軾聞호니 古者에 有貴賤之際하고 有聖賢之分하니 二者는 相勝而不可以相參하니 其勢然也라하니이다
治其貴賤之際면 則不知聖賢之爲高하고 行其聖賢之分이면 則不知貴賤之爲差니이다
昔者
에 之徒 不見諸侯而耕於野
할새 一呼於其門
이면 則攝衣而從之
러니 至於齊魯
하야는 이 하고 因門人以願交於下風
이면 則閉門而不納
하니 此非苟以爲異而已
요 將以明乎聖賢之分
하야 而不參於貴賤之際
니이다
故로 其攝衣而從之也에 君子不以爲畏하고 而其閉門而拒之也에 君子不以爲傲하나니 何則고
士之賢不肖 固有之矣니 子思, 孟軻를 不可以人人而求之나 然而貴賤之際와 聖賢之分二者를 要不可以不知也니이다
世道衰喪하야 不能深明於斯二者하고 而錯行之하야 施之不得其處라
今夫軾은 朝生於草茅塵土之中하고 而夕與於州縣之小吏하야 其官爵勢力이 不足較於世가 亦明矣요 而諸公之貴는 至與人主揖讓周旋而無間하고 大車駟馬至於門者 逡巡而不敢入이어늘
軾也非有公事요 而輒至於庭하야 求以賓客之禮로 見於下執事하니 固已獲罪於貴賤之際矣니이다
雖然이나 當世之君子 不以其愚陋하야 而使與於制擧之末하고
軾亦自忘其不肖하야 而以爲是兩漢之主所孜孜而求之하고 親降色辭而問之政者也라
其才雖不足以庶幾於聖賢之間이나 而學其道하고 治其言하면 則所守者 其分也라하니이다
是故로 踽踽然而來하야 仰不知明公之尊하고 而俯不知其身之賤하야 不由紹介하고 不待辭讓하야 而直言當世之故하야 無所委曲者는 以爲貴賤之際를 非所以施於此也니이다
軾聞호니 治事 不若治人이요 治人이 不若治法이요 治法이 不若治時라하니이다
周之衰也
에 時人
이 莫不
而不立
하니 周雖欲其立
이나 而不可得也
라
秦之衰也에 時人이 莫不貪利而不仁하니 秦雖欲其仁이나 而不可得也라
故로 君臣相蒙하야 而至於危하고 東漢之衰也에 時人이 莫不矯激而奮厲라
軾將論其時之病에 而以爲其權在諸公이라하노니 諸公之所好를 天下莫不好하고 諸公之所惡를 天下莫不惡하니이다
其一曰 用法太密而不求情이요 其二曰 好名太高而不適實이니 此二者는 時之大患也니이다
昔者
에 天下未平而法不立
이면 則人行其私意
하야 仁者遂其仁
하고 勇者致其勇
하야 君子小人
이 莫不以其意從事
하야 而不困於
之間
이라
及其治也엔 天下莫不趨於法하야 不敢用其私意하고 而惟法之知라
故로 雖賢者所爲라도 要以如法而止하고 不敢於法律之外에 有所措意니이다
夫人勝法이면 則法爲虛器요 法勝人이면 則人爲備位요 人與法竝行而不相勝이면 則天下安이니이다
今自
以上
으로 至於宰相
히 皆以奉法循令
으로 爲稱其職
하야
拱手而任法하야 曰 吾豈得自由哉리오하나니 法旣大行故로 人爲備位니이다
其成也, 其敗也와 其治也, 其亂也에 天下皆曰 非我也요 法也라하나니 法之弊가 豈不亦甚矣哉잇가
天下有緩急이면 則功臣左遷而不怨하니 此亦知其君臣之懽이 不以法而相持也니이다
惟天下之無私면 則能於法律之外에 有以效其智하나니 何則고 其自信이 明也일새니이다
夫唐
之間
에 姦臣執政
하야 政以賄成
이러니 德宗發憤
하야 而用
한대 袞一切用法
하야 四方奏請
이 莫有獲者
라
然이나 天下否塞하고 賢愚不分하야 君子不以爲能也라하니이다
昔者聖人之爲天下에 使人各致其能하야 以相濟也하니 不一則不專이요 不專則不能이라
自堯舜之時
로 而
之倫
이 皆不過名一藝
하고 辦一職
하야 以盡其能
이요 至於子孫
하야도 世守其業而不遷
이라
夔不敢自與於知禮하고 而契不敢自任於播種하며 至於三代之際하야도 亦各輸其才而安其習하야 以不相犯躐하니 凡書傳所載者 自非聖人이면 皆止於名一藝, 辦一職이라
故로 其藝未嘗不精하고 而其職未嘗不擧하니 後世之所希望而不可及者는 由此故也니이다
下而至於漢하야도 其君子各務其所長하야 以相左右(佐佑)라
故
로 史之所記武宣之際
에 自
以下
로 皆不過以一能稱於當世
하니이다
夫人各有才하고 才各有小大하니 大者는 安其大而無忽於小하고 小者는 樂其小而無慕於大라
及至後世하야는 上失其道하니 而天下之士 皆有侈心하야 恥以一藝自名하야 而欲盡天下之能事라
是故로 喪其所長하야 而至於無用하니이다 今之士大夫는 其實病此也라
仕者莫不談王道, 述禮樂하야 皆欲復三代, 追堯舜이로되 終於不可行하야 而世務因以不擧하며 學者莫不論天人, 推性命이로되 終於不可究하야 而世敎因以不明이라
自許太高하고 而措意太廣하니 太高則無用이요 太廣則無功이라
是故로 賢人君子 布於天下로되 而事不立하야 聽其言하면 則侈大而可樂이나 責其效하면 則汗漫而無當하니 此皆好名之過니이다
深惟古之聖賢은 建功立業하고 興利捍患하야 至於百工小民之事하야도 皆有可觀하야 不若今世之因循鹵莽하니 其故는 出於此二者歟인저
伏惟 明公은 才略之宏偉와 度量之寬厚와 學術之廣博과 聲名之煒赫이 冠於一時而振於百世하니 百世之所望而正者에 意有所向이면 則天下奔走而趨之하리니
09. 제거制擧에 응시하면서 양제兩制에게 올린 글
정사政事를 논함에 있어 법을 적용하는 것과 명성을 좋아하는 두 조항은 또한 송宋나라 일에 간절하다.
제가 들으니 “옛날에는 귀貴․천賤의 차등이 있고 성聖․현賢의 분별이 있었는데, 두 가지는 서로 억눌러서 양립할 수가 없으니 그 형세가 당연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귀貴․천賤의 차등을 다스리면 성聖․현賢이 높은지를 알지 못하고, 성聖․현賢의 분별만을 행하면 귀貴․천賤의 차등을 알지 못합니다.
옛날 자사子思와 맹가孟軻의 무리들이 제후를 만나보지 않고 들에서 농사지을 적에 향리의 낮은 관리가 문에서 한번 고함치면 자사子思와 맹가孟軻가 옷자락을 걷어잡고 그 명령을 따랐는데,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에 있어서는 천승千乘의 군주가 예물을 가지고 문인을 통하여 그의 아래에서 사귀기를 원하면 문을 닫고 받아주지 않았으니, 이는 구차히 색다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장차 성聖․현賢의 분별을 밝혀서 귀貴․천賤의 차등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옷자락을 걷어잡고 관리의 명령을 따를 적에는 군자가 이를 낮은 관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문을 닫고 거절할 적에는 군자가 이를 오만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어째서이겠습니까?
선비의 어질고 불초함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니, 자사子思와 맹가孟軻와 같기를 모든 사람에게 바랄 수는 없으나 귀貴․천賤의 차등과 성聖․현賢의 분별 이 두 가지는 요컨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도世道가 쇠퇴하여 이 두 가지를 깊이 알지 못하고 뒤섞어 행하여 시행함에 요령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아침에 초야의 진토 가운데서 자라다가 저녁에 주현州縣의 작은 관리로 선발되어 관작과 세력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하며, 제공諸公들의 귀함은 군주와 함께 읍揖하고 사양하고 주선하여 서로 간격이 없는 데에 이르러서 네 필의 말이 끄는 큰 수레로 문에 찾아오는 자들이 머뭇거리며 감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공적公的인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번번이 뜰에 이르러 빈객의 예로 당신의 하집사下執事를 만나고자 하니, 진실로 귀貴․천賤의 차등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세의 군자들이 저를 어리석고 누추하다고 여기지 아니하여 저로 하여금 제거制擧의 말석에 참여하게 하였고,
조정에서는 저를 소원하고 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여 저로 하여금 미친 의논을 아뢰게 하니,
저 또한 스스로 불초함을 잊고서 ‘이것은 양한兩漢의 군주가 부지런히 구했던 바이며, 친히 얼굴빛과 말소리를 낮추어 물었던 정사政事이니,
나의 재주가 비록 성聖․현賢의 사이에 있기를 바랄 수는 없으나 그 도道를 배우고 그 말씀을 전공한다면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그 분수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외롭게 와서 위로는 명공明公의 높음을 알지 못하고 아래로는 자신의 천함을 알지 못한 채, 남의 소개를 통하지 않고 사양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당대의 정사政事를 말하여 완곡히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니, 이는 귀貴․천賤의 차등이 지금 여기에 베풀 때가 아니라고 여겨서입니다.
제가 들으니 “일을 다스리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만 못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법을 다스리는 것만 못하고 법을 다스리는 것은 때를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때라는 것은 나라가 보존되고 망하는 원인이니, 천하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주周나라가 쇠약할 적에 당시 사람들이 구차히 안일하게 지내고 나약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굳게 서지 못하였으니, 주周나라가 비록 굳게 서기를 바랐으나 될 수가 없었습니다.
진秦나라가 쇠약할 적에 당시 사람들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어질지 못하였으니, 진秦나라가 비록 어질게 하고자 하였으나 될 수가 없었습니다.
서한西漢(전한前漢)이 쇠약할 적에 당시 사람들이 유순하고 나약하여 삼가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군주와 신하가 서로 속여 나라가 위태로움에 이르렀으며, 동한東漢(후한後漢)이 쇠약할 적에 당시 사람들이 과격하고 용감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진 이와 불초한 이가 서로 용납하지 못해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이 실로 때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장차 때(지금)의 병통을 논하려 하면서 그 권한이 제공諸公들에게 달려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제공諸公들이 좋아하는 것을 천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고, 제공諸公들이 싫어하는 것을 천하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감히 두 가지 우려되는 일을 가지고 하집사下執事에게 고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법을 너무 치밀하게 적용해서 실정을 구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명성을 너무 좋아해서 실용에 적합하지 못한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때(지금)의 큰 병통입니다.
무엇을 일러 법을 너무 치밀하게 적용해서 실정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옛날 천하가 다스려지지 못하고 법이 확립되지 못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행하여 인仁한 자는 그 인仁함을 이루고 용감한 자는 그 용감함을 이루어, 군자와 소인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 종사하지 않음이 없어서 승묵繩墨(법률)의 사이에서 곤궁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공功을 세우기가 쉬웠고 또한 어지러워지기도 쉬웠습니다.
그런데 천하가 다스려짐에 미쳐서는 천하 사람들이 법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어서 감히 그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을 행하지 못하고 오직 법만을 알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어진 자가 하는 것이라도 요컨대 법과 같이 할 뿐이요, 감히 법률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조처하는 바가 있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이 법을 이기면 법은 쓸모없는 기물이 되고, 법이 사람을 이기면 사람은 자리나 지키게 되며, 사람과 법이 병행하여 서로 억제하지 않으면 천하가 편안해집니다.
지금 일명一命 이상으로부터 재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법령을 받들어 따르는 것을 자기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하여 팔짱을 끼고 법에 맡겨두면서 말하기를 “내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법이 이렇게 크게 행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리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스려지든 혼란하든 천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법이 한 것이다.”라고 하니, 법의 폐단이 어찌 심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한漢나라 고조高祖 때에 유후 장량留侯 張良이 태자의 소부少傅가 되어 숙손통叔孫通의 뒤에 자리하였고, 주창周昌 또한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있다가 낮은 관직인 제후諸侯의 상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천하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이처럼 공신功臣을 좌천시켜도 원망하지 않았으니, 여기에서 군신간의 즐거워함이 법에 따라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천하 사람들이 법에 맡기는 까닭은 어째서입니까?
법에 맡기는 것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데서 생기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은 사사로움이 많은 데서 생깁니다.
오직 천하에 사사로움이 없어야 법률을 벗어나 지혜를 바칠 수 있으니, 왜냐하면 스스로를 믿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唐나라 영태永泰 연간에 간신들이 정권을 잡아 정사政事가 뇌물로 이루어졌는데, 덕종德宗이 분발하여 상곤常袞을 등용하자 상곤常袞은 일체 모든 일에 법을 적용하여 사방에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주청하였으나 누구도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천하가 단절되고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구분되지 못하여 군자들이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우보崔祐甫가 정승이 되어서는 1년이 못 되어 제수한 관리 8백 명이 대부분 그의 친인척이거나 친구였습니다.
혹자가 이것을 비난하자 최우보崔祐甫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친인척과 친구간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들이 뛰어난지 뛰어나지 않은지를 알겠는가?
다만 그 등용한 인물이 어떠한가를 돌아볼 뿐이다.”라고 하니, 군자들이 법을 잘 활용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지금 천하가 범범하여 깊은 계책과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는 것은 모두 법에만 맡기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일러 명성을 너무 좋아해서 실용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옛날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자신의 재능을 다하여 서로 일을 이루게 하였으니,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으면 전일하지 못하고 전일하지 않으면 능하지 못합니다.
요堯․순시대舜時代로부터 백이伯夷와 후기后夔와 직稷과 설契과 같은 무리들이 모두 하나의 재주로 이름나고 하나의 직책을 잘 수행하여 자신의 능함을 다함에 지나지 않았고, 자손에 이르러서도 대대로 그 직업을 지켜서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기后夔는 감히 예禮를 안다고 스스로 허여하지 못하였고 설契은 감히 파종하는 것을 자임하지 못했으며, 삼대시대三代時代에 이르러서도 또한 각자 자기의 재주를 바치고 자기가 익힌 것을 편안히 여겨서 서로 침범하거나 건너뛰지 않았으니, 모든 책에 기재된 자들이 만일 성인이 아니면 모두 한 가지 기예로 이름나고 하나의 직책을 잘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므로 그 재주가 정밀하지 않은 적이 없고 그 직책이 거행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도 미칠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래로 한漢나라에 이르러서도 군자들이 각기 자신의 장점에 힘써서 서로 도왔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 기록된 무제武帝와 선제宣帝 사이에 공손하公孫賀와 위상魏相과 병길邴吉로부터 이하가 모두 한 가지 재능을 가지고 당세에 일컬어짐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있고 재능은 각기 크고 작은 것이 있으니, 재능이 큰 자는 자신의 큰 재능을 편안히 여기면서도 작은 재능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재능이 작은 자는 자신의 작은 재능을 즐거워하고 큰 재능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각각 그 실용에 적합해서 자신의 장점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윗사람이 도道를 잃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건방진 마음을 가져서 한 가지 재주로 이름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천하의 훌륭한 일을 모두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상실하여 쓸모없게 되었으니, 지금 사대부들에게 있는 실제의 병통은 바로 이것입니다.
벼슬하는 자들이 왕도王道를 말하고 예악禮樂을 전술하여 삼대三代를 회복하고 요堯․순舜을 뒤따르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끝내 실행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세상의 일이 거행되지 못하며, 배우는 자가 천인天人의 이치를 논하고 성명性命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끝내 궁구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세상의 가르침이 밝아지지 못합니다.
스스로 허여하기를 너무 높게 하고 뜻을 두기를 너무 넓게 하니, 스스로를 너무 높게 허여하면 쓸모가 없고 뜻을 두기를 너무 넓게 하면 공(효과)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현인과 군자가 천하에 널려 있으나 일이 성립되지 못해서, 그 말을 들어보면 커서 즐거울 만하나 그 효험을 추구하면 우활하고 산만하여 합당한 것이 없으니, 이는 모두 명성을 좋아하는 잘못입니다.
깊이 생각하건대 옛날 성현들은 공업功業을 세우고 이익을 일으키고 환란을 막아서 여러 공인工人과 소민小民의 일에 이르러서도 다 볼 만하여 지금처럼 적당히 얼버무리고 거칠지는 않았으니, 그 연고는 위의 두 가지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명공明公께서는 재질과 지략이 매우 크고 도량이 넓고 학술이 해박하고 명성이 빛나서 한 시대의 으뜸이요 백대百代에 걸쳐 떨쳐질 것이니, 백대의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일에 명공明公께서 뜻을 두신다면 천하 사람들이 분주히 따를 것입니다.
명공明公께서는 시대를 민망히 여기고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계셨으니, 혹시라도 저의 이 말씀에서 취하실 점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보다 더 깊은 내용이 있으나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