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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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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文旨疎鬯하고 而韻度磬折하니라
라하니 愚以爲不然이라하노라
春秋之所以書猶者 二
曰如此而猶如此者 甚之之辭也
辛巳 有事於太廟할새 仲遂卒于垂한대 壬午 猶繹이로되 萬入去籥 是也
曰不如此而猶如此者 幸之之辭也 不郊로되 是也
夫子傷周道之衰하야 禮樂文章之壞로되 而莫或救之也
區區焉掇拾其遺亡하사 以爲其全 不可得而見矣 得見一二 斯可矣라하시니
閏月 不告朔이로되 猶朝于廟者 憫其不告朔이요 而幸其猶朝于廟也 不郊猶三望者 傷其不郊 而幸其猶三望也니라
夫郊祀者 先王之大典이로되 而夫子不得親見之於周也
因魯之所行郊祀之禮하야 而備言之焉耳시니라
春秋之書三望者 皆爲不郊而書也 或卜郊不從한대 乃免牲이로되 猶三望하고 或郊牛之口傷이어늘 改卜牛러니 牛死 乃不郊로되 猶三望하고 或鼷鼠食郊牛角이어늘 改卜牛러니 鼷鼠又食其角한대 乃免牛하고 不郊로되 猶三望하니라
且夫魯雖不郊 而猶有三望者存焉이면 此夫子之所以存周之遺典也 若曰 可以已 則是周之遺典 絶矣니라
或曰 魯郊 僭也어늘 而夫子何存焉
曰 魯郊 僭也 而夫子不譏하시니 夫子之所譏者 當其罪也
賜魯以天子之禮樂者 成王也 受天子之禮樂者 伯禽也 春秋而譏魯郊也인댄 上則譏成王이요 次則譏伯禽이라
成王, 伯禽 不見于經하니 而夫子何譏焉이시리오
曰 猶三望者 所以存周之遺典也라하노라
以三望으로 爲海, 岱, 淮하고
公羊 以爲泰山, 河, 海하고
而杜預之說 最備하야 及國中山川 皆因郊而望祭之라하니 此說 宜可用이니라


08. 그래도 세 곳에 망제望祭를 지냈다는 데에 대한
글 뜻이 소창疎暢하고 운도韻度가 완곡하고 부드럽다.
선유先儒가 《춘추春秋》에서 ‘를 쓴 뜻을 논하여 ‘그만두어도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춘추春秋》에 ‘를 쓴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이렇게 했다.’고 말한 것은 너무 심하다는 말이니, ‘공자 수公子 遂나라에 가다가 땅에 이르러 마침내 돌아왔다.
신사일辛巳日태묘太廟에 제사가 있었는데 중수仲遂 땅에서 죽자 임오일壬午日에 오히려 역제사繹祭祀를 지내면서, 만무萬舞는 추었으나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라고 표기한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했다.’고 말한 것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긴 말이니, ‘윤달에는 곡삭告朔을 하지 않는데 오히려 사당에 뵈었다.’라고 표기한 것과,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으나 오히려 삼망三望을 하였다.’라고 표기한 것이 이것이다.
부자夫子(공자孔子)께서는 나라 가 쇠하여 예악禮樂문장文章이 파괴되었으나 혹시라도 이것을 바로잡을 사람이 없음을 서글퍼하셨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남은 것들을 주워 모아서 ‘온전한 것을 얻어 볼 수가 없으니 그중에 한두 가지라도 얻어보면 된다.’라고 여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윤달에 곡삭告朔을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사당에 뵌 것에 대해서는 곡삭告朔하지 않은 것을 민망히 여기면서 그래도 사당에 뵌 것을 다행으로 여기신 것이요,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는데 오히려 삼망三望한 것에 대해서는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은 것을 서글퍼하면서 그래도 삼망三望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신 것이다.
교사郊祀선왕先王의 큰 예전禮典인데 부자夫子께서는 나라에서 직접 볼 수가 없으셨다.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나라에서 행하는 교사郊祀를 인하여 자세히 말씀하신 것이다.
춘추春秋》에 삼망三望을 쓴 것은 모두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쓴 것이니, 혹은 교제郊祭길흉吉凶을 점쳤으나 점괘가 불길不吉하자 이에 희생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오히려 삼망三望을 하였고, 혹은 교제郊祭에 쓸 소의 입이 상하자 다른 소로 바꿨으나 또다시 그 소가 죽었으므로 마침내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는데 오히려 삼망三望을 하였고, 혹은 생쥐가 교제郊祭에 쓸 소의 뿔을 갉아먹었으므로 다른 소로 바꿨으나 생쥐가 또다시 소의 뿔을 갉아먹자 마침내 그 소를 살려주고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는데 오히려 삼망三望을 하였다.
그런데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는 이르기를 “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요, 라는 것은 그만두어도 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나라가 비록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으나 그래도 삼망三望한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면 이것은 부자夫子께서 나라의 유전遺典을 남겨두려고 하신 것이니, 만약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라고 한다면 나라의 유전遺典이 끊기게 되는 것이다.
혹자或者는 “나라의 교제郊祭는 참람한 행위인데, 부자夫子께서 왜 이것을 기록해서 남겨두셨는가?”라고 의심하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자 한다.
나라의 교제郊祭는 참람한 행위이지만 부자夫子께서 비판하지 않으셨으니, 부자夫子께서 비판한 것은 그 죄의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다.
나라에게 천자天子예악禮樂을 하사한 자는 성왕成王이요 천자天子예악禮樂을 받은 자는 백금伯禽이니, 《춘추春秋》에서 만일 나라의 교제郊祭를 비판했다면 위로는 성왕成王을 비판한 것이 되고 다음으로는 백금伯禽을 비판한 것이 된다.
성왕成王백금伯禽이 《춘추春秋》에 보이지 않으니, 부자夫子께서 어찌 성왕成王백금伯禽을 비판하셨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 ‘오히려 삼망三望하였다.’라고 표기하신 것은 나라의 유전遺典을 남겨두려고 하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범녕范寗삼망三望을 바다와 대산岱山(태산泰山)과 회수淮水라고 하였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태산泰山황하黃河와 바다이다.’라고 하였고,
두예杜預은 가장 완비하여 “분야分野에 해당되는 별과 국중國中에 있는 산천山川에게 모두 교제郊祭를 지내고서 망제望祭를 지낸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 이 가장 따를 만하다.


역주
역주1 猶三望 : 本集에는 제목이 〈問魯猶三望〉으로 되어 있으며, 제목 아래에 “僖 31년, 宣公 3년, 成公 7년”이라고 병기되어 있다. 蘇軾은 이 글에서 ‘猶’字와 ‘三望’字의 함의와 孔子께서 ‘猶三望’이라고 표기한 목적을 논파하고 있다.
역주2 先儒論書猶之義者 可以已也 : 本集에는 ‘義’字 다음에 ‘者’字가 없다. 先儒는 杜預를 이른다. 《春秋》 僖公 31년 經文에 “여름 4월에 네 번 郊祭할 것을 점쳤으나 모두 불길하자 牲을 놓아주고, 오히려 세 곳에 望祭를 지냈다.[夏四月 四卜郊 不從 乃免牲 猶三望]”라고 한 것에 대해, 杜預는 《春秋左氏經傳集解》에서 “魯나라가 하늘에 올리는 郊祭를 폐지하고서 작은 제사는 지냈기 때문에 ‘오히려[猶]’라고 한 것이다. ‘오히려’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魯廢郊天而修其小祀 故曰猶 猶者 可止之辭]”라고 注하였다.
역주3 公子遂如齊……萬入去籥 : 公子 遂는 魯 僖公 때의 대부인데 字가 襄仲이므로 仲遂로도 불렸으며 東門襄仲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黃은 齊나라 땅으로 魯나라에서 齊나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楊伯峻의 注에 의하면 ‘지금의 溜川鎭 동북쪽에 있다.’ 하였다. 有事는 祭祀이고, 垂는 齊나라 땅이다. 대부가 자기 나라에서 죽었을 경우 지명을 표기하지 않는다.
繹은 繹祭로 周나라 제도에 正祭의 다음날 다시 한 번 지내는 제사인데, 어제 제사에 尸童이 되었던 사람을 접대하기 위한 제사이다.
萬은 萬舞로 방패를 들고 추는 武舞이고 籥은 籥舞로 피리를 불면서 추는 文舞이다. 魯나라 사람들이 卿의 喪에 음악을 연주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소리가 없는 萬舞만을 추고 소리가 있는 籥舞는 추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본래 繹祭를 폐지하는 것이 禮이다. 그러므로 猶라고 표기한 것이다. 이 내용은 《春秋》 宣公 8년에 보인다. ‘萬入去籥’에 대해서는 본서 18권 〈用郊〉의 譯註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4 閏月不告朔 猶朝于廟 : 告朔은 告朔聽政으로 天子가 항상 季冬(섣달)에 다음 해 12개월의 月朔(달력)을 諸侯들에게 반포하면 諸侯들은 이것을 받아서 조상의 사당에 보관하였다가 매월 초하룻날이 되면 한 마리의 羊을 가지고 사당에 告由하고 이 달력을 기준하여 제사를 행하였다. 朝는 알현하는 것을 이른다.
이 내용은 《春秋》 文公 6년에 보이는데, 杜預는 《春秋左氏經傳集解》에서 “제후는 每月 반드시 告朔聽政하고서 이어 종묘에 알현한다. 그런데 文公은 閏月이 정상의 달이 아니라 하여 告朔하지 않고 政事를 태만히 하였으니, 비록 종묘에 알현하였으나 알현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猶(오히려)’라고 한 것이다. ‘猶’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말이다.[諸侯每月必告朔聽政 因朝宗廟 文公以閏非常月 故厥不告朔 怠慢政事 雖朝于廟 則如勿朝 故曰猶 猶者 可止之辭]”라고 注하였다.
역주5 猶三望 : 三望에 대해서는 下文에 보이는바, 이 내용은 《春秋》 成公 7년에 나온다.
역주6 乃者……猶者可以已之辭也 : 이 내용은 《春秋穀梁傳》 僖公 31년와 宣公 8년에 각각 보인다.
‘乃者 亡乎人之辭也’에 대하여 何休는 “亡乎人은 賢人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亡乎人 若曰無賢人也]”라고 注하였다.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는 ‘猶者可以已之辭也’에 대하여 “《春秋穀梁傳》에는 이 句가 보이지 않고 《春秋公羊傳》 僖公 31년의 ‘猶者何 通可以已也’로 보인다.”라고 잘못 주석하였다.
역주7 范寗 : 339~401. 晉나라 유학자로 자가 武子이며 南陽 順陽 사람이다. 玄學을 반대하고 儒學을 주장하였으며, 벼슬이 臨淮太守를 거쳐 孝武帝 때에 中書侍郞을 지냈다. 《春秋穀梁傳》의 주석이 미비하다고 여기고 다년간 깊이 연구한 끝에 《春秋穀梁傳集解》를 지었는데, 매우 정밀하여 세상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역주8 分野之星 : 12방위 분야에 해당되는 별을 이른다. 古代에는 하늘의 12星次의 방위에 따라 전 중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누어 대응시키고 이를 ‘十二分野’라고 하였는데, 天文으로 말하면 12星次이고 땅으로 말하면 12개의 지역 또는 나라가 된다. 예컨대 12星次 가운데 降婁는 지역으로는 徐州이고 나라로는 魯나라이며, 降婁에는 24宿 가운데 奎宿, 婁宿, 胃宿가 속해 있다. 12방위는 子․丑․寅․卯 등의 12支에 따른 방위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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