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暑之變
이 晝與日俱逝
하고 夜與月竝馳
하야 에 屢變而人不知者
는 微之至
요 和之極也
라
曰
할새 遇大風焉
하니 舟中之人
이 如附於
하야 而與之上下
하고 如蹈車輪而行
하야 反逆眩亂
을 不可止
로되
而吾飮食起居如他日하니 吾非有異術也요 惟莫與之爭하야 而聽其所爲라
食中有蛆면 人之見者는 必嘔也로되 其不見而食者는 未嘗嘔也하나니 請察其所從生호리라
論
者
는 必嚥
하고 言糞穢者
은 必唾
하나니 二者未嘗與我接也
면 唾與嚥
이 何從生哉
리오
知其生於我也인댄 則雖與之接이나 而不變은 安之至也라
安則物之感我者輕하고 和則我之應物者順하니 外輕內順이면 而生理備矣라
내가 오자吳子(오자야吳子野)에게 양생술養生術을 물어서 두 글자를 얻었으니, ‘화和’요 ‘안安’이다.
그대는 하늘과 땅이 추위와 더위를 만드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지극한 추위와 더위가 아교를 부러뜨리고 쇠를 녹여 흐르게 하지만 물건들이 병들지 않는 것은 그 변화가 은미하기(서서히 이르기) 때문이다.
추위와 더위의 변화가 낮에는 해와 함께 가고 밤에는 달과 함께 치달려서 구부리고 우러러보는 잠깐 사이에 여러 번 변하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느끼지) 못하는 것은 은미함이 지극하고 화和함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두 지극한 추위와 더위가 서로 찾아와 자주 이른다면 오래전에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내 일찍이 뇌산牢山에서 바다를 항해하여 회하淮河에 갈 적에 큰 바람을 만났는데,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길고桔橰에 붙어 있는 듯하여 배와 함께 오르내리며, 수레바퀴를 밟고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토하고 어지러운 현기증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일어나고 앉기를 평상시와 똑같이 하였으니, 나에게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요, 오직 배와 다투지 않고서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릇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은 모두 외물外物이 아니라 자신인 것이다.
음식 속에 구더기가 있으면 이것을 본 사람은 반드시 구역질을 하지만, 이것을 보지 않고 먹는 자는 구역질을 하지 않으니, 청컨대 구역질이 왜 나오게 되는지를 살펴보겠다.
팔진미八珍味를 논하는 자는 반드시 군침을 흘리고, 더러운 똥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가래침을 뱉으니, 이 두 가지가 일찍이 나와 접하지 않았다면 가래침과 군침이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외물外物에서 생기는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서 생기는 것을 안다면 비록 오물과 접하더라도 변치 않을 것이니, 이는 편안함[안安]이 지극한 것이다.
편안하면 물건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 가볍고, 화和하면 내가 물건에 응하는 것이 순順하니, 외물外物이 가볍고 안(마음)이 순順하면 양생의 이치가 갖춰진다.
오자吳子는 옛날의 고요한 자인데 물건을 살펴봄이 자세하였다.
이 때문에 내 사사로이 그의 말을 기록하여 때때로 살펴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