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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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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禪旨 彼所謂信手拈來로되 頭頭是道矣니라
觀世音 由聞而覺하니 始於聞而能無所聞하고 始於無所聞而能無所不聞이라
雖然이나 非無身이면 無以擧千萬億身之衆이요 非千萬億身이면 無以示無身之至
散而爲千萬億身하고 聚而爲 八萬四千寶目하니 其道一爾니라
吾嘗觀於此하니 吾頭髮 不可勝數 而身毛孔 亦不可勝數
牽一髮이면 而頭爲之動하고 拔一毛 而身爲之變하니 然則髮皆吾頭 而毛孔皆吾身也
彼皆吾頭로되 而不能爲頭之用하고 彼皆吾身이로되 而不能具身之智 則物有以亂之矣
吾將使世人으로 左手運斤而右手執削하고 目數飛雁而耳節鳴鼓하고 首肯旁(傍)人而足識梯級이면 雖有智者라도 有所不暇矣어든 而況千手異執而千目各視乎
及吾燕坐寂然하야 心念凝黙하야는 湛然如大明鏡하니 人鬼鳥獸 雜陳乎吾前하고 色聲香味 交遘乎吾體하야 心雖不起 而物無不接하고 接必有道하니 卽千手之出 千目之運 雖未可得見이나 而理則具矣
彼佛菩薩亦然하니 雖一身不成二佛이나 非有他也
觸而不亂하고 至而能應하야 理有必至 而何獨疑於大悲乎
성도成都 西南大성도會也
佛事最勝이나 而大悲之像 未睹其傑이라
有法師敏行者 能讀하야 博通其義하고 欲以 爲一方首하야 乃以으로 作菩薩像하니 端嚴妙麗하야 具慈愍性이라
手臂錯出하야 開合捧執하고 指彈摩拊하야 千態具備하며 手各有目하야 無妄擧者
復作大閣하야 以覆菩薩호되 雄偉壯峙하야 工與像稱하니 都人作禮하야 因敬生悟하니라
余游於四方 二十餘年矣
雖未得歸 而想見其處러니 민행敏行 使其徒법진法震乞文하고 爲道其所以然者
且頌之曰
吾觀世間人호니
兩目兩手臂로되
物至不能應하야
狂惑失所措
其有欲應者
顚倒作思慮
思慮非眞實이니
無異無手目이라
菩薩千手目
與一手目同이라
物至心亦至하야
曾不作思慮
隨其所當應하야
無不得其當이라
引弓挾白羽하고
劍盾諸械器하며
經卷及香花
珊瑚大寶炬
所遇無不執하고
所執無有疑
緣何得無疑
以我
若猶有心者
千手當千心이라
一人而千心이면
內自相攫攘이니
何暇能應物이리오
千手無一心이면
手手得其處
稽首大悲尊하야
願度一切衆하노니
皆證無心法하고
皆具千手目이어다
당형천唐荊川曰 此翁 素精於佛家之言하니라
소장공蘇長公 於禪宗 本屬妙悟하야 而其爲記銘頌 種種出世人이라
予故錄而存之하노라


10. 대비각大悲閣에 대한 기문記文
선종禪宗의 뜻은 저 불가佛家에서 이른바 ‘손 가는 대로 뽑아 와도 곳곳마다 모두가 이다.’라는 것이다.
대자비大慈悲관세음觀世音의 화신이다.
관세음觀世音은 들음을 통하여 깨닫는데, 듣는 데서 시작하였으나 듣는 바가 없고, 들음이 없는 데서 시작하였으나 듣지 못하는 바가 없다.
듣는 바가 없으면 비록 몸이 없더라도 괜찮고, 듣지 못하는 바가 없으면 비록 천만억 개의 몸이 있더라도 괜찮은데, 하물며 손과 눈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나 몸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천만억 개나 되는 많은 몸을 들 수 없고, 천만억 개의 몸이 아니면 몸이 없는 지극함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흩어지면 천만억 개의 몸이 되고, 모이면 8만4천 개의 모타라母陀羅의 팔과 8만4천 개의 청정淸淨한 보배로운 눈이 되는 것이니, 그 는 똑같은 것이다.
옛날 내 일찍이 이것을 살펴보았으니, 나의 머리털은 이루 셀 수 없이 많고, 또 내 몸의 모공毛孔도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머리털 하나를 잡아당기면 이 때문에 머리가 움직이고, 터럭 하나를 뽑으면 이 때문에 몸통이 변하니, 그렇다면 머리털이 모두 내 머리인 것이요 모공毛孔이 모두 내 몸통인 것이다.
저 머리털이 모두 다 내 머리인데 머리의 쓰임이 되지 못하고, 저 모공毛孔이 모두 다 내 몸통인데 몸통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다면, 물건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이다.
내 장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왼손으로는 자귀를 휘두르면서 오른손으로는 삭도削刀(대패)를 잡게 하고, 눈으로는 날아가는 기러기를 세면서 귀로는 울리는 북소리의 박자를 맞추게 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옆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발로는 계단을 세며 올라가게 한다면,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하물며 천 개의 손이 다른 물건을 잡고 천 개의 눈이 각기 다른 것을 봄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다가 내가 편안히 앉아 조용하게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여 고요하게 있으면 마음이 깨끗하기가 큰 거울과 같으니, 이렇게 되면 사람과 귀신, 새와 짐승이 내 눈 앞에서 뒤섞여 진열되고,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이 내 몸에 서로 만나서, 마음은 비록 일어나지 않으나 물건을 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접하면 반드시 도리道理가 있으니, 이렇다면 천 개의 손을 내미는 것과 천 개의 눈을 운용하는 것을 비록 볼 수는 없으나, 이치는 갖춰져 있는 것이다.
저 부처와 보살菩薩 또한 그러하니, 비록 한 몸이 두 부처가 될 수는 없으나, 한 부처가 항하사恒河沙의 여러 나라를 두루 하는 것은 딴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촉하여도 어지럽지 않고 이르면 능히 대응하여, 이치가 반드시 지극함이 있는 것이니, 어찌 홀로 대자비大慈悲천수천안千手千眼을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성도成都는 서남쪽 지방의 큰 도회지이다.
불사佛事가 가장 많았으나 웅장한 대자비大慈悲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법사 민행法師 敏行이란 자가 내교內敎외교外敎를 읽어서 그 뜻을 두루 통달하고는, 여환삼매如幻三昧로 한 지방의 으뜸이 되고자 하여 마침내 큰 단향檀香을 가지고 보살상菩薩像을 만드니, 이 보살상은 단정하고 엄숙하고 묘하고 화려하면서 인자하고 측은히 여기는 성품을 갖추고 있었다.
손과 팔뚝이 번갈아 나와 열렸다 모였다 하면서 물건을 잡고, 손가락으로 튕기고 만지고 어루만짐에 천태만상이 구비되었으며, 손에는 각각 눈이 있어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큰 을 지어서 보살상菩薩像을 덮었는데, 웅장하고 우뚝 솟아 있어 그 공교함이 보살상과 걸맞으니, 모든 사람들이 를 갖추어 공경심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가 사방에 떠돌아다닌 지 20여 년이 되었다.
비록 내 고향에 돌아가지는 못했으나 그곳을 상상해보곤 하였는데, 민행敏行문도門徒법진法震을 나에게 보내어 글을 청하고 이렇게 된 내용을 말하였다.
이에 또 을 짓는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니
두 눈에 두 손과 팔뚝이 있으나
물건이 이르면 능히 대응하지 못해서
사리에 어둡고 미혹되어 수족을 둘 바를 모른다.
그리고 응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전도顚倒되어 억지로 사려思慮를 일으킨다.
억지로 일으키는 사려思慮는 진실이 아니니
이것은 손과 눈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보살菩薩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은
한 개의 손과 한 개의 눈과 똑같다.
물건이 이르면 마음 또한 이르러서
일찍이 사려思慮를 일으키지 않는다.
마땅히 응할 바에 따라서
합당함을 얻지 못함이 없다.
때로는 활을 당겨 백우전白羽箭을 끼우고
과 방패와 여러 병기를 다루며
경서經書의 책과 향기로운 꽃과
사발의 물과 푸른 버들의 가지와
산호珊瑚와 큰 보배로운 횃불과
불주拂麈와 붉은 등나무 지팡이를
만나면 모두 손에 잡고
손에 잡으면 의심이 없다.
어찌 이렇게 의심이 없는가?
자신이 무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마음을 두고 있는 자는
천 개의 손이 천 개의 마음에 당한다.
한 사람이 천 개의 마음을 갖게 되면
안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찢고 빼앗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물건에 응할 수 있겠는가?
천 개의 손에 한 마음이 없으면
손마다 그 합당함을 얻게 된다.
대비존大悲尊에 머리를 조아리고서
모든 중생衆生을 제도하기를 원하노니
모두 무심법無心法을 증명하고
모두 천수千手천목千目을 갖추게 하소서.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이 노인이 평소 불가佛家의 학설에 정통하였다.”
소장공蘇長公선종禪宗에 있어서 본래 묘오妙悟에 해당하여 기문記文명문銘文, 를 지을 적에 종종 세상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났다.
그러므로 내가 기록하여 여기에 두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大悲閣記 : 本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成都大悲閣記〉로 되어 있다.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3권에 “東坡가 熙寧 8년(1075) 11월에 敏行을 위하여 〈成都大悲閣記〉를 지었다.”라고 보인다. 이때 東坡는 知密州事로 재임 중이었다.
역주2 大悲者 觀世音之變也 : 大悲는 불교 용어로 悲는 慈悲를 이른다. 부처가 衆生들이 모두 해탈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비로운 마음이 광대하다 하여 大悲라고 칭하는 것이다.
觀世音은 불교에 있어 慈悲를 관장하는 菩薩의 이름으로, 지혜를 관장하는 大勢至菩薩과 함께 阿彌陀佛을 모시고 중생들을 교화시킨다. 世音은 세상의 중생들이 호소하는 소리이며 觀은 이를 경청함을 이른다. 菩薩은 대승불교에 있어 현세나 내세에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수행자로, 위로 菩提(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 이상적인 수행자를 이른다. 觀世音은 唐나라 때에는 太宗 李世民의 이름을 휘하여 觀音이라고 칭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觀自在菩薩로 칭하기도 한다. 變은 化身을 이른다.
역주3 能無所聞……而況於手與目乎 : 觀世音은 世俗의 色界를 초월하여 중생들의 소리를 듣는 바도 없고 듣지 못하는 바도 없으므로 무수히 많은 손과 눈이 있어도 괜찮음을 말한 것인데, 觀世音은 흔히 ‘千手千眼觀世音’이라 불리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4 八萬四千母陀羅臂 : 八萬四千은 실제의 수가 아니라 무수하게 많음을 이르는 불교적 표현으로 八萬四千의 번뇌, 八萬四千의 법문 등으로 쓰인다. 母陀羅는 梵語의 음역으로 印相을 이른다. 좁게는 부처나 보살의 손 또는 손가락으로 이루어지는 특정한 모습으로 禪定印․轉法輪印․施無畏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넓게는 부처의 心印 혹 佛法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5 淸淨 : 불교 용어로 죄악과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맑고 고요한 인식 상태를 이르는데, 그 종국적인 상태를 말하여 涅槃(열반)을 뜻하기도 한다. 淸靜으로도 쓰인다.
역주6 一佛能遍河沙諸國 : 河는 恒河로 인도의 갠지스강을 이르고, 沙는 모래를 이르는데, 恒河沙는 恒河의 모래를 다 합친 數란 뜻으로 무한히 많음을 이른다. 河沙諸國은 바로 沙界로 三千大千世界를 이른다.
역주7 內外敎 : 內敎는 불교를 이르고, 外敎는 불교 이외의 儒敎 등 九流의 가르침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內外敎의 경전을 가리킨다. 九流는 儒家, 道家, 陰陽家, 法家, 名家, 墨家, 縱橫家, 雜家, 農家를 이른다.
역주8 如幻三昧 : 三昧는 불교 용어로 ‘三摩提’ 또는 ‘三摩帝’라고도 하는데, 잡념을 제거하여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一心不亂의 경지를 이른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三昧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데, 如幻三昧는 가장 낮은 등급의 三昧이다. 如幻은 허깨비를 이르는데, 如幻三昧는 진실한 三昧가 아니라는 뜻이다.
역주9 大旃檀 : 檀香木으로 향나무를 이르는데, 木佛像은 대개 檀香木으로 제작한다.
역주10 盂水靑楊枝 : 盂水는 바리에 맑은 물을 담은 것을 이르고, 靑楊枝는 막 꺾어 싱싱한 수양버들 가지를 이른다.
역주11 白拂朱藤杖 : 白拂은 백색의 拂麈(拂子)를 이르며 朱藤杖은 붉은색 등나무 지팡이를 이른다.
역주12 無心 : 불교 용어로 해탈하여 헛된 생각이 없는 眞體의 마음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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