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軒策士는 方搜絶異之才어늘 隨問獻言하야 誤占久虛之等하니이다
用法者는 畏有司之不公이라 故로 捨其平生而論其一日하고 通變者는 恐人材之未盡이라 故로 詳於採聽而略於臨時하니 玆二者之相形에 顧兩全而未有니이다
一之於考試而掩之於倉卒은 所以爲無私也나 然而才行之迹를 無由而深知하고 委之於察擧而要之於久長은 所以爲無失也나 然而請屬之風이 或因而滋長하니
惟是
는 兼用考試察擧之法
하야 每中年
에 輒下明詔
하야 使
로 各擧所聞
하니이다
在家者能孝而恭하고 在官者能廉而愼하야 臨之以患難而能不變하고 邀之以寵利而能不回라
旣已得其行己之大方하고 然後에 責其當世之要用이라
學博者는 又須守約而後取하고 文麗者는 或以用寡而見尤하야 特於萬人之中에 求其百全之美하니
凡與中書之召命이면 已爲天下之選人이어늘 而又有不可測知之論하야 以觀其黙識之能하고 無所不問之策하야 以攷其博通之實이니이다
至於此而不去
면 則其人之可知
나 然猶使御史
로 得以求其疵
하고 諫官
으로 得以考其素
하야 一陷
하면 輒爲廢人
이니이다
是以로 始由察擧로되 而無請謁公行之私하고 終用考試로되 而無倉卒不審之患하니 蓋其取人也 如此之密이면 則夫不肖者 安得而容이릿고
治經은 獨傳於家學하고 爲文에 不願於世知하니이다
特以饑寒之憂로 出求斗升之祿이러니 不謂諸公之過聽하야 使與群豪而竝游하시니 始不自量하고 欲行其志하야 遂竊俊良之擧하야 不知才力之微하니이다
論事迂闊하야 而不能動人하고 讀書疎略하야 而無以應敵하니 取之甚愧요 得之益慙이니이다
此蓋伏遇某官
이 以堯舜之道
로 輔吾君
하고 以伊周之業
으로 爲己任
하야 하고 思天下所以太平
하야 必用
之說
하야 亟收末學
하야 以輔大猷
니이다
歷觀前輩컨대 由此爲致君之資하니 敢以微軀로 自今爲許國之始하노이다
15. 제과制科에 응시하여 급제함을 사례한 계啓
이 글은 송宋나라 때에 진사과進士科와 제과制科를 겸하여 시행하는 것이 법도에 맞음을 논하였다
대청에 임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장차 뛰어난 인재를 찾으려는 것인데, 제가 물음에 따라 대책하는 말씀을 올려서 〈현자賢者를 우대하기 위해〉 오랫동안 비워둔 높은 등급을 잘못 차지하였습니다.
갑자기 현縣의 보좌에서 형부刑部의 대리사평大理寺評으로 발탁하시니, 안으로 자신을 돌아봄에 감당할 수가 없어서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정치의 요점은 오직 훌륭한 사람을 신중히 가려 뽑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법조문을 적용하는 자는 유사有司(담당관)가 공정하지 않을까 염려하므로 거자擧子들의 평소 행실을 버리고 하루 동안에 지은 문장을 논하게 하며, 변통하는 자는 인재를 다 등용하지 못할까 염려하므로 거자擧子들의 행실을 자세히 채취하고 당일의 시험을 소략히 하니, 이 두 가지가 서로 나타남에 모두 완전한 것은 있지 않습니다.
고시考試에만 한결같이 치중하여 창졸간에 사람을 급히 선발하는 것은 사사로운 행위를 없애고자 해서이나 이로써는 거자擧子들의 재주와 행실의 자취를 깊이 알 길이 없고, 인물을 살펴 천거함에 맡겨서 오래도록 살피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재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나 청탁하는 풍조가 혹 이로 인해 불어납니다.
이 때문에 수隋․당시대唐時代의 진사과進士科에 병폐가 있었으며, 위魏․진시대晉時代의 중정과中正科에 부정이 많았던 것입니다.
오직 현량무이과賢良茂異科는 고시考試와 찰거察擧하는 법을 겸하여 적용해서 매번 격년마다 항상 분명한 조칙을 내려 양제兩制로 하여금 각각 자기들이 명성을 들어 알고 있는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게 합니다.
집에 있는 자로서 효성스럽고 공손하며, 관직에 있는 자로서 청렴하고 신중한 자들을 뽑은 다음, 이들이 환란에 처해서도 그 지조를 변치 않고 은혜와 이익으로 유혹하여도 굽히지 않게 합니다.
그리하여 몸을 세우고 일을 처리하는 큰 방법을 알아낸 뒤에야 당세에 긴요하게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학문이 해박한 자는 또 모름지기 지킴이 요약해진 뒤에 선발하고, 문장이 화려한 자는 또 실용이 적음을 지적해서, 특별히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두루 완전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무릇 급제하여 중서성中書省의 소명召命에 참여하게 되면 이미 천하에서 선발된 우수한 인재인데도, 또 측량할 수 없는 의논을 두어 묵묵히 아는 재능을 관찰하고 묻지 않는 바가 없는 책문策問으로 널리 통달하는 실제를 고찰합니다.
여기에 이르러도 낙방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의 뛰어남을 알 만한데도 아직도 어사御史로 하여금 하자를 찾아내게 하고 간관諫官으로 하여금 평소를 고찰하게 해서 한번 청의淸議에 빠지게 되면 곧바로 벼슬길에서 버려집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찰거察擧로 등용되었으나 청탁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사사로움이 없고, 끝내 고시考試를 적용하되 창졸간에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병폐가 없으니, 사람을 뽑는 것이 이와 같이 치밀하면 불초한 자가 어찌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재주가 남들에게 미치지 못함을 젊어서부터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경학經學에 대한 공부는 오직 가학家學을 전수받았을 뿐이고, 문장을 지을 적에는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춥고 굶주린 근심 때문에 한 되나 한 말의 적은 녹봉을 구하려고 하였는데, 뜻밖에 여러 공公들께서 잘못 들으셔서 저로 하여금 여러 호걸들과 함께 교유하게 하시니, 처음에 스스로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제 뜻을 행하고자 해서 마침내 준량俊良의 천거를 도둑질하여 재주와 힘이 미약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일을 논하면 오활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책을 읽으면 소략하여 상대방에게 대응할 수가 없으니, 나라에서 저를 뽑은 것이 매우 수치스럽고 제가 과거에 급제한 것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이는 모관某官께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도로써 우리 군주를 보좌하고 이윤伊尹과 주공周公의 사업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아서 한 지아비라도 스스로 다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여 이것을 묘당廟堂의 근심으로 여기시고, 천하가 태평할 방법을 생각하여 반드시 추요芻蕘의 말을 들으시어 학문이 부족한 자를 급히 거두어 큰 계책을 돕고자 하심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뜻은 낮은데 지위는 높고, 덕은 부족한데 은총은 지나칩니다.
선배들을 차례로 보건대 다 과거로 말미암아 군주를 요堯․순舜과 같은 성군聖君으로 만드는 자료로 삼았으니, 이에 감히 이 미천한 몸을 가지고 지금부터 나라에 바치는 시작으로 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