羊豕以爲羞에 五味以爲和하고 秫稻以爲酒에 麴糵以作之는 天下之所同也라
其材同하고 其水火之齊均하고 其寒暖燥濕之候一也로되 而二人爲之하면 則美惡不齊하나니 豈其所以美者 不可以數取歟아
能者는 卽數以得妙하고 不能者는 循數以得其略하야 其出은 一也로되 有能, 有不能하야 而精粗見焉이라
人見其二也하면 則求精於數外하야 而棄迹以逐妙하고 曰 我知酒食之所以美也라하야
而略其
하고 捨其度數
하야 以爲不在是也
라하야 而一以意造
하면 則其不爲人之所嘔棄者 寡矣
니라
天文, 地理, 音樂, 律曆, 宮廟, 服器, 冠昏, 喪(紀)[祭]之法과 춘추春秋之所去取와 禮之所可와 刑之所禁과 歷代之所以廢興과 與其人之賢不肖는 此學者之所宜進力也어늘
曰 是皆不足學이니 學其不可傳於書而載於口者라하나니라
古之學者는 其所亡與其所能을 皆可以一二數而日月見也러니 如今世之學은 其所亡者 果何物이며 而所能者 果何事歟아
不如學也라하시니 由是觀之하면 廢學而徒思者는 공자孔子之所禁이요 而今世之所上也니라
齋戒持律하고 講誦其書하며 而崇飾塔廟는 此佛之所以日夜敎人者也어늘
而其徒 或者以爲齋戒持律이 不如無心이요 講誦其書가 不如無言이요 崇飾廟塔이 不如無爲라하야
其中無心하고 其口無言하고 其身無爲면 則飽食而嬉而已니 是는 爲大以欺佛者也니라
且死에 自誓於佛호되 願持律終身하고 且造千手眼觀世音像하야 而誦其名을 千萬遍이러니
病已而力不給이어늘 則縮衣節口三十餘年에 銖積寸累하야 以迄于成하니 其高九仞이라
獨喜거칙則之勤苦하야 從事於有爲하야 篤志守節하야 老而不衰하야 異夫爲大以欺佛者라
11. 안국사安國寺의 대비각大悲閣에 대한 기문記文
선禪을 배우든 유학儒學의 성현聖賢을 배우든 따질 것 없이 모두 독행篤行에 입각立脚하여야 한다.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 적에 오미五味로 맛을 내고, 수수와 쌀을 가지고 술을 빚을 적에 누룩으로 만드는 것은 천하天下가 다 똑같다.
재료가 같고 물과 불을 사용함이 고르며 온도와 습도가 같은데도 두 사람이 음식을 만들고 술을 빚으면 맛의 좋고 나쁨이 똑같지 않으니, 음식맛과 술맛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어찌 수數(숫자)로써 취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옛날에 음식과 술을 만든 자들은 일찍이 수數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능한 자는 수數를 가지고 묘리를 터득하고, 능하지 못한 자는 수數를 따라 그 대략을 터득해서, 그 만들어내는 것은 똑같으나 잘하는 사람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정밀하고 거친 것이 저절로 나타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이 만든 음식맛이 다른 것을 보고는 수數 밖에서 정밀하기를 구하여, 자취를 버리고 묘리를 찾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술과 밥을 맛있게 만드는 훌륭한 방법을 안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분제分齊를 소홀히 하고 도수度數를 버리고서 “술이나 음식을 잘 만드는 방법이 여기에 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한결같이 자기 마음대로 만드니,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그 술과 밥을 먹고 구역질하여 버리지 않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지금 우리 배우는 자들의 병통 또한 그러하다.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음악音樂과 율력律曆, 궁묘宮廟와 복기服器, 관冠․혼昏․상喪․제祭의 예법과 《춘추春秋》에서 버리고 취한 것과 예禮에 인정한 것과 형벌에 금한 것과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와 또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의 어질고 불초함은 배우는 자가 마땅히 힘을 다하여 알아야 할 바이다.
그런데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배울 만한 것이 못 되니, 책으로 전할 수 없고 입으로 전할 수 없는 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날마다 자기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고 달마다 그 능한 바를 잊지 않으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과 자신이 능한 바를 모두 하나 둘 다 세어서 날과 달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세상의 배우는 자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이 과연 무슨 물건이며, 능한 것이 과연 무슨 일인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서 생각해보니,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금지하신 것이요, 지금 세상에서 숭상하는 바이다.
이 어찌 오직 우리 유가儒家의 배우는 자들뿐이겠는가?
재계하고 율법律法을 지키며 불경佛經을 강송하고 탑과 사찰을 크게 꾸미는 것은 바로 부처님이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무리 중에 혹자는 말하기를 “재계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무심無心함만 못하고, 불경을 강송하는 것이 말이 없는 것만 못하고, 탑과 사찰을 크게 꾸미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여,
가슴속에는 간직한 마음이 없고 입에는 하는 말이 없고 몸에는 하는 일이 없으면서 배불리 먹고 놀 뿐이니, 그렇다면 이들은 잘난 체하여 부처님을 속이는 자들이다.
항주 염관杭州 鹽官에 있는 안국사安國寺의 승려 거칙居則은 9세 때에 출가出家하였는데, 10년 만에 나쁜 병을 얻었다.
그는 거의 죽게 되자, 스스로 부처님에게 맹세하기를 죽을 때까지 율법을 지키고 또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상觀世音像을 만들어서 천만 번 그 이름을 외울 것을 원하였다.
그런데 병이 나았으나 재력이 부족하자, 입는 옷과 먹는 것을 30여 년 동안 절약하여 한 푼을 모으고 한 치를 쌓아서 관음상觀音像을 완성하니, 그 높이가 아홉 길이었다.
그리고는 4층 지붕의 큰 집을 만들어서 관음상觀音像을 안치하고, 나에게 글을 지어 기록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일찍이 동남 지방의 선비들에게 앞의 말을 전하였는데, 따르는 자가 겨우 몇 명 있었다.
그런데 유독 거칙居則만이 부지런히 수고하여 큰 일에 종사하면서 뜻을 돈독히 하고 절개를 지켜서 늙도록 쇠하지 아니하여, 잘난 체해서 부처님을 속이는 자들과 달랐으니, 나는 그의 이러한 점을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록하고 또 우리 당黨의 선비들에게 넌지시 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