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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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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正統論 中
正統之論 起於하고 而霸統之說 起於하니 二子之論 吾與歐陽子
不得不與章子辨하야 以全歐陽子之說이로니 歐陽子之說이면 而吾之說 又因以明이리라
라하니 章子未知夫名實之所在也
夫所謂正統者 猶曰有天下云爾 〈名也
正統者 果名也인댄 又焉實之知리오
視天下之所同君而加之하니 又焉知其他리오
이라하니 夫魏雖不能一天下 亦無有如魏之彊者
吳雖存이나 非兩立之勢 奈何不與之統이리오
正統者 惡夫天下之無君而作也
天下雖不合於一이나 而未至乎兩立者 則君子不忍絶之於無君이라
且夫德同而力均이면 不臣焉 可也어니와 今以天下不幸而不合於一하야 德旣無以相過하고 而弱者又不肯臣乎彊하니 於是焉而不與之統이면 亦見其重天下之不幸하야 而助夫不臣者也니라
是鄕人 與是爲盜者 民則皆民也 士則皆士也 大夫則皆大夫也 則亦與之皆坐乎
苟其勢不得不與之皆坐 則鄕人何恥耶
聖人得天下하고 簒君亦得天下인댄 顧其勢不得不與之同名이니 聖人何恥耶
吾將以聖人恥夫簒君이언정 而簒君 又焉能恥聖人哉리오
以一身之正爲正耶
以天下有君爲正耶
一身之正 是天下之私正也 天下有君 是天下之公正也 吾無取乎私正也
天下無君하야 簒君出而制天下하니 湯武旣沒하시니 吾安所取正哉리오
簒君者 亦當時之正而已니라
漢與晉 雖得天下 而魏不能一하니 則魏不得爲有統이라하니 吾將曰
其兄四十而死 則其弟五十 爲壽 弟爲壽乎其兄이요 魏爲有統乎當時而已
舅則以爲妻어늘 而婦獨奈何不以爲姑乎
以妾爲妻者 舅之過也 婦謂之姑 蓋非婦罪也라하노라
擧天下而授之魏晉 是亦漢魏之過而已矣 與之統者 獨何罪乎
雖然이나 歐陽子之論 猶有異乎吾說者
歐陽子之所與者 吾之所與也 歐陽子之所以與之者 非吾所以與之也 歐陽子 重與之하고 而吾 輕與之로라
嗚呼
吾不善夫少也하노라
幸而得之者少 有以尊重其名인댄 不幸而皆得이면 歐陽子其敢有所不與耶
且其重之 則其施於簒君也 誠若過然이라
章子以啓其說이니라
夫以文王而終身不得이어시늘 以魏晉梁而得之하니 果其爲重也 則文王將有愧於魏晉梁焉이리라
必也使夫正統者 不得爲聖人之盛節이면 則得之爲無益이니 得之爲無益이라 雖擧而加之簒君이라도 而不爲過니라
使夫文王之所不得이어늘 而魏晉梁之所得者 皆吾之所輕者也
然後 魏晉梁 無以愧文王이요 而文王亦無所愧於魏晉梁焉이니라


02. 정통正統에 대한 논 중論 中
정통正統구양자歐陽子에게서 시작되었고 패통霸統의 설은 장자章子에게서 시작되었는데, 두 사람의 가운데 나는 구양자歐陽子을 옳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장자章子를 논변하여 구양자歐陽子을 완전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으니, 구양자歐陽子이 완전히 밝혀지면 나의 이 또한 따라서 밝아질 것이다.
장자章子의 설에 이르기를 “〈구양수歐陽脩의 〈정통론正統論〉에〉 후량後梁정통正統으로 올려준 것은 괜찮지만 정말로 잘하지는 못한 것이요, 정통正統으로 올려준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장자章子의 소재를 알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정통正統이란 것은 천하를 소유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이다.
정통正統이 과연 이라면 또 어찌 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천하 사람들이 똑같이 군주라고 여기는 것을 보고서 정통正統이란 을 가하는 것이니, 또 어찌 딴 것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장자章子는 생각하기를 ‘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으니, 나라에게 정통正統을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여긴 것이니, 나라가 비록 천하를 통일하지는 못했으나 당시에 나라처럼 강한 나라는 있지 않았다.
비록 나라가 그때 있었으나 양립하는 형세가 아니니, 어떻게 나라에게 정통正統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자章子오대五代를 끊지 않은 것도 다만 천하에 그들과 대적할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여긴 것일 뿐이니, 지금 나라를 끊는다면 나라가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정통正統이라는 것은 천하에 군주가 없음을 싫어하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가 비록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더라도 두 나라가 양립하는 경우에 이르지 않았다면 군자가 차마 군주가 없다고 끊어버리지 못하였다.
이 같고 세력이 비등하다면 신하 노릇하지 않는 것도 괜찮지만, 지금 천하가 불행하게도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여 이 서로 뛰어나지 못하면서 약자가 또 강자에게 신하 노릇하려 하지 않으니, 이러한 때에 강자에게 정통正統을 주지 않는다면 천하의 불행을 가중시켜서 저 신하 노릇하지 않는 자들을 도와주는 결과를 보게 될 뿐이다.
장자章子가 말하기를 “시골 사람도 도둑과 짝지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과 같은 성인聖人을 어찌 찬탈한 군주와 똑같이 칭하여 정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시골 사람이 도둑과 함께 그 신분이 똑같이 백성이거나 똑같이 이거나 똑같이 대부大夫라면, 또한 도둑과 함께 한 자리에 같이 앉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형편상 도둑과 함께 같이 앉을 수밖에 없다면 시골 사람이 부끄러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성인聖人이 천하를 얻었고 찬탈한 군주 또한 천하를 얻었다면, 돌아보건대 그 형편이 찬탈한 군주와 똑같이 칭할 수밖에 없으니, 성인聖人이 무엇을 부끄러워하시겠는가?
우리가 성인聖人 때문에 찬탈한 군주를 부끄럽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찬탈한 군주가 또 어찌 성인聖人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겠는가?”
장자章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에 머무는 것을 훌륭하게 여기는데, 부정한 사람을 이 자리에 머물게 하면, 이는 부정不正의 거리가 서로 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장자章子가 말하는 은 무엇인가?
자기 한 몸의 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천하에 군주가 있는 것을 이라고 하는 것인가?
자기 한 몸의 은 바로 천하의 사적私的이고, 천하에 군주가 있는 것은 천하의 공적公的이니, 나는 사적私的을 취하지 않는다.
천하에 훌륭한 군주가 없어서 찬탈한 군주가 세상에 나와 천하를 통치하였는데, 탕왕湯王무왕武王이 이미 별세하셨으니, 내가 어느 곳에서 을 취하겠는가?
그러므로 찬탈한 군주 또한 당시의 (정통正統)일 뿐인 것이다.
장자章子가 말하기를 “할아버지와 손자가 비록 1백세를 살았더라도, 자식이 50세를 살았으면 자식은 장수長壽하였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와 나라는 비록 천하를 얻었더라도, 그 중간에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나라는 정통正統을 소유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형이 40세에 죽었다면 아우가 50세에 죽은 것이 장수長壽가 되니, 아우는 그 형보다 장수長壽한 것이 되고, 나라는 당시當時정통正統을 소유한 것이 될 뿐이다.”
장자章子는 이것을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총애하는 첩을 시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 비유하였는데,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시아버지가 라고 하는데 며느리가 어찌 홀로 시어머니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첩을 아내로 삼은 것은 시아버지의 잘못이니, 며느리가 시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며느리의 잘못이 아니다.
온 천하를 들어서 나라와 나라에 준 것은 또한 나라와 나라의 잘못일 뿐이니, 그에게 정통正統을 주는 자들을 어찌 죄 준단 말인가?”
그러나 구양자歐陽子도 나의 과는 다른 점이 있다.
구양자歐陽子정통正統을 허여한 것은 내가 허여하는 바이나, 구양자歐陽子정통正統을 허여하는 근거는 내가 허여하는 근거가 아니니, 구양자歐陽子정통正統을 신중하게 허여했는데 나는 가볍게 허여하는 것이다.
구양자歐陽子의 말에 이르기를 “ 이래로 정통正統이 여러 번 끊겨서 정통正統을 얻은 자가 적으니, 정통正統을 얻은 자가 적기 때문에 정통正統이란 이름이 매우 존귀하고 소중하다.”라고 하였다.
아!
나는 정통正統이 적은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다행히 정통正統을 얻은 자가 적기 때문에 그 이름이 존귀하고 소중하다고 한다면, 불행히도 모두 정통正統을 얻는 경우에 있어서는 구양자歐陽子는 감히 정통正統을 허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통正統을 소중히 여긴다면 찬탈한 군주에게 정통正統을 가하는 것은 진실로 지나친 듯하다.
그러므로 장자章子가 자신의 (패통霸統)을 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문왕文王처럼 훌륭한 군주도 종신토록 정통正統을 얻지 못했는데, 나라와 나라와 후량後梁정통正統을 얻었으니, 과연 정통正統이 이렇게 소중하다면 문왕文王은 장차 나라, 나라와 후량後梁에게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정통正統성인聖人의 훌륭한 일로 삼지 않는다면 정통正統을 얻어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니, 정통正統을 얻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정통正統이란 이름을 들어 찬탈한 군주에게 가하더라도 지나침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문왕文王정통正統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것을 나라와 나라와 후량後梁이 얻은 것은, 모두 내가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나라와 나라와 후량後梁문왕文王을 부끄럽게 만들 수 없고, 문왕文王 또한 나라와 나라와 후량後梁에게 부끄러운 바가 없을 것이다.


역주
역주1 歐陽子 : 歐陽脩(1007~1072)를 높여 칭한 것으로, 字는 永叔이며, 醉翁 또는 六一居士로 自號하였다.
역주2 章子 : 章望之를 가리킨 것으로 字는 表民인데 論辨에 뛰어나 여러 편의 論說을 지었고 文集이 있다. 그가 지은 〈明統論〉에 “지금 나는 統을 둘로 나누어 正統과 霸統이라 한다. 功․德으로 천하를 얻은 제왕은 얻은 것이 正統이니, 堯와 舜, 夏․商․周․漢․唐과 우리 宋나라의 군주가 바로 그것이고, 천하를 얻었으나 功․德이 없는 자는 강한 힘으로 얻었을 뿐으로 이것이 霸統이니, 秦․晉․隋의 군주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章子之說曰……進魏非也 : 章望之의 〈明統論〉에 “歐陽永叔(歐陽脩)의 〈正統論〉은 正統을 인정해주고 인정해주지 않음에 있어 예전의 說과 네 가지가 다르니, 前代에는 秦나라를 閏統이라 하였는데 이제 〈正統論〉은 그 功業의 뛰어남을 비교하여 ‘秦나라가 마땅히 正統을 얻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陳壽는 《三國志》를 지을 적에 똑같이 三國의 志를 만들고 魏나라에 本紀를 세워 吳․蜀(蜀漢) 두 나라를 통합하지 않았는데, 〈正統論〉은 魏를 正統으로 올렸으며, 또 ‘朱梁이 唐나라를 얻었다.’고 하여 後唐 以後는 모두 僞梁에게 내침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後梁을 또한 正統으로 올렸다. 나는 생각하건대 秦나라를 正統으로 올려준 것은 괜찮지만 정말로 잘한 일은 못 되고, 魏나라와 後梁을 올려준 것은 잘못이라고 여긴다. 무릇 책을 만드는 이유는 장차 세상의 다스림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이니, 秦나라와 魏나라와 後梁이 正統을 얻고 얻지 못하는 것은 손해되고 이익되는 바가 없으나, 애석한 것은 이들을 正統으로 올려줄 경우 善과 惡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梁은 朱全忠의 後梁을 가리키며, 僞梁 역시 괴뢰정권이라는 뜻으로 後梁을 가리킨다. 蘇軾이 여기에 인용한 부분은 章望之의 底本과는 약간 다르다. 그리고 ‘得’은 底本과 本集 및 郎曄本에 모두 ‘失’로 되어 있으나, 羅振常의 《經進東坡文集史略考異》에 “글 뜻을 살펴보면 마땅히 ‘得’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고, 章望之의 문집에도 또한 ‘得’으로 되어 있으므로 ‘得’으로 고쳤다.
역주4 章子以爲……不當與之統 : 〈明統論〉에 “魏나라가 吳나라와 蜀漢을 소유하지 못함은 吳나라와 蜀漢이 魏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것과 똑같다. 蜀漢은 비록 먼저 멸망하였으나 吳나라는 魏․蜀․吳 삼국 중에 가장 뒤에 망했으니, 魏나라가 어찌 天下를 통일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5 章子之不絶五代也……與之敵者而已 : 〈明統論〉에 “朱梁이 힘을 믿고 君主를 속였으며 君主의 자제와 宗屬들을 죽이고 천하를 얻고는 황제라는 큰 명칭을 들어 사방에 군림하였는데, 사방에 비록 奸雄이 있었으나 감히 朱梁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그의 강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역주6 章子曰……同名哉 : 〈明統論〉에 “歐陽永叔이 魏나라를 正統으로 올려준 것은 다만 찬탈을 잘한 것을 장려한 것이다. 지극히 公正함으로 천하를 얻은 자는 堯․舜과 禹王이고, 大義로 천하를 얻은 자는 湯王과 武王이다. 그러므로 二帝와 三王이 正統을 얻은 것은 의심할 것이 없으나 마침내 찬탈한 君主까지 正統으로 올려서 똑같은 대열이 되게 하였으니, 堯․舜과 같은 聖人들이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겠는가? 지금 여기에 한 시골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특별한 재능이 없으나 일찍이 나쁜 짓을 하여 형벌에 빠진 적이 없었는데, 이윽고 예전에 일찍이 도둑질을 한 자와 함께 무리가 되어 술을 마신다면 그 시골 사람은 도둑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시골 사람도 도둑과 짝지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聖人이 어찌 찬탈한 君主와 이름을 같이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7 章子曰……未能相遠也 : 〈明統論〉에 “歐陽永叔은 ‘正統의 論이 《春秋》의 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春秋公羊傳》에 ‘大居正’과 ‘大一統’의 글을 인용하여 근거로 삼았다. 이미 ‘大居正’이라고 말하였는데, 또 바르지 않은 자가 거한다면 이는 바름과 바르지 않음의 거리가 크게 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歐陽脩가 〈正統論〉에서, 《春秋公羊傳》에 나오는 ‘君子大居正’과 ‘大一統’이란 말을 인용하였으나 도리어 曹丕의 魏나라를 正統에 나열하였으니, 그렇다면 正과 不正이 또 큰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역주8 章子曰……則魏不得爲有統 : 〈明統論〉에 “歐陽永叔은 다만 魏나라가 漢나라와 晉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는데, 晉나라와 漢나라가 모두 正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魏나라를 연결하여 正統에 올린 것이다. 이는 알기가 어렵지 않다. 한 大夫가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1백세에 죽었고 자신은 50세에 죽었을 경우, 1백세는 50세에 비하면 훨씬 더 장수한 것이 된다. 후일에 大夫의 아들이 또한 1백세를 살았을 경우, 大夫의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장수했다 하여, 50세에 죽은 大夫를 短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漢나라가 일어날 적에 天下를 겸하여 소유하였고, 晉나라가 일어날 적에 武帝가 吳나라를 평정한 다음 中國에서 신하 노릇하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魏나라가 일어날 적에 天下를 겸하여 소유하였는가? 中國에서 신하 노릇하지 않는 자가 없었는가? 이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역주9 章子比之婦謂舅嬖妾爲姑 : 〈明統論〉에 “지금 남의 며느리 된 자가 시어머니가 죽었는데, 시아버지가 다시 장가를 들었다면, 그녀를 시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만약 시아버지가 총애하는 妾을 시어머니 대신 데리고 살 경우, 그녀를 尊者와 가까이한다 하여 長妾이라고 지목하고 예우하는 것은 괜찮지만, 만일 시어머니라고 부른다면 이는 미혹된 것이니, 명칭을 바로잡는 道理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역주10 且其言曰……甚尊而重也 : 歐陽脩의 〈正統論 下〉에 “正統은 때로 끊길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正統의 순서는 위로 堯․舜으로부터 夏․商․周․秦․漢을 지나 끊겼고, 晉나라가 얻었다가 또다시 끊겼고, 隋와 唐이 얻었다가 또다시 끊겼다. 堯․舜 이래로 세 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으니, 오직 끊김이 있고 이어짐이 있은 뒤에야, 옳다 하고 그르다 함이 공정해지며 인정해주고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합당하여 正統이 분명해진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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