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所謂豪傑之士者는 必有過人之節하야 人情에 有所不能忍者하니 匹夫見辱에 拔劍而起하야 挺身而鬪는 此不足爲勇也라
天下에 有大勇者하니 卒然臨之而不驚하고 無故加之而不怒하나니 此其所挾持者甚大하고 而其志甚遠也라
然이나 亦安知其非秦之世에 有隱君子者出而試之리오
觀其所以微見其意者하면 皆聖賢相與警戒之義어늘 而世不察하고 以爲鬼物이라하니 亦已過矣요
當韓之亡, 秦之方盛也
에 以
으로 待天下之士
하야 其平居
에 無罪夷滅者
를 不可勝數
하니 雖有
이나 無所復施
라
夫持法太急者
는 其鋒
을 不可犯
하고 而其勢
를 未可乘
이어늘 하니
當此之時하야 子房之不死者는 其間이 不能容髮하니 蓋亦已危矣라
子房
이 以蓋世之才
로 不爲
하고 而特出於
하야 以僥倖於不死
하니 此圯上之老人
이 所爲深惜者也
라
是故로 倨傲鮮腆而深折之하니 彼其能有所忍也然後에 可以就大事라
莊王曰 其君
이 能下人
하니 必能信用其民矣
리라하고 遂舍之
하며 하니라
夫老人者 以爲 子房이 才有餘나 而憂其度量之不足이라
故로 深折其少年剛銳之氣하야 使之忍小忿而就大謀하니라
非有平生之素요 卒然相遇於草野之間하야 而命以僕妾之役이로되 油然而不怪者는 此固秦皇帝之所不能驚이요 而項籍之所不能怒也라
觀夫高祖之所以勝而項籍之所以敗者하면 在能忍與不能忍之間而已矣라
是以로 百戰百勝하야 而輕用其鋒하고 高祖는 忍之하야 養其全鋒하야 而待其弊하니 此는 子房敎之也라
當
하니 由此觀之
하면 猶有剛彊不忍之氣
하니 非子房
이면 其誰全之
리오
此文은 若斷若續하야 變幻不羈하야 曲盡文家操縱之妙하니라
이 문장은 다만 한 가지 뜻을 반복하여 의논을 막힘없이 전개하였다.
그러나 자첨子瞻의 흉중胸中의 견해는 또한 본래 황로黃老에서 온 것이다.
옛날에 이른바 호걸스러운 선비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행실이 있어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는 참지 못하는 일이 있었으니, 필부匹夫가 모욕을 당함에 검劍을 뽑아 들고 일어나 몸을 솟구쳐 싸우는 것은, 이는 용맹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천하에 크게 용맹한 자가 있으니, 일이 갑자기 임하여도 놀라지 않고 까닭 없이 침해를 가하여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심히 크고 그 뜻이 매우 원대한 것이다.
자방子房이 흙다리 위의 노인에게서 책을 받은 것은 그 일이 매우 괴이하다.
그러나 또한 진秦나라 시대에 은둔한 군자君子가 나와서 자방子房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노인이 자신의 뜻을 은미하게 나타낸 것을 살펴보면 모두 성현이 서로 함께 경계한 뜻인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살피지 못하고 노인을 귀신이라고 하니, 또한 너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또 노인의 뜻은 병서兵書를 전수하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한韓나라가 망하고 진秦나라가 막 강성할 적에 칼과 톱, 솥과 가마솥으로 천하의 선비를 대하여 평소에 죄없이 죽고 멸망한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니, 아무리 맹분孟賁과 하육夏育과 같은 용맹이 있더라도 다시 힘을 쓸 데가 없었다.
법法을 너무 급하게 집행하는 자는 그 예봉銳鋒을 범할 수 없고 그 형세를 탈 수 없는 법인데, 자방子房은 분하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필부의 힘으로 일격을 가하는 사이에서 분풀이를 하고자 하였다.
이때 자방子房이 죽지 않은 것은 그 사이가 털끝 하나도 용납할 틈이 없었으니, 진실로 너무 위태로웠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그 몸이 아까워 도적에게 자기 몸을 죽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방子房은 세상을 덮을 만한 훌륭한 재주로써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의 계책을 세우지 않고, 다만 협객인 형가荊軻와 섭정聶政의 계책을 내면서 요행으로 죽지 않기를 바랐으니, 이것을 흙다리 위의 노인이 깊이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이 때문에 노인이 거만하게 대하고 거드름을 피워 자방子房을 깊이 꺾었으니, 노인은 자방子房이 능히 참을 줄 안 뒤에야 대사를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젊은이를 가르칠 수 있겠다.”라고 말한 것이다.
초 장왕楚 莊王이 정鄭나라를 정벌하자, 정백鄭伯이 윗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양羊을 끌고 맞이하였다.
이에 장왕莊王이 말하기를 “그 임금이 능히 남에게 자신을 낮추니, 반드시 그 백성들을 믿고 잘 이용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으며, 월왕 구천越王 句踐이 회계산會稽山에서 곤경에 처했다가 돌아가 오吳나라에 신첩臣妾 노릇하기를 3년 동안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 남에게 보복할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필부의 강함일 뿐이다.
노인은 자방子房이 재주는 유여하다고 여겼으나 도량이 부족함을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소년의 강하고 날카로운 기운을 깊이 꺾어서 그로 하여금 작은 분노를 참아 큰 계책을 성취하게 한 것이다.
평생의 안면이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초야草野의 사이에서 서로 만나 종과 첩이 하는 일을 시키는데도 유연히 처하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는 진실로 진 시황秦 始皇도 놀라지 않는 바요, 항적項籍도 성내지 않는 바이다.
고조高祖가 승리한 이유와 항적項籍이 패망한 이유를 살펴보면, 능히 참았는가 능히 참지 못하였는가의 사이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백전백승하였으나 자기의 칼날을 함부로 사용하였고, 고조高祖는 이것을 참아서 그 온전한 칼날을 길러 상대방이 피폐해지기를 기다렸으니, 이는 자방子房이 가르쳐준 것이다.
회음후淮陰侯가 제齊나라를 격파하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을 적에 고조高祖가 성을 내어 말소리와 안색에 노기가 나타났으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고조高祖는 아직도 강강剛彊하여 참지 못하는 기운이 있었던 것이니, 자방子房이 아니면 그 누가 온전히 해주었겠는가?
태사공太史公은 ‘자방子房이 기골이 장대하고 인품이 기이하고 위대할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그 형상과 모양이 도리어 부인과 여자 같아, 그 지기志氣에 걸맞지 못하다.’고 의심하였으니, 아!
“이 문장은 마치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 변환變幻하여 얽매임이 없어서 문장을 다루는 묘리를 곡진히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