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三代之衰로 井田廢하고 兵農異處하야 兵不得休而爲民하고 民不得息肩而無事於兵者 千有餘年이로되 而未有如今日之極者也니이다
三代之制는 不可復追矣어니와 至於漢, 唐하야는 猶有可得而言者니이다
夫兵은 無事而食이면 則不可使聚요 聚則不可使無事而食이니
今夫有百頃之閒田이면 則足以牧馬千駟하야 而不知其費어니와
聚
하고 而輸百頃之芻
면 則其費百倍
하니 此易曉也
니이다
昔漢之制
는 有
하고 而無
하야 雖皆出於農夫
나 而方其爲兵也
하야는 不知農夫之事
라
是故
로 郡縣無常屯之兵
하고 而京師亦不過有
,
,
而已
니이다
邊境有事
하고 諸侯有變
이면 皆以
로 調發郡國之兵
하고 至於事已而兵休
면 則渙然各復其故
라
是以로 其兵이 雖不知農이나 而天下不至於弊者는 未嘗聚也일새니이다
唐有天下
에 하니 天下之府 八百餘所
로되 而屯於關中者 至有五百
이라
然皆無事則力耕而積穀
하야 不唯以自贍養
이요 而又有以廣
라
是以로 兵雖聚於京師나 而天下亦不至於弊者는 未嘗無事而食也일새니이다
今天下之兵
이 不耕而聚於京畿
以數十萬計
어늘 皆仰給於縣官
하야 有漢, 唐之患
하고 而無漢, 唐之利
하야 擇其偏而兼用之
라
天下之財 近自
으로 而遠至乎
히 凡舟車所至
와 人力所及
에 莫不盡取以歸於京師
라
晏然無事어늘 而賦斂之厚하야 至於不可復加로되 而三司之用이 猶苦其不給하니 其弊는 皆起於不耕之兵이 聚於內하야 而食四方之貢賦니이다
非特如此而已라 又有循環往來하야 屯戍於郡縣者하니이다
太祖, 太宗이 躬擐甲胄하사 力戰而取之하야 旣降其君하고 而籍其疆土矣니이다
然이나 其故基餘孼이 猶有存者라 上之人이 見天下之難合하고 而恐其復發也하야
於是
에 出禁兵以戍之
하야 大自
로 而小至於縣鎭
히 往往皆有京師之兵
하니이다
由此觀之하면 則是天下之地一尺一寸도 皆天子自爲守也니 而可以長久而不變乎잇가
費는 莫大於養兵이요 養兵之費는 莫大於征行이어늘 今出禁兵하야 而戍郡縣하야 遠者는 或數千里요 其月廩歲給之外에 又日供其芻糧이라
三歲而一遷하야 往者紛紛하고 來者纍纍하야 雖不過數百爲輩나 而要其歸하면 無以異於數十萬之兵이 三歲而一出征也하니 農夫之力이 安得不竭이며 餽運之卒이 安得不疲리잇고
且今天下未嘗有戰鬪之事하야 武夫悍卒이 非有勞伐可以邀其上之人이니이다
然이나 皆不得爲休息閒居無用之兵者는 其意以爲爲天子出戍也라
是故로 美衣豐食하고 開府庫, 輦金帛하며 若有所負하야 一逆其意하면 則欲群起而噪呼하니 此는 何爲者也오
民之戴君
이 至於海隅
하야 하니 亦不必擧疑四方之兵
하고 而專信禁兵也
니이다
臣愚
는 以爲
을 可以漸訓
하야 而陰奪其權
이면 則禁兵
을 可以漸省而無用
이리이다
蜀人之怯懦
와 吳人之短小
로도 皆常以抗衡於
하니 又安得禁兵而用之
리잇고
今之土兵이 所以鈍弊劣弱而不振者는 彼見郡縣皆有禁兵하고 而待之異等이라
是以로 自棄於賤隷役夫之間하고 而將吏亦莫之訓也니이다
苟禁兵을 可以漸省하고 而以其資糧으로 益優郡縣之土兵이면 則彼固以歡欣踊躍出於意外하야 戴上之恩하야 而願效其力하리니 又何遽不如禁兵耶잇가
夫土兵日以多하고 禁兵日以少하면 天子扈從捍城之外에 無所復用이니 如此면 則內無屯聚仰給之費하고 而外無遷徙供餽之勞하야 費之省者 又已過半矣리이다
戍禁兵은 不如募土兵이니 今歲戍延綏之兵으로 以衛薊遼는 無策之甚者니라
삼대시대三代時代가 쇠하고부터 정전제井田制가 폐지되고 병사와 농민이 처소를 달리하여, 병사들은 퇴역하여 농민이 될 수 없고 농민들은 무거운 책임을 벗어 군대에 일이 없지 못한 지가 천여 년이 되었으나 지금처럼 심한 적은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삼대시대三代時代의 제도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에 이르러는 그래도 말한 만한 것이 있습니다.
병사들은 일없이 군량을 먹는다면 모이게 해서는 안 되고, 모였으면 일없이 군량을 먹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상치되어 병행할 수 없으니, 그 형세가 그러합니다.
지금 100경頃의 묵은 밭이 있으면 말 4천 필을 충분히 먹일 수 있어 그 비용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4천 필의 말을 모아놓고 100경頃에서 생산되는 꼴을 수송하여 먹인다면 그 비용이 100배나 되니, 이는 알기 쉬운 것입니다.
옛날 한漢나라 제도는 번番(당번)을 바꾸어 수자리하는 병사만 있고 둔전屯田을 경영하는 병사가 없어서, 비록 모두 농민 출신이었으나 병사가 되어서는 농부의 일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현郡縣에는 상주하는 병사가 없고, 경사京師에도 남군南軍과 북군北軍, 궁궐을 호위하는 기문期門과 우림羽林이 있음에 불과하였습니다.
변경에 일이 있고 제후諸侯가 반란하면 모두 호부虎符를 가지고 군국郡國의 병사를 징발하였고, 전란이 끝나고 군대가 쉬게 되면 병사들이 흩어져서 원래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문에 병사들이 비록 농사를 알지 못했으나 천하天下가 피폐해지는 데에 이르지 않았으니, 이는 병사들이 모여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唐나라가 천하天下를 소유함에 십륙위十六衛와 부병府兵을 설치하니 천하天下의 부府가 800여 곳이었는데, 관중關中인 장안長安에 주둔한 것이 500여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모두 일이 없으면 힘써 농사짓고 곡식을 저축해서 비단 스스로 풍족하게 급양할 뿐만 아니고 또 현관縣官의 저축을 충만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병사들이 경사京師에 모여 있었으나 천하天下가 또한 피폐함에 이르지 않았으니, 이는 일찍이 일없이 군량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하天下의 병사 중에 농사짓지 않으면서 경기京畿와 삼보三輔 지방에 모여 있는 자가 수십만으로 헤아려지는데, 이들의 대한 급양給養은 모두 현관縣官에 의지하고 있어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폐해만 있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이로움은 없어서 두 나라의 나쁜 측면만 골라서 겸하여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그 폐해를 겸하여 받아서 분산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하天下의 재물이 가까이는 회전淮甸으로부터 멀리는 오吳 지방과 촉蜀 지방에 이르기까지 배와 수레가 이를 수 있는 곳과 인력이 미치는 곳에서 모두 취하여 도성으로 올려 보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국가가 편안하여 일이 없는데도 세금을 많이 거두어 다시 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삼사三司의 재정은 오히려 부족함을 염려하고 있으니, 이 폐해는 모두 농사짓지 않는 병사들이 내지內地에 모여서 사방의 공부貢賦를 먹는 데에서 연유되었습니다.
비단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요, 또 돌아가며 오가면서 군현郡縣에 주둔하여 수자리하는 자가 있습니다.
옛날 송宋나라를 건국한 초기에 여러 곳이 분열되어서 병력을 보유하고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태조太祖와 태종太宗께서 몸소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시고서 강력히 싸워 그들의 영토를 점령하여 그 군주를 항복시키고 그 강토를 장부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옛날 기반을 갖고 있던 잔당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윗사람들은 천하天下를 통합하기 어려움을 보고 이들이 다시 나올까 염려하였습니다.
이에 금병禁兵을 지방에 내보내어 주둔시켜서, 크게는 번부藩府로부터 작게는 현縣과 진鎭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 모두 경사京師의 금병禁兵이 주둔해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천하天下의 땅은 한 자 한 치도 모두 천자天子가 스스로 지키는 꼴이 되었으니, 장구하게 이 제도를 사용하고 바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용은 병력을 기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병력을 기르는 비용은 멀리 출정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지금 금병禁兵을 군현郡縣에 내보내어 주둔시켜서 먼 경우에는 혹 수천 리를 달려가고 이들에게 다달이 주는 봉급 이외에 또 날마다 군량과 말먹이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3년에 한 번 근무하는 지역을 옮겨서 가는 자가 분분紛紛하고 오는 자가 서로 이어져 비록 수백 명이 무리를 지음에 불과하나, 결과적으로는 수십 만의 군대가 3년에 한 번 출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이러고서 농부의 힘이 어찌 고갈되지 않을 수 있으며, 군량과 군수품을 수송하는 병졸이 어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지금 천하天下에는 일찍이 전투하는 일이 있지 않아서 무신武臣과 사나운 병졸들이 윗사람에게 상賞을 바랄 만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 휴식하여 한가히 살면서 자기들이 쓸모없는 병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들 생각에 자신들이 천자天子를 위하여 수자리를 나간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급양을 풍부하게 받고 부고府庫를 열고 금백金帛을 수레로 실어가며, 만일 자신들의 요구를 저버려서 조금이라도 뜻에 거슬리면 떼지어 일어나서 고함치려고 하니, 이것이 무엇하는 것입니까?
천하天下가 통일되어 한집안이 된 것이 수십 년 내지 거의 백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군주를 떠받드는 것이 바다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기전畿甸과 다름이 없으니, 또한 굳이 사방의 병사를 모두 의심하고, 오로지 금병禁兵만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번 촉蜀 지방의 요망한 적과 근세에 패주貝州의 반란은 반드시 금병禁兵이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신臣은 생각하건대 군현郡縣의 토병土兵을 점점 훈련시켜서 금병禁兵의 권한을 은밀히 뺏는다면, 금병禁兵을 점점 줄여 쓸모없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天下에 무용武勇이 있고 건장한 자들이 어찌 일정한 곳에서만 나오겠습니까?
자신이 사는 산천에 익숙하고 그 풍기를 호흡하는 것은 사방의 백성들이 똑같습니다.
옛날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일찍이 이 백성들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겁이 많고 나약한 촉蜀 지방 사람들과 키가 작은 오吳 지방 사람들도 모두 항상 상국上國과 대항하였으니, 또 어찌 금병禁兵을 얻어 사용하였겠습니까?
지금 토병土兵들이 우둔하고 피폐하고 나약하여 떨치지 못하는 까닭은 저들이 군현郡縣마다 모두 금병禁兵이 있고 이들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천한 노예와 역부役夫의 사이에 자신을 버리고, 장리將吏들 또한 이들을 훈련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금병禁兵을 점차 줄이고 이들에게 지급하는 물자와 양식을 가지고 군현郡縣의 토병土兵을 더욱 우대한다면, 저들은 진실로 의외의 우대에 뛸 듯이 기뻐하여 윗사람의 은혜를 떠받들어서 자신의 힘을 바치려고 할 것이니, 또 어찌 금병禁兵만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토병土兵이 날로 많아지고 금병禁兵이 날로 줄어든다면 천자天子를 호종扈從하고 도성都城을 지키는 일 이외에는 금병禁兵을 다시 사용할 곳이 없을 것이니, 이와 같게 되면 안으로는 모여 주둔하여 조정에 급양을 의뢰하는 비용이 없고, 밖으로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여 물자와 군수품을 제공하는 수고가 없어져 비용이 또 절반 이상 줄어들 것입니다.
금병禁兵을 주둔시키는 것은 토병土兵을 모집하는 것만 못하니, 금년에 연수延綏 지방에 주둔시킨 병력으로 계료薊遼 지방을 지키게 한 것은 무책無策 중에도 매우 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