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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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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題本小 而文旨特放而遠之라야 纔不鮮腆이니라
象犀珠玉怪珍之物 有悅於人之耳目이로되 而不適於用하며 金石草木絲麻 有適於用이로되 而用之則弊하고 取之則竭하나니
悅於人之耳目而適於用하며 用之而不弊하고 取之而不竭하야 賢不肖之所得 各因其才하고 하야 才分不同이나 而求無不獲者 惟書乎인저
士之生於是時하야 得見者 蓋無幾하니 其學 可謂難矣로되
而皆習於禮樂하고 深於道德하야 非後世君子所及이니라
, 漢以來 作者益衆하고 紙與字畫 日趨於簡便하야 而書益多하야 世莫不有이나 學者益以苟簡 何哉
予猶及見老儒先生 自言 其少時 欲求사기史記, 한서漢書而不可得이요 幸而得之하면 皆手自한서하야 日夜誦讀하야 惟恐不及이러니
近歲市人 轉相摹刻하야 諸子百家之書 日傳萬紙
學者之於書 多且易致如此하니 其文詞學術 當倍蓰於昔人이로되 而後生科擧之士 皆束書不觀하고 遊談無根 此又何也
予友이공택李公擇 少時 讀書於여산廬山오로봉五老峯下백석암白石菴之僧舍러니
이공택公擇旣去 而山中之人 思之하야 指其所居하야이공택氏山房하니 藏書凡九千餘卷이라
이공택公擇 旣已涉其流하고 探其源하며 採剝其華實하고 而咀嚼其膏味하야 以爲己有하야
發於文詞하고見於行事하야 以聞名於當世矣로되
而書固自如也하야 未嘗少損이라
將以遺來者하야 供其無窮之求하야 而各足其才分之所當得이라
是以 不藏於家하고 而藏於其故所居之僧舍하니 仁者之心也
予旣衰且病하야 無所用於世하니 惟得數年之閒하야 盡讀其所未見之書여산廬山 固所願遊而不得者 蓋將老焉이어든 盡發이공택公擇之藏하야拾其餘棄以自補 庶有益乎인저
이공택公擇 求予文以爲記어늘 乃爲一言하야 使來者 知昔之君子見書之難하고 而今之學者有書而不讀 爲可惜也하노라


08. 이씨산방李氏山房장서藏書에 대한 기문記文
제목은 본래 작으나 글의 뜻이 특별히 방달放達하고 원대하니, 이렇게 하여야 오만하고 잘난 체하지 않을 수 있다.
상아象牙서각犀角주옥珠玉과 진귀한 물건은 사람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지만 쓰기에 적당하지 않고, 금석金石초목草木생사生絲마포麻布오곡五穀육재六材는 쓰기에 적당하지만 쓰면 해지고 취하면 다 없어진다.
그런데 사람의 이목耳目을 즐겁게 하면서도 쓰기에 적당하고 써도 해지지 않으며 취하여도 다하지 않아, 현명한 자와 불초한 자의 얻는 바가 각기 그 재능에 따르고 인자仁者지자智者의 소견이 각기 그 분수에 따라서, 재분才分이 똑같지 않더라도 구함에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오직 서책書冊일 것이다.
공자孔子성인聖人이셨는데도 그 배움이 반드시 서책을 봄에서 시작하셨으니, 이때를 당하여 오직 나라의 주하사 노담柱下史 老聃이 서책이 많았고, 한선자韓宣子나라에 간 뒤에야 역상易象과 《노춘추魯春秋》를 보았고, 계찰季札상국上國으로 빙문聘問한 뒤에야 《시경詩經》의 을 얻어 들었고, 나라에는 좌사左史의상倚相만이 《삼분三墳》․《오전五典》․《팔색八色》․《구구九丘》를 읽었다.
선비 중에 이때에 태어나서 육경六經을 본 자가 몇 명이 안 되었으니, 그 배움이 어렵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런데도 모두 예악禮樂에 익숙하고 도덕道德에 심오하여 후세의 군자君子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한시대漢時代 이후로는 작자作者가 더욱 많아지고 종이와 글자의 획이 날로 간편해져 서책이 더욱 많아져서 세상에 있지 않은 곳이 없는데도, 배우는 자가 더욱 구차해지고 간략해짐은 어째서인가?
나도 오히려 노유선생老儒先生들이 “젊었을 적에는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였고, 다행히 얻으면 모두 손수 직접 써서 밤낮으로 외고 읽어 행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라고 직접 말씀하는 것을 보았었다.
근세에는 상인商人들이 돌려가며 서로 모각模刻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이 하루에도 만 장이나 전해진다.
배우는 자들이 서책에 대하여 많고 또 구하기 쉬움이 이와 같으니, 그 문사文詞와 학술이 옛사람보다 마땅히 배가 되고 다섯 배가 되어야 할 터인데, 과거 보는 후생後生의 선비들이 모두 서책을 묶어두고 보지 않으며 근거 없는 것을 이리저리 말하니, 이는 또 어째서인가?
나의 벗인 이공택李公擇(이상李常)이 젊었을 적에 여산廬山오로봉五老峰 아래 백석암白石菴승방僧房에서 책을 읽었다.
이공택李公擇이 떠나고 나서 산중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그가 거처하던 곳을 가리켜 ‘이씨산방李氏山房’이라 하였는데, 장서藏書가 모두 9천여 권이었다.
이공택李公擇은 이미 그 책 속의 내용을 섭렵하고 근원을 탐구하였으며, 꽃과 열매를 채집하고 기름진 맛을 씹어 음미하여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
그리하여 문장에 드러내고 행사에 나타내어 당세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책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이공택李公擇은 장차 이것을 후생들에게 물려주어서 그들의 무궁한 요구에 제공하여, 각기 재분才分의 얻은 바를 충족시켜 주려 하였다.
이 때문에 자기 집에 보관하지 않고 옛날 거처하던 승방僧房에 보관하였으니, 이는 인자仁者의 마음이다.
나는 이미 노쇠하고 또 병들어 세상에 쓰일 수 없으니, 행여 몇 년의 시간을 얻어서 아직 보지 못한 책을 다 읽었으면 하며, 여산廬山은 진실로 유람하기를 원하였으나 가보지 못한 곳이니, 장차 치사致仕하고는 이공택李公擇의 장서들을 모두 꺼내어 그가 버린 것들을 주워서 스스로 보탠다면 행여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이공택李公擇이 나에게 글을 지어 이 사실을 기록해줄 것을 부탁하니, 이에 나는 한마디 말을 하여, 후생들로 하여금 옛날 군자君子들은 책을 보는 것이 어려웠고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책이 있어도 읽지 않는 것이 애석한 일임을 알게 하노라.


역주
역주1 李氏山房藏書記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4권에 의하면 東坡가 熙寧 9년(1076) 11월 1일에 李常을 위하여 〈李氏山房藏書記〉를 지었다고 한다. 李氏는 李常으로 자가 公擇이고 建昌 사람이며 벼슬이 御史中丞에 이르렀는데, 東坡의 지우로 王安石의 新法을 극력 반대하였다. 어려서 廬山에 있는 白石菴의 僧舍에서 글을 읽었는데, 뒤에 소장했던 藏書 1만여 권을 이곳에 보관하여 李氏山房이라 이름하고 배우는 자들에게 개방하였다.
역주2 五穀六材 : 五穀은 다섯 가지 곡식으로 벼․기장․피․보리․콩이며, 六材는 여섯 가지 나무로 개암나무․밤나무․椅나무․오동나무․가래나무․옻나무인데, 《詩經》 〈衛風 定之方中〉에 “개암나무와 밤나무, 椅나무와 오동나무, 가래나무와 옻나무를 심으니, 이것을 베어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도다.[樹之榛栗椅桐梓漆 爰伐琴瑟]”라고 보인다.
이 가운데 개암나무와 밤나무는 과목이고 나머지 네 나무는 모두 좋은 재목이다. 따라서 六材는 여섯 가지 재목이 되어야 하는데 겨우 네 가지뿐이라 하여 이것을 나무로 보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재료인 土․金․石․木․獸․草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앞의 五穀과 맞춰볼 때 이는 단지 《詩經》에서 말한 六木을 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역주3 仁智之所見 各隨其分 : 仁者와 智者가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 각기 달라 모두 그 분수를 따른다는 말로, 《周易》 〈繫辭傳 上〉에 “仁者는 이를 보고 仁이라 이르고, 智者는 이를 보고 智라 이르며, 백성들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君子의 道가 드문 것이다.[仁者見之 謂之仁 知者見之 謂之知 百姓日用而不知 故君子之道鮮矣]”라고 보인다. 이는 곧 仁者는 仁만 알고 智者는 智만 알아 仁과 智를 어우르지 못함을 이른다.
역주4 周之柱下史老聃 爲多書 : 柱下史는 周나라 왕실의 守藏室을 관장하던 史官을 이른다. 老聃은 춘추시대 철학가 老子로 孔子와 동시대 인물인데 道家의 창시자이다. ‘多書’는 老聃이 柱下史로 周나라 왕실 守藏室의 많은 서책을 관장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韓宣子適魯然後 見易象與魯春秋 : 韓宣子는 전국시대 晉나라의 上卿으로 이름이 起인데, 晉 平公의 집정대신이었다. 易象은 《周易》 上․下經의 象辭이고, 《魯春秋》는 魯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昭公 2년에 “晉侯가 韓宣子를 魯나라에 보내 聘問하고, 또 執政이 된 것을 고하기 위해 와서 魯君에게 朝見한 것이니, 禮에 맞았다. 韓宣子가 太史氏의 집에 가서 圖書를 구경할 적에 易象과 《魯春秋》를 보고 말하기를 ‘周나라 禮가 모두 魯나라에 있구나. 나는 오늘에야 周公의 德과 周나라가 왕이 된 까닭을 알았다.’라고 하였다.[晉侯使韓宣子來聘 且告爲政而來見 禮也 觀書於太史氏 見易象與魯春秋 曰 周禮盡在魯矣 吾乃今知周公之德與周之所以王也]”라고 보인다.
역주6 季札……得聞詩之風雅頌 : 季札은 춘추시대 吳나라 公子인데, 吳王 壽夢의 막내아들로 어진 德이 있어 壽夢이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사양하고 延陵에 封해졌기 때문에 延陵季子로 일컬어졌다. 上國은 魯나라를 이른다.
風․雅․頌은 《詩經》에 실린 詩를 내용별로 분류한 것으로, 《詩經》은 15개국의 風과 〈大雅〉․〈小雅〉의 雅, 〈周頌〉․〈商頌〉․〈魯頌〉의 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襄公 29년에 季札이 魯나라에 聘問 와서 周나라의 樂舞를 보여줄 것을 청하자, 襄公이 그를 위해 風․雅․頌의 여러 곡들을 연주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7 楚獨有左史倚相 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 : 左史는 관명으로 춘추시대에 임금의 좌측에서 임금을 모시면서 임금의 말을 기록하는 史官이고, 倚相은 楚 靈王 때의 左史로 당대에 뛰어난 학자였다.
《三墳》․《五典》․《八索》․《九丘》는 모두 古書의 이름인데, 孔安國의 〈尙書序〉에 의하면 《三墳》은 三皇인 伏羲, 神農, 黃帝의 글이고, 《五典》은 五帝인 少昊, 顓頊, 高辛, 唐(堯), 虞(舜)의 글이고, 《八索》은 八卦에 관한 책이고, 《九丘》는 九州에 대한 책이라고 한다.
역주8 六經 : 儒敎의 여섯 가지 經典인 《詩經》․《書經》․《禮記》․《樂經》․《易經》․《春秋》를 가리키는데, 《樂經》은 樂譜를 기록한 책으로 보이나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그 理論만이 《禮記》 〈樂記〉에 기재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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