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로 以天爲茫茫
하야 善者以怠
하고 惡者以肆
하나니 은 此皆天之未定者也
라
松柏이 生於山林하야 其始也에 困於蓬蒿하고 厄於牛羊이라가 而其終也에 貫四時, 閱千歲而不改者는 其天이 定也라
國之將興에 必有世德之臣이 厚施而不食其報하나니 然後에 其子孫이 能與守文太平之主로 共天下之福하나니라
蓋聞嘗手植三槐於庭하고 曰 吾子孫에 必有爲三公者라하더니
已而
요 其子
이 相
진종황제眞宗皇帝於
之間
하야 朝廷淸明
하고 天下無事之時
에 享其福祿榮名者 十有八年
이라
今夫寓物於人
하야 明日而取之
라도 有得有否
어늘 而
진공晉公이 修德於身
하야 責報於天
하야 取必於數十年之後
호되 하니 吾是以
로 知天之果可必也
로라
吾不及見
위공魏公이요 而見其子
호니 以直諫
으로 事
인종황제仁宗皇帝하야 出入
시종관侍從將帥三十餘年
이로되 位不滿其德
하니 天將復興王氏也歟
아
世有以
진국공晉진국공公으로 比
者
하니 其雄才直氣
가 不相上下
요 而
의 功名富貴
가 略與王氏等
이나 而忠信仁厚
는 不及
위공魏公父子
하니 由此觀之
컨대 王氏之福
이 蓋未艾也
라
이 與吾遊
하니 好德而文
하야 以世其家
일새 吾是以錄之
하노라
旣相진종眞宗하니 四方砥平이요 歸視其家호니 槐陰滿庭이로다
현자賢者가 반드시 귀하지는 못하고, 인자仁者가 반드시 장수하지는 못한다.
상반된 이 두 가지 중에 장차 어느 것을 가지고 절충하여야 하는가?
내가 들으니, 신포서申包胥가 말하기를 “사람이 많으면 천도天道를 이기고, 천도天道가 정해지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라고 하였다.
세상에 천도天道를 논하는 자들이 모두 천도天道가 정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찾는다.
그러므로 천도天道를 아득하다고 여겨서 선善한 자가 태만해지고 악惡한 자가 방자해지니, 도척盜跖의 장수와 공자孔子․안자顔子의 곤액은 모두 천도天道가 아직 정해지지 못한 것이다.
송백松柏이 산림에서 나서 처음엔 쑥대에게 곤궁을 당하고 소와 양에게 곤액을 당하다가, 종말에는 사시四時를 꿰뚫어 푸르고 천 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으니, 이는 천도天道가 정해진 것이다.
선善과 악惡의 보답이 자손에게 이른다면 그 정함이 오래된 것이다.
내가 본 바와 들은 바와 전해 들은 바를 가지고 상고하건대, 천도天道를 기필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대대로 덕을 쌓은 신하로서 후하게 베풀고 그 보답을 먹지 않은 자가 있었으니, 그런 뒤에야 그 자손들이 문덕文德을 지키는 태평성세의 군주와 천하의 복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고 병부시랑故 兵部侍郞 진국 왕공晉國 王公(왕호王祜)은 후한後漢과 후주後周의 즈음에 현달하고 태조太祖와 태종太宗을 차례로 섬겨 문文․무武와 충忠․효孝를 겸비하니, 천하에서는 공公이 재상이 되기를 바랐으나 공公은 끝내 정직한 도道로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였다.
내 들으니, 공公은 일찍이 손수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뜰에 심고 말씀하기를 “내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三公이 될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아들 위국 문정공魏國 文正公(왕단王旦)이 경덕景德과 상부祥符 연간에 진종황제眞宗皇帝를 도와서 조정이 깨끗하고 천하가 무사하던 때에 복록과 영화로운 이름을 누린 것이 18년이나 되었다.
지금 남에게 물건을 맡기고서 다음날 취하더라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진공晉公은 몸에 덕을 닦아 하늘의 보답을 바라서 수십 년 뒤에 기필코 취하기를, 마치 좌계左契를 잡고서 손을 사귀어 서로 받듯이 하였으니, 내 이 때문에 과연 천도天道를 기필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나는 미처 위공魏公을 뵙지 못하였고 그 아들 의민공懿敏公(왕소王素)을 뵈었는데, 직간直諫으로 인종황제仁宗皇帝를 섬겨 출입하면서 시종관侍從官이 되고 장수가 된 지 30여 년이었으나 지위가 그 덕에 차지 못하였으니, 하늘은 장차 다시 왕씨王氏를 일으키려는가 보다.
어쩌면 그리도 자손들 중에 어진 이가 많은가?
세상에는 진국공晉國公을 당唐나라의 이서균李棲筠에 비하는 자가 있으니, 그 뛰어난 재주와 정직한 기개가 참으로 서로 막상막하이며, 이서균李棲筠의 아들 길보吉甫와 손자 덕유德裕의 공명功名과 부귀富貴가 대략 왕씨王氏와 비등하나, 충신忠信과 인후仁厚함은 위공魏公의 부자에게 미치지 못하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왕씨王氏의 복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의민공懿敏公의 아들 공鞏이 나와 교유하였는데, 덕德을 좋아하고 문장이 있어 집안을 대대로 이어가므로 내 이 때문에 기록하는 것이다.
위공魏公의 공업功業이 회화나무와 함께 싹텄도다.
흙을 쌓아 나무를 심은 노력의 결실은 반드시 대가 지나서야 이루어지는 법,
진종眞宗을 도우니 사방이 숫돌처럼 평평하였고, 돌아와 집안을 보니 회화나무 그늘이 뜰에 가득하도다.
우리들은 소인小人이라 아침에도 저녁을 도모하지 못하여
때를 보아 이익을 맞추려 하니, 어느 겨를에 그 덕을 생각하겠는가?
군자君子가 있지 않다면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왕성王城의 동쪽은 진공晉公의 집이 있는 곳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