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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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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行文好 而未中孫武之病하니라
古之言兵者 無出於孫子矣
利害之相權 戰守攻圍之法 蓋以百數하니 雖欲加之 而不知所以加之矣
이나 其所短者 智有餘而未知其所以用智하니 此豈非其所大闕歟
夫兵無常形하야 而逆爲之形하고 勝無常處하야 而多爲之地
是以 其說 屢變而不同하야 縱橫委曲하야
期於避害而就利하야 雜然擧之하야 而聽用者之自擇也하니라
是故 不難于用而難于擇하니
擇之爲難者 何也
銳于西而忘于東하고 見其利而不見其所窮하야 得其一說이면 而不知其又有一說也
此豈非用智之難歟
夫智 本非所以敎人이니 以智而敎人者 是君子之急於有功也
變詐汨其外하야 而無守於其中이면 則是五尺童子皆欲爲之하야
使人勇而不自知하고 貪而不顧하야 以陷于難 則有之矣
深山大澤 有天地之寶어늘 無意於寶者 得之하고 操舟於河 舟之逆順 與水之曲折 忘於水者 見之
是故 惟天下之至廉이라야 爲能貪이요 惟天下之至靜이라야 爲能勇이요 惟天下之至信이라야 爲能詐
何者
不役於利也일새니라
夫不役於利 則其見之也明하고 見之也明이면 則其發之也果하나니라
古之善用兵者 見其害而後 見其利하고 見其敗而後 見其成하야 其心 閒而無事
是以 若此明也하나니라
不然하야 兵未交而先志於得이면 則將臨事而惑이리니 雖有大利 尙安得而見之리오
若夫聖人則不然하야 居天下於貪而自居於廉이라 天下之貪者 皆可得而用하고 居天下於勇而自居於靜이라 天下之勇者 皆可得而役하고 居天下於詐而自居於信이라 天下之詐者 皆可得而使하나니라
天下之人 欲有功於此하야 而卽以此自居 則功不可得而成이라
是故 君子居晦以御明이면 則明者畢見하고 居陰以御陽이면 則陽者畢赴하니 夫然後 孫子之智 可得而用也니라
이라하니 君子方其未發也 介然如石之堅하야 若將終身焉者라가 及其發也 不終日而作이라
曰 不役于利 則其見之也明하고 見之也明이면 則其發之也果라하노라
今夫世俗之論 則不然하야 曰 兵者 詭道也
非貪이면 無以取 非勇이면 無以得이요 非詐 無以成이니 廉靜而信者 無用於兵者也라하나니라
嗟夫
世俗之說行이면 則天下紛紛乎如鳥獸之相搏하고 嬰兒之相擊하야 强者傷하고 弱者廢하리니 而天下之亂 何從而已乎


08. 손무孫武에 대한 1
문장文章은 좋으나 손무孫武의 병통에는 적중하지 못하였다.
옛날에 병법兵法을 말한 자로는 손자孫子보다 더 뛰어난 자는 없었다.
이해利害를 서로 저울질하고 기병奇兵정병正兵상생相生하며, 수비하고 공격하고 포위하는 방법이 모두 백 가지로 셀 수 없이 많으니, 이보다 더하고자 하더라도 더할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지혜가 유여有餘하였으나 지혜를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 데 있었으니, 이 어찌 크게 부족한 바가 아니겠는가?
군대(전쟁)에는 일정한 형체가 없어서 미리 형체(진법陣法)를 만들어놓고, 승리에는 기필할 수 있는 정해진 방법이 없어서 다방면으로 승리할 수 있는 자리(대책)를 만들어놓는다.
이 때문에 그 말이 자주 변하여 똑같지 않아서 종횡縱橫하고 이리저리 복잡하였다.
그리하여 해로움을 피하고 이익에 나아가도록 기약해서 이것저것 뒤섞어놓고, 병법兵法을 운용하는 자가 스스로 선택하여 쓰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병법兵法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째서인가?
서쪽에다 마음을 쓰면 동쪽을 잊게 되고, 유리한 것을 보면 곤궁한 것을 보지 못해서, 그 한 가지 설을 얻으면 또다시 한 가지 설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 어찌 지혜를 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지혜는 본래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지혜를 남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군자君子을 세우는 데 급급한 것이다.
권모술수와 속임수가 그 밖을 어지럽혀서 마음속에 지키는 바가 없게 되면 오척 동자들도 모두 공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용맹하여 자신을 알지 못하고 공을 탐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해서 난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깊은 산과 큰 못에 천지의 보물이 있을 경우 보물에 뜻이 없는 자가 이것을 얻고, 강하에서 배를 운행할 적에 배가 물길에 순하고 거슬리는 것과 물의 곡절을 물을 잊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직 천하에 지극히 청렴한 자라야 능히 탐하여 취할 수 있고, 천하에 지극히 고요한 자라야 능히 용감할 수 있고, 오직 천하에 지극히 신의를 지키는 자라야 능히 남을 속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마음이 이익에 의해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익에 의해 동요되지 않으면 보는 것이 분명하고, 보는 것이 분명하면 행동에 과단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 병법兵法을 잘 운용한 자들은 그 해로움을 본 뒤에 그 이로움을 보고, 그 실패를 본 뒤에 그 성공을 보아서 마음이 한가로워 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이와 같이 지혜가 밝았던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여 군대가 교전하기도 전에 먼저 얻음에 뜻을 두면 장차 일에 당하여 미혹될 것이니, 비록 큰 이익이 있으나 어떻게 이것을 보겠는가?
성인聖人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아서, 천하 사람들을 탐하는 쪽에 있게 하고 자신은 청렴한 쪽에 처하므로 천하의 탐하는 자들을 모두 얻어 쓸 수 있으며, 천하 사람들을 용감한 쪽에 있게 하고 자신은 고요한 쪽에 처하므로 천하의 용감한 자들을 모두 얻어서 부릴 수 있으며, 천하 사람들을 속이는 쪽에 있게 하고 자신은 신의에 처하므로 천하의 속이는 자들을 모두 얻어서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공을 세우고자 하여 곧바로 이것을 가지고 자처한다면 공을 이룰 수 없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가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밝음을 어거하면 밝은 자들이 모두 나타나고, 에 있으면서 을 어거하면 에 있는 자들이 모두 달려오니, 이렇게 한 뒤에야 손자孫子의 지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절개가 돌과 같이 굳어 하루를 마치지 않고 떠나가니, 하고 길하다.”라고 하였으니, 군자君子가 막 발동하지 않았을 적에는 지조가 굳어 돌처럼 단단해서 그대로 일생을 마칠 듯이 하다가, 발동함에 미쳐서는 하루를 마치지 않고 떠나간다.
그러므로 “마음이 이익에 의해 동요되지 않으면 보는 것이 분명하고, 보는 것이 분명하면 발동함에 과단성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세속의 의논은 그렇지 않아서 “병법兵法이란 속이는 방법이다.
탐함이 아니면 취할 수가 없고 용맹이 아니면 얻을 수가 없고 속임수가 아니면 성공할 수가 없으니, 청렴하고 고요하고 신의가 있는 것은 병법兵法에는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
아!
슬프다. 세속의 말이 유행되면 천하가 분분紛紛하여 마치 새와 짐승이 서로 공격하고 어린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것과 같게 되어 강한 자는 하고 약한 자는 버려질 것이니, 이러고서 천하의 혼란이 어떻게 그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孫武論 一 : 이 글의 저작 연도는 미상이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에 의하면 東坡가 젊은 시절에 지은 듯하다. 孫武는 춘추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자는 長卿이다. 뛰어난 병법가로 吳나라 闔閭의 軍師가 되어 楚나라를 격파하고 齊나라와 晉나라를 위협하여 제후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으며 후세에 병법의 시조로 불린다. 저서에는 병법서 《孫子兵法》 13편이 있다.
역주2 奇正之相生 : 奇正은 고대 兵法의 용어이다. 전투에서 서로 陣을 치고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을 正이라 하고, 매복하여 기습하는 것을 奇라 한다.
《孫子》 〈兵勢〉에 “戰勢는 奇正에 불과하지만, 奇正의 변화는 이루 다할 수 없는 것이다.[戰勢不過奇正 奇正之變 不可勝窮也]”라고 보인다. 奇와 正을 교묘히 배합하여 서로를 돕게 하는 것을 상생이라고 말한 듯하다.
역주3 易曰……貞吉 : 《周易》 豫卦 六二爻의 爻辭이다. 介于石은 절개가 돌과 같이 견고함을 이르고, 不終日은 기미를 알아 신속하게 떠나감을 이르며, 貞吉은 正道를 지켜 스스로 혼란하지 않으므로 길하다는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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