挈出一事作議論호되 三四層跌入하야 極有法度하니라
愚讀史記商君列傳
하야 하니 蓋未嘗不壯其勇而有決也
라
니 使天下之人
으로 各陳其所知
하고 而守其所學
하야 以議天子之事
하면 則事將有格而不得成者
리라
然
이나 及觀
라가 至其將有以矯拂世俗之際
면 則其所以告諭天下者 常丁寧激切
하야 亹亹而不倦
하야 務使天下
로 盡知其君之心
하고 而又從而折其不服之意
하야 使天下皆信
하야 以爲如此而後
에 從事
라
其言이 迴曲宛轉하야 譬如平人自相議論而詰其是非하니 愚始讀而疑之하야 以爲近於濡滯迂遠而無決이라호라
然이나 其使天下樂從하야 而無黽勉不得已之意하고 其事旣發에 而無紛紜異同之論하니 此則王者之意也라
故로 常以爲 當堯舜之時하야 其君臣相得之心이 歡然樂而無間하야
相與
於朝廷之中
을 不啻若朋友之親
이요 雖其有所相是非論辨
하야 以求曲直之際
라도 當亦無足怪者
라호라
及至
하야 周旋反覆
하야 自述其用兵之意
하야 以明曉天下
하니 此又其勢然也
라
天(下)[子]有所欲爲하면 而其匹夫匹婦 私有異論於天下하야 以齟齬其上之畫策하야 令之而不肯聽하니 當此之時하야 刑驅而勢脅之면 天下에 夫誰敢不聽從이리오마는
而上之人이 優游而徐譬之하야 使之信之而後에 從하니 此非王者之心이면 誰能處而待之而不倦歟아
蓋其所以開其不悟之心하야 而諭之以其所以當然者 如此其詳也하니라
若夫商君則不然하야 以爲 要使汝獲其利니 而何䘏乎吾之所爲리오하니
故로 天下有故면 而其議及于百姓하야 以觀其意之所嚮하고 及其不可聽也면 則又反覆而諭之하야 以窮極其說하야 而服其不然之心이라
故
로 易曰
이라하고 又曰
라하고 而
이라하니 先王之使民
이 原如此
라
한 가지 일을 끄집어내어 의논을 하였는데, 서너 층에 차례로 들어가서 지극히 법도가 있다.
내가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을 읽어보니, 진秦나라의 법령을 바꾸고 풍속을 개혁하면서 진秦나라 백성 중에 법령을 비판하는 자들을 죽인 것이 수천 명이었고, 태자太子의 사師를 자자刺字하고 태자太子의 부傅를 죽인 뒤에야 법령이 크게 행해졌으니, 나는 일찍이 그가 용감하고 결단성이 있음을 장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속 사람들과는 처음을 걱정하여 시작할 수는 없고 성공을 즐길 수는 있으니, 만일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가 아는 바를 말하게 하고 그 배운 바를 지켜서 천자天子의 일을 비판하게 한다면, 일이 장차 막히고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대三代의 글을 보다가 세속을 바로잡는 즈음에 이르게 되면, 군주가 천하 사람들에게 고유告諭한 것이 항상 정녕丁寧하고 격절激切해서 끊임없이 계속하고 게으르지 아니하여 되도록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군주의 마음을 모두 알게 하고, 또 따라서 복종하지 않는 마음을 꺾어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믿어 이와 같다고 생각하게 한 뒤에야 일에 종사하였다.
그 말이 우회하고 완곡하여 비유하면 신분이 같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의논하여 옳고 그름을 힐난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읽고 의심하여 생각하기를 ‘너무 지체하고 오활하여 결단력이 없음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따르게 해서 억지로 힘써 부득이한 마음이 없게 하고, 그 일이 시작되면 분분하게 다른 의논이 없었으니, 이것은 왕자王者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요堯․순舜의 때를 당하여 군주와 신하가 서로 화합한 마음이 환연歡然히 즐거워하여 간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함께 조정의 가운데에서 안 된다 하고 옳다 하고 또 감탄하고 응답하기를 붕우간처럼 친하게 할 뿐만이 아니었고, 비록 서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며 논변함이 있어서 곡직曲直을 추구하는 즈음이 있더라도 또한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라고 여겼다.
그리고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정벌하는 즈음에 이르러서는 주선하고 반복하여 스스로 용병用兵(전쟁)하는 뜻을 말씀해서 천하 사람들을 분명하게 효유하였으니, 이는 또 형세가 그러한 것이었다.
오직 천하가 이미 편안해지면 군주와 백성과의 세력에 차이가 커져서 동등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천자天子가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들이 천하에서 사사로이(은밀히) 다른 의논을 하여 윗사람이 계획한 것을 가로막아 명령하여도 따르려 하지 않으니, 이때를 당하여 형벌로 몰고 권세로 위협한다면 천하에 그 누가 감히 말을 들어 따르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윗사람이 여유를 갖고서 백성들을 서서히 비유하여 깨우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임금)을 믿게 한 뒤에 따르게 하였으니, 이는 왕자王者의 마음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와 같이 게으르지 않고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반경盤庚이 천도遷都할 적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면서 기뻐하지 않았는데,
반경盤庚은 이들을 위해서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훌륭한 덕德과 밝고 성聖스러움으로도 오히려 다섯 번 천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지금 옛날을 계승하지 않으면 하늘이 너희들의 명命을 끊어버려서 너희들의 죽음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반경盤庚은 그러고서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또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와 마음을 함께하여 천도하지 않으면 우리 선후先后(탕왕湯王)께서 장차 너희들에게 죄를 내릴 것이고, 또 너희들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혼들 또한 장차 우리 고후高后에게 아뢰기를 ‘짐朕의 손자에게 큰 벌을 내리소서.’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주어서 당연한 바로써 효유함이 이와 같이 상세하였다.
그런데 저 상군商君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아서, 생각하기를 ‘요컨대 너희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할 뿐이니,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인衆人의 의논을 수렴하는 바가 없고, 또한 천하 사람들에게 고유告諭한 일이 없었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의 의논에 “삼대三代의 정치는 유약하고 나약하여 결단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왕도王道와 패도霸道가 다른 이유인 것이다.
저 삼대三代의 군주들은 차마 그 백성을 비루하게 여겨서 능멸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천하에 일이 있으면 의논이 백성들에게까지 미쳐서 백성들의 뜻이 향하는 바를 관찰하였고, 백성들의 뜻을 따를 수 없게 되면 또 반복하여 효유曉諭해서 말을 다하여 옳지 않다고 여기는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켰다.
이 때문에 그 백성들이 군주를 친근히 하고 사랑하였으니, 아!
이것이 바로 왕자王者와 패자霸者가 똑같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장공長公은 상군商君이 법을 너무 급히 변경한 것에 느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상서商書〉와 〈주서周書〉 가운데 백성들에게 고유하고 경계한 부분에 대해 반복하여 논하였다.
요컨대 왕도王道는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갑甲보다 먼저 삼일三日을 하고 갑甲보다 뒤에 삼일三日을 한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하루가 끝나야 비로소 믿는다.”라고 하였으며, 《노론魯論》에도 이르기를 “군자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받은 뒤에 그 백성을 수고롭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백성을 부림이 원래 이와 같았다.
이 편은 매우 여유가 있고 곡절이 있으나, 또한 쇠하는 송宋나라의 문호門戶를 다소 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