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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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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出笥之珍하야 以旌有德이니 在坰之駟 豈及無功이릿고
而臣 首尾四年 叨塵三錫하오니 省躬內疚하야 服寵汗流이니이다
恭惟太皇太后陛下 慈儉自居하사 龍光四達이니이다
德被海宇하니 豈惟一襲之衣 恩結華夷하니 何止리잇고
群賢在馭 自調로되 而臣頃以衰羸 止求安便이니이다
奉宣德意하야 庶幾로되 收斂壯心하야 無復千里之志하오니
更期力報 有愧空言이니이다


12. 대의對衣금대金帶와 말을 하사함에 사례한 두 번째
상자 속에 있는 진귀한 물건을 꺼내어서 이 있는 사람을 표창하는 것이니, 들에 있는 네 필의 말이 어찌 이 없는 사람에게 미친단 말입니까?
은 전후 4년 동안 외람되이 세 번의 하사下賜를 입었으니, 몸을 살펴봄에 마음이 두려워서 영광스러운 옷을 입음에 두렵고 부끄러워 땀이 흐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태황태후太皇太后 폐하께서는 인자함과 검소함으로 자처하시어 용광龍光(훌륭한 광채)이 사방에 이릅니다.
덕이 해내海內에 입혀지니 어찌 다만 한 벌의 옷뿐이며, 은혜가 중화中華와 오랑캐 지역에 맺혀지니 어찌 다만 10의 띠뿐이겠습니까?
여러 현자들을 어거하심에 여섯 고삐가 저절로 조화로웠으나 은 지난번 쇠약하고 파리한 몸으로 다만 편안함을 구했습니다.
폐하의 덕스러운 뜻을 받들어 펴서 행여 바지 다섯 벌의 노래를 바라오나 웅장한 마음을 거두어서 다시는 천 리를 달릴 뜻이 없습니다.
또다시 힘껏 보답할 것을 기약하나 빈말이 될까 부끄럽습니다.


역주
역주1 謝賜對衣金帶馬表 二 : 이 글이 언제 쓰였는지는 자세하지 않으나 아마도 元祐 6년(1091) 8월에 앞의 表와 동시에 쓰여진 듯하다.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도 앞의 표와 같이 ‘右臣伏蒙聖慈特賜臣對衣一裘 金腰帶一條 銀鞍轡馬一匹者’라는 25字가 있다.
역주2 十圍之帶 : 아주 긴 허리띠를 이른다. 圍는 길이를 세는 단위로 통상 1尺을 이르나, 혹 5寸 또는 한 아름을 이르기도 한다.
역주3 六轡 : 고대의 수레는 네 필의 말을 멍에하고 여섯 가닥의 고삐를 사용하였다. 가운데에 있는 두 필의 말을 服馬라고 하고 양쪽에 있는 두 필의 말을 驂馬라고 하는데, 원래 말은 모두 두 개의 고삐가 있으나 두 驂馬의 한 고삐는 각각 고리에 걸어 실제로 사람의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여섯 개이다. 《詩經》 〈秦風 駟驖〉에 “네 필의 검은 말 크기도 하니, 여섯 가닥의 고삐 손에 잡았도다.[駟驖孔阜 六轡在手]”라고 보인다.
역주4 五袴之謠 : 五袴는 바지 다섯 벌을 이르는데, 지방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음을 이른다. 後漢의 廉范은 字가 叔度였는데 蜀郡太守로 나가 불편한 법령을 없애는 등 民生을 안정시키는 정사를 펼치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廉叔度여! 어찌 이리 늦게 왔는가? 백성들이 평소에는 속옷도 입지 못했는데,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되는구나.[廉叔度 來何暮 平生無襦 今五袴]”라고 칭송하였다. 《後漢書 廉范傳》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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