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丘仙夫
하야 爲歌詩
하고 與揚州豪俊交游
하니 頭骨磽然
하야 有古丈夫風
하고 其出詞吐氣 亦往往驚世俗
이라
今之讀書取官者는 皆屈折拳曲하야 以合規繩하야 曾不得自伸其喙하나니라
仙夫
는 하야 歷
하고 之
하고 浮
하고 遡
하야 登高以望遠
하고 搖槳以泳深
하야 以自適其適也
하니라
過予而語行이어늘 予謂 古之君子 有絶俗而高하고 有擇地而泰者하니 顧其心常足而已라
若夫習而不試
하고 後
면 則仙夫之屐
이 可以南矣
리라
생각한 바가 원대하고 글 또한 빼어나고 준걸스럽다.
수구선부水丘仙夫가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설을 전공하여 시가詩歌를 짓고 양주揚州의 호걸들과 교유하니, 기개가 강직하여서 옛 장부丈夫의 풍모가 있었으며, 글을 짓고 기개를 토해내면 왕왕 세속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하였다.
나는 그가 반드시 세상에 쓰여질 것을 알고 있으니, 선부仙夫는 부디 스스로 몸을 아낄지어다.
지금 책을 읽어서 벼슬하는 자들은 모두 몸을 굽혀서 규칙(제도)에만 부합하여 스스로 할 말을 다하지 못한다.
그런데 선부仙夫는 장수가 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낭야산琅琊山을 지나고 회계산會稽山에 가고 원수沅水와 상수湘水에 배를 띄우고 구당협瞿塘峽을 거슬러 올라가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고 상앗대를 흔들며 깊은 물에 배를 띄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유유자적하였다.
선부仙夫가 나를 찾아와서 떠나가겠다고 말하였는데, 내가 생각하건대 옛날 군자君子 중에는 세속을 끊고 고상하게 지낸 자도 있었고 땅을 가려 편안히 지낸 자도 있었으니, 오직 그 마음에 항상 만족하게 할 뿐이었다.
묘당廟堂에 앉아서 군주와 신하가 번갈아 노래하는 것이 비쩍 마른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안고 썩은 나뭇가지를 두드려 소리가 확고한 것과 비교하면, 마음의 즐거움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곤궁할 적에 버려질 줄을 알고 영달할 적에 능히 쓰일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로써 선부仙夫가 다시 돌아올 줄을 아노니, 선부仙夫는 부디 노력할지어다.
만약 학문을 많이 익히고도 등용되지 못하고 벼슬하러 가서도 유독 뒤처지게 된다면, 그때는 선부仙夫의 신발이 남쪽으로 가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