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以로 未嘗立論也하사 所可得而言者는 唯其歸於至當하시니 斯以爲聖人而已矣시니라
夫子之道는 可由而不可知요 可言而不可議하니 此其不爭爲區區之論하야 以開是非之端이라
是以로 獨得不廢하야 以與天下後世하야 爲仁義禮樂之主하시니라
夫子旣沒에 諸子之欲爲書以傳於後世者는 其意皆存乎爲文하야 汲汲乎惟恐其汨沒而莫吾知也라
히 皆務爲相攻之說
하고 其餘不足數者紛紜於天下
하니라
夫子之道 不幸而有
之徒
하야 各持其私說
하야 以攻乎其外
하니 天下方將惑之
하야 而未知其所適從
이어늘 奈何其弟子門人
이 又內自相攻而不決
고
千載之後에 學者愈衆이로되 而夫子之道 益晦而不明者는 由此之故歟인저
孟子曰 人之性善이라하니 是以로 荀子曰 人之性惡이라하고 而楊子又曰 人之性善惡混이라하니라
孟子旣已據其善이라 是故로 荀子不得不出於惡이요 人之性은 有善惡而已어늘 二子旣已據之라 是以로 揚子亦不得不出於善惡混也라
爲論에 不求其精하고 而務以爲異於人이면 則紛紛之說이 未可以知其所止로라
하니 子思之書
는 皆聖人之微言篤論
이어늘 孟子得之而不善用之
하고 能言其道
로되 而不知其所以爲言之名
이라
擧天下之大하야 而必之以性善之論하야 昭昭乎自以爲的於天下하야 使天下之過者로 莫不欲援弓射之라
聖人之道 造端乎夫婦之所能行하야 而極乎聖人之所不能知하니 造端乎夫婦之所能行이라 是以로 天下無不可學이요 而極乎聖人之所不能知라 是以로 學者不知其所窮이니라
夫如是면 則惻隱足以爲仁이로되 而仁不止於惻隱이요 羞惡足以爲義로되 而義不止於羞惡니 此不亦孟子之所以爲性善之論歟아
子思는 論聖人之道出於天下之所能行하고 而孟子는 論天下之人皆可以行聖人之道하니 此無以異者로되 而子思는 取必於聖人之道하고 孟子는 取必於天下之人이라
故로 夫後世之異議는 皆出於孟子하고 而子思之論은 天下同是而莫或非焉하니 然後에 知子思之善爲論也로라
비록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의 학문을 이해하는 작품은 아니나 문장은 본래 원만하다.
옛날 부자夫子(공자孔子)의 문장文章은 글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자신의 의논을 내세우지 않아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지극히 합당함에 귀결시키셨으니, 이로써 성인聖人이 되셨을 뿐이다.
부자夫子의 도道는 행할 수는 있으나 알 수는 없고, 말할 수는 있으나 의논할 수는 없으니, 이는 하찮은 의논을 다투어서 시비是非의 단서를 열어놓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부자夫子의 도道가 홀로 없어지지 않고 천하와 후대에 전해져서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의 주체가 되신 것이다.
부자夫子께서 돌아가시자, 책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여러 제자弟子들은 그 뜻이 모두 글을 짓는 데 있어서, 급급하게 행여 자신의 사상思想이 매몰되어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모두 논論을 세우기를 좋아하였으니, 논論이 세워짐에 분쟁이 일어났다.
맹자孟子 이후로 순경荀卿과 양웅揚雄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써 서로 공격하는 말을 하였고, 그 나머지 굳이 거론할 가치가 없는 자들도 천하에서 어지럽게 다투었다.
부자夫子의 도道가 불행하게도 노담老聃, 장주莊周, 양주楊朱, 묵적墨翟, 전병田騈, 신도愼到, 신불해申不害, 한비韓非의 무리들이 있어서 각각 그 사사로운 말을 가지고 밖에서 공격하니, 천하 사람들이 여기에 혹해서 따를 바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해서 그 제자와 문인들이 또 안으로 서로 공격하여 해결하지 못하였는가?
천 년이 지난 뒤에 부자夫子의 도道를 배우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으나, 부자夫子의 도道는 더욱 어두워져서 밝아지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옛날 맹자孟子와 순자荀子와 양자揚子(양웅揚雄) 세 사람의 분쟁은 맹자孟子로부터 시작되었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사람의 성性은 선善하다.”라고 하니, 이 때문에 순자荀子는 “사람의 성性이 악惡하다.”라고 하였고, 양자揚子는 또 “사람의 성性은 선善과 악惡이 혼재되어 있다.”라고 한 것이다.
맹자孟子가 이미 성선性善을 차지하였으므로 순자荀子는 성악性惡에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람의 성性은 선善과 악惡이 있을 뿐인데 두 분이 이미 이것을 차지하였으므로, 양자揚子 또한 선善과 악惡이 혼재하였다는 데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논을 세울 적에 정밀함을 구하지 않고 힘써 남과 다르고자 하면 분분한 설이 어디에서 그칠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부자夫子께서는 성性을 말씀하신 적이 없었고, 또한 말씀하신 적이 있더라도 필연적인 의논은 하지 않으셨다.
맹자孟子가 말씀한 성선性善은 모두 스승인 자사子思의 글에서 나왔으니, 자사子思의 글은 모두 성인聖人의 은미한 말씀과 독실한 의논이었는데, 맹자孟子는 이것을 얻어 잘 사용하지 못해서 그 도道를 말씀할 수 있었으나, 그 말씀한 바의 명칭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지극히 큰 천하를 가지고 성선性善의 이론으로 기필하여, 분명하게 스스로 천하의 표적이 되어 천하의 길 가는 자들로 하여금 활을 당겨 쏘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순자荀子와 양자揚子 두 사람이 이론異論을 편 것은 모두 맹자孟子의 잘못인 것이다.
자사子思는 말씀하시기를 “부부夫婦의 어리석음으로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부부夫婦의 불초함으로도 행할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능하지 못한 바가 있다.”라고 하였다.
성인聖人의 도道는 부부夫婦가 능히 행하는 바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이 능히 알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니, 부부夫婦가 능히 행하는 바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 중에 배울 수 없는 사람이 없고, 성인聖人이 알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배우는 자가 그 끝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측은惻隱한 마음이 충분히 인仁이 될 수 있으나 인仁이 측은惻隱에만 그치지 않고,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충분히 의義가 될 수 있으나 의義가 수오羞惡에만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맹자孟子가 성선론性善論을 펴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자사子思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천하 사람들이 능히 행하는 바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였고, 맹자孟子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성인聖人의 도道를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이것은 차이가 없으나, 자사子思는 성인聖人의 도道에서 기필을 취하였고 맹자孟子는 천하 사람들에게서 기필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후세의 이론異論은 모두 맹자孟子에게서 나왔고, 자사子思의 의논은 천하 사람들이 똑같이 옳다고 하여 혹시라도 비난하는 이가 없었으니, 그런 뒤에야 자사子思의 의논이 뛰어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객客을 빌어 주인을 나타내어 천 길 위에서 탄환彈丸을 굴리는 듯 문장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