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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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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多曠達之旨하니 從徙남해南海得之하니라
하니 知不免矣로되 而卒章 乃曰 하야 永嘯長吟하야 頤性養壽者라하니 悼此志之不遂也
旣殺혜중산中散而悔하니 使悔於未殺之前하야 혜중산中散 得免於死者 吾知其掃迹滅사마경왕(影)於人間 如脫兎之投林也리니 采薇혜중산 豈其所難哉리오
하야 有數十손진인 皆因대풍악질론惡疾而得신선전라하니
何者
割棄塵累하고 하니 所以因旤(禍)而取福也니라
하니 不自意全이러니 旣逾年하니 知不死矣
이나 舊苦痔 至是大作하야 呻呼幾百日하니 地無醫藥하고 有亦不效
道士敎吾하야 하야 以淸淨勝之
하니 滋味薰血 旣以自養이요 亦以養蟲이라
自今日以往으로 旦夕 食淡麵四兩하고 猶復念食이어든 則以胡麻茯苓麨足之하야
飮食之外 不啖一物이니
尙恐習性易流혜중산中散손진인眞人之言하야 對病爲藥하야 使손진인誦之日三하야
동파거사東坡居士 汝忘逾年之憂 百日之苦乎
使汝不幸而有혜중산中散之禍 이면 雖欲采薇혜중산이나 豈可得哉
今食麻麥茯苓 多矣라하니
居士則歌以答之하야 曰 事無事之事 百事治兮 味無味之味 五味備兮
茯苓麻麥 有時而匱兮 有則食하고 無則已者 與我無旣兮로다
嗚呼噫嘻
館客不終하니 以是爲愧兮호라


11. 약송
광달曠達한 뜻이 많으니, 이것은 남해南海로 유배 간 뒤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혜중산嵇中散(혜강嵇康)이 〈유분幽憤를 지었는데 화를 면치 못할 줄을 알면서도 마지막 에 말하기를 “산언덕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바위 동굴에서 산발한 채, 길게 휘파람 불고 읊조리면서, 본성을 기르고 수명을 기른다.”라고 하였으니, 이 뜻을 이루지 못함을 서글퍼한 것이다.
사마경왕司馬景王(사마소司馬昭)이 혜중산嵇中散을 죽이고 나서 후회하였으니, 만일 죽이기 전에 잘못을 깨달아서 혜중산嵇中散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가 인간 세상에서 자취와 그림자를 지우고 은둔하기를 마치 그물을 빠져나간 토끼가 숲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이 할 줄을 아니, 고사리를 채취하고 산발하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는가?
손진인孫眞人(손사막孫思邈)이 〈대풍악질론大風惡疾論〉을 지어 말하기를 “《신선전神仙傳》에 기록되어 있는 수십 명의 신선들이 모두 악질惡疾로 인하여 신선의 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어째서인가?
속세의 얽매임을 끊어버리고 영양潁陽유풍遺風을 생각해서였으니, 이 때문에 를 인하여 한 것이다.
내가 처음 를 얻고 영외嶺外(영남嶺南)로 귀양 가니 스스로 목숨이 온전할 줄을 생각하지 못했으나, 해가 지나도록 후명後命이 없으니 죽지 않을 줄을 알았다.
그러나 옛날 고생하던 치질이 이때에 이르러 크게 발작해서 거의 백 일 동안을 신음하였는데, 이 지방에는 의원과 약이 없고 있어도 효험이 없었다.
도사道士는 나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을 물리치고 훈채薰菜와 고기를 끊어서 청정淸淨으로 이기게 하였다.
치질은 이 내 뒤(항문)에 집을 짓고 사니, 맛있는 음식과 고기는 내 몸을 길러주기도 하고, 또한 을 길러주기도 한다.
“오늘부터는 아침저녁으로 담백한 을 먹고, 그래도 음식 생각이 나면 호마胡麻(참깨)와 복령茯苓을 볶은 보리가루로 배를 채우고,
이것을 먹고 마시는 외에는 한 가지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하니,
주인이 비쩍 마르면 객()은 절로 버리고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도 내가 행여 습성에 흔들릴까 두려워하여, 혜중산嵇中散손진인孫眞人의 말을 취해서 병을 치료하는 약처럼 만들어 나로 하여금 하루에 세 번씩 다음과 같은 말을 외우게 하였다.
동파거사東坡居士야, 네가 해를 넘기는 근심과 백 일 동안의 고통을 잊었는가?
만일 네가 불행히도 혜중산嵇中散염백우冉伯牛(염경冉耕)의 병이 있다면, 비록 고사리를 채취하고 산발하고자 하나 어찌 될 수 있겠는가?
지금 호마胡麻와 보리와 복령茯苓을 먹는 것도 다행이다.”
이에 내가 노래로 화답하여 말하기를 “무사한 일을 일삼으면 온갖 일이 다스려지고, 맛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오미五味가 갖춰진다.
복령茯苓호마胡麻와 볶은 보리가루가 때로 부족하지만,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두니, 나에게 다함이 없도다.
아! 슬프다.
을 끝까지 머물게 하지 못하였으니, 내 이것을 부끄러워하노라.” 하였다.


역주
역주1 藥誦 : 이 글은 哲宗 紹聖 2년(1095)에 쓰였다.
역주2 嵇中散 作幽憤詩 : 嵇中散은 嵇康(223~262)을 가리킨 것이다. 字가 叔夜로 魏나라 宿縣 사람인데, 삼국시대 魏나라에서 벼슬하여 中散大夫가 되었으므로 嵇中散이라 칭하였다. 풍류가 뛰어나고 淸談을 잘하여 竹林七賢의 하나가 되었는데, 뒤에 司馬昭에게 시기를 받아 살해되었다. 嵇康이 체포되어 하옥되자, 자신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幽憤〉 詩를 지어 자신의 뜻을 나타내었다.
역주3 采薇山阿 散髮巖岫 : ‘采薇山阿’는 산언덕에서 고사리를 채취하여 먹으며 은거함을 이른다. 옛날 周 武王이 제후로서 天子國인 殷나라를 정벌하자, 伯夷와 叔齊는 “신하로서 군주를 정벌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라고 하며 강력히 간하였다. 武王이 殷나라를 멸망시키고 天子가 되자, 伯夷와 叔齊는 周나라 녹봉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채취하여 먹다가 마침내 굶주려 죽었다. 이후 采薇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함을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散髮은 머리를 풀어 정돈하지 않는 것이고, 巖岫는 산골짝으로 산중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감을 말한 것이다.
역주4 司馬景王 : 司馬昭(211~265)를 가리킨 것으로 景王은 그의 시호이다. 司馬昭는 字가 子上으로 司馬懿의 작은 아들이고 司馬師의 아우인데, 뒤에 아들 司馬炎이 왕위를 세습하여 魏나라를 멸하고 晉나라를 건국하여 武帝가 되자 文帝로 추존되었다.
당시 嵇康은 司馬昭의 측근이었던 鍾會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鍾會가 司馬昭에게 중상하기를 “嵇康은 臥龍이니, 몸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公께서 이 세상에서 염려하실 것은 오직 嵇康 한 명뿐입니다.”라고 하자, 司馬昭가 嵇康을 죄로 엮어 참형에 처하고는 곧바로 후회하였다.
이 내용이 《晉書》 〈嵇康傳〉에 자세히 보이며, 본서 13권의 〈管仲論 一〉에도 “晉 武帝는 臥龍이라 하여 嵇康을 죽였다.[晉武帝以臥龍而殺嵇康]”라고 보이는데, 여기의 武帝는 文帝의 오류이다.
역주5 孫眞人著大風惡疾論 : 孫眞人은 孫思邈(581~682)을 가리킨다. 唐나라 초기의 道士이자 名醫로 華原(지금의 陝西省 耀縣) 사람인데, 제자백가에 통달하고 老莊學에 밝았으며 陰陽과 醫學에 정통하여 百歲가 넘도록 장생하였다. 著書로는 《備急千金要方》․《千金翼方》․《福祿論》․《攝生眞籙》․《銀河精微》 등이 있으며, 太白山에 거주하여 孫眞人으로 알려졌는바, 각종 질병에 대하여 논술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처방을 거의 1만여 帖이나 수집하여 중국 최초의 임상백과전서를 만들었다.
‘大風惡疾’은 疾病의 이름으로 癘風 혹은 癩病으로도 불리는데, 《備急千金要方》 39권의 膽腑方에 보인다. ‘大風惡疾論’이라는 별도의 저서가 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역주6 神仙傳 : 역대 神仙을 기록한 책으로 晉나라 葛洪이 지었는데, 모두 10권으로 94명의 神仙이 수록되어 있다.
역주7 懷潁陽之風 : 潁陽은 潁水의 북쪽 지방을 이른다. 전설에 옛날 高士인 許由와 巢父가 潁陽의 북쪽에 거주하였는데, 堯임금이 許由에게 천하를 사양하였으나 許由는 받지 않고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 하여 潁水에 가서 귀를 씻었으며, 巢父는 소를 끌고 潁水에 가서 물을 먹이려다가 許由가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 물이 오염되었다 하여 상류로 가서 물을 먹였다고 한다. 이후 ‘潁陽의 遺風’은 혼탁한 세상에서 벼슬하지 않고 고결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역주8 吾始得罪 遷嶺表 : 嶺表는 嶺外와 같은 말로 嶺南의 惠州를 가리킨다. 東坡는 哲宗 紹聖 원년(1094)에 죄를 얻어 嶺南의 惠州로 좌천되었다.
역주9 後命 : 최후의 명령이란 뜻으로 賜死하는 명령을 이른다.
역주10 去滋味 絶薰血 : 滋味는 맛있는 음식을 이르고 薰血은 향신료와 고기를 이르는데, 곧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1 痔有蟲館於吾後 : 館은 머무는 것이며 後는 항문으로, 치질을 앓아 蟲이 자신의 항문에 기생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나, 이는 東坡가 치질을 蟲이 기생하여 생기는 것으로 잘못 알고 말한 것이다.
역주12 主人枯槁 則客自棄去 : 주인은 환자인 東坡 자신을 이르고 객은 항문에 기생하는 치질의 蟲을 가리킨 것인데, 주인이 肉食을 하지 않아 지방이 적어지고 몸이 마르면 치질의 蟲이 절로 떠나감을 말한 것이다.
역주13 伯牛之疾 : 伯牛는 孔子의 제자인 冉耕의 字인데, 冉耕은 나쁜 병이 있어 일찍 죽었다. 《論語》 〈雍也〉에 “伯牛가 병을 앓자, 孔子께서 문병하실 적에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天命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 而有斯疾也 斯人也 而有斯疾也]”라고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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