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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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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이 책은 총 294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1084년에 완성하였다. 16왕조 1362년간의 역사를 총람한 중국의 대표적 편년체 역사서로 실제 정치에 보탬이 되는 내용으로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으나, 그 내용의 가치와 서술의 유려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읽히는 명저가 되었다.

2. 편자

(1)성명:사마광(司馬光)(1019~1086)
(2)자(字)·별호(別號):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우부(迂夫), 우수(迂叟)며, 시호는 문정(文正), 태사(太師) 온국공(溫國公)에 추증되어 온공(溫公),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 한다. 별호는 속수선생(涑水先生)이다.
(3)출생지역:중국 섬주(陜州) 하현(夏縣)
(4)주요활동과 생애
사마광의 주요활동기는 송(宋)나라가 건국한 지 100년이 지난 시기로 대내외적 문제점들이 나타나던 시점이었다. 특히 서북방에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가 송나라를 자주 공격하였다. 이에 송나라는 서하에 막대한 세폐(歲幣)를 바치는 조건으로 화의하였는데, 이는 이미 요(遼)나라에 받치는 세폐와 함께 큰 재정적 부담이 되었다. 거기다 군비와 관료의 증대로 인해 만성적 재정적자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왕안석이 중소지주와 소상공인의 입장에서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이것이 신법이다. 그러나 이는 대지주와 대상인들의 반발을 가지고 왔고 사마광과 구양수(歐陽脩) 등을 중심으로 한 구법당이 신법에 반대하면서 송나라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사마광은 인종(仁宗) 보원(寶元) 원년(1038) 20세의 나이로 진사(進士)가 되어 지방관을 역임하고 경사(京師)에 들어왔다. 지간원(知諫院), 한림학사(翰林學士), 권어사중승(權御史中丞), 한림겸시독학사(翰林兼侍讀學士) 등을 역임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여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그는 전국(戰國)에서 오대(五代)까지 연표인 《역년도(歷年圖)》를 지어 영종(英宗)에게 올렸는데, 영종의 칙명으로 전국에서 진 이세(秦二世)까지의 역대명신(歷代名臣)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통지(通知)》 8권을 지어서 올렸다. 이 책을 본 영종은 이 책의 속편을 지을 것을 명하였다. 그러다 사마광이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좌천되면서 중단되었는데, 신종(神宗)이 《통지》의 속찬을 다시 위촉하였다. 신종은 이를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고쳐 불렀으며, 본서는 신종 원풍(元豊) 7년(1084)에 완성되었다.
사마광은 신종(神宗) 때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15년 동안 낙양(洛陽)에서 사서(史書) 편찬에 전념하고 시사(時事)는 말하지 않았다가,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태황태후(太皇太后)가 임조(臨朝)하자 다시 기용되어 좌복야(左僕射)에 올라 조정의 대권을 장악했다. 유지(劉摯), 범순인(范純仁), 범조우(范祖禹), 여대방(呂大防) 등을 기용하고 신법을 철폐하여 구법(舊法)를 회복시켰다. 재상으로 있은 지 8개월 만에 죽었다.

3. 서지사항

신종은 “은(殷)나라가 거울로 삼을 것이 멀리 있지 않으니, 바로 하후(夏后)의 세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는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하고서 본서를 ‘예전의 일을 거울삼아 치도(治道)에 보탬이 된다.’는 뜻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명명하였다. 후대 《통감》으로 약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낙양 서국(書局)에 각 왕조의 정사(正史), 잡사(雜史) 322종의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특히 수당(隋唐) 시대 부분은 구양수(歐陽脩)의 《신당서(新唐書)》 편찬에 수집된 자료들까지 이용하여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마광은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그 시대별 전문가들에게 맡겨 《초권(草卷)》과 《장편(長篇)》을 편찬하게 한 다음, 자신이 이를 선별하여 《자치통감》을 편찬하였다. 특히 시대별로 전문가에게 분담하여 각 시대사를 집필하게 한 것은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역사 편찬 방식이었다.
총 294권으로 이루어진 편년체 관찬서이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23년(B.C. 403)부터 후주(後周) 세종(世宗) 6년(959)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수록하였다. 각 왕조를 기(紀)로 구분하고 각 황제의 재위 순에 따라 연·월·일로 정리한 뒤 주요 사건에 ‘신광왈(臣光曰)’이라는 평론을 더하였다. 《자치통감》은 《춘추》 이후의 역사, 즉 《춘추》의 속편으로 기획되었으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형식을 표본으로 삼았다.

4. 내용

사마광은 편찬 조수로 유서(劉恕), 범조우(范祖禹), 유반(劉攽)을 선발하여, 유서는 삼국(三國)에서 수(隋), 범조우는 당(唐)과 오대(五代), 유반은 한대(漢代)를 분담하여 편찬하게 하였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陳紀) 10권 수기(隋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별도로 방대한 내용을 보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 《자치통감목록(資治通鑑目錄)》 30권, 사실고증의 경위를 기록한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 30권도 편찬하였다. 《자치통감》의 기록 중 당과 오대에 관한 내용은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며, 《자치통감고이》에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서적의 기사도 많이 이용되고 있어 그 가치는 매우 크다. 《자치통감》의 주요 주석으로는 남송(南宋) 말에서 원초(元初)까지 작성한 호삼성(胡三省)의 음주(音注)가 유명하다.

5. 가치와 영향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를 요약한 강지(江贄)의 《통감절요(通鑑節要)》는 우리나라의 한문 학습서적으로 보급되었다. 또한 세종(世宗)은 이 책을 보다 쉽게 읽어볼 수 있도록 훈의(訓義)를 달게 했는데, 세종은 몸소 밤늦게까지 이 책의 교정을 보다가 안질이 생겼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이 책이 바로 사정전훈의본(思政殿訓義本) 《자치통감(資治通鑑)》이다. 이 책은 과거 시험의 과목에도 포함되었다.
《자치통감》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서이다. 이 책은 송대 이후에 역사편찬에 큰 영향을 끼쳐 이를 바탕으로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 왕부지(王夫之)의 《독통감론(讀通鑑論)》까지 수많은 서적이 출판되었다.
모택동(毛澤東)이 이 책을 무려 17번이나 읽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것처럼 근대에도 이 책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마광은 당시 고문(古文)운동의 영향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집필하였고, 인물과 사건을 마치 대하소설처럼 서술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1천 년을 두고도 읽히는 불후의 명작을 완성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이연이 말하기를 ‘이것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고 할 만하구나.’ 하였다.[李淵曰 此可謂掩耳盜鐘]” 〈수기(隋紀)〉
• “하동은 내 넓적다리와 팔꿈치처럼 중요한 군이므로 특별히 그대를 불렀을 따름이요.[河東 吾股肱郡 故特召君耳]” 〈한기(漢紀)〉
• “측천무후가 또 물기를 ‘누사덕은 인재를 잘 알아보는가?’ 하니, 적인걸이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그와 동료로 지냈지만 그가 인재를 잘 알아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하였다. 태후가 말하기를 ‘짐이 경을 안 것은 바로 누사덕이 천거했기 때문이니, 또한 인재를 잘 알아본다 할 만하다.’ 하였다. 적인걸이 궁궐 밖으로 나오며 탄식하기를 ‘누사공은 성대한 덕을 지녔구나. 내가 그에게 포용된 것이 오래되었는데 나는 그의 범주도 살피지도 못하였구나.’ 하였다.[又曰 師德知人乎 對曰 臣嘗同僚 未聞其知人也 太后曰 朕之知卿 乃師德所薦也 亦可謂知人矣 仁傑旣出 歎曰 婁公盛德 我爲其所包容久矣 吾不得窺其際也]” 〈당기(唐紀)〉
(2)색인어: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온공(溫公), 편년체(編年體), 왕안석(王安石),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 사정전훈의자치통감(思政殿訓義資治通鑑), 호삼성음주(胡三省音注)
(3)참고문헌
• 資治通鑑校點本(司馬光 撰 胡三省音註, 中華書局)
• 资治通鉴大辞典(施丁, 沈志华 主编, 吉林人民出版社)
• 資治通鑑今註(李宗侗․夏徳儀等 校註, 臺灣商務印書館).
• 資治通鑒全譯(宋传银 译注, 貴州人民)
• 資治通鑑(권중달 역, 삼화)
• 國譯資治通鑑(加藤繁․公田連太郎 訳註, 景仁文化社)

【이효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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