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先王之澤衰然後에 變風이 發乎情하니 雖衰而未竭이라 是以로 猶止於禮義하야 以爲賢於無所止者而已라
若夫發於(情)[性]하야 止於忠孝者는 其詩를 豈可同日而語哉리오
古今詩人
이 衆矣
로되 而
爲首
는 豈非以其流落飢寒
하야 終身不用
이로되 而一飯未嘗忘君也歟
아
今定國
이 以余故得罪
하야 에 一子死貶所
하고 一子死于家
하고 定國亦病幾死
하니 余意其怨我甚
하야 不敢以書相聞
이러니
而定國
이 歸至
하야 以其
所作詩數百首
로 寄余
하니 皆淸平豐融
하야藹然有治世之音
하야 其言
이 與志得道行者無異
라
幽憂憤歎之作
이 蓋亦有之矣
나 特恐死嶺外
하야 而天子之恩
을 不及報
하야 以
라
余然後에 廢卷而歎하야 自恨(其)[期]人之淺也로라
又念昔者
에 定國
이 하야 留十日
하야 往返作詩幾百篇
하니 余苦其多
하고 畏其敏
하고 而服其工也
라
一日
에 定國
이 與
로 游泗水
하고 登
하야 吹笛飮酒
하야 乘月而歸
어늘
今余老하야 不復作詩하고 又以病止酒하야 閉門不出이라
門外數步는 卽大江이로되 經月不至江上하야 眊眊焉眞一老農夫也어늘
而定國은 詩益工하고 飮酒不衰하며 所至에 窮山水之勝하야 不以厄窮衰老로 改其度하니 今而後에 余之所畏服於定國者 不獨其詩也로라
소장공蘇長公은 글을 유념하여 짓지 않았으나 결구結搆가 잘된 것이 많다.
태사공太史公(사마천司馬遷)이 《시경詩經》을 논하여 말하기를 “〈국풍國風〉은 여색女色을 좋아하였으나 음탕하지 않고, 〈소아小雅〉는 원망하고 비방하였으나 어지럽지 않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보건대 이는 태사공太史公은 다만 변풍變風과 변아變雅만 알았을 뿐이니, 어찌 《시경詩經》의 바름을 보았겠는가?
옛날 선왕先王의 은택이 쇠퇴한 뒤에 변풍變風이 인정에서 나왔는데, 비록 선왕先王의 은택이 쇠퇴하였으나 다 없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예의禮義에 그쳐서, 그치는 바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성정性情에서 나와 충효忠孝에서 그친 것으로 말하면 그 시詩를 어찌 동일선상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옛날과 지금의 시인詩人이 많지만 두자미杜子美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어찌 그가 유락流落하여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종신토록 등용되지 못했으나, 한 번 밥 먹는 짧은 시간에도 일찍이 군주君主를 잊지 않은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왕정국王定國이 나 때문에 죄를 얻어서 바닷가로 좌천된 지 3년만에, 한 아들은 좌천된 곳에서 죽었고 한 아들은 집에서 죽었고 왕정국王定國 또한 병들어서 거의 죽게 되었으니, 나는 그가 나를 심히 원망할 것이라고 여겨서 감히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지 못하였다.
그런데 왕정국王定國이 강서江西로 돌아와 영외嶺外에서 지은 시詩 수백 수首를 나에게 부쳐왔는데, 이 시詩들은 모두 내용이 깨끗하고 화평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워 훌륭하게 치세治世의 음운音韻이 있어서, 그 내용이 뜻을 얻어 도道를 행한 자와 차이가 없었다.
간혹 속으로 근심하고 분노하고 한탄한 작품도 있었지만 이는 다만 영외嶺外에서 죽어서 천자天子의 은혜를 미처 갚지 못하여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으니, 왕정국王定國은 나도 원망하지 않는데 하늘을 원망하려 하겠는가?
나는 이 시詩를 읽어본 뒤에야 시권詩卷을 덮고 탄식하면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낮은 것을 한하였다.
또 생각하니, 옛날에 왕정국王定國이 나를 팽성彭城으로 방문하여 열흘 동안 머물 적에 오가며 시詩를 지은 것이 수백 편이었는데, 나는 그 많음을 괴로워하고 그 민첩함을 두려워하고 그 공교함에 탄복하였다.
하루는 왕정국王定國이 안복 장도顔復 長道와 함께 사수泗水를 유람하고 환산桓山에 올라가서 피리를 불고 술을 마시고는 달빛을 타고 돌아왔는데,
나 또한 이때 황루黃樓 위에 술자리를 베풀어서 대접하고, 말하기를 “이태백李太白이 죽은 뒤에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없어진 지 300년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나는 지금 늙어서 더이상 시詩를 짓지 못하고, 또 병 때문에 술을 끊고서 문을 닫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문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면 바로 대강大江이 있는데도 한 달이 지나도록 강가에 나가지 못해서 흐리멍덩하여 참으로 한 늙은 농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왕정국王定國은 시詩가 더욱 공교하고 술도 여전히 잘 마시며 가는 곳마다 산수山水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겨서, 곤궁하고 노쇠하다고 하여 그 법도를 고치지 않으니, 지금 이후로 내가 왕정국王定國에게 두려워서 복종하는 것은 다만 그 시詩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