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
은 小至部曲營壘芻糧器械之間
하고 而大不過於攻城拔國用間之際
하니 蓋亦盡於此矣
요 天子之兵
과 天下之勢
는 武未及也
라
其書曰 將能而君不御者勝이라하니 爲君而言者는 有此而已니라
竊以爲 天子之兵은 莫大於御將이요 天下之勢는 莫大於使天下樂戰而不好戰이라하노라
夫天下之患
은 이요 患在於將帥之不力
하야 而以寇賊敵國之勢
로 內邀其君
이라
是故로 將帥多而敵國愈彊하고 兵加而寇賊愈堅하니 敵國愈彊而寇賊愈堅이면 則將帥之權이 愈重하고 將帥之權이 愈重이면 則爵賞을 不得不加라
夫如此면 則是盜賊이 爲君之患이나 而將帥利之요 敵國이 爲君之讐나 而將帥幸之니라
擧百倍之勢하야 而立毫芒之功하고 以藉其口하야 而邀利於其上하니 如此而天下不亡者는 特有所待耳라
하야 幾定魏地
로되 而不能斬
於孤窮之中
하고 하니라
如良醫之用藥
하야 蝮蝎
이 皆得自效於前
하야 而不敢肆其毒
하나니 何者
오
是以로 崇文決戰하야 不旋踵에 擒劉闢하니 此는 天子御將之法也니라
天下不樂戰이면 則不可與從事於危요 好戰이면 則不可與從事於安이라
昔秦人之法은 使吏士自爲戰하야 戰勝而利歸於民하야 所得於敵者를 卽以有之라
若夫王者之(民)[兵]은 要在於使之知愛其上而讐其敵하고 使之知其上之所以驅之於戰者 凡皆以爲我也라
是以로 樂其戰而甘其死하고 至於其戰也엔 務勝敵而不務得財하야
其賞也에 發公室而行之於廟하야 使其利不在於殺人이라
夫然後에 可以作之於安居之中하고 而休之於爭奪之際하야 可與安하고 可與危요 而不可與亂이니 此天下之勢也니라
論孫武에 而發武之兵書之所不及하니 蓋亦鑑宋之御將之無法하고 而其士卒이 狃於弱而不能戰之故也니라
이 편은 바로 제목을 빌려서 자신의 의논을 말한 것이다.
손무孫武는 전국시대의 장수였는데, 오吳나라를 위하여 생각할 줄만 알 뿐이었다.
이 때문에 장수로서 그의 계책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군주君主로서 쓰는 것은 안 된다.
지금 《손자병법孫子兵法》 13편은 작게는 부곡部曲(부대部隊)과 영루營壘와 건초와 식량과 병기의 사이에 이르고, 크게는 성城을 공격하고 나라를 함락시키고 간첩間諜을 운용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으니, 또한 여기에서 끝났을 뿐이요, 천자天子의 군대와 천하天下의 형세에는 손무孫武가 미치지 못하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르기를 “장수가 유능한데 군주가 통제하지 않으면 승리한다.”라고 하였는데, 군주를 위하여 말한 것은 이것이 있을 뿐이다.
내가 적이 생각하건대, 천자天子의 군대는 장수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천하天下의 형세는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되 전쟁을 좋아하지 않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천하의 화禍는 구적寇賊에 있지 않고 또한 적국敵國에도 있지 않으며, 장수가 힘을 다하지 않고 구적寇賊과 적국敵國의 형세를 이용하여 안으로 군주君主에게 공功을 요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적국敵國이 더욱 강해지고, 군대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구적寇賊이 더욱 견고해지니, 적국敵國이 더욱 강해지고 구적寇賊이 더욱 견고해지면 장수의 권한은 더욱 무거워지고 장수의 권한이 더욱 무거워지면 관작官爵과 상을 더 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구적寇賊이 군주의 우환이 되나 장수는 이것을 이롭게 여기고, 적국敵國이 군주의 원수가 되나 장수는 이것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이다.
백 배의 형세를 가지고 털끝만 한 공을 세우고는 이것을 구실 삼아 윗사람에게 이익을 요구하니, 이러고서도 천하가 망하지 않는 것은 다만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옛날 당唐나라의 혼란은 명황明皇(현종玄宗)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숙종肅宗 때에야 두 수도首都(장안長安과 낙양洛陽)를 수복하였으나, 승세를 타고 힘을 합쳐서 하북河北의 좀도둑을 다 소탕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덕종德宗이 택로澤潞와 위박魏博을 거두어 거의 위魏 지역을 평정하였으나, 외롭고 곤궁한 처지에 처한 전열田悅을 목 베지는 못하였으며, 헌종憲宗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대략 평정되었으나 남아 있는 여얼餘孼(잔당殘黨)들을 끝내 다 제거하지 못하였다.
당唐나라가 여러 번 침체를 딛고 일어났으나 끝내 떨치지 못한 까닭은 어째서인가?
장수된 신하들이 구적寇賊을 길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천자天子의 군대는 장수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수를 통제하는 방법은 저들이 이롭게 여기는 길로 열어주고,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마치 훌륭한 의원醫員이 약재를 운용하면 독약인 오훼烏喙와 독사와 전갈이 모두 앞에서 약효를 나타내면서도 감히 그 독毒을 부리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그 독약이 두려워하는 바를 주어 억제하기 때문이다.
헌종憲宗이 장차 유벽劉闢을 토벌하려 하면서 생각하기를 ‘고숭문高崇文이 아니면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겼는데, 유옹劉澭은 고숭문高崇文이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헌종憲宗은 고숭문高崇文에게 말하기를 “네가 유벽劉闢을 이기지 못하면 나는 유옹劉澭으로 하여금 너를 대신하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고숭문高崇文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발을 돌리기도 전에 유벽劉闢을 사로잡았으니, 이것이 천자가 장수를 통제하는 방법이다.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되 전쟁을 좋아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천하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지 않으면 국가가 위태로울 적에 함께 종사할 수가 없고, 또 전쟁戰爭하기를 좋아하면 평안할 적에 함께 종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 진秦나라의 법은 관리와 병사들로 하여금 각자 전투하게 해서 승리하면 그 이익이 백성들에게 돌아가서 적으로부터 얻은 것을 즉시 소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함에 있어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재물을 취할 길이 없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이 전쟁을 좋아함으로 인해 천하天下를 겸병兼幷하였는데, 또한 이로써 멸망하였다.
시황제始皇帝가 비록 유명한 성城을 헐어버리고 호걸豪傑들을 죽이고 병기의 칼날을 녹였으나, 백성들이 전쟁을 좋아하는 마음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함께 휴식을 하지 못해서 진秦나라는 결국 멸망에 이른 것이다.
왕자王者의 백성이란,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사랑하고 구적寇賊을 원수로 삼을 줄 알게 하며, 또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이 자기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모두 자신(백성)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하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을 기꺼워하고 죽음을 달갑게 여기며, 또 적과 싸울 적에 이르러는 적을 이기는 것에만 힘쓰고 재물을 얻는 것에 힘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상賞을 줄 적에 공실公室(왕실王室)의 재물을 내어 사당祠堂에서 상賞을 시행해서 그 이로움이 적을 죽이는 데 있지 않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전쟁을 좋아하는 데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백성들을 편안히 거주하는 가운데에도 동원할 수 있고 쟁탈하는 즈음에도 휴식할 수 있어서, 백성들과 함께 편안할 수도 있고 함께 위태로울 수도 있으나 함께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이니, 이것이 천하의 형세인 것이다.
손무孫武를 논하면서 손무孫武의 병서兵書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을 말하였으니, 아마도 또한 송宋나라가 장수를 통제하는 방법이 없고, 사졸士卒들이 나약함에 익숙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함을 귀감으로 삼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