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挈出一事作議論호되 三四層跌入하야 極有法度하니라
曰 嗟夫
使天下之人으로 各陳其所知하고 而守其所學하야 以議天子之事하면 則事將有格而不得成者리라
이나 及觀라가 至其將有以矯拂世俗之際 則其所以告諭天下者 常丁寧激切하야 亹亹而不倦하야 務使天下 盡知其君之心하고 而又從而折其不服之意하야 使天下皆信하야 以爲如此而後 從事
其言 迴曲宛轉하야 譬如平人自相議論而詰其是非하니 愚始讀而疑之하야 以爲近於濡滯迂遠而無決이라호라
이나 其使天下樂從하야 而無黽勉不得已之意하고 其事旣發 而無紛紜異同之論하니 此則王者之意也
常以爲 當堯舜之時하야 其君臣相得之心 歡然樂而無間하야
相與於朝廷之中 不啻若朋友之親이요 雖其有所相是非論辨하야 以求曲直之際라도 當亦無足怪者라호라
及至하야 周旋反覆하야 自述其用兵之意하야 以明曉天下하니 此又其勢然也
惟其天下旣安이면 君民之勢 闊遠而不同이라
天(下)[子]有所欲爲하면 而其匹夫匹婦 私有異論於天下하야 以齟齬其上之畫策하야 令之而不肯聽하니 當此之時하야 刑驅而勢脅之 天下 夫誰敢不聽從이리오마는
而上之人 優游而徐譬之하야 使之信之而後하니 此非王者之心이면 誰能處而待之而不倦歟
天下皆咨嗟而不悅이어늘
旣又恐其不從也하면 則又曰
蓋其所以開其不悟之心하야 而諭之以其所以當然者 如此其詳也하니라
若夫商君則不然하야 以爲 要使汝獲其利 而何䘏乎吾之所爲리오하니
無所求於衆人之論하고 而亦無以告諭天下
이나 其事亦終于有成이라
是以 後世之論 以爲 三代之治 柔懦不決이라
이나 此乃之所以爲異也니라
夫三代之君 惟不忍鄙其民而欺之
天下有故 而其議及于百姓하야 以觀其意之所嚮하고 及其不可聽也 則又反覆而諭之하야 以窮極其說하야 而服其不然之心이라
是以 其民 親而愛之하니 嗚呼
此王霸之所爲不同也哉인저
長公 有感於商君變法之驟
於商周之書所以告戒其民處 反覆爲論하니
要之컨대 王道 以得民爲本이라
易曰 이라하고 又曰 라하고이라하니 先王之使民 原如此
此篇紆徐曲折이나 然亦稍開衰宋之門戶矣니라


01. 《서경書經》에 대한
한 가지 일을 끄집어내어 의논을 하였는데, 서너 층에 차례로 들어가서 지극히 법도가 있다.
내가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을 읽어보니, 나라의 법령을 바꾸고 풍속을 개혁하면서 나라 백성 중에 법령을 비판하는 자들을 죽인 것이 수천 명이었고, 태자太子자자刺字하고 태자太子를 죽인 뒤에야 법령이 크게 행해졌으니, 나는 일찍이 그가 용감하고 결단성이 있음을 장하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상앙商鞅은 말하기를 “아!
세속 사람들과는 처음을 걱정하여 시작할 수는 없고 성공을 즐길 수는 있으니, 만일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가 아는 바를 말하게 하고 그 배운 바를 지켜서 천자天子의 일을 비판하게 한다면, 일이 장차 막히고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대三代의 글을 보다가 세속을 바로잡는 즈음에 이르게 되면, 군주가 천하 사람들에게 고유告諭한 것이 항상 정녕丁寧하고 격절激切해서 끊임없이 계속하고 게으르지 아니하여 되도록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군주의 마음을 모두 알게 하고, 또 따라서 복종하지 않는 마음을 꺾어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믿어 이와 같다고 생각하게 한 뒤에야 일에 종사하였다.
그 말이 우회하고 완곡하여 비유하면 신분이 같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의논하여 옳고 그름을 힐난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읽고 의심하여 생각하기를 ‘너무 지체하고 오활하여 결단력이 없음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따르게 해서 억지로 힘써 부득이한 마음이 없게 하고, 그 일이 시작되면 분분하게 다른 의논이 없었으니, 이것은 왕자王者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생각하기를 ‘의 때를 당하여 군주와 신하가 서로 화합한 마음이 환연歡然히 즐거워하여 간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함께 조정의 가운데에서 안 된다 하고 옳다 하고 또 감탄하고 응답하기를 붕우간처럼 친하게 할 뿐만이 아니었고, 비록 서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며 논변함이 있어서 곡직曲直을 추구하는 즈음이 있더라도 또한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라고 여겼다.
그리고 탕왕湯王무왕武王이 정벌하는 즈음에 이르러서는 주선하고 반복하여 스스로 용병用兵(전쟁)하는 뜻을 말씀해서 천하 사람들을 분명하게 효유하였으니, 이는 또 형세가 그러한 것이었다.
오직 천하가 이미 편안해지면 군주와 백성과의 세력에 차이가 커져서 동등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천자天子가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필부匹夫필부匹婦들이 천하에서 사사로이(은밀히) 다른 의논을 하여 윗사람이 계획한 것을 가로막아 명령하여도 따르려 하지 않으니, 이때를 당하여 형벌로 몰고 권세로 위협한다면 천하에 그 누가 감히 말을 들어 따르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윗사람이 여유를 갖고서 백성들을 서서히 비유하여 깨우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임금)을 믿게 한 뒤에 따르게 하였으니, 이는 왕자王者의 마음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와 같이 게으르지 않고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반경盤庚천도遷都할 적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면서 기뻐하지 않았는데,
반경盤庚은 이들을 위해서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훌륭한 과 밝고 스러움으로도 오히려 다섯 번 천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지금 옛날을 계승하지 않으면 하늘이 너희들의 을 끊어버려서 너희들의 죽음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반경盤庚은 그러고서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또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와 마음을 함께하여 천도하지 않으면 우리 선후先后(탕왕湯王)께서 장차 너희들에게 죄를 내릴 것이고, 또 너희들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혼들 또한 장차 우리 고후高后에게 아뢰기를 ‘의 손자에게 큰 벌을 내리소서.’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주어서 당연한 바로써 효유함이 이와 같이 상세하였다.
그런데 저 상군商君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아서, 생각하기를 ‘요컨대 너희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할 뿐이니,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인衆人의 의논을 수렴하는 바가 없고, 또한 천하 사람들에게 고유告諭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또한 끝내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의 의논에 “삼대三代의 정치는 유약하고 나약하여 결단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왕도王道패도霸道가 다른 이유인 것이다.
삼대三代의 군주들은 차마 그 백성을 비루하게 여겨서 능멸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천하에 일이 있으면 의논이 백성들에게까지 미쳐서 백성들의 뜻이 향하는 바를 관찰하였고, 백성들의 뜻을 따를 수 없게 되면 또 반복하여 효유曉諭해서 말을 다하여 옳지 않다고 여기는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켰다.
이 때문에 그 백성들이 군주를 친근히 하고 사랑하였으니, 아!
이것이 바로 왕자王者패자霸者가 똑같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장공長公상군商君이 법을 너무 급히 변경한 것에 느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상서商書〉와 〈주서周書〉 가운데 백성들에게 고유하고 경계한 부분에 대해 반복하여 논하였다.

요컨대 왕도王道는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 “보다 먼저 삼일三日을 하고 보다 뒤에 삼일三日을 한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하루가 끝나야 비로소 믿는다.”라고 하였으며, 《노론魯論》에도 이르기를 “군자가 백성들에게 믿음을 받은 뒤에 그 백성을 수고롭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백성을 부림이 원래 이와 같았다.

이 편은 매우 여유가 있고 곡절이 있으나, 또한 쇠하는 나라의 문호門戶를 다소 열어놓았다.


역주
역주1 書論 : 이 글은 東坡가 젊은 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書는 《書經》으로 제목은 ‘《書經》에 대한 論’이지만, 내용은 《書經》에 대해 논한 것이 아니고, 고대 군주들이 政令을 시행하는 과정을 《書經》을 통해 商鞅의 變法과 대비하여 평론한 것이다.
역주2 觀其改法易令……法令大行 : 商君은 商鞅(B.C. 390~B.C. 338)을 이른다. 法家의 대표적 인물인데, 衛나라 公族 출신이므로 公孫鞅이라고도 칭하고 衛鞅이라고도 칭하였으며, 商於라는 땅에 봉해져 商君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보통 商鞅이라 칭하게 되었다.
秦 孝公에게 등용되자 많은 반대파들을 무력으로 탄압하며 국가의 법령과 제도를 대대적으로 변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그러나 법령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처벌한 결과 원성이 자자하여,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 黥은 墨刑으로 五刑 가운데 하나인데 죄인의 얼굴에 먹물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이다.
《史記》 〈商君列傳〉에 “법령이 반포되어 시행된 지 한 해가 지났는데, 秦나라 백성들이 처음부터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수천 명에 달하였다. 그러다가 太子가 법령을 범하자 商鞅이 이르기를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윗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태자 대신 그의 師傅인 公子虔을 형벌하고 公孫賈를 黥刑에 처하니, 다음날이 되자 秦나라 사람들이 모두 법령을 따랐다.”라고 보인다.
역주3 世俗之人 不可以慮始而可樂成也 : 이 말은 〈商君列傳〉에 “백성들은 시작은 함께 도모할 수 없고 성공은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지극한 덕을 논하는 자는 속세와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성취하는 자는 민중과 함께 의논하지 않는다.[民不可與慮始而可與樂成 論至德者不和於俗 成大功者不謀於衆]”라는 商鞅의 말을 원용한 것이다.
역주4 三代之書 : 《書經》을 이른다. 《書經》은 〈虞書〉, 〈夏書〉, 〈商書〉, 〈周書〉로 이루어져 그 내용이 주로 三代에 관한 것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吁兪嗟嘆唯諾 : 吁兪은 ‘吁咈都兪’의 줄임말로, 주로 《書經》 〈虞書〉에서 쓰였는데, 대화체에 쓰이는 감탄사들이다. 吁는 ‘아니다.’ 정도의 보통의 부정을 의미하고, 咈은 ‘절대 아니다.’의 강한 부정을 의미하며, 都는 ‘매우 좋다.’의 강한 긍정을 의미하고, 兪는 ‘좋다.’ 정도의 보통의 긍정을 의미한다. 嗟嘆은 감탄을 이르며, 唯諾은 승낙하는 것을 이른다. 〈虞書〉는 〈堯典〉과 〈舜典〉, 〈大禹謨〉와 〈皐陶謨〉․〈益稷〉을 이르는데, 이들을 요약하여 ‘典謨’라 칭하기도 한다.
역주6 湯武征伐之際 : 湯王이 夏나라를 멸망시키고, 武王이 商나라를 멸망시킨 일을 이른다. 湯王의 일은 《書經》 〈商書 湯誓〉에, 武王의 일은 《書經》 〈周書 泰誓․牧誓․武成〉에 기재되어 있다.
역주7 盤庚之遷 : 盤庚은 商나라의 군주로 湯王의 9대손인데, 형 陽甲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商나라는 仲丁 이후 잦은 왕위 분쟁으로 국세가 기울었는데, 盤庚이 즉위한 뒤에 祖乙 때로부터 도읍하였던 耿이 河水에 무너졌으므로 殷으로 遷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大家와 世族들이 반발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백성들을 선동하였으며, 백성들 또한 利害에 현혹되어 천도하려 하지 않았다. 《書經 商書 盤庚》
역주8 其先王盛德明聖……不救汝死 : 先王은 湯王으로부터 盤庚 이전에 재위했던 商나라 君主들을 이른다.
五遷은 다섯 번 遷都한 것을 이르는데, 〈盤庚〉의 蔡沈의 集傳에 “五邦은 漢나라 孔氏(孔安國)가 이르기를 ‘湯은 亳에 천도하고, 仲丁은 囂에 천도하고, 河亶甲은 相에 거하고, 祖乙은 耿에 거하였으니, 盤庚이 殷에 천도한 것까지 아울러 五邦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랫글에 ‘이제 옛날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文勢로 살펴본다면 盤庚 이전에 별도로 다섯 번 천도가 있었을 것이다. 《史記》에 ‘祖乙이 邢에 천도했다.’라고 하였으니, 혹 祖乙이 두 번 천도하였나 보다.”라고 보인다.
본문의 내용은 東坡가 〈盤庚〉을 요약하여 말한 것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先王께서 일이 있으시면 天命을 삼가시되 오히려 항상 편안하지 않으시어 그 도읍을 한 곳에 하지 않으신 것이 지금 다섯 고을이니, 이제 옛날을 계승하지 않으면 하늘이 命을 끊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능히 先王의 功烈을 따른다.’고 말하겠는가?……
옛날 우리 先后께서 이미 너희들의 祖․父를 수고롭게 하셨다. 그리하여 너희들이 함께 나의 기르는 백성이 되었으니, 국가의 일을 해롭게 하려는 생각이 너희들 마음속에 있으면, 우리 先后께서 너희들의 祖․父를 회유하실 것이니, 그러면 너희들의 祖․父는 마침내 너희들을 끊고 버려서 너희들의 죽음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先王有服 恪謹天命 玆猶不常寧 不常厥邑 于今五邦 今不承于古 罔知天之斷命 矧曰其克從先王之烈……古我先后 旣勞乃祖乃父 汝共作我畜民 汝有戕 則在乃心 我先后綏乃祖乃父 乃祖乃父 乃斷棄汝 不救乃死]” 先后는 先王과 같은 말로 여기서는 湯王(成湯)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9 汝罔曁余同心……作大戮于朕孫 : 이 내용 또한 〈盤庚〉을 축약한 것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나의 政事를 다스려 지위를 함께한 자들이 貨貝와 玉을 모으면, 너희들의 祖․父가 크게 우리 高后에게 아뢰어 ‘나의 손자에게 큰 형벌을 내리소서.’라고 말하고, 高后를 인도하여 크게 祥瑞롭지 못함을 많이 내릴 것이다.[玆予有亂政同位 具乃貝玉 乃祖乃父 丕乃告我高后 曰作丕刑于朕孫 迪高后 丕乃崇降弗祥]” 高后는 바로 湯王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10 王霸 : 王霸는 王道와 霸道를 이른다. 王道는 仁義에 의해 천하를 다스리는 德政을 이르고, 霸道는 무력과 형벌 또는 權謀로 천하를 통치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11 先甲三日 後甲三日 : 이 내용은 《周易》 蠱卦 卦辭에 “蠱는 크게 善하여 亨通하다. 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니, 甲보다 먼저 3일을 하고 甲보다 뒤에 3일을 하여야 한다.[蠱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程伊川의 《易傳》에 이르기를 “혼란함을 다스리는 방법은 마땅히 그 앞뒤 3일을 思慮하여야 하니, 앞뒤를 미루어 근원해서 병폐를 바로잡고 장구히 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先甲’은 이보다 앞서 함을 이르니 그 所以然을 연구하는 것이요, ‘後甲’은 이보다 뒤에 함을 이르니 장차 그러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1, 2일로부터 3일에 이르니, 생각함이 깊고 推原함이 멂을 말한 것이다.
所以然을 연구하면 병폐를 바로잡을 방법을 알고, 장차 그러할 것을 염려하면 대비할 방법을 알 것이니, 병폐를 잘 바로잡으면 전일의 병폐를 개혁할 수 있고, 장차 그러할 것을 잘 대비하면 후일의 이익을 장구히 할 수 있다. 이는 옛날 聖王이 天下를 새롭게 하고 후세에 드리워준 것이다.[治蠱之道 當思慮其先後三日 蓋推原先後 爲救弊可久之道 先甲 謂先於此 究其所以然也 後甲 謂後於此 慮其將然也 一日二日 至於三日 言慮之深 推之遠也 究其所以然 則知救之之道 慮其將然 則知備之之方 善救則前弊可革 善備則後利可久 此古之聖王 所以新天下而垂後世也]”라고 하였다.
또한 孔穎達의 疏에는 “甲보다 먼저의 3일은 辛이고, 甲보다 뒤의 3일은 庚이니, 辛은 新의 뜻이 있고, 庚은 更(변경)의 뜻이 있다. 법령을 새롭게 변경하려면 신중히 하여 미리 신신당부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蠱卦는 山을 상징하는 艮(☶)과 風을 상징하는 巽(☴)이 만나 이루어진 卦로, 일이 있는 卦이기 때문에 개혁하고 변경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12 已日乃孚 : 이 내용은 《周易》 革卦 〈彖傳〉에 “革은 물과 불이 서로 滅息하며 두 여자가 한 곳에 같이 살되 그 뜻이 서로 맞지 못하는 것이 革이다. 하루가 지나서야 개혁하여 믿게 하는 것이다.[彖曰 革 水火相息 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 已日乃孚 革而信之]”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程伊川의 《易傳》에 이르기를 “일을 變革할 적에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대번에 믿겠는가. 반드시 하루가 지난 뒤에야 믿어준다. 위에 있는 자가 改革하는 즈음에 마땅히 상세히 알리고 거듭 명령하여, 하루가 지남에 이르러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여야 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믿지 않으면, 비록 억지로 시행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先王의 政令을 처음에는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오래되면 반드시 믿었으니, 끝내 믿게 하지 않고서 善治를 이룬 자는 있지 않다.[事之變革 人心豈能便信 必終日而後孚 在上者於改爲之際 當詳告申令 至於已日 使人信之 人心不信 雖强之行 不能成也 先王政令 人心始以爲疑者有矣 然其久也必信 終不孚而成善治者 未之有也]”라고 하였다.
革卦는 위에는 兌(☱), 아래에는 離(☲)가 있는데, 兌는 못이고 離는 불이며, 兌는 少女이고 離는 中女이므로, 〈彖傳〉에 “물과 불이 서로 滅息하며 두 女子가 한 곳에 같이 살되 그 뜻이 서로 맞지 못함이 革이다.[革 水火相息 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라고 한 것이다.
역주13 魯論亦曰 君子信而後勞其民 : ‘魯論’은 魯 지방에 유행하던 《論語》로 齊 지방에 유행하던 齊論과 상대되는 명칭인데, 지금의 《論語》가 바로 이것이다.
《論語》 〈子張〉에 “君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백성을 수고롭게 하니,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자기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군주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간하니, 군주가 믿지 않으면 자신을 비방한다고 여긴다.[君子信而後 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則以爲謗己也]”라고 한 子夏의 말이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