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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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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奔逸絶塵하니 是時論中
擧子業到此 便是脫凡胎矣리라
夷狄 不可以中國之治治也
譬若禽獸然하야 求其大治하면 必至於大亂하나니
先王知其然이라
是故 以不治治之하시니 治之以不治者 乃所以深治之也
春秋 한대 曰 王者 不治夷狄하니 錄戎 來者不拒 去者不追也라하니라
夫天下之至嚴而用法之至詳者 莫過於春秋하니 凡春秋之書公, 書侯하고 書字, 書名하야 其君得爲諸侯하고 其臣得爲大夫者 擧皆齊, 晉也 不然則齊, 晉之與國也 其書州, 書國하고 書氏, 書人하야 其君不得爲諸侯하고 其臣不得爲大夫者 擧皆秦, 楚也 不然則秦, 楚之與國也
夫齊, 晉之君 所以治其國家하고 擁衛天子하야 而愛養百姓者 豈能盡如古法哉리오
蓋亦出於詐力하고 而參之以仁義 是亦未能純爲中國也
秦, 楚者 亦非獨貪冒無恥하야 肆行而不顧也 蓋亦有秉道行義之君焉하니 是秦, 楚亦未至於純爲夷狄也
齊, 晉之君 不能純爲中國이어늘 而春秋之所予者 常在焉하야 有善則汲汲而書之하야 惟恐其不得聞於後世하고 有過則多方而開赦之하야 惟恐其不得爲君子하며
秦, 楚之君 未至於純爲夷狄이어늘 而春秋之所不予者 常在焉하야 有善則累而後進하고 有惡則略而不錄하야 以爲不足錄也하니 是非獨私於齊, 晉而偏疾於秦, 楚也
以見中國之不可以一日背 而夷狄之不可以一日嚮也니라
其不純者 足以寄其褒貶이면 則其純者 可知矣
曰 天下之至嚴而用法之至詳者 莫如春秋라하노라
夫戎者 豈特如秦, 楚之流入於戎狄而已哉리오
然而春秋書之曰 公會戎於潛이라하야 公無所貶하고 而戎爲可會 是獨何歟
夫戎之不能以會禮會公 亦明矣 學者之所以深疑而求其說也
曰 王者 不治夷狄하니 錄戎 來者不拒 去者不追也라하노라
夫以戎之不可以化誨懷服也 彼其不悍然執兵하야 以與我從事於邊鄙 則已幸矣어늘 又況知有所謂會者하야 而欲行之하니 是豈不足以深嘉其意乎
不然이요 將深責其禮하면 彼將有所不堪하야 而發其憤怒하리니 則其禍大矣
仲尼深憂之하사 因其來而書之以會하사 曰 若是足矣라하시니 將以不治深治之也
由是觀之컨대 春秋之疾戎狄者 非疾純戎狄者 疾夫以中國而流入於戎狄者也니라


10.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는다는
자유분방하여 진세塵世를 초월하였으니, 이 글은 시론時論 가운데 화살 한 발에 독수리를 잡는 훌륭한 솜씨이다.
거자擧子의 공부가 여기에 이른다면 일반의 투식套式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이적夷狄중국中國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다스려서는 안 된다.
이적夷狄은 비유하면 금수禽獸와 같아서 크게 다스려지기를 바라면 반드시 크게 혼란함에 이른다.
선왕先王이 그러함을 아셨다.
이 때문에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리셨으니,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린 것은 바로 깊이 다스린 것이다.
춘추春秋》에 “ 땅에서 회합하였다.”라고 쓰자, 하휴何休가 말하기를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으니, 여기에 과 회합한 것을 쓴 것은 오는 자를 막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천하天下에 지극히 엄격하고 법을 적용함이 지극히 상세한 것은 《춘추春秋》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무릇 《춘추春秋》에 이라고 쓰고 라고 쓰고 를 쓰고 이름을 써서 그 군주가 제후諸侯가 될 수 있고 그 신하가 대부大夫가 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나라와 나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와 나라의 동맹국이며, 라고 쓰고 이라고 쓰고 를 쓰고 을 써서 그 군주가 제후諸侯가 될 수 없고 그 신하가 대부大夫가 될 수 없는 자들은 모두 나라와 나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와 나라의 동맹국이었다.
나라와 나라의 군주가 국가를 다스리고 천자天子를 옹위하여 백성들을 사랑으로 기른 것이 어찌 모두 옛날 법칙대로 하였겠는가?
이들 또한 속임수와 무력에서 나오고 인의仁義를 조금 섞어서 쓴 것이니, 이들 또한 순수한 중국中國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 또한 탐욕스럽고 염치가 없어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돌아보지 않은 것만이 아니요, 또한 를 지키고 를 행한 군주가 있었으니, 나라와 나라도 순수한 이적夷狄이 됨에는 이르지 않은 것이다.
나라와 나라의 군주가 순수하게 중국中國이 되지 못하였는데, 《춘추春秋》에는 항상 이들을 허여하여 잘한 일이 있으면 급급히 기록하여 행여 후세에 알려지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잘못이 있으면 여러 방면으로 너그럽게 용서하여 행여 그들이 군자君子가 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의 군주가 순수하게 이적夷狄이 되지는 않았는데, 《춘추春秋》에는 항상 이들을 허여하지 않아서 잘한 일이 있으면 여러 번 잘한 뒤에야 올려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생략하고 기록하지 않아서 굳이 기록할 것이 못 된다고 여겼으니, 이것은 유독 나라와 나라를 사사로이 친애하고 나라와 나라를 편벽되이 미워한 것이 아니다.
이로써 중국中國은 단 하루도 배반해서는 안 되고, 이적夷狄은 단 하루도 향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 것이다.
순수하게 오랑캐가 되지 않은 자들도 포폄褒貶을 붙일 수 있다고 여긴다면, 순수한 오랑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하기를 “천하天下에 지극히 엄격하고 법을 적용함이 지극히 상세한 것은 《춘추春秋》보다 더한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란 종족은 어찌 다만 융적戎狄으로 흘러들어간 나라와 나라와 같을 뿐이겠는가?
그런데도 《춘추春秋》에 쓰기를 “ 땅에서 회합했다.”라고 하여, 을 폄하한 바가 없고 을 회합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유독 어째서인가?
회합會合하는 로써 과 회합하지 못할 것이 또한 분명하니, 이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깊이 의심해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왕자王者이적夷狄을 다스리지 않으니, 을 기록한 것은 오는 자를 막지 않고 가는 자를 쫓아가지 않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교화하여 가르치고 품어서 복종시킬 수 없는 으로서 저들이 사납게 병기를 잡고 우리와 변방에서 전쟁하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이미 다행인데, 또 더구나 이른바 회합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아서 이것을 행하고자 하였으니, 이 어찌 그 뜻을 깊이 가상히 여길 만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 장차 에게 를 심하게 책망한다면 저들은 장차 감당하지 못하고서 분노를 터뜨릴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화가 크게 된다.
중니仲尼께서 이것을 깊이 걱정하시어 그들이 온 것을 인해서 회합했다고 쓰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으면 충분하다.”라고 하신 것이니, 이것은 장차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깊이 다스리신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건대, 《춘추春秋》에서 융적戎狄을 미워한 것은 순수한 융적戎狄을 미워한 것이 아니요, 중국中國 사람으로서 융적戎狄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미워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王者不治夷狄 : 이 글 또한 治平 2년(1065)의 秘閣(學士院)의 시험에 제출된 6首 가운데 하나이다.
역주2 一射鵰手 : 화살 한 발에 독수리를 잡는 뛰어난 활 솜씨로 여기서는 論議가 적확하고 분명한 글 솜씨를 이른다. 漢 武帝 때의 명장 李廣이 일찍이 匈奴와 싸울 적에 李廣을 따라갔던 中貴人이 흉노 세 사람의 사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돌아오자, 李廣이 “이들은 반드시 독수리를 떨어뜨릴 만한 활 솜씨가 있는 자들이다.”라고 하고는, 곧장 그 흉노들을 추격하여 2명은 사살하고 한 명은 생포함으로써 위엄을 크게 떨쳤었다.
역주3 書公會戎於潛 : 위의 내용은 《春秋》 隱公 2년에 보인다.
역주4 何休 : 129~182. 後漢의 학자로 字가 邵公이며 任城 사람이다. 六經을 정밀히 연구하였으며, 특히 《春秋公羊傳》을 깊이 연구하고 《春秋公羊傳解詁》를 저술하여, 훗날 淸나라의 公羊學派가 일어나게 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위의 내용은 《春秋公羊傳注疏》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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