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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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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학(小學)》은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1187년, 유청지(劉淸之)를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엮은 책이다. 주희가 쓴 〈소학서제(小學書題)〉에 따르면, 삼대(三代)(하은주(夏殷周))부터 전해져오던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글이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로 인해 소실되었고, 이후 여러 전기(傳記) 속에 인용되어 남아있던 내용을 주희가 취합하여 엮은 것이라고 하였다. 《소학》은 어린 아이에게 예절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글이지만 훈육서의 성격뿐 아니라 오륜(五倫) 및 성리(性理)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령을 불문하고 널리 읽혔으며, 《사서집주(四書集註)》와 함께 주희의 사상을 담은 대표적인 유교서로서 중국과 조선에 폭넓게 수용되었다.

2. 저자

(1)성명:주희(朱熹)1130~1200
(2)자(字)·별호(別號):자는 원회(元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목재(牧齋)·운곡노인(雲谷老人)
(3)출생지역:남검주(南劍州) 우계현(尤溪縣)
(4)주요활동과 생애
남송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이전 시대의 유학을 집대성하여 주자학을 새롭게 연 인물이다. 호헌(胡憲), 유면지(劉勉之), 유자휘(劉子翬)에게 사사(師事)하며 불교와 노자의 학문에 흥미를 느꼈지만, 19세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24세에 천주(泉州) 동안(同安)으로 부임하던 중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만나 사사하며 유학에 매진하였다. 장식(張栻), 여조겸(呂祖謙), 육상산(陸象山) 등과 더불어 강학하여 성리학에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논어(論語)》·《맹자(孟子)》·《대학(大學)》·《중용(中庸)》을 묶어 사서(四書) 체계를 수립하고 기존에 전해오던 주석을 취사·정리하여 사서집주를 완성하였다. 71세에 《대학》의 경1장(經一章)과 성의장(誠意章)을 마지막으로 고치고 숨을 거두었으며, 문공(文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5)주요저작:동몽서(童蒙書)로는 《논어훈몽구의(論語訓蒙口義)》·《소학(小學)》 등이 있으며, 사서(四書)를 주석한 《사서집주(四書集註)》·《사서혹문(四書或問)》, 기타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 등이 있다. 또한 그가 남긴 글은 제자들에 의해 《주자문집(朱子文集)》으로, 말은 《주자어류(朱子語類)》로 편찬되었다.

3. 서지사항

주희가 엮은 《소학》은 삼대시절에 존재했다가 진시황에 의해 유실된 글을 여러 전기 속에서 추려 모은 것이다. 서명(書名)은 ‘대인지학(大人之學)’을 의미하는 《대학》과 대칭하여 쓴 것이며, 《소학》에 대한 언급은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의 “〈곡례(曲禮)〉·〈소의(少儀)〉·〈내칙(內則)〉·〈제자직(弟子職)〉과 같은 여러 편은 진실로 《소학》의 지류여예(支流餘裔)이다.[曲禮少儀內則弟子職諸篇 固小學之支流餘裔]”라는 문장에서 보인다. 주희는 〈소학서제〉 첫 문장에서 삼절(三節)(灑掃·應對·進退)과 사도(四道)(愛親·敬長·隆師·親友)를 언급하며, 《소학》이 담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였다. 또한 춘추전국시대 이전과 한대(漢代) 이후 명현들의 사례를 통해 《소학》에서 가르치는 강령을 증명하고 있다.

4. 내용

《소학》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의 내편(內篇)과 〈가언(嘉言)〉, 〈선행(善行)〉의 외편(外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이(李珥)의 《소학집주(小學集註)》 〈총목(總目)〉을 중심으로 각 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입교〉는 교육의 기본 원칙을 서술하면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태어난 뒤 보호하는 자와 스승의 가르침, 학교와 정치의 가르침, 스승과 제자 간의 가르침을 설명하였다. 〈명륜〉은 인간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윤리(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에 대해 서술하였는데, 그 중 부모와 자식 간의 윤리에 대해 논한 분량이 1/3이 넘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오륜 중에서도 父子간의 관계를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신〉은 몸을 공경히 한다는 의미로써 여러 책에서 다룬 경(敬)의 의미를 고찰해보고 경을 잡아 지키는 데에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 〈계고〉는 춘추시대 이전의 사료를 실례로 들어 앞서 설명한 세 편에 내용을 증명한 것이며, 〈가언〉과 〈선행〉은 한대(漢代) 이후의 명현(名賢)과 선철(先哲)들의 격언 또는 행실을 입증하였으며, 각각 세부적으로 〈입교〉·〈명륜〉·〈경신〉의 순서로 나열하고 있다. 〈가언〉과 〈선행〉은 모두 172조목으로, 사부(史部)(66조목)·자부(子部)(82조목)·집부(集部)(2조목)·기타 서적(22조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용되는 행적과 언구는 주로 정호(程顥)·정이(程頤)를 비롯한 북송 도학자들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5. 가치와 영향

《소학》은 송대(宋代)에 처음 판각되어 주희의 문인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다가 주자학이 관학적 지위를 확립하면서부터 빠르게 유포되었다. 이에 《소학》의 내용을 주석한 판본도 함께 유행하였는데, 하사신(何士信)의 《소학집성(小學集成)》, 오눌(吳訥)의 《소학집해(小學集解)》, 진선(陳選)의 《소학집주(小學集註)》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학》이 전래된 시기가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말 주자학이 유입된 시기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는 《소학》을 유학 공부의 입문서로 보아 사서(四書)와 비등한 존재로 인식하였고, 특기할만한 점은 왕실의 주도하에 도서보급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694년에 간행된 이래 대표적인 《소학》 주석서로 사용된 이이의 《소학집주(小學集註)》 역시 어명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이는 기존 중국에서 유행하던 주석서 가운데 하사신(何士信)·오눌(吳訥)·진조(陳祚)·진선(陳選)·정유(程愈)의 주석을 취사·정리하여 《소학집주》를 편찬함으로써 《소학》에 담긴 주자의 사상을 더욱 정밀하게 해석하는데 일조하였다. 이후 왕실의 지속적인 소학서 보급과 교육의 강화는 유교적 규범을 백성들이 익숙히 배움으로써 제반 사회질서를 손쉽게 유지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두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옛날 소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되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히 하는 방도로써 하였으니, 이는 모두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히 하는 근본이 된다.[古者小學 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 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 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 〈소학서제(小學書題)〉
• “왕촉이 말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바꾸지 않는다.’[王蠋曰 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 〈명륜(明倫)〉
•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말하였다. ‘군자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제기(祭器)를 팔지 않으며, 비록 춥더라도 제복(祭服)을 입지 않는다. 집을 지을 적에는 조상 무덤가의 나무를 베지 않는다.’[曲禮曰 君子雖貧 不粥祭器 雖寒不衣祭服 爲宮室不斬於丘木]” 〈명륜(明倫)〉
(2)색인어:소학(小學), 주희(朱熹),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계고(稽古), 가언(嘉言), 선행(善行).
(3)참고문헌
• 소학집주(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 조선의 소학:주석과 번역(정호훈 지음, 소명출판)
• 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윤인숙 지음, 역사비평사)
• 주자학의 소학론과 한국·중국에서의 변용(진원, 인하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進菴 李遂浩의 《小學集注增解》 硏究(성창훈,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영호】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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