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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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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以醫爲喩하야 起盡議論호되 却將正意一證하니라
始吾居鄕 有病寒而欬者
問諸醫한대 不治 且殺人하리라
取其百金而治之하야 飮以하야 攻伐其腎내장하고 燒灼其體膚하고 禁切其飮食之美者러니
期月而百疾作하야 內熱惡寒而欬不已하야 眞蠱者也
又求於醫한대 醫以爲熱이라하야 授之以하야 旦朝吐之하고 暮夜下之하니 於是 始不能食이라
懼而反之하야 雜然幷進 無所不至하야 三易醫而疾愈甚이라
里老父敎之曰
醫之辠 藥之過也 子何疾之有리오
人之生也 以氣爲主하고 食爲輔어늘 今子終日藥不釋口하야 臭味亂于外하고 而百毒戰于內하야 勞其主하고 隔其輔 是以病也
子退而休之하야 謝醫却藥하고 而進所嗜하면 氣完而食美矣리니 則夫藥之良者 可以一飮而效리라
從之하니 朞月而病良已하니라
昔之爲國者 亦然이라
吾觀夫 立法更制하야 以鐫磨鍛鍊其民 可謂極矣
親見其斲喪之禍하야 而收其民於百戰之餘하고 知其厭苦憔悴無聊하야 而不可與有爲也
是以 一切與之休息하야 而天下安하니라
조참하야 召長老諸先生하야 問所以安集百姓한대故諸儒以百數 言人人殊하야 조참未知所定이라
교서膠西개공개공 善治黃老言하고 使人請之한대 개공蓋公 爲言호되 治道 貴淸靜而民自定이라하고 推此類具言之
조참於是 避正堂以舍개공蓋公하고 用其言而大治러니
其後 하야 天下至今稱賢焉하나니라
하야 知公之爲邦人也하고 求其墳墓子孫이나 而不可得하니 慨然懷之
師其言하고 想見其爲人하야 庶幾復見如公者
治新寢於黃堂之北하야 易其弊陋하고 達其蔽塞하며
重門洞開하야 盡城之南北하야 하고 名之曰 蓋公堂이라하야 時從賓客僚吏하야 遊息其間하고 而不敢居하야 以待如公者焉이로라
조참曹參 이어늘개공蓋公 爲之師하니 可謂盛矣로되
而史不記其所終하니 豈非古之 得道而不死者歟
교서膠西 東竝(傍)海하고 하니 其中 多隱君子하야 可聞而不可見하고 可見而不可致하니 安知개공蓋公不往來其間乎리오마는
吾何足以見之리오


01. 개공당蓋公堂에 대한 기문記文
의원醫員을 가지고 비유해서 의논을 시작하여 극진히 말하면서도 바른 뜻을 가지고 별도로 증거를 대었다.
예전에 내가 시골에 살 적에 한병寒病(냉병冷病)을 앓아 기침을 하는 자가 있었다.
의원에게 묻자, 의원이 말하기를 “이것은 고병蠱病이니,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죽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백금百金을 가지고 고약蠱藥을 사서 치료하였는데, 고약蠱藥을 마시자마자 부작용이 일어나 신장腎臟내장內腸을 공격하고 몸과 피부를 태우며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한 달이 지나자 온갖 병이 생겨서 속에 열이 나고 오한이 들고 기침이 그치지 않아서 비쩍 마른 것이 영락없이 고병蠱病을 앓는 자였다.
또다시 의원을 찾아가서 물으니, 의원이 열병熱病이라고 하면서 열을 내리게 하는 한약寒藥을 지어주어 먹었으나, 아침에는 토하고 저녁과 밤에는 설사하니, 이에 비로소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두려워하여 반대로 열약熱藥석종유石鍾乳오훼烏喙를 뒤섞어 함께 복용하자, 생인손과 종기와 옴 그리고 현기증 등의 증상이 모두 나타나서 세 번째로 의원을 바꾸었는데도 병이 더욱 심해졌다.
마을의 노인이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었다.
“이것은 의원이 약을 잘못 쓴 탓이니, 그대에게 무슨 병이 있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기운을 주체로 삼고 음식을 보조로 삼는데, 지금 그대는 종일토록 약을 입에서 떼지 않아서 약의 냄새와 맛이 밖에서 어지럽히고, 온갖 약의 독이 안에서 싸워 주체(기운)를 수고롭게 하고 보좌(음식물)를 막았기 때문에 병든 것이다.
그대가 물러가 편안히 쉬면서 의원을 사절하고 약을 끊고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완전해지고 음식이 맛있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때 좋은 약을 한 번만 마셔도 효험이 날 것이다.”
이에 노인의 말대로 하였더니, 한 달이 지나자 병이 참으로 나았다.
옛날에 나라를 다스린 것도 또한 이러하였다.
내가 보니, 나라는 효공孝公 이래로 시황제始皇帝에 이르기까지 을 세우고 제도를 변경해서 백성들을 연마하고 단련한 것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소하蕭何조참曹參나라의 가혹한 법령이 백성들에게 큰 폐해가 되는 것을 직접 보고서 수많은 전란을 겪은 뒤에 백성들을 수습하려 하였고, 백성들이 전쟁을 고통스럽게 여겨 초췌하고 무료해서, 이 백성들과 더불어 무슨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때문에 일체 백성들에게 휴식을 주어서 천하가 편안하였던 것이다.
조참曹參이 처음 나라 정승이 되어서 장로長老와 여러 선생先生들을 불러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는 방법을 물었으나, 나라의 옛 학자들이 백 명으로 헤아려졌는데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조참曹參이 결정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교서膠西개공蓋公이란 분이 황로黃老의 학설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서 초청하자, 개공蓋公이 말하기를 “정치하는 방도는 깨끗하고 고요함을 귀하게 여기니,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안정된다.”라고 하고는 유추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에 조참曹參정당正堂을 피하여 개공蓋公을 여기에 머물게 하고 그의 말을 따르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그 뒤에 조참曹參나라를 다스리던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조참曹參을 어진 정승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내가 교서膠西의 태수가 되어서 이 이 고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묘소와 자손을 찾았으나 얻을 수 없으니, 서글피 그를 흠모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스승삼고 인품을 상상해보고서 행여 다시 과 같은 분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에 황당黃堂의 북쪽에 새로운 사당을 짓고는 해지고 누추한 것을 바꾸고, 가리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였다.
이중문을 활짝 열어서 의 남쪽과 북쪽을 다하여, 서로 바라보이는 것이 마치 노끈으로 이은 것과 같게 한 다음 ‘개공당蓋公堂’이라 이름하고서, 때로 빈객賓客요리僚吏들을 거느리고 그 사이에 노닐며 쉬되 감히 거처하지 아니하여 과 같은 분을 기다린다.
조참曹參나라의 종신宗臣인데 개공蓋公이 그의 스승이 되었으니, 훌륭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런데도 역사책에 그가 죽은 것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어찌 옛날의 지인至人으로서 를 얻어 죽지 않은 자가 아니겠는가?
교서膠西는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구선九僊에 이르고 북쪽으로 뇌산牢山에 연결되었는데, 이 가운데에는 은군자隱君子가 많아서 이름은 들을 수 있으나 만나볼 수 없고 만나볼 수는 있으나 데려올 수 없으니, 개공蓋公이 그 사이에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내 어찌 그를 만나볼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蓋公堂記 : 이 글에 대하여 王文誥는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4권에서 “東坡는 熙寧 9년(1076) 정월에 黃堂의 북쪽에 正寢(사당)을 짓고 蓋公堂이라 이름한 다음, 날마다 빈객들과 관리들과 함께 여기서 놀고 휴식하였으나 거처하지는 않았는데, 이 〈蓋公堂記〉를 지었다.”라고 설명하였다.
또 이르기를 “내가 살펴보건대, 熙寧 연간에 新法이 시행되어 백성들이 온갖 재물을 수탈당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니, 이는 호랑이와 이리 같았던 秦나라의 暴政과 다를 바가 없었다. 秦나라는 이미 멸망하였으니, 宋나라 또한 장차 이로 말미암아 패망할 듯하였다. 이때 東坡公이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고자 하였으나, 자신이 그러한 지위에 있지 않아서 백성들을 이끌어 구제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또 등용되는 재상들이 모두 적임자가 아님을 깊이 슬퍼하였다. 그러므로 蕭何와 曹參의 어짊에 대해 거듭 경의를 표하였으니, 東坡가 〈蓋公堂記〉에서 말한 것들은 그 感慨함에 기탁한 것이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蓋公은 漢나라 초기의 학자인데, 膠西 사람으로 黃老學에 조예가 깊었다. 蓋公은 그의 姓名이 아니고 公은 그에 대한 존칭으로 이름을 전하지 않는바, 蓋자는 姓이나 地名으로 쓸 경우에는 ‘합’으로 읽는다. 齊나라의 정승이 된 曹參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정치의 요체를 묻자, 蓋公은 “治道는 淸淨과 無爲를 귀하게 여기니,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절로 안정된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曹參이 이 말을 써서 齊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역주2 醫以爲蠱 : 蠱는 사람의 뱃속에 기생하는 벌레라고 하는데, 너무 작아 보이지 않으나 사람의 오장육부를 파먹어 죽게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는 미생물이나 세균 등을 잘못 안 것으로 보인다.
역주3 蠱藥 : 蠱를 驅除하는 약을 이른다.
역주4 纍然 : 纍는 疲勞의 뜻으로, 病의 여러 증상에 시달려 몸이 몹시 피곤하고 지친 것을 이른다.
역주5 寒藥 : 성질이 차가운 약재를 이른다. 체내에 熱毒이 있을 경우 열을 내리고 독을 몰아내기 위해 차가운 약재를 쓴다.
역주6 鍾乳烏喙 : 鍾乳는 石鍾乳로 仙人들이 補陽强壯劑로 복용했다고 하는데,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성욕을 강화하고 사나운 氣를 다스리며 精氣를 굳게 하고 눈을 밝게 하나, 毒性이 있어 효과를 얻기보다는 해로운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烏喙는 天雄과 여기에 붙은 附子를 이르는데, 역시 독성이 많은 熱性 약재이다.
역주7 漂疽癰疥(옹개)眩瞀之狀 : 漂疽는 瘭疽(생인손)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단 조직에 발병하는 化膿性 염증을 이른다. 癰은 털구멍이나 땀구멍에 고름이 든 작은 종기들이 한곳에 모여 생기는 큰 부스럼으로, 색깔이 벌겋고 가운데에 膿點이 생겨 벌집과 같은 모양이 되며, 통증과 열이 심하고 때로는 패혈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생기는 부위에 따라 얼굴이면 ‘面腫’, 등이면 ‘등창’, 목뒤면 ‘발제’라고 한다. 疥는 피부질환인 옴을 이르며, 眩瞀는 현기증을 이른다.
역주8 自孝公已來 至於始皇 : 孝公(B.C. 381~B.C. 338)은 전국시대 秦나라 군주로 이름은 渠梁이고, 春秋時代 五霸의 하나인 穆公의 15대손이다. 商鞅을 등용해서 국정을 일신시켜 秦나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쌓았다.
始皇(B.C. 259~B.C. 210)은 통일왕조 秦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嬴政을 이른다. 흔히 六國으로 불리는 楚․燕․齊․趙․韓․魏를 멸망시켜 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秦나라는 孝公 때에 강성해져 여러 중원의 제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며, 이후 惠王․武王․昭襄王․孝文王․莊襄王을 지나면서 더욱 강성해져 始皇에 이르러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史記 秦紀》
역주9 蕭何曹參 : 蕭何와 曹參은 모두 漢나라의 개국공신이자, 건국초기의 명재상이다. 蕭何(?~B.C. 193)는 韓信․張良과 함께 開國三傑로 꼽힌다. 劉邦이 漢王이 되어 項羽와 천하를 두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일 적에, 蕭何는 關中을 지키면서 兵站과 募兵의 일을 완벽히 수행하여 漢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후 공을 논할 적에 천하제일의 칭호를 받고 酇侯에 봉해졌으며, 통일왕조에서는 丞相이 되어 律令과 典制를 제정함으로써 나라를 안정시켰다.
曹參(?~B.C. 190)은 字가 敬伯으로 沛縣의 옥리였는데, 劉邦이 봉기하자 그를 도와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그 공으로 平陽侯에 봉해졌다. 惠帝 2년에 승상 蕭何가 죽자, 齊나라 재상으로 있다가 蕭何의 후임으로 승상이 되었다.
역주10 以其所以治齊者 治天下 : 蕭何의 뒤를 이어 漢나라의 승상이 된 曹參은 蕭何가 만든 律令과 典制를 하나도 바꾸지 않았으며, 無爲로써 다스려 천하를 안정시켜 명재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역주11 吾爲膠西守 : 膠西는 지금의 山東省 高密市 일대를 이른다. 이 지역은 宋나라 때에 密州에 속해 있었는데, 이때 동파가 知密州事로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2 相望如引繩 : 城의 남쪽과 북쪽이 마치 노끈으로 이은 것처럼 직선으로 막힘이 없어 서로 마주 볼 수 있음을 이른다.
역주13 爲漢宗臣 : 宗臣은 훌륭한 신하를 이른다.
역주14 至人 : 道家에서 말하는 眞人이나 仙人으로 道家의 가르침을 닦아 長生不死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이른다.
역주15 南放于九僊(仙) 北屬之牢山 : 九僊은 九仙으로 지금의 山東省 諸城縣 서남쪽에 있으며, 牢山은 勞山으로 지금의 山東省 卽墨縣 동남쪽에 있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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