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旣滅吳
에 范蠡以爲 句踐爲人
이 하야 可以共患難
이요 不可與共逸樂
이라하고 乃以其私徒屬
으로 浮海而行
이러니
至齊
하야 以書遺
曰 蜚(飛)鳥盡
에 良弓藏
하고 狡兎死
에 走狗烹
하니 子可以去矣
라하니라
夫好貨
는 天下賤士也
니 以蠡之賢
으로 豈
者
리오마는 何至耕於海濱
하야 父子力作
하야 以營千金
하고 屢散而復積
하니 此何爲者哉
아
豈非才有餘而道不足이라 故로 功成에 名遂身退나 而心終不能自放者乎아
使句踐有大度하야 能始終用蠡런들 蠡亦非淸淨無爲以老於越者也라
逃隱於海上하야 曰 吾與富貴而詘(屈)於人으론 寧貧賤而輕世肆志焉이라하니라
春秋以來로 用捨進退 未有如蠡之全者也로되 而不足於此라
문장文章이 혹독한 법리法吏(법관法官)와 같으니, 비록 범려范蠡라도 또한 무슨 말로 해명하겠는가?
월越나라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자, 범려范蠡는 “구천句踐의 사람됨이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 부리여서 환란患亂은 함께할 수는 있으나 일락逸樂은 함께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자신의 사사로운 무리(가신家臣과 사병私兵)들을 데리고 바다를 항해하여 월越나라를 떠나갔다.
그는 제齊나라에 이르자, 대부 문종大夫 文種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나는 새가 다 잡혀 없어지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달리던 사냥개를 삶아 죽이는 법이니, 그대는 이제 월越나라를 떠나감이 옳다.”라고 하였다.
범려范蠡는 다만 군주의 상相을 볼 줄 알았을 뿐이니.
내가 범려范蠡를 살펴보건대 범려范蠡 또한 까마귀 부리이다.
재물을 좋아하는 것은 천하天下의 천한 선비이니, 범려范蠡와 같은 어진 사람이 어찌 취렴聚斂하여 재물을 긁어모으는 자이겠는가마는, 바닷가에서 농사지으면서 부자父子가 힘써 일해서 천금千金을 경영해 얻고는 재물을 흩었다가 다시 재물을 모았으니, 이것은 어째서인가?
재주는 충분하나 도道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功이 이루어지자 몸은 비록 물러갔으나, 마음은 끝내 스스로 방랑放浪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구천句踐이 큰 도량이 있어서 시종 범려范蠡를 등용했더라도 범려范蠡는 청렴淸廉한 채 무위無爲로 월越나라에서 그대로 늙을 자가 아니다.
나는 그러므로 “범려范蠡 또한 까마귀 부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노중련魯仲連이 진秦나라 군대를 물리치자, 평원군平原君이 그를 봉해주고자 하여 천금千金으로 축수祝壽를 하니, 노중련魯仲連이 웃으며 말하기를 “천하의 고사高士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남을 위해서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고 혼란을 풀어주되 취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만일 남을 도와주고 취함이 있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일이다.
나는 차마 이런 짓을 하지 못하겠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떠나가서 종신토록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도망하여 바닷가에 은둔하며 말하기를 “내가 부귀를 누리면서 남에게 굽히기보다는 차라리 빈천한 채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하찮게 여기며 내 마음대로 살겠다.”라고 하였다.
만일 범려范蠡가 노중련魯仲連처럼 떠나갔더라면 성인聖人과의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춘추시대 이래로 용사用捨와 진퇴進退가 범려范蠡처럼 온전한 자가 있지 않았으나 여기에는 부족하였다.
나는 이 때문에 여러 번 탄식하고 깊이 슬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