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동양고전해제집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개요

중국 당(唐)나라와 송(宋)나라의 이름난 문인 8명, 즉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왕안석(王安石)·증공(曾鞏)의 산문 총 1,375편을 정선(精選)하고 작품마다 짤막한 평(評)을 붙인 것으로, 명(明)나라 문인 모곤(茅坤)이 1579년(萬曆 7)에 편찬한 책이다. 총 16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송팔대가’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도 바로 이 책이다. 청나라 때 편찬된 《고문사류찬》 등도 이 책을 바탕으로 편집의 기준을 삼는 등, 당송고문 학습의 전범서로서 널리 읽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세 차례나 간행될 만큼 그 영향력이 컸다.

2. 편자

(1)성명:모곤(茅坤)(1512~1601)
(2)자(字)·별호(別號):자(字)는 순보(順甫), 호는 녹문(鹿門)
(3)출생지역:절강성(浙江省) 오흥현(吳興縣) 귀안(歸安)
(4)주요활동과 생애
모곤은 1538년 진사(進士)에 올라 청양지현(靑陽知縣)과 단도지현(丹徒知縣)을 지냈고, 1545년 예부의제동주사(禮部儀制同主事)에 기용되었다. 또 광서병비첨사(廣西兵備僉使)를 지낼 때에는 광서 지역에서 발생한 농민반란을 진압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 문무(文武)의 재능을 겸비하고 서법(書法)에도 일가를 이루었으며, 당송고문(唐宋古文)을 문장의 전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당송파(唐宋派) 문인의 일원으로 중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산문은 사마천(司馬遷)과 구양수(歐陽修)의 글을 전범으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5)주요저작:《녹문집(鹿門集)》

3. 서지사항

‘당송팔대가’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뛰어난 문장가 8명이라는 말이며, 한유·유종원·구양수·소순·소식·소철·왕안석·증공이 바로 그들이다. 또 ‘문초(文抄)’는 뛰어난 문장을 선별하였다는 말이다. 당송 문장가 8인의 문장 선집으로는 모곤의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에 앞서 명나라 초기 학자인 주우(朱右)의 《팔선생문집(八先生文集)》과 당순지(唐順之)의 《문편(文編)》이 있었는데, 《당송팔대가문초》는 이 책들을 수용하고 확장하여 성립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이몽양(李夢陽)·하경명(何景明)과 왕세정(王世貞)·이반룡(李攀龍)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전후칠자(前後七子)의 의고적(擬古的)·복고적(復古的) 문학이 성행하였다. 그들은 ‘문필진한(文必秦漢)’ 즉 산문은 반드시 선진(先秦)과 양한(兩漢)의 글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문풍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당송(唐宋)의 고문(古文)을 문장의 전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유파인 당송파(唐宋派)도 성립되었다. 당송파의 대표적 문인으로는 모곤을 비롯하여 당순지, 왕신중(王愼中) 등을 들 수 있다. 당송파의 일원이었던 모곤은 전후칠자의 의고적 문풍에 대항하여 당송고문(唐宋古文)의 전범을 보여주기 위해 《당송팔대가문초》를 편찬하였다.
총 16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앞에는 모곤 자신이 직접 쓴 총서(總敍)가 있고, 다음에 범례(凡例)와 논례(論例)가 붙어 있다. 이어 당송 팔대가의 문장이 권별로 나뉘어져 수록되어 있는데, 매 작가의 작품 앞에는 소서(小序)에 해당하는 ‘문초인(文抄引)’이 있고, 해당 작가의 ‘본전(本傳)’과 수록 작품의 ‘목록(目錄)’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는 모곤(茅坤)이 1579년에 편찬하여 항주(杭州)에서 간행하였다. 그 뒤 1628년에 방응상(方應祥)의 교감본이 간행되었는데 이를 방응상각본(方應祥刻本)이라 한다. 청나라에 들어와 1703년에 소주(蘇州)의 운림대성당(雲林大盛堂)에서 번각(飜刻)되었는데, 이 판본이 세상에 널리 유통되었고,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3종의 간행본이 있는데, 1677년에 간행된 현종실록자본(顯宗實錄字本), 영조 연간에 간행된 무신자본(戊申字本), 1778년에 대구(大邱) 영영(嶺營)에서 간행된 영영판장(嶺營藏板) 목판본이다. 또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 편찬한 《팔대가문십선(八代家文十選)》과 정조(正祖) 때 간행한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 등 초선본(抄選本)이 있다.

4. 내용

권1~권16까지는 〈창려문초(昌黎文抄)〉로 한유의 산문 총 191편이다. 권17~권28까지는 〈유주문초(柳州文抄)〉로 유종원의 산문 130편이다. 권29~권60까지는 〈여릉문초(廬陵文抄)〉로 구양수의 산문 279편이다. 권61~권80까지는 〈여릉사초(廬陵史抄)〉가 덧붙여져 있다. 권81~권96까지는 〈임천문초(臨川文抄)〉로 왕안석의 산문 211편이다. 권97~권106까지는 〈남풍문초(南豐文抄)〉로 증공의 산문 87편이다. 권107~권116까지는 〈노천문초(老泉文抄)〉로 소순의 산문 63편이다. 권117~권144까지는 〈동파문초(東坡文抄)〉로 소식의 산문 249편이다. 권145~권164까지는 〈영빈문초(潁濱文抄)〉로 소철의 산문 165편이다.
편차의 배열은 인물의 생몰년에 따라 이루어져 있고, 각 권 수록된 산문은 문체별로 묶여 있어, 작가별 문체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명나라 전후칠자의 의고적 문풍에 대항하여 당송고문의 전범을 보여주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점과 당시 문학 이론의 쟁점과 그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는 모두 3종이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이 대단하였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 편찬한 《팔대가문십선(八代家文十選)》이 있고, 또 정조(正祖) 때 간행된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은 《당송팔대가문초》 가운데 다시 100편을 정선한 것으로 1781년에 간행해 널리 보급하였다. 그런데 정조는 과거 시험 문제인 책문(策文)에서 “《당송팔대가문초》는 모곤이 후세의 작가들에게 문장의 표본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같은 뛰어난 문장을 배제하고 오직 당송의 문장만 취한 것은 무슨 근거인가?”라고 질문한 일이 있다. 이는 《당송팔대가문초》의 공적을 인정하면서도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수용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한문대계(漢文大系)》를 간행하며 수록한 청(淸)나라 심덕잠(沈德潛)의 《당송팔가문독본(唐宋八家文讀本)》도 《당송팔대가문초》를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6. 참고사항

(1)명언
• “백락이 말을 한 번 돌아보자 그 말 값이 세 배로 뛰었다.[伯樂一顧 價增三培]” 한유(韓愈) 〈위인구천서(爲人求薦書)〉
•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를 함께하여 붕당을 이루고, 소인은 소인과 더불어 이익을 함께하여 붕당을 이룬다.[君子 與君子以同道爲朋 小人 與小人以同利爲朋]” 구양수(歐陽脩) 〈붕당론(朋黨論)〉
•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擊空明兮泝流光]” 소식(蘇軾) 〈전적벽부(前赤壁賦)〉
(2)색인어: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모곤(茅坤), 당송파(唐宋派), 당송고문(唐宋古文), 전후칠자(前後七子), 당송팔가문독본(唐宋八家文讀本), 팔대가문십선(八代家文十選),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
(3)참고문헌
• 역주 당송팔대가문초 한유 1(정태현 외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어학해제〉(김영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唐宋八大家文鈔》(版本源流考述, 鄧銀鵬, 北方文學)
• 〈《당송팔대가문초》의 기원에 관하여〉(백광준, 《중국문학》43)
• 〈唐宋八大家 文選集의 조선에서의 수용과 유통〉(당윤희, 오수형, 《중국문학》66)

【이성민】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