담천談天》, 《획음귀정畵音歸正》, 《잡색문雜色文》, 《원모原耗》, 《치언십종巵言十種》 등이 있다. 《획음귀정》 이하는 실전失傳되었다.

3. 서지사항

‘천공天工’과 ‘개물開物’은 각각 《서경》 〈고요모皐陶謨〉의 “천공인기대지天工人其代之”와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개물성무開物成務”에 근거한다. ‘천공’은 인공에 대한 자연력(天의 工)을 의미하고, ‘개물’은 인간이 공구와 기술을 통해 자연력을 통제하여 물산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연력을 근원에 두고, 기술을 자연과 인력의 협조로 파악하는 중국적 기술 관념을 상징한다. 반면 민국 초의 지질학자 정문강丁文江은 “물物은 하늘에서 생기지만 공工은 사람에 의해 열린다.”라고 해석하여 천과 공을 자연력과 인력으로 대비시켰으나 반드시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간본은 숭정崇禎 10년(1637) 송응성의 우인友人 도소규의 출자로 남창부南昌府에서 간행되었다(도본涂本). 얼마 후 청초(혹은 남명정권하)에 복건성의 서상書商 양소경楊素卿이 이를 번각하였는데 이 재간본(양본楊本)이 비교적 널리 유통되었다고 한다. 또한 《천공개물》은 에도시대 일본에 전해져 판을 거듭하였을 정도로 중시되었는데, 이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청대 후기를 거쳐 사실상 그 존재조차 망각되었다. 중국인이 재차 《천공개물》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일본 유학생 장홍조章鴻釗가 민국民國 15년(1926) 일본에서 귀국 시 관생당菅生堂 화각본을 중국에 가져간 이후의 일이다. 민국 18년(1929)에 도상陶湘에 의해 관생당본을 이용한 번각(희영헌총서喜咏軒叢書)이 행해졌고 중국에서 《천공개물》이 중시된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이다. 그런데 이용에 주의할 점은 이 도상본은 후대의 새로운 삽도揷圖를 채용하여 원모를 훼손하였다는 점이다(현행 《천공개물》의 몇몇 종류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4. 내용

전편 3권 18부로 구성되어 있다. ①내립乃粒:곡류, ②내복乃服:의복, ③창시彰施:염색, ④수정粹精:조제, ⑤작함作鹹:제염, ⑥감기甘嗜:제당(이상 상권), ⑦도연陶埏:제도製陶, ⑧야주冶鑄:주조, ⑨주차舟車:배와 수레, ⑩추단錘鍛:단조鍛造, ⑪번석燔石:배소焙燒, ⑫고액膏液:제유製油, ⑬살청殺靑:제지(이상 중권), ⑭오금五金:제련, ⑮가병佳兵:병기, ⑯단청丹靑:주묵朱墨, ⑰국얼鞠蘖:양조, ⑱주옥珠玉(이상 하권).
중국의 전통 공예 기술서가 주로 농업기술을 다루는데 반해, ① 당시의 주요한 산업 부분을 망라했다는 점, ② 개별적인 부문의 생산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실한 점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전편 18부의 분류 방식은 ① 기본적으로 오곡五穀을 귀하게 여기고 금옥金玉을 낮게 보는[貴五穀而賤金玉]의 입장에서 배열을 순서를 정하였는데 전통적으로 식食을 화貨에 우선하는 사유(《書經》)와 통한다. ② 전편에 걸쳐 특히 방술과 본초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방서나 본초학은 근거 없는 망상이거나 또 제멋대로 주석한 것이라 혐오스럽기 그지없다.[方書本草無端妄想妄注 可厭之甚]”)가 두드러지는 것도 《천공개물》의 실증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또한 ③ 간행 당시 이미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서양의 과학기술이 상당히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화기火器에 관한 기술)를 제외하고 그 영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5. 가치와 영향

조셉 니덤은 송응성을 중국의 디드로라고 표현하였는데, 《천공개물》은 무엇보다도 ①사대부층이 경시하던 기술서를 지식인을 대상으로 하여 저술한 점, ②실질적인 견문을 통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 점, ③사실에 입각하여 미신을 배제하려고 한 집필 태도 등 명말에 일어난 경세치용의 학문 경향을 대표하는 저작의 하나이다. 이시진의 《본초강목》과 더불어 근세를 대표하는 중국 과학서라고 할 수 있다.
《천공개물》은 청대에 들어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이나 대형 농서 《수시통고授時通考》에 상당부분 수록되었지만 중국에서는 그 뒤 사실상 오랜 기간 실전되었다.
한편 17세기 중에는 일본에 전해져 수많은 사본寫本이 만들어졌고, 그 후 1771년 오사카의 서림 관생당菅生堂에서 훈점訓点과 가나표기가 덧붙여진 화각본이 간행되고 문정文政 13년(1830)에 재간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조선의 경우 18세기 이후 전래된 듯 하며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비롯하여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서종박물고변五洲書種博物考辨》,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 소개되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대추와 배의 꽃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초평을 억측하거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솥과 가마의 틀도 본 적이 없으면서 역사상의 기물인 거정을 고담준론한다.[棗梨之花未賞而臆度楚萍 釜鬵之範鮮經而侈談莒鼎]” 〈천공개물서天工開物序〉
• “화공이 귀신이나 도깨비를 그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개나 말을 그리는 것은 싫어한다.[畫工好圖鬼魅而惡犬馬]” 〈천공개물서天工開物序〉
• “방서나 본초학은 근거 없는 망상이거나 또 제멋대로 주석한 것이라 혐오스럽기 그지없다.[方書本草無端妄想妄注 可厭之甚]” 〈권십사卷十四〉
(2)색인어:송응성宋應星, 산업기술서産業技術書, 실증주의實證主義, 명말明末, 경세치용經世致用, 실사구시實事求是, 명학明學, 실학實學.
(3)참고문헌
• 中國科學技術典籍通彙 綜合卷(河南敎育出版社)
• 天工開物譯注(潘吉星, 上海古籍出版社)
• 中國科學技術史 人物卷(盧嘉錫 總主編, 科學出版社)
• 天工開物(藪內淸 譯註, 平凡社)
• 中國古代科學技術史綱 技術卷(路甬祥 總主編, 遼寧敎育出版社)
【안대옥】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18.05.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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