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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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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中庸論 中
君子之欲誠也인댄 莫若以明이니라
夫聖人之道 自本而觀之하면 則皆出於人情이요
不循其本하고 而逆觀之於其末이면 則以爲聖人有所勉彊力行하되 而非人情之所樂者라하니
夫如是 則雖欲誠之 其道無由
曰 莫若以明이라하니 使吾心曉然知其當然하야 而求其樂이니라
何則
人情 莫不好逸豫而惡勞苦어늘 今吾必也使之不敢箕踞하고百拜以爲禮하며 人情 莫不樂富貴而羞貧賤이어늘 今吾必也使之不敢自尊하고 而卑讓退抑以爲禮하며 用器之爲便이어늘 而祭器之爲貴하고 褻衣之爲便이어늘之爲貴하며 哀欲其速已어늘 而伸之三年하고 樂欲其不已어늘 而不得終日하니 此禮之所以爲彊人하야 而觀之於其末者之過也 盍亦反其本而思之리오
今吾以爲磬折 不如立之安也라하야 而將惟安之求인댄 則立不如坐 坐不如箕踞 箕踞不如偃仆 偃仆而不已 則將裸袒而不顧하리니 苟爲裸袒而不顧 則吾無乃亦將病之리오
夫豈獨吾病之리오
天下之匹夫匹婦 莫不病之也리라
苟爲病之 則是其勢將必至於磬折而百拜하리니 由此言之하면 則是磬折而百拜者 生於不欲裸袒之間而已也
夫豈惟磬折百拜리오
將天下之所謂彊人者 其皆必有所從生也리니 辨其所從生而推之하야 至於其所終極이면 是之謂明이니라
記曰 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되 及其至也하야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며
夫婦之不肖로도 可以能行焉이로되 及其至也하야는 雖聖人이라도 有所不能焉이라하니
君子之道 推其所從生而言之하면 則其言約하니 約則明이어늘
推其逆而觀之 其言하니 費則隱이니라
君子欲其不隱이라
是故 起於夫婦之有餘하야 而推之하야 至於聖人之所不及하고 擧天下之至易하야 而通之於至難하야
使天下之安其至難者 與其至易 無以異也하니라
萬鍾則不辨禮義而受之하나니 萬鍾 於我 何加焉이리오
向爲身死 而不受라가 今爲朋友妻妾之奉而爲之하니 此之謂失其本心이라하시니라
且萬鍾之不受 是王公大人之所難이어늘 而以行道乞人之所不屑 而較其輕重하니 是何以異於匹夫匹婦之所能行으로 通而至於聖人之所不及이리오
凡爲此說者 皆以求安其至難하야 而務欲誠之者也
天下之人 莫不欲誠이로되 而不得其說이라
凡此者 誠之說也니라


05. 《중용中庸》에 대한 논 중論 中
군자君子가 성실하고자 하면 밝음으로써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성인聖人는 근본적인 면에서 보면 모두 인정에서 나왔고,
근본을 따르지 않고 거슬려서 말단적인 면에서 보면 ‘성인聖人이 억지로 힘써 를 행하신 것이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즐거워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이와 같다면 비록 성실히 하고자 하나 이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밝음으로써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니, 내 마음으로 하여금 당연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 그 즐거움을 추구하게 할 뿐이다.
지금 오상五常의 가르침 가운데에 오직 가 사람에게 억지로 행하도록 강요하는 듯하다.
어째서인가?
사람의 마음은 편안함과 즐거움을 좋아하고 노고勞苦를 싫어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지금 나는 반드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두 다리를 뻗고 걸터앉지(기거箕踞) 못하게 하고 허리를 굽혀(경절罄折) 백 번 절하는 것을 로 삼으며, 사람의 마음은 부귀를 좋아하고 빈천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없는데 지금 나는 반드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스스로 높이지 않고서 읍양揖讓하고 겸손하고 억제하는 것을 로 삼으며, 일상 사용하는 기물이 편리한데 제기祭器를 귀하게 여기고 평상복이 편한데 곤면袞冕을 귀하게 여기며, 슬픔은 빨리 그치고자 하는데 늘려서 삼년상三年喪을 하게 하고 즐거움은 그치지 않고자 하는데 하루를 마칠 수 없게 하였으니, 이는 가 사람을 억지로 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말단적인 면만을 관찰하는 자의 잘못이니, 어찌 또한 근본적인 면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나는 생각하건대, 허리를 굽히는 것이 서 있는 것처럼 편안하지 못하다 하여, 장차 오직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서 있는 것은 앉아 있는 것만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은 두 다리를 뻗거나 걸터앉는 것만 못하고, 두 다리를 뻗거나 걸터앉는 것은 누워 있는 것만 못하며, 누워 있는 데에서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장차 옷을 다 벗고 있으면서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만일 옷을 다 벗고 있으면서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내 또한 장차 이것을 나쁘게 여기지 않겠는가?
어찌 나만 이것을 나쁘게 여길 뿐이겠는가?
천하天下필부匹夫필부匹婦들도 이것을 나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만일 이것을 나쁘게 여긴다면 이는 형편상 장차 반드시 허리를 굽혀 백 번 절함에 이르게 될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허리를 굽혀서 백 번 절하는 것은 원래 옷을 다 벗고자 하지 않는 사이에서 생겼을 뿐인 것이다.
어찌 다만 허리를 굽혀서 백 번 절하는 것뿐이겠는가?
천하의 이른바 가 사람을 강요한다는 것들은 모두 반드시 말미암아 생긴 연유가 있을 것이니, 그 말미암아 생긴 연유를 분변하여 미루어서 종극終極에 이른다면 이것을 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너무 많아서(범위가 넓어서) 은미하다.
어리석은 부부夫婦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불초한 부부夫婦도 능히 행할 수 있으나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능하지 못한 바가 있다.”라고 하였다.
군자君子는 그 말미암아 생긴 이유를 미루어보면 그 말이 간략하니, 간략하면 분명해서 알기가 쉽다.
그런데 그 으로 미루어서 보기 때문에 그 말이 많으니, 많으면 은미해지는 것이다.
군자君子는 은미하지 않고자 한다.
이 때문에 부부夫婦유여有餘함에서 시작하여 미루어서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고, 온 천하天下에 지극히 쉬운 것을 들어 지극히 어려운 것에까지 통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천하의 지극히 어려운 것을 편안히 여기기를 지극히 쉬운 것과 다름없이 하였다.
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기를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어먹으면 살고 얻어먹지 못하면 죽더라도, 혀를 차면서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차면서 주면 걸인도 좋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만종萬鍾祿예의禮義를 따지지 않고 받으니, 만종萬鍾이 내 몸에 무슨 보탬이 되는가?
지난번에는 내 몸이 죽는데도 받지 않다가 지금 붕우朋友처첩妻妾의 받듦을 위해서 받으니, 이것을 일러 ‘그 본심本心을 잃었다.’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종萬鍾祿을 받지 않는 것은 왕공王公대인大人도 하기 어려운 것인데, 길 가는 사람과 걸인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 바를 가지고 그 경중을 비교하였으니, 이 어찌 필부匹夫필부匹婦가 능히 행할 수 있는 바를 가지고 통하여 성인聖人의 미치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게 한 것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이러한 을 하신 분들은 모두 그 지극히 어려운 것을 편안히 여겨 되도록 성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천하天下 사람들이 성실하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그 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이 모든 말은 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五常之敎 惟禮爲若彊人者 : 五常은 하늘이 인간에게 품부해준 다섯 가지 변치 않는 本性으로 仁․義․禮․智․信을 이른다. 漢나라 董仲舒의 〈賢良策 一〉에 “仁․義․禮․智․信은 다섯 가지의 변하지 않는 道이니, 군왕이 마땅히 닦고 신칙하여야 한다.[夫仁義禮智信 五常之道 王者所當修飭也]”라고 보인다.
또한 인간이 당연히 행해야 할 윤리도덕인 父子有親 등의 五倫을 가리키기도 한다. 五常 가운데에 ‘禮가 사람에게 억지로 행하도록 강요하는 듯하다.’는 것은 禮는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天理의 節文, 人事의 儀則으로 사회질서를 규범하기 위해 강제하는 실천적 덕목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2 磬折 : ᄀ字 모양으로 허리를 숙이는 것을 이른다. 磬은 악기 이름으로 ᄀ字 모양을 하고 있다. 《禮記》 〈曲禮 下〉에 “서 있으면 경쇠처럼 허리를 굽혀 佩玉을 드리우니, 君主의 佩玉이 몸에 붙어 있으면 신하의 佩玉은 드리워져야 하고, 君主의 佩玉이 드리워지면 신하의 佩玉은 땅에 닿아야 한다.[立則磬折垂佩 主佩倚 則臣佩垂 主佩垂 則臣佩委]”라고 보인다.
역주3 袞冕 : 곤룡포와 면류관으로 임금과 대신들의 禮服이다. 조회나 행사 때에 입었다.
역주4 君子之道費而隱 : 이 글은 《中庸》 제12장 앞부분에 보인다. 문맥으로 보건대, 蘇軾은 費를 ‘많다’ 혹은 ‘범위가 넓다’로 해석하여 ‘君子의 道에 대한 해설이 너무 많아서(범위가 넓어서) 오히려 君子의 道가 은미해졌다.’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朱子는 集註에서 費를 ‘쓰임이 지극히 넓은 것이다.[用至廣也]’라고 보아, ‘君子의 道는 쓰임이 넓으면서도 은미하다.’라고 해석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用은 지극히 넓으나 그 본체는 지극히 은미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역주5 孟子曰……此之謂失其本心 : 簞은 대그릇(소쿠리)이고, 豆는 나무로 만든 그릇이며, 嘑는 혀를 차고 꾸짖는 모양이고, 不屑은 좋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鍾은 6斛 4斗이다.
《孟子》 〈告子 上〉에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혀를 차고 꾸짖으면서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차서 주면 乞人도 좋게 여기지 않는다.
萬鍾의 祿은 禮義를 분별하지 않고 받으니, 萬鍾의 祿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宮室의 아름다움과 妻妾의 받듦과 내가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나를 고맙게 여김을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번에는 내 몸이 죽는데도 받지 않다가 이제 宮室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 짓을 하며, 지난번에는 내 몸이 죽는데도 받지 않다가 이제 妻妾의 받듦을 위하여 그 짓을 하며, 지난번에는 내 몸이 죽는데도 받지 않다가 이제 내가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나를 고맙게 여김을 위하여 그 짓을 하니, 이 또한 그만둘 수 없는가. 이것을 일러 ‘그 本心을 잃었다.’라고 하는 것이다.[一簞食 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 嘑爾而與之 行道之人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 萬鍾則不辨禮義而受之 萬鍾於我何加焉 爲宮室之美 妻妾之奉 所識窮乏者得我與 鄕爲身死而不受 今爲宮室之美 爲之 鄕爲身死而不受 今爲妻妾之奉 爲之 鄕爲身死而不受 今爲所識窮乏者得我而爲之 是亦不可以已乎 此之謂失其本心]”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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