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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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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文特紆徐曲折하야 可誦이라
이나 言禮而於器之異宜하니 何關於禮之大者리오
昔者商, 周之際 何其爲禮之易也
其在宗廟朝廷之中 之薦 交於堂上이어든 而天子, 諸侯, 大夫, 卿, 士 하야 하며 樂作于下하고 禮行于上하야 雍容和穆하야 終日而不亂하니라
夫古之人 何其知禮而行之不勞也
當此之時하야 天下之人 惟其習慣而無疑하야 衣服, 器皿, 冠冕, 佩玉 皆其所常用也
是以 其人 入於其間이면 耳目聰明하고 而手足無所忤하야 其身 安於禮之曲折하고 而其心 不亂하야 以能深思禮樂之意
其廉恥退讓之節 睟然見於面하고 而盎然發於其躬하니라
夫是以 能使天下觀其行事하야 而忘其暴戾鄙野之氣하니라
至於後世하야는 風俗變易하고更數千年하야 以至于今하야는 天下之事 已大異矣
이나 天下之人 尙皆記錄三代禮樂之名하야 詳其節目하고 而習其俯仰하야
冠古之冠하고 服古之服하고 而御古之器皿하야
傴僂拳曲하야 勞苦於宗廟朝廷之中이나 區區而莫得其紀하야 交錯紛亂而不中節하니 無足怪也
其所用者 非其素所習也어늘 而强使焉일새니 甚矣夫
後世之好古也
昔者上古之世 蓋嘗有하니 而以爲是足以養生送死하야 而無以加之者矣러니
及其後世聖人하야 以爲不足以大利于天下
是故 易之以宮室하고 新之以籩豆鼎俎之器하야 以濟天下之所不足하야 而盡去太古之法이라
惟其祭祀以交於鬼神이라야 乃始하니 以爲是不忘本이요 而非以爲後世之禮不足用也
是以 退而體其犬豕牛羊하고 實其簠簋籩豆하야 以極今世之美하나니 未聞其牽於上古之說하야 而不決也로라
且方今之人 佩玉服黻하고 冕而垂旒하고 拱手而不知所爲하면 而天下之人 亦且見而笑之하리니 是何所復望於其有以感發天下之心哉리오
且又有所大不安者하니 宗廟之祭 聖人所以追求先祖之神靈하야 庶幾得而享之하야 以安卹孝子之志者也
是以 思其平生起居飮食之際하야 而設其器用하고 薦其酒食호되 皆從其生하야 以冀其來而安之어늘 而後世宗廟之祭 皆用三代之器하니 則是先祖終莫得而安也니라
蓋三代之時 席地而食이라
是以 其器用 各因其所便하야 而爲之高下大小之制러니 今世之禮 坐於牀而食於牀上이라
是以 其器不得不有所變이니 雖正使三代之聖人 生於今而用之라도 亦將以爲便安이시리라
夫三代之視上古 猶今之視三代也니라
三代之器 不可復用矣 而其制禮之意 尙可依倣以爲法也
宗廟之祭 薦之以血毛하고 重之以體薦하야 有以存古之遺風矣어니와 而其餘者 可以易三代之器하고 而用今世之所便하야 以從鬼神之所安이라
惟其 凡所以享古之鬼神者 則皆從其器
하고 擊土鼓하니 此亦各從其所安耳
嗟夫
天下之禮 宏闊而難言하니 自非聖人이면 而何以處此리오
夫推之而不明하고 講之而不詳 則愚實有罪焉이어니와 唯其近於正而易行하야 庶幾天下之安而從之 是則有取焉耳니라


02. 에 대한
문장이 특별히 여유가 있고 곡절이 있어서 읊을 만하다.
그러나 를 말하면서 기물器物에 마땅함이 다름을 언급하였으니, 기물器物의 큰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옛날 나라와 나라의 즈음에는 어쩌면 그리도 를 행하기가 쉬웠던가?
종묘宗廟조정朝廷 가운데에 있을 적에 , 소와 양, 술과 단술이 당상堂上에 교대로 올려지면, 천자天子제후諸侯, 대부大夫가 주선하고 읍양揖讓해서 술잔을 올리고 권하면서 백 번 절하였으며, 음악은 당하堂下에서 연주되고 당상堂上에서 행해져서 온화하고 화목하여 하루를 마쳐도 문란하지 않았다.
저 옛날 사람들은 어쩌면 그리도 를 알아서 를 행하는 데 수고로워하지 않았던가?
이때에 천하 사람들이 오직 이것을 익숙히 익혀서 의심이 없어, 의복衣服기명器皿, 관면冠冕패옥佩玉이 모두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 사이에 들어가면 이목耳目이 총명하고 수족手足이 거슬리는 바가 없어서, 의 세세한 곡절에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혼란하지 아니하여 예악禮樂의 뜻을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염치廉恥겸양謙讓하는 예절이 순수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가득히 몸에 드러났다.
이 때문에 능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행하는 일을 보고서 포악하고 야비한 기운을 잊게 하였던 것이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풍속이 바뀌었고, 또 수천 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일이 이미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도 천하 사람들이 아직도 모두 삼대 예악三代 禮樂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 절목節目을 자세히 밝히고, 몸을 구부리고 우러르는 것을 익힌다.
그리하여 옛날의 관을 쓰고 옛날의 의복을 입고 옛날의 기명器皿을 사용한다.
이에 몸을 구부리고 몸을 굽혀 종묘宗廟조정朝廷에서 노고를 하면서도 구구히 그 줄거리(법도法度)를 알지 못해서 교착交錯하고 분란하여 예절에 맞지 못하니, 이것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그 사용하는 것이 평소 익힌 바가 아닌데 억지로 사용하기 때문이니, 심하다!
후세 사람들이 옛 것을 좋아함이여.
옛날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사람들이 일찍이 둥지에서 살고 토굴 속에서 거처하며 웅덩이를 술동이로 삼고 손으로 움켜 마시며, 기장을 볶고 돼지의 몸통을 가르고 궤부蕢桴토고土鼓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것으로 충분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葬送하면서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후세의 성인聖人에 이르러서는 이것으로 천하를 크게 이롭게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사는 곳을 궁실宮室로 바꾸고 와 솥과 도마의 그릇을 새로 만들어서 천하의 부족한 바를 구제하여 태고太古의 법을 모두 없애버렸다.
오직 귀신鬼神을 사귀는 제사에 있어서야 비로소 피와 털을 올리고 돼지를 해체하여 날고기를 올리고 또 사체四體를 분해하여 데쳐 올렸으니, 이것은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고 후세의 를 쓸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물러가서 개와 돼지, 소와 양의 몸통을 나누고 형갱鉶羹(국그릇)에 담아 지금 세상의 아름다운 맛을 지극히 하였으니, 상고上古의 학설에 이끌려 미약하고 나약해서 결단하지 못했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하였다.
또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패옥佩玉을 차고 슬갑을 차고 면류관에 술을 늘이고 공수拱手하고서 어찌 할 바를 모르면 천하 사람들이 장차 보고 비웃을 것이니, 어찌 다시 천하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감발感發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이보다 크게 온당치 못한 것이 있으니, 종묘宗廟의 제사는 성인聖人이 선조의 신령을 추구追求해서 선조를 제향祭享하여 효자孝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돌아보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평소 그 선조들이 기거하며 음식을 마시고 먹던 즈음을 생각하여 쓰시던 기용器用을 진설하고 술과 밥을 올리되, 모두 생전의 것을 따라서 선조의 신령이 오시어 편안히 흠향하시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후세의 종묘宗廟의 제사는 모두 삼대三代의 기물을 사용하니, 이렇다면 선조의 영혼이 끝내 편안히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삼대三代에는 자리를 깔지 않고 땅을 자리로 삼아서 먹었다.
이 때문에 그 기용器用이 각각 그 편리한 바를 따라서 높고 낮고 크고 작은 제도를 만들었는데, 지금 세상에서 행하는 는 평상에 앉고 평상 위에서 밥을 먹는다.
이 때문에 기물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비록 삼대三代성인聖人이 지금 태어나서 이 기물을 사용하시더라도 장차 편안하다고 여기실 것이다.
그러므로 삼대三代에서 상고시대上古時代를 보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 삼대三代를 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삼대三代의 기물은 다시 쓸 수 없으나 그 를 제정한 뜻은 아직도 그대로 모방하여 법으로 삼을 수 있다.
종묘宗廟의 제사에는 짐승의 피와 털을 올리고 희생犧牲을 해체하여 올리는 것을 소중히 여겨서 옛날의 유풍을 보존할 수 있지만, 그 나머지 제사에는 삼대三代의 기물을 바꾸고 지금 세상에 쓰기 편리한 것을 사용하여 귀신(영혼)들이 편안히 여기심을 따라야 한다.
오직 봄과 가을에 지내는 사직社稷의 제사와 선성先聖선사先師에 대한 석전釋奠석채釋菜로서, 무릇 옛날에 귀신을 제향祭享하는 것들은 모두 그 당시의 기물을 따라야 한다.
나라 사람들이 납제臘祭(납평臘平제사)와 전조田祖신농神農에게 제사할 적에 갈대로 만든 피리를 불고 흙으로 만든 북을 쳤으니, 이 또한 각기 그 편안한 바를 따랐을 뿐이다.
아!
천하天下가 매우 크고 넓어서 말하기 어려우니, 만일 성인聖人이 아니면 어떻게 이것을 잘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을 미루어 부연하면서 분명히 하지 못하고, 강론하면서 자세히 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나의 죄이지만, 오직 바름에 가깝고 행하기 쉬워서 거의 천하 사람들이 편안히 여기고 따름에 있어서는 취할 점이 있는 것이다.


역주
역주1 禮論 : 이 글은 東坡가 젊은 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역주2 籩豆簠簋牛羊酒醴 : 籩․豆․簠․簋는 모두 祭祀 등의 禮式에 사용하는 器物들이다. 籩은 竹器로 과실이나 乾肉을 담았고, 豆는 木器로 김치나 젓갈을 담았으며, 簠는 네모난 竹器로 쌀을 담았고, 簋는 둥근 竹器로 黍稷을 담았다. 牛․羊은 제사에 쓰는 犧牲을 이르고, 酒․醴는 술과 甘酒(단술)를 이른다.
역주3 周旋揖讓 : 禮를 행함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나고 揖하고 사양하는 모든 행동을 이른다.
역주4 獻酬百拜 : 獻酬는 술을 마실 적에 주인과 손님이 공경하게 서로 술잔을 올림을 이르고, 百拜는 여러 번 禮를 행함을 이른다.
역주5 巢居穴處……蕢桴土鼓 : ‘巢居穴處’는 사람들이 아직 집을 짓고 살 줄을 몰라서 나무 위에 둥지를 틀어 살고 땅속에 굴을 파서 사는 것인데, 상고시대 有巢氏가 처음으로 집 짓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하며, 堯임금 때에도 홍수가 범람하여 이렇게 살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孟子》 〈滕文公 下〉에 “堯임금의 때를 당하여 물이 역류해서 中國에 범람하여 뱀과 용이 사니, 사람들이 안정할 곳이 없어서 낮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둥지를 만들었고, 높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굴을 파고 살았다.[當堯之時 水逆行 氾濫於中國 蛇龍居之 民無所定 下者爲巢 上者爲營窟]”라고 보인다.
‘汚樽抔飮’은 옛날 그릇이 없을 적에 땅을 파 웅덩이를 만들고서 이것을 동이로 대용하고 손으로 움켜 마시는 것이며, 蕢桴는 흙덩이로 만든 북채이고, 土鼓는 진흙을 다져서 만든 북이다.
《禮記》 〈禮運〉에 “禮의 처음은 飮食에서 시작되었으니, 기장쌀을 굽고 돼지를 가르며, 웅덩이로 술동이를 만들고, 손으로 움켜마시며, 진흙으로 북채를 만들고, 진흙으로 북을 만들었는데도, 오히려 그 恭敬을 鬼神에게 지극히 할 수 있었다.[夫禮之初 始諸飮食 其燔黍捭豚 汚尊而抔飮 蕢桴而土皷 猶若可以致其敬於鬼神]”라고 하였다.
그 注에 “燔黍는 기장쌀을 불로 달군 돌 위에 놓아서 구워 익게 하는 것이요, 捭豚은 돼지고기를 갈라서 달군 돌 위에서 익히는 것이다. 汚尊은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어서 물을 담는 것이요, 抔飮은 손으로 움켜 마시는 것이다. 蕢桴는 흙덩이를 다져서 북채를 만드는 것이요, 土鼓는 진흙을 다져서 북을 만드는 것이다.
上古時代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거짓이 없어서 비록 간략하고 누추함이 이와 같았으나, 또한 스스로 鬼神에게 恭敬을 다할 수 있었다.[燔黍 以黍米 加於燒石之上 燔之使熟也 捭豚 擘析豚肉 加於燒石之上 而熟之也 汙尊 掘地爲汙坎 以盛水也 抔飮 以手掬而飮之也 蕢桴 摶土塊 爲擊皷之椎也 土皷 築土爲皷也 上古 人心無僞 雖簡陋如此 亦自可以致敬於鬼神也]”라고 보인다.
역주6 薦其血毛……體解而爓之 : 腥은 날고기를 이르고, 爓은 데친 고기를 이른다. 고대의 제사에는 郊祭에는 血을 올리고, 大饗에는 날고기를 올리고, 社稷과 五祀의 祭祀에는 데친 고기를 올렸다. 《禮記 禮器》
역주7 鉶羹 : 고기로 국을 끓여 鉶에 담는 것을 이른다. 鉶은 1斗 정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두 귀와 세 다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뚜껑이 있는데, 士는 鐵, 大夫는 銅, 제후는 白金(銀), 천자는 黃金으로 만들었다. 鉶羹은 소금과 채소를 가미하여 다섯 가지 맛을 낸 육즙을 이르기도 한다. 鉶에 담아내므로 鉶羹이라고 하였다.
역주8 選愞 : 選懦로도 쓰는데, 유순하고 나약한 것을 이른다. 選은 巽과 통한다.
역주9 春秋社稷釋奠釋菜 : 社는 土地神이고 稷은 穀神으로, 이들에게 仲春(2월)과 仲秋(8월)에 제사 지내므로 春秋社稷이라 하였다. 釋奠은 고대에 학교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先聖과 先師에게 제사하는 일종의 典禮이며, 釋菜는 고대에 학교에서 학생이 입학할 적에 미나리와 마름 따위의 채소를 차려놓고 先聖과 先師에게 올리는 典禮이다.
《禮記》 〈文王世子〉에 “무릇 배움은 봄에는 가르치는 官員이 그 先師에게 釋奠을 올리니, 가을과 겨울에도 이와 같이 한다. 무릇 처음에 太學을 세우는 자는 반드시 先聖과 先師에게 釋奠을 올린다.[凡學 春敎官釋奠于其先師 秋冬亦如之 凡始立學者 必釋奠于先聖先師]”라고 하였다.
陳澔의 集說에 “官은 詩書와 禮樂의 가르침을 관장하는 官員이다. 예컨대 봄에 詩歌를 외고 여름에 弦樂을 가르치게 되면 太師가 釋奠을 하고, 창과 방패로 춤추는 것을 가르치게 되면 小樂正과 樂師가 釋奠을 하며, 가을에 禮를 배우고 겨울에 《書經》을 읽게 되면 그 가르치는 官員이 또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釋奠은 다만 祭祀 지내는 물건을 갖다 놓을 뿐이요, 尸童이 없고 음식을 먹고 마시거나 酬酌하는 등의 일이 없으니, 이와 같이 하는 까닭은 그 禮를 행함을 주장하고 功勞에 보답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先師는 前代에 이 일을 밝게 익힌 스승을 이른다. 諸侯가 처음 封地를 받았을 적에 天子가 백성들을 가르칠 것을 명하거든 이에 太學을 세우니, 이른바 ‘처음 太學을 세운다.’는 것이다. 太學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에 先聖과 先師에게 釋奠을 올리니, 四時의 가르침은 평상시의 일일 뿐이므로 先師에게만 釋奠을 올리고 先聖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이다.[官 掌敎詩書禮樂之官也 若春誦夏弦 則太師釋奠 敎干戈 則小樂正及樂師釋奠也 秋學禮 冬讀書 則其官亦如之 釋奠者 但奠置所祭之物而已 無尸 無食飮酬酢等事 所以若此者 以其主於行禮 非報功也 先師 謂前代明習此事之師也 諸侯初受封 天子命之敎 於是立學 所謂始立學也 立學事重 故釋奠于先聖先師 四時之敎 常事耳 故惟釋奠于先師 而不及先聖也]”라고 하였다.
또 《禮記》 〈月令〉에는 “上丁(上旬의 丁日)에 樂正에게 명하여 춤을 익히고 釋菜를 올리게 한다.[上丁 命樂正 習舞釋菜]”라고 하였는데, 陳澔의 集說에 “樂正은 樂官의 우두머리이다. 춤을 익히고 釋菜한다는 것은 장차 춤추는 자에게 춤을 가르치고 익히게 하려면 먼저 釋菜하는 禮로써 先師에게 고함을 이른다.[樂正 樂官之長也 習舞釋菜 謂將敎習舞者 則先以釋菜之禮 告先師也]”라고 하였다.
역주10 周人之祭蜡與田祖也 : 蜡는 蜡祭로 한 해의 농사가 무사히 끝난 것을 감사드리는 제사이다. 周나라 때 12월에 농사에 관련된 여덟 神에게 제사하는 臘平祭를 이르는데, 여덟 신은 先嗇․司嗇․百種․農․郵表畷․禽獸․貓虎․坊水庸이다. 田祖는 처음으로 농사를 경작한 사람으로, 곧 神農氏를 가리킨다.
역주11 吹葦籥 : 葦籥은 고대의 관악기로 갈대로 만든 피리이다. 《禮記》 〈明堂位〉에 “흙으로 만든 북과 흙덩이로 만든 북채와 갈대로 만든 피리는 伊耆氏의 음악이다.[土鼓 蕢桴 葦籥 伊耆氏之樂也]”라고 보인다.
그 集說에 “흙으로 북을 만든 것은 아직 가죽으로 만든 북의 소리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흙덩이로 북채를 만든 것은 아직 나무를 깎는 편리함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갈대로 피리를 만든 것은 대나무를 자르는 정교함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以土爲鼓 未有韗革之聲故也 以凷爲桴 未有斲木之利故也 以葦爲籥 未有截竹之精故也]”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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