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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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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재수필》은 남송(南宋) 시기 홍매(洪邁)가 독서하며 얻은 지식과 심득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 문학,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의 고증과 평론을 엮은 학술 필기이다. “고증과 변증이 정확하고 치밀하여 남송 필기 중에 최고[南宋說部 終當以此爲首焉](《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용재수필제요(容齋隨筆提要)》)”라고 평가된다.

2. 저자


(1) 성명:홍매(洪邁)(1123~1202)
(2) 자(字)·별호(別號):자(字) 경로(景盧), 호(號) 용재(容齋)·야처(野處)
(3) 출생지역:요주(饒州) 파양(鄱陽)(現 강서성(江西省) 낙평시(樂平市))
(4) 주요활동과 생애
홍매는 남송 고종(高宗) 소흥(紹興) 15년(1145)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한 후 천주(泉州), 길주(吉州), 감주(贛州), 건녕(建寧), 무주(婺州), 진강(鎭江), 소흥(紹興) 등에서 지방관을 지냈다. 중앙에 있는 동안에는 기거사인(起居舍人), 중서사인겸시독(中書舍人兼侍讀), 직학사원(直學士院),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거쳐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로 관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홍매의 부친과 두 형들은 모두 당시의 저명 인사였다. 부친인 홍호(洪皓)는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15년 만에 송나라로 귀환하였다. 당시 고종 황제는 “한나라 시기 흉노에게 억류되었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던 소무(蘇武)와 같은 충절”이라며 칭송하였다. 홍매의 두 형들 또한 재상과 부재상을 지낸 고위 관료이자 학자였기에 당시 “홍씨 삼 형제의 학문과 문학적 명성이 천하에 가득했다.[三洪文名滿天下)”는 평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홍매의 문재와 학식은 “경전과 역사, 전고를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귀신과 만물의 변화까지 통달했다.[邁考閱典故 漁獵經史 極鬼神萬物之變](《宋史》 〈洪邁傳〉)”고 인정받았다.
(5) 주요저작
홍매의 저작으로는 기이한 이야기인 지괴(志怪) 모음집인 《이견지(夷堅志)》, 당시(唐詩) 선집인 《만수당인절구(萬首唐人絶句)》, 학술 필기인 《용재수필》, 문집으로 《야처유고(野處類稿)》가 있다. 또한 30여 년 동안 사관(史官)으로 지내면서 북송의 신종(神宗), 철종(哲宗), 휘종(徽宗), 흠종(欽宗) 4대의 역사인 《사조국사(四朝國史)》와 《흠종실록(欽宗實錄)》, 《철종보훈(哲宗寶訓)》을 집필했다.

3. 서지사항


《용재수필》은 최초로 ‘수필’을 제목으로 한 저서로 《수필(隨筆)》 16권, 《속필(續筆)》 16권, 《삼필(三筆)》 16권, 《사필(四筆)》 16권, 《오필(五筆)》 10권인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필》을 제외하고는 매 편마다 서문이 있는데 《사필》의 서문에서 “처음 내가 용재수필을 썼을 때는 장장 18년이 걸렸고, 《이필》은 13년, 《삼필》은 5년, 《사필》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오필》을 합쳐본다면 근 40년의 세월을 《용재수필》과 함께 한 셈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집필 기간이 점점 짧아졌고, 《사필》 이후는 《이견지》의 집필과 병행하면서 《용재수필》에 예전만큼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러한 정황이 《사필》의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사필》과 《오필》은 내용의 충실도와 정확함이 앞의 《삼필》만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속필》의 서문에 의하면 《용재수필》이 정식 출판이 되기도 전에 민간의 상인들이 먼저 출판해 유통되고 있었고, 황궁에 입수되어 황제까지 열람하게 되었던 정황이 소개되어 있다. 효종은 좋은 의론이 많다며 칭찬하였고, 지식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황제의 인정과 칭찬에 홍매는 집필을 계속해 갔던 것이다. 《용재수필》을 40년에 동안 5부작으로 집필하였으므로 초반에는 단독 형태로 출간되었고 나중에서야 모두 함께 출간되었다. 《용재수필》은 효종이 보았던 초집(初集)인 무주(婺州) 각본을 시작으로 남송 시기에만 7차례나 간행되어 여타 필기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선본으로는 민국 25년(1936)에 간행된 사부총간(四部叢刊) 속편본(續編本)을 꼽는다.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중화서국에서 출판된 《용재수필》은 이 총간본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4. 내용


홍매는 〈서문(序文)〉에서 생각이 가는 대로 썼기 때문에 ‘수필’이라 한다고 했다. ‘수필’이라는 말에서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용재수필》은 경전과 역사, 문학 작품, 제도에 대한 연구와 고증이 주를 이루는 공부의 산물이다. 그 ‘생각’은 주로 학문에 국한된 것이었다. 따라서 ‘수필’은 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라 송대 필기의 제목으로 자주 사용되던 잡록(雜錄), 잡기(雜記), 필담(筆談), 쇄어(鎖語) 등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학문적 내용을 주로 하지만 객관적인 논증이나 규명의 과정을 치밀하게 거치기 보다는 심득과 단상을 자유롭게 풀어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술 저작에 비해 가볍고 자유롭다. 매 조목의 제목도 임의적으로 붙인 것이며, 의문이나 격앙된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도 한다.
40여 년에 걸친 집필 기간, 5부작 총 1,229조목인 《용재수필》은 홍매 일평생의 모든 독서를 아우르기 때문에 상당히 ‘잡(雜)’스럽다. 경전, 역사, 제자백가, 시문(詩文) 등 정통 학문부터 천문, 역법, 기상, 지리, 생물, 수학, 기계, 선박, 건축,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섭렵하고 있다. 인용한 사서와 문집은 총 250종에 달한다. 경사자집을 넘나드는 박학, 정확한 고증과 간결한 의론은 구양수(歐陽脩)와 증공(曾鞏)도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된다.

5. 가치와 영향


남송 가정(嘉定) 16년(1223), 홍매의 조카 손자 홍급(洪伋)이 쓴 《용재수필》의 발문에 “사대부들이 다투어 전하고자 했다.[學士大夫爭欲傳襲]”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실로 유생의 학문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實爲儒生進學之地]”, “고증이 정확하고 의론이 고명·간결하여 독서와 작문의 법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其考據精確 議論高簡 讀書作文之法盡是矣]”, “집집마다 한 권씩 두어 독서와 글을 짓는 도움으로 삼아야 한다.[宜家置一編 以爲讀書作文之助]”는 평가는 《용재수필》의 유용성과 영향력을 대변한다.
청대(淸代)가 되면서 《주역차기(周易箚記)》, 《시경차기(詩經箚記)》, 《사서차기(四書箚記)》, 《잠구차기(潛邱箚記)》, 《이십이사차기(卄二史箚記)》 등 ‘차기(箚記)’를 제목으로 하거나 ‘차기’식의 학술필기가 대거 등장하였다. ‘차기’는 청대 학자들의 공부 방법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것이었다. 학자들은 모두 ‘차기책자’를 가지고 있었다. 독서를 할 때마다 심득이 있으면 이곳에 기록하였으며 오랜 시간 축적되면 내용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엮어 한 권의 저작으로 만들어냈다. 학자들이 애용했던 저술의 방법인 ‘학술 필기’, 학문과 필기라는 문체의 결합은 홍매의 《용재수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나이가 드니 게을러지고 독서도 줄었다. 생각이 가는 대로 바로 기록하여 그 선후의 조리가 없기 때문에 ‘수필’이라 제목을 붙였다.[予老去習懶 讀書不多 意之所之 隨即紀錄 因其後先 無復詮次 故目之曰隨筆]” 〈서(序)〉
‧ “그 중에는 경전과 역사, 제자백가부터 의술, 점복, 점성술에 관한 것까지 있으니 심득이 있으면 자유롭게 기록하였다. 분석과 고증이 상당히 정확하다. 예를 들어 《주역(周易)》의 〈설괘전(說卦傳)〉 중 ‘과발(寡髮)’을 ‘선발(宣髮)’로 해석한 것이나, 《시경》 〈빈풍(豳風)〉의 ‘칠월재야(七月在野)’·‘팔월재우(八月在宇)’의 구절은 농민이 드나드는 때를 말한 것이지 귀뚜라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모두 경전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송대(宋代)의 제도와 전례를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송대에 한림학사(翰林學士)에서 재상이 된 자가 상민중(向敏中) 한 사람이 아니라며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의 오류를 반박하였다. 또 국사(國史) 중 〈양호전(梁顥傳)〉을 인용하여 진정민(陳正敏)이 《둔재한람(遯齋閒覽)》에서 양호(梁灝)가 82세에 급제하였다고 한 것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였다. 모두 매우 자세히 검증한 것이다.[其中自經史諸子百家以及醫卜星算之屬 凡意有所得 卽隨手箚記 辯證考據 頗爲精確 如論易說卦寡髮之爲宣髮 論豳風七月在野八月在宇之文爲農民出入之時 非指蟋蟀 皆於經義有裨 尤熟於宋代掌故 如以宋自翰林學士入相者非止向敏中一人 駁沈括筆談之誤 又引國史梁灝傳證陳正敏遯齋閒覽所記八十二歲及第之說爲不實 皆極審核]”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용재수필제요(容齋隨筆提要)》〉
(2) 색인어:홍매(洪邁), 용재수필(容齋隨筆), 수필(隨筆), 필기(筆記), 잡기(雜記), 차기(箚記), 학술필기(學術筆記), 고증학(考證學)
(3) 참고문헌
‧ 容齋隨筆(孔凡禮 點校, 中華書局)
‧ 容齋隨筆(上海古籍出版社)
‧ 용재수필(홍승직·노은정·안예선 역, 학고방)
‧ 용재수필(임국웅 역, 지식의 숲)
‧ 〈宋代 학술 필기와 洪邁의 《容齋隨筆》〉(안예선, 《중국학논총》38, 2012)

【안예선】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0.08.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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